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마학원 수석졸업생인 나와 그녀들-80화 (80/159)

〈 80화 〉 80. 주최측의 농간

* * *

다음 날, 강서점에 출근을 했는데 이수진에게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야?”

­ ... 이상해요.

“뭐가?”

­ 그 사람... 이상해요...

최용수 얘기를 하려는 걸까. 하긴 그런 일이 있었는데 같은 침대에서 자려니 얼마나 괴로울까.

“섹스했어?”

­ 아뇨. 아예 침실에 들어오지도 않아요.

뭐?

­ 그래서 어젯밤에는 어디서 뭐하는지 알아봤거든요... 용우 팀장 통해서.

“어.”

용우랑 최용수가 같은 공간에서 지낸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 근데 밤새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만 말해요. 그리고 내 연락도 받지 않았어요... 이상하지 않아요?

“이상하지. 이상하긴한데 뭐... 방법이 있나. 먼저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르니까. 근데 최용수가 집에 안 들어오면 오히려 좋은거 아닌가? 그쪽 지금 내 고추 아니면 안에 집어넣기도 싫잖아.

­ ... 지금 그런 소릴 하고 싶은 거예요?

“최용수. 그 자식 이미 알고 있어.”

­ 뭐라고요?

수화기 너머로 화들짝 놀란 이수진의 얼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얼마나 창백해졌을까. 말이야 최용수를 배신하고 내게로 오겠다고 말을 했지만, 사실상 최용수는 조폭 우두머리급 인사다. 사람도 맨손으로 패죽이는 실정인데 자기라고 몸 성히 나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다.

“최용수가 알아. 근데 어떤 놈인지는 몰라.”

­ 어... 어떻게?

나는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목격자가 있는 모양이야. 너랑 내가 차 안에서 하는 걸 본 거지. 근데 당신 차니까 당연히 당신이라는 건 아는건데 내 얼굴은 못 본 모양이더군.”

­ 서, 설마 용우 팀장이 봤다거나?

“아니야. 찌끄래기 앞잡이가 본 거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용우 팀장은 몰라.”

­ 후...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최용수가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있다. 어디서 뭘 하고 있으려나.

사실 지금쯤 최용수가 홧김에 이수진의 몸을 겁탈하면서 윽박질렀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정반대의 결과가 나와버렸다. 녀석은 지금 어디선가 이를 갈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정말 자기 부인에 대한 분노 때문에 어딘가에서 다른 여자 몸으로 물이라도 빼고 있는 걸까.

어떤 그림이어도 이상한 그림은 아닐 거다.

최용수가 이수진에게 손찌검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녀석이 성적으로 둔탁해서 그렇지 이수진을 향한 사랑만큼은 확실하다. 적어도 전생의 내 기억에서는 그렇다. 이수진 본인도 느끼지 못한 최용수의 성향이다.

아무래도 이 모든 걸 파악하고 있었기에 실행할 수 있었던 작전이었다.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걱정 안 해도 되요.”

­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요?

“응.”

금방 진면목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사무실에서 강서점 직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다들 날 외계인처럼 바라보고 있는데, 그에는 다 이유가 있다.

어제 나는 홍푸른이라는 처음 보는 다른 지점 사원을 통해 천 오백만원의 매출을 하루만에 달성했다. 대상은 전부 스튜어디스들이었고 총 8명의 여자들을 맛보면서 계약서에 서명을 하게 만들었다.

천 오백만원이라는 수치는 말이 천 오백만원이지. 사실상 일반적인 팀장들 조차도 하루만에 천 오백만원의 매출을 한다는 것은 오픈빨이 아니고서야 쉽지 않다. 여기서 오픈빨이라는 건 갓 오픈 한 센터를 뜻한다.

내가 미친놈인지 홍푸른이 미친놈인지는 지금까지의 실황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금방 파악할 것이니 날 미친놈으로 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최지아는 자신이 알려준 BR 방식이 통했다는 것에 뿌듯해 하는 모습이었고 한지우나 제시카는 내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후광이라도 쳐다보는지 날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여기에 있는 어떤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위치가 됐다. 비록 출근한지는 1개월이 채 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그 동안 내가 보여준 건 상상을 초월하니까.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들에게 인사를 끝낸 후에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팀원들이 대기하고 있는 상담실로 향했다. 그리고 상담실에 들어가는 순간 인상이 찌푸려졌다.

“뭐야. 다른 선생님들은 다 어디갔어?”

이게 대학생 생활에서나 볼 수 있는 조별과제의 진면목이라도 된다는 듯, 그들은 출근 시간이 30분이나 지났는데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홍푸른도 영문을 모르고 연신 휴대폰만 쳐다볼 뿐이었다.

“모르겠네요... 제 연락도 안 받고... 어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내가 길거리에서 소스를 찾으라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긴 했어도 이렇게 돌연 종적을 감춰버릴 줄이야.

“음... 푸른아.”

“네, 형.”

“너가 지금 감당할 수 있는 매출 수준이 천오백만원 정도였던가?”

“네.”

원래 매출에는 제한이 없지만, 신입 트레이너의 경우에는 좀 다르다.

아직 일정 기간을 보내지 않은 신입 트레이너 중에 간혹 가다 ‘먹튀’를 시도하는 트레이너가 있어서 혹시 몰라 BD짐 내에서 걸어둔 제약이 있다.

예를 들어 신입으로 들어온 트레이너가 한 달만에 매출을 삼천만원을 했다고 치자(모종의 계략에 의해서). 그랬을 경우 센터에서는 바로 다음달에 신입 트레이너에게 월급으로 일정 퍼센트를 떼어줘야 한다. 커미션 퍼센트야 매출 구간 별로, 지역 별로 다르지만, 삼천만원이라는 거액의 계약을 성사했을 경우에는 대체로 20%에 가까운 커미션을 받아갈 수 있게 되어있다. 그럼 600만원의 월급을 받게 되는데 이렇게 월급을 받아 쳐먹은 후에 트레이너가 돌연 사라지고 회원들은 전부 보란 듯이 계약 환불.

계약 환불건에 관해서는 적어도 2주 내로만 환불이 이뤄지고 PT를 한 번도 진행하지 않았을 경우 위약금이 붙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기 때문에 별 문제없이 환불을 해줘야만 한다.

따라서 센터 재정은 고스란히 ­600만원.

그 때문에 최소 천오백만원으로 신입 트레이너의 매출을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송하윤한테 말해봐. 그쪽 팀이랑 매출 얼마나 차이나는지 확인해 보라고.”

묘한 직감이 왔다.

홍푸른은 내 의중을 단번에 알아차렸는지 송하윤뿐만 아니라 나머지 1개 팀의 매출까지도 파악해서 내게 보고했다.

“송하윤 팀은 지금 800만원 매출 실적을 올렸고 황준형 팀은 1200만원을 했네요...”

“... 그렇게 많이 했다고?”

의외였다. 대체 무슨 방법으로 그렇게 단기간에 매출을 했단 말인가? 우리야 BR을 했다지만.

똑똑.

바로 그때 등뒤에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누군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홍푸른의 고개가 위로 번쩍 솟구쳤다. 녀석의 눈동자는 커다래졌고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마치 이수진이 수화기 너머로 짓고 있었을 표정처럼.

나는 내 뒤쪽에 누가 있을지를 알고서 고개를 돌렸다.

최용수.

그가 씩 웃으면서 내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최용수는 근 이틀동안 송하윤과 황준형 팀이 위치한 지점에 가서 두 팀에게 솔루션을 해준 모양이다.

최용수는 나와 함께 건물 밖으로 나와서 뒤뜰을 걸었다.

“자네가 꽤 능력있는 친구라고 들었네. 내 부인한테서도 들었고 용우 녀석에게서도 들었지. 그리고 뭐, 알고 있겠지만 내 딸 지아에게서도 들었네. 그때 정석이랑 술집에서 마주쳤던 게 처음이었지 아마?”

“네, 그렇습니다.”

“그래... 어때, 센터 생활은 할만 한가?”

“그럭저럭 버틸만 합니다.”

“하하. 버틸만 하다라. 의외의 답변이군. 버틸만한 사람치곤 너무 잘하고 있는데. 홍푸른 사원이 천오백만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다 자네 덕이겠지?”

“...”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딱 하나...

“근데 다른 멤버들은 챙기지 못했나 보군?”

“... 알고 계셨습니까?”

말도 안 돼는 일이다. 그들이 출근하지 않은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근데 그 소식이 이 센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사장님 귀에 들어갔다고?

내가 날카로운 눈매를 드러내자 최용수도 엄숙하게 받아쳤다.

“내 사업장에서 내가 모르는 일은 없지. 어때, 이대로라면 자네 앞길에 걸림돌이 생길 것 같은데.”

“어떤 이유 때문에 이러시는 겁니까?”

그러자 최용수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내가 뭘 어쨌다는 건가?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네.”

“... 원하시는 바가 있으실 것 아닙니까.”

최용수는 제법이라는 듯 한쪽 입꼬리를 씰룩 올렸다.

“내 밑에서 일할 생각없나? 물론 지금도 내 밑에 있지만, 강서점에 있기엔 아쉬운 인재야. 내 측근에서 용우랑 함께 일하게.”

“죄송한 말입니다만, 용우 팀장에게도 이미 말했습니다. 저는 강서점을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요.”

“배신? 배신이라는 단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실리적인 움직임과 판단이 있을 뿐이지.”

과연 배신자가 할만한 소리였다. 그러니까 전생의 날 배신했던 이유가 전부 실리적이었다는 뜻이란 말이지.

지금 당장 놈을 제압해서 쓰러트릴까.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건물 뒤편은 가끔씩 경비원이 순찰하는 작은 정원이 있을 뿐이다. 어떤 미성년자들이 찾아와서 담배를 피는 조잡한 공간일 뿐이었다. 여기서 놈을 고꾸라트린 후에 대가리를 으깨서 영원히 과거가 기억나지 못하게 반병신으로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하, 그런데 내 마음은 그렇게 하라고 하는데 내 고추는 그러라고 하지 않는다.

내게는 원대하고 묵직한 꿈이 있기에.

“어쨌든 저는 청담점으로 갈 생각이 없습니다.”

“후, 그렇구만. 그렇다면 내가 한 가지 부탁을 하겠네. 이걸 들어주면 자네와 홍푸른 사원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겠네.”

“... 어떤 부탁입니까?”

“사실...”

최용수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내게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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