〈 129화 〉 129. 몽마학원 편 (16)
* * *
찌걱
“후후... 벌써부터 존맛의 향이 느껴진다아...”
“하, 13번 욜라 부럽다. 젠장할...”
“끄으... 나도 넣고 싶다.”
“워메, 보고만 있는데 고추 껄떡거리는거 봐라.”
“크아... 지, 집어넣는다..!”
“아, 안 돼... 정말... 크, 큰일...”
86번은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미 눈알이 뒤집힌 이들이었으니 당연했다.
“음료수 좀 사올까?”
“좋지. 오늘 오래할거 같으니까.”
“어, 음... 그럼 야식도 사오는게 좋겠지.”
“매점 싹 다 털어와라. 크크...”
그렇게 몇 명이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오늘 온종일 86번과 섹스를 해댈 생각인 모양이었다.
모든 것은 교육의 일환이었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스터디그룹같은 개념이다. 오로지 이곳이 몽마학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 널 위한 일이야. 그 동안 얼마나 하고 싶었겠어?”
86번은 참다 못해 결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너희들 다 죽어버릴 거야! 나랑 섹스를 하는 사람은 다 죽어! 그래서...”
“그래서 뭐? 나 그냥 너 따먹고 오늘 죽으려고 그러면 되는 거지?”
13번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대답했다. 정말 죽을 거라는 생각은 당연히 안 하는 모양이었지만, 죽음까지 불사르겠다는 소리를 듣자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제 아무도 못 막는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 13번을 막기 위해 나타났다.
“어, 이... 시발... 뭐야...”
매점을 가려던 두 명의 교육생은 복도에 서서 한쪽을 응시한 채 섰다.
13번도 신경이 쓰였는지 그쪽을 뒤돌아봤다. 설마 학생부에서 떴나 싶었던 거다. 그게 아니라면 요근래 통 보이지 않았던 교감이나 교장이 순찰차 나타났을까 싶은 거다. 교수진 중에 하나라면 너무 소란 피우지 말라면서 그냥 지나칠 현장이었지만, 교감이나 교장은 까탈스럽기 짝이 없어서 기숙사 안에서 난교파티를 여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 기숙사에 있어야할 교육생들이 교실에 있다면 얼마나 노할 일이겠는가.
13번은 안 좋은 예감에 허리춤을 슥 여몄다.
“뭔데? 누구 왔어?”
“아니... 그게... 별 일은 아닌데...”
“별 일 아니면 그냥 가던 길 가면 되지. 왜 거기서 그러고 있냐고.”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복도에 나가 있는 두 놈이 망부석처럼 서서 옴짝달싹하지 못했으니까.
“에이, 시발... 막 넣을 참이었는데. 너네들도 건드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나 잠깐 나갔다 올테니까.”
“아흐... 젖꼭지 존나 빨고 싶었는데.”
“흐흐, 야 좀만 있으면 13번 끝나고 돌아가면서 할 수 있으니까 너무 조급해하지마.”
“13번 다음은 바로 나다.”
“지랄하네? 나거든.”
“쉿쉿. 야, 다 조용히 해봐.”
카라깃을 정돈한 13번은 두 교육생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뭔데, 시발.”
“...”
이제 보니 두 교육생은 복도에 선 채로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 그렇게 13번은 두 교육생이 바라보는 쪽을 쳐다봤고 그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다리를 떨게 됐다.
“뭐, 뭐야..?”
복도 끝에서부터 질질 끌려오는 한 남자. 녀석은 분명 오늘 약속이 있다고 86번 따먹는 dday임에도 참여하지 못한 패거리 중에 하나였다.
‘저 새끼가 왜...’
*
나는 한 놈을 피떡으로 만든 채 끌고 가는 중이다. 이 녀석은 내가 화를 내며 다그치자 오히려 86번이 어딨는지 말하지 않았고 나는 결국 폭력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내 안에 있는 야수성은 결국 첫 터치 이후에 깨어나고 말았다. 한 번 갈기기 시작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그녀가 어딨는지 실토했음에도 죽어라 패기 시작했던 거다.
‘그래, 시발. 내가 내 짝꿍 지키겠다고 염병 떤건데 초상 나면 그냥 뒈질려니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렇게 된 김에 여기 있는 새끼들 다 조지고 지옥의 재판을 받고 말겠다.
86번이 내게 큰 의미가 있는 여자는 아니다. 그러나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신념 중에 하나. 나를 한 번이라도 믿었던 놈 혹은 년은 반드시 내가 지킨다. 물론 중도 하차한 새끼들은 제외하고.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되돌려줄건 반드시 되돌려주는 타입인 거다.
86번은 나를 믿고 내 짝이 되었다. 그 후에 내가 실망만 안겨줘서 미안해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오늘 이렇게 폭력으로써 다 갚아줄테니까.
사실 나에게 이런 현장은 충격적이었다. 집단으로 한 여성을 강간한다고? 이게 지금 말이 돼? 너넨 다 뒤졌다, 개새끼들아.
“13번!”
나는 질질 끌고 가던 녀석의 머리를 그대로 복도에 쳐박은 후, 13번과 다른 교육생들이 서 있는 쪽을 향해 빠른걸음으로 움직였다.
일단 이놈들 중 누구 하나라도 죽지 않은 걸로 봐서는 86번에게 삽입까지는 하지 않은 모양이다.
13번은 처음엔 멍하니 내 얼굴을 보다가 내가 코앞까지 당도하자 어눌하게 둘러대기 시작했다.
“뭐, 뭐... 야... 왜 이렇게... 아, 아니... 너 설마 여기서 폭력을 쓴 거야..?”
“그래. 내가 너네 목 따러 왔다. 지금은 기숙사에 있어야 할 시간이지. 앞으로 반나절 동안은 아무도 여길 찾아와서 도와주지 않을 거니까 각오 단단히 하는게 좋을 거다.”
그러자 13번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무슨 문제라도 있어? 우린 아무것도 한 적이 없는데.”
나는 고개를 홱 돌려서 교실 안을 봤다. 안에서 86번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그녀는 윗도리가 다 찢어진 채로 인큐버스 교육생들에게 잡혀 있었다.
“13번.”
“... 응?”
“내 눈이 애꾸로 보이냐?”
“우린 그냥 잠시 교육을 했을 뿐이야.”
“집단으로?”
“어... 왜, 문제될게 전혀 없는데?”
“수업시간이 아니잖아.”
“수업시간이 아니어도 내가 상위 클래스라 너네들 따위 모아놓고 방과후 활동했다고 말하면 그만이야. 아무 문제도...”
“더 이상 개소리는 들어줄 수가 없다.”
나는 13번의 어깨를 붙잡고 그대로 머리를 받아버렸다. 확실히 인큐버스의 몸은 현생 일반인에 비해서 단단한 면이 있었다. 덕분에 나는 내 머리도 쪼개질 것만 같은 기분을 겪어야 했지만, 내가 누군가. 고추도 샌드백으로 쳐 단련을 하는 미친놈. 미친놈으로 등극한 현시점에서 이 따위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쩍 소리가 나고 나서 13번은 대가리가 뒤로 확 제껴진 후, 눈을 하얗게 뒤집어 까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르륵
그러고나서 13번은 쓰러졌고 나는 도망가려는 놈들의 뒷덜미를 잡아서 교실 안으로 냉큼 던져버렸다. 콰당 소리와 함께 녀석들은 책상을 뒤집으며 볼링핀처럼 쓰러졌다. 나는 쓰러진 13번의 목덜미를 잡고 똑같이 안으로 넣어줬다.
교실 안으로 들어가서 손을 턴 후에 말했다.
“너네 좀 두들겨 맞고 시작하자.”
*
86번은 내가 건넨 학원복 상의로 몸을 가리고 서 있었다. 내가 그렇게 사라지라고 몇 번을 말했지만, 계속 교실 한쪽 구석에 서 있는 거다.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그녀가 있어서 이 놈들을 훈육하기가 까다로워졌다. 왠지... 못볼걸 더 보여주기 싫었던 모양이다.
“좌우향우.”
“좌우향우!”
“열중 쉬어.”
“열중 쉬어!”
“차렷.”
“차렷!”
“꿇어.”
“꿇어!”
나는 놈들을 무릎 꿇리고 86번에게 사과하게 만들었다. 13번은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아직가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나머지 놈들은 얼굴이 피떡이 된 상태로 머리를 조아렸다.
몽마학원은 참 독특한 공간이었다. 이런 좆같은 악습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었지만, 결국 교육생들의 보호자는 계약자였고 계약자는 혈육도 아닌 교육생들을 열렬히 챙겨주지 않는다. 모성애라는 것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계약자들에게 있어서 이놈들은 그저 한낱 계약을 하고 움직이는 악마 새끼들에 지나지 않은 거다.
학원에서 쳐 맞고 울던 얼굴이 피떡이 되거나 여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사과를 하던, 그들을 지켜줄 것들은 없다. 오로지 학원의 규칙만이 나를 처벌할 수 있었다.
‘후... 이제 좆되는 일만 남았구만.’
정말이지 좆됐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다.
학원 규칙상 나는 곧 바로 징계 대상이다. 그리고 이 엄격한 처벌 기준에 의해 망자의 길로 다시 되돌아갈 확률이 높다.
나는 벨라가 알려준 대로 손에 담배를 만들어 입에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고 매캐한 연기를 쪽 빨았다. 원래 학원 안에서 뭔갈 소환하는건 금지. 하지만 이왕 처벌 받을거 시원하게 처벌받겠다는 생각이었다.
갈 땐 가더라도 담배 한 대 정도는 괜찮잖아..? 시발...
그렇게 담배를 피고 있는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13번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들고 사태파악을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권리를 찾는 양아치 새끼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너, 너 이 새끼! 우릴 이렇게 만들고 괜찮을 성 싶냐! 너 망자 새끼! 곧바로 망자의 길로 돌려보내서 지옥의 심판을 받게 해주마. 이 새끼들아, 너네도 빨리 자리에서 안 일어나?”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들을 잡아둘 생각이 없었다. 현자타임이 세게 몰려온다.
엉겁결에 자리에서 일어난 교육생들은 13번을 따라 교실밖으로 나갔다.
나는 계속해서 담배를 피웠고 86번은 우물쭈물하다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미, 미안... 나, 나 때문에...”
“뭐가 미안하다는 거지?”
나는 날카롭게 그녀를 위아래로 훑은 후에 계속 피던 담배를 맛있게 태웠다.
“하...”
나는 이제 끝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복도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