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92. 용우의 운수 좋은 날
* * *
용우는 그날따라 매우 심심했다.
청담점에는 딱히 이렇다할 변환점이 없었던 거다. 원래 신입생이 들어오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거나 엔돌핀이나 비타민의 역할을 하기 마련인데 이준원, 저 녀석은 귀여운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하... 성기준 그 새끼가 왔어야 재밌어지는건데.”
어차피 이준원은 매출도 못한다. 제 아무리 성기준의 밑에서 첫 매출을 달성했다지만, 그거야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연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평범한 하루. 뭔가 변환점이 없으면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용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린 시절에도 이랬던 적이 있었다. 너무 심심해서 못 참겠으면 여자랑 섹스하는게 제일 좋다. 그것도 예쁜 여자랑.
전화만 하면 달려오는 섹파들은 많았다. 여자들이 내숭 떨면서 안 그럴것처럼 보여도 몸 좋고 돈 많은 용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끔씩 허리춤에 명품 핸드백 하나 쥐어주면 언제 어디서든 다리를 벌린다. 연말정산이 끝나고나면 돈이 꽤나 들어오는 게 BD짐 팀장직이다. 커미션뿐만 아니라 보너스까지 잔뜩 들어온다. 이러니까 최용수에게 충성을 다할 수밖에 없는 거다.
카페로 걸어가면서 휴대폰을 부여잡고 누굴 따먹을지 고민 중이던 용우는 문득 새로운 여자를 따먹고 싶어졌다.
뭔가 색다르고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예쁜데 자기가 예쁜 건 모르고 순수하고 착해빠져서 섹스라는 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누군가를 찾았다.
그러던 용우의 레이더망에 누군가 하나가 걸려들었다.
카페알바였다. 이전부터 눈여겨 봤는데 어째 오늘따라 더 예뻐보였다. 순수하게 뒤로 땋은 꽁지머리며 무심하게 쓴 안경이 오늘따라 성욕을 자극시켰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주시고요. 그쪽은 언제 퇴근하세요?”
“... 네?”
카페알바는 얼굴을 붉히면서 용우를 바라봤다. 이제 사회 초년생인 그녀는 고등학생 때 선생님을 좋아해본 경험이 있는 일반적인 여성이었다. 판타지는 판타지로 남아야 하는건가? 그렇지 않다. 마침 여기 앞에 꽤나 잘생기고 몸 좋아보이는 남자가 하나 자신에게 추근대고 있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화장이라도 하고 오는건데.
“저 곧 있으면 퇴근인데요... 오전 근무라서.”
“아, 그러시구나. 그러면 잠깐 여기 앞에서 커피 한잔 하실래요?”
“왜, 왜요?”
“왜긴요. 내가 그쪽이 마음에 드니까? 싫어도 5분만 시간 내줘요. 그래도 싫으면 더 이상 귀찮게 안 할게요.”
그래도 깡패치고는 꽤 영리하고 친절한 편에 속했다.
카페알바는 가슴이 쿵쾅거리는 걸 억누르려고 조심해서 움직였다. 입가에 미소가 번져나가는 걸 가까스로 참는 게 겉으로 봐도 다 드러났다.
같이 일하는 동료 직원이 그녀에게 넌지시 말했다.
“야, 지금 나가봐. 어차피 지금 시간에는 손님도 없으니까.”
“어... 그래도 돼?”
“응.”
그러면서 따봉을 한 번 치켜올려준다.
“어... 저... 지금 퇴근해도 될거 같은데 잠시만 여기 건물 앞에서 기다리실래요? 저 옷 갈아입고 와야되서...”
화장실에 가서 조금이라도 화장을 할 요량이었다. 용우가 여기서 기다렸다가는 왜 이렇게 늦게 나오는지 이상하게 생각할 거다.
그런데 용우는 한술 더 떴다.
“그럼 주차장으로 올래요? 밖에 추우니까 제 차에서 커피 한 잔 해요.”
“아, 그럴까요? 조, 좋아요... 그럼...”
됐다. 용우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심심할 때는 떡이 보약이라고. 낮부터 일 땡땡이치고 순수해 보이는 카페알바랑 카섹스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쁜 마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어쩐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못 보던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숨겨진 인기척이 다수 발견됐다.
용우가 아무리 발정난 상태라도 이 정도도 느끼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람도 많이 죽여보고 뒤통수도 많이 때려본 그다.
모르는 척 차량 쪽으로 향하다가 문득 달려서 기둥 옆에 숨은 그림자를 향해 날라차기를 했다.
“어딜!”
퍽하는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내동댕이쳐졌다. 그런데 얼굴이 아는 얼굴이었다. 같은 조직 내의 부하 중에 하나였던가. 아니면 이번에 새로 들어온 녀석일 테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익숙한 얼굴을 마주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얼굴에는 적의가 가득했다.
“시발! 좆됐다. 나와!”
놈이 외치자 사방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용우 형님. 오늘 저희랑 어디 좀 같이 가주셔야 겠습니다.”
용우를 향한 껄렁한 목소리. 용우는 그들을 휙 둘러보며 걸치고 있던 블레이저를 벗어서 바닥에 툭 던졌다.
“너네가 날 담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그러면서 싱긋 웃는데 절대로 허세가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여기있는 열 명 남짓의 남자들을 전부 쓰러트릴 자신이 있었다.
“쳐!”
제일 앞에 있는 한 녀석이 달려들자 용우는 공중으로 높게 솟아올라 돌진해오는 상대를 무릎으로 찍었다. 콰직하는 소리가 들리며 코뼈가 뭉개지고 반동 때문에 몸이 붕 떠서 높게 날아올랐다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착지했다.
첫 타격만에 애송이들이 겁을 집어 먹는 것을 확인한 용우는 멈추지 않고 추진력을 바탕으로 돌진했다.
뻐버벅
빠른 속도로 주먹을 앞으로 뻗어 복부를 가격, 떨어지는 턱을 그대로 쳐올려 쓰러트렸다. 한 번 걸리면 골절상을 입을 정도로 치명적인 공격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남자들은 죄다 먼저 공격하길 망설였다. 어쩌다 자기 차례가 됐다 싶으면 어쩔 수 없이 공격을 해올 뿐이었으나 쪽수로 밀고 오지 않는 이상 쓰러지지 않을 용우였다.
그렇게 네 명 정도가 추가로 더 쓰러졌다. 용우는 손을 털면서 말했다.
“내가 약속이 있거든?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빨리 사라져라. 아가씨 보시면 놀라겠다.”
“이런, 씨!”
빠빡!
달려드는 녀석의 얼굴을 팔꿈치로 무심하게 쳐올리고 그대로 주먹으로 쳐서 쓰러트렸다.
“아, 그리고 바닥에 벗어던진 수트는 비싼 거니까 니들이 새로 사주고.”
“그건 형님이 벗은 거잖습니까. 그리고 빨아서 입으면 되지 뭘 우리 돈을 주고 다시 삽니까.”
“나 빈티지 안입는다.”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를 할 정도로 여유로웠던 용우는 손짓을 하며 다음 상대에게 가까이 오라고 했다.
그런데 뒤쪽에서 누군가 용우를 불렀다.
“용우야.”
그 목소리를 들은 용우는 찬물이라도 맞은 듯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최용수의 목소리였다. 설마 이 기습을 명령한 사람이 최용수란 말인가.
용우는 얼얼해진 주먹을 손으로 쥔 채 가까스로 몸을 돌려 최용수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 근데 왜 동생들이랑 싸우고 있니?”
“... 네?”
“곱게 따라왔으면 좋았을 것 아니냐?”
“... 사장님... 그게...”
지지직
최용수의 옆에 서 있던 한 남자가 테이저건으로 용우를 지졌다. 아무리 싸움에 능한 용우라지만, 과학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방금까지 10대 1로 싸우던 남자가 힘없이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자... 내 와이프를 건드린 대가를 치러야지. 묶어라. 우리 집으로 가자.”
“네.”
*
정신을 차린 용우는 앞이 보이지 않아 온몸에 힘을 줘봤지만,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앞도 보이지 않고 입도 막혀 있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쨍쨍한 밧줄로 온몸이 묶여 있었다.
마지막 기억을 더듬었다. 최용수가 있었고 옆에 있던 덩치 산만한 녀석이 자신에게 테이저 건을 쐈다. 어떤 오해가 있는걸까. 무슨 오해던지 간에 오해를 풀면 될거라고 생각했다. 아직 희망은 있었다.
찌지직
용우의 눈을 가리고 있던 테이프가 뜯어지고 마침내 앞을 보게 된 용우는 앉아있는 최용수를 발견하곤 곧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쾅하고 찍었다.
“읍! 읍! 읍!”
변명할 시간은 줘야될게 아니냐는 소리였다. 자신이 잘못한 일이 없지만, 내용이라도 알아야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최용수는 아무 말 없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떤 한 동영상을 보여줬다.
어떤 남자가 이수진과 성교를 하는 장면이었다. 용우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얼른 이 사태의 이유를 알아차리고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이제와서 내빼겠다는 거냐? 그래, 어디 입을 풀어줘봐라.”
찌익
입이 열리자 용우는 재빨리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동영상은 저랑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하하하... 어이가 없구만. 이 동영상을 나한테 보낼 때 너는 생각을 했어야지. 네 성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말이야. 아주 커다랗고 단단한 네 놈의 성기. 여기 보면 다 나와있지. 이렇게 발달된 근육이라니. 내 주변에 네 놈 말고 다른 놈이 없다.”
“말도 안 됩니다! 진짜... 진짜 억울합니다!”
“흐흥... 그래서 네 꼴을 그렇게 만들어둔거다.”
어쩐지 아랫도리가 허전하더라니. 용우는 자신의 하반신이 벗겨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수치도 이런 수치가 없다. 덜렁거리는 세 번째 다리가 축 처져 있었다. 죽어있는 상태지만, 우람하긴 우람했다. 확실히 동영상에 나온 남자의 성기와 비견해도 마냥 작다고 할 수만은 없는 사이즈였다.
“한 번 확인해보겠다. 들어와.”
최용수가 말하자 방 안으로 이수진이 걸어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용우는 깜짝 놀랐다. 이수진은 보통 때 입던 옷차림이 아니었다. 속옷만 걸치고 있었는데 노골적으로 젖꼭지 부분과 사타구니 부분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용우는 사태가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아랫도리 쪽에서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용우는 알게모르게 이수진을 사모하고 있었다. 그런 이수진을 상상하며 수 없이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해왔던 용우다. 이런 상황이 찾아올 거라는 건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욕정을 거부할 수 없었다.
“오냐... 네 놈이 드디어 본성을 드러내는구나. 그간 속마음을 숨기느라 참 힘들었겠지.”
“아닙니다... 사장님... 이건 오햅니다.”
“네 고추는 미친 듯이 빳빳해지고 있는데?”
“제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성욕이 들끓어서 그렇습니다.”
“그래. 그럼 어디 당사자의 말을 들어보겠다. 어때, 당신. 그때 복면을 썼다던 남자가 용우가 맞는거 같아?”
용우는 확신했다. 이수진이 자신을 배신할 리가 없었다. 그 동안 얼마나 잘 섬겼단 말인가. 남 몰래 연정을 품은만큼 더욱 성심성의껏 챙겨주고 지켜줬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이수진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확실해요. 용우가 맞아요.”
이수진의 손가락은 용우의 거근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동영상에 나오는 그 느낌이랑 똑같아... 이 저질스러운 새끼. 그 동안 내 주변에서 맴돌고 있었구나.”
“아닙니다! 저 진짜 아닙니다! 누명입니다! 사장님! 본부장님! 절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 놈의 주둥아리 다시 묶어라.”
“넵.”
용우는 다시 입을 봉인 당했다.
그리고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죽여라.”
“넵.”
“읍! 으으읍! 읍!”
부웅
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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