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123. 몽마학원 편(10)
* * *
“자, 어떠냐. 이것이 첫 번째 수련이다.”
“...”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 상황에서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태연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구스트밖에 없을 거다. 그는 아주 태연하게 주섬거리며 바지를 추켜올린 후에 내쪽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척 들었다.
“하하하...”
나는 애써 웃었다.
“이게... 저도 가능한 일인거... 맞죠?”
“아니!”
“예?”
“이게 가능했다면 너는 지금 지루가 아니겠지. 그러니까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인거다. 우리가 어떤 궁극적인 목표를 갖고 이곳을 방문했는지 알려주기 위해서.”
“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고 불행이라면 불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저 짓을 하긴 해야한다는 소리니까. 그래도 지금 당장은 저 짓을 안 해서 다행이기도 했고.
“우리들... 그러니까 지옥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우리는 포인트라는 개념이 생긴다는건 알고 있겠지. 그러니까 바꿔서 말하자면 공적치라고 하는 개념이다.”
그 개념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몽마들이 현생에 있는 인간들에게 정기를 빼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다른 여타 악신들이 인간들의 죽음을 통해 공적치를 쌓는 것까지.
내가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지 구스트가 말을 이었다.
“공적치는 곧 우리들의 힘이 될 수 있다. 대부분 하급 악마들 같은 경우엔 그 공적치를 상납하거나 쾌락을 위한 지출 혹은 생활비용으로 쓰는 경우가 많지. 뭐, 그들이야 하루하루 살아남는게 급급하니까.”
지옥에서 생활하는 이들도 자급자족을 해야만 했다. 의식주를 해결해야 했고 상업이라는 시스템이 돌아갔던 거다. 그로인해서 공적치를 이용해 주식을 한다던가 장사를 하고, 도박을 하는 것도 가능했다.
근데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지. 나는 망자라서 공적치를 모으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 학원에 다니면서 여기서 주는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생활하고 있으니까.
“너 지금 그게 나랑 뭔 상관이냐고 생각하고 있지?”
“... 네.”
정곡을 찔렸지만,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너, 벨라라는 교생한테 후원받고 있지?”
“네.”
“아직 계약관계는 아니라고 들었다.”
“... 맞습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가 싶었다.
구스트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리를 했다.
“나랑 계약을 하자.”
“네!?”
계약은 그렇게 쉽게 입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닌걸로 알고 있다. 구스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와 계약을 할 생각이 없었다. 우선 벨라와 구두로 약속을 했던 것도 있고 자칫 구스트와 계약을 했다가 벨라와의 관계가 틀어져서 망자 타이틀마저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리스크가 너무 크다.
보험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다.
그런데 구스트는 이번에도 내 생각을 읽었는지 말했다.
“나랑 전속계약을 하자는 얘기가 아니야. 비밀계약을 하자는 얘기지.”
“비밀계약?”
“비밀계약. 말 그대로 영원히 결속되는 계약이 아니라 유일계약 위에 덧씌우는 이중계약이다. 물론 현재 유일계약이 없더라도 가능하고 지속을 원한다면 계속 지속할 수도 있어.”
“이중계약? 비밀계약? 그게 말이 되나요?”
유일계약은 말 그대로 대상과의 계약을 파기하지 않는 이상, 절대 다른 계약을 할 수 없다는 걸 뜻한다. 그런데 대체 이중이니 비밀유지니 그런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거다.
“여기 지옥이야, 임마. 계약으로 사람을 결속시키는게 가능한데 설마 뒷거래 같은게 안 되겠냐?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 나도 마찬가지야. 정상적인 방법으로 여길 졸업할 생각이었어? 그러면 너 그냥 1000년 넘게 여기서 썩을 거야. 그거 알아? 여기있는 상급생들도 졸업 못해서 몇 천년 썩는 경우도 있어. 물론 망자들의 경우에는 아예 사라져버렸지만.”
“뭐라고요? 자세히 좀 얘기해주세요. 몽마학원에 무슨 비밀이라도 있나요? 아니, 어떻게 학원 하나 졸업하는데 1000년이 넘게 걸리나요? 그리고 상급생이면 일단 저학년에서는 가장 성적이 높았기 때문에 상승된 걸텐데... 그걸로도 모자라서 몇 천년을 썩는다고요?”
“그래.”
구스트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너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내가 알고있는게 빙산의 일각이었다면... 이 학원에 비밀이 있는 거였다면... 그리고 그걸 다 알면서 이곳으로 날 보낸 벨라.
그런데 생각해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이럴줄 알았다하더라도 지옥의 심판을 받고 싶지는 않다. 내가 아무리 정당한 방법으로 불법을 저질렀다고는 해도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영락없는 나쁜짓이 될 수도 있는 거다.
복수의 칼은 피 묻은 칼이 될 뿐이다. 그리고 내 손도 그랬다. 죽기 직전까지도 다른 사람의 피를 잔뜩 묻히고 죽어버렸다. 말년에 회개했다고 해도 누가 알아주기나 하겠냐는 얘기다.
그래도 몇 천년이라니. 너무 심한거 아닌가.
“망자는 10년 정도면 수명이 종료되요. 그때 돼서는 차라리 심판을 받는게 더 낫다고 생각될 정도로 사라진다는 개념이 무섭게 느껴진다고 들었어요. 저는 어떻게든 여길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래. 그러려면 다른 망자들이나 다른 몽마들보다 우위를 점해야지. 그게 당연한거 아니겠어?”
“그래서 이중계약이라... 계약내용은요?”
“간단해. 나와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거다. 권능이나 이런건 내어줄 수 없어. 그건 유일계약에서나 가능한 일이니까. 일단 나와 연결고리가 생기면 첫 번째로 좋은 점을 말해주겠다. 아주 소정이지만, 내가 갖고 있는 공적치를 네게 양도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그 점만을 이용하고 깔끔하게 정리하는거야.”
“... 확실히 그런 제안이라면 얘기가 달라지네요.”
구스트는 지옥의 공무원같은 존재다. 학원에서 교육생들을 가르치며 학원 운영자에게 공적치를 양도받는다. 그 양도받은 공적치로 하루하루를 생활하고 남는 공적치는 그대로 자기개발에 사용하거나 이런 식으로 파트너십을 만들어서 뒷돈 주듯 몰래몰래 후원을 한다고 했다.
당연히 나 이외에도 여러 명의 교육생이 이런 방식으로 공적치를 받았다고도 했다. 그런 교육생들은 대부분 일찌감치 상급생으로 올라갔다. 물론 그 뒤부터는 공적치를 받지 못해서 머무른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상급생이 된다는건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하급생 생활을 몇 년을 해야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런 제안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근데요...”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구스트 선생님이 얻을 수 있는게 뭐죠?”
구스트는 이제야 자기가 듣고싶은 얘기가 나왔다는 듯 씩 웃었다.
“내가 얻고 싶은게 뭐냐고? 간단하지. 너와 나중에 유일계약을 하게 되는 존재는 계약을 할 때 한 가지 작은 조항을 하나 걸게 될 거야. 공적치 양도에 관한 부분이지. 원래는 후견인과 후원자의 관계를 놓고 봤을 때, 수익의 3~10%를 상납하도록 되어있지. 그런데 여기서 부과세를 떼고 뭐하고 하는데 앞으로 너가 계약을 할때는 상납금 부과세 부분에서 내게 상납하는 공적치 비율이 들어가게 될 거다. 그렇게 많지는 않아. 네 후견인이 10%를 받는다면 나는 0.1% 정도를 받게 될 거다. 아마 대상이 체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액일 거야.”
“그 정도로 소액인데 저한테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요?”
“혹시 모르지. 너가 역대급 재능을 가진 섹서가 될지 말이야. 그러면 나는 고작 0.1%만으로 돈방석에 앉는 거야. 너 1등 섹서가 방송으로 버는 돈이 얼만지 알아?”
섹서들이 방송을 통해 후원금을 받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섹서는 굳이 공적치를 써서 살 필요가 없이 현생의 돈을 써서 살아야하기 때문에 공적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당연히 그들의 수입을 얼만지 몰랐고 구스트가 그걸 설명해줬다.
“하루에만 천만 공적치가 들어온다. 천만이야 천만..! 여기에서 0.1%면 일만.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하루에 1만 공적치가 꼬박꼬박 들어온다는게 어떤 느낌인지 알아? 1만이면 섹스에 목마른 여자 10명 정도한테서 수집한 정기와 맞먹는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액수라는 소리지!”
보통 몽마들은 인간을 하루에 2~3명 정도 상대한다. 잠자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만큼 분위기며 배경설정 등의 수고로움과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도 힘들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10명을 하는 것과 맞먹는 금액이 하루에 들어온다면 그의 입장에서도 꽤나 쏠쏠한 이득일 터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특급 섹서가 됐을 때의 얘기고.
그래도 나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 세액이 내가 받을 금액에서 떨어지는게 아니라 나와 유일계약을 맺은 후원자에게서 떨어지는 것이니 알게 뭐람.
“좋습니다. 구스트 선생님. 바로 계약을 맺겠습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바로 계약식을 진행하겠다.”
계약식은 어렵지 않았다. 구스트가 내 이마 위에 손을 얹었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면 내가 눈을 감았을 때, 눈앞에 계약에 관련된 글들이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내려온다. 글을 다 읽으면 동의를 하기 위해 손끝에서 피를 뽑아 서로 상대방의 이마 위에 피로 서명을 한다.
이렇게 계약은 끝.
그렇다면 공적치를 양도 받아볼까.
구스트가 손짓으로 뭔갈 했다. 아마도 내가 보이지 않는 허공에 그만이 보이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그가 그렇게 손짓을 하자 손에 위화감이 느껴졌고 나는 그걸 꽉 쥐면서 내 눈앞으로 펼쳐보았다.
코인이었다. 양도받은 액수만큼의 코인. 형체는 없지만, 존재는 있는 투명한 코인. 나는 이 코인을 허공에 던지듯 날렸고 그 순간, 공적치는 내가 원하는 스텟으로 변환됐다.
“자, 이제... 진정한 수련을 시작해볼까?”
구스트는 어김없이 내게 바지를 내리라고 지시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