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마학원 수석졸업생인 나와 그녀들-77화 (77/159)

〈 77화 〉 77. 팀플레이(5)

* * *

다음 날, 홍푸른은 나를 보자마자 기쁨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형님!”

그래. 내가 이 고추 하나 희생해서 너희의 밥상을 차려줬다. 비단 홍푸른만이 감사함을 표하지는 않았다. 나머지 두 사람도 머리를 조아리는 걸 보니 앞으로 내 말을 잘 들을 모양이다.

나는 매니저를 비롯한 강서점의 다른 선생님들에게 하나하나 인사를 다 마치고 난 후에야 홍푸른 외 3명이 기다리고 있는 사무실로 들어가 보고를 들었다.

“명단 내에 있는 30명에게 각자 연락을 한 결과, 총 10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수신을 했고 12명 정도가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습니다. 몇 명은 바로 당일날 수업 후에 세일즈까지 마쳤고 7명은 완저히 미스가 났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미수신자들은 어젯밤에 형님에게 보내드린 명단 그대로고요.”

“그래. 여기 밑에 있는 메모들은?”

나는 홍푸른이 건네준 차트에서 알 수 없게 휘갈긴 문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어제 저희가 퇴근시간 이후에 각자 앉아서 클로징 미스난 회원들에 대해서 복기를 잠깐 했었거든요.”

오호.

확실히 홍푸른은 사회성이 좋다. 대학생활을 마친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조별과제의 이상적인 측면을 그대로 실현하고 있다. 나중에라도 이런 방법은 써먹을 데가 있을테니 내 머릿속에도 메모를 해놔야겠다.

그나저나 내가 신예인 사타구니를 겁탈하고 있는 동안 이런 수고로움을 다 무릅쓰다니 기특하기도 했다.

“잘했어.”

홍푸른은 내 칭찬을 듣고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나는 그 감개무량함을 끊어버리고 내가 해야할 말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클로징율이 높지 않아. 내가 신예인 회원한테 들었는데 여기 써있는 사람들은 모두 PT를 할 생각이 있었어. 그건 나머지 두 선생님들도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해요, 그쵸?”

두 사람은 기색이 어두워져선 고개를 끄덕였다.

“PT를 할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재정적인 능력도 확보하고 있는데도 등록하지 않고 집에 돌아갔다는 건 아무리봐도 이유가 하나밖에 없어. 뭘까?”

“세일즈가 잘못 된 거...”

“그렇지. 아니면 내 담당 트레이너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좀 미안한 게지. 뭐, 두 가지가 결국 하나로 점철되고 있기는 하지만. 푸른아.”

“네?”

“너만 따로 나와서 잠깐 얘기 좀 하자. 두 분은 뭐가 문제였는지 파악하는 것도 좋지만, 서로 어떤 식으로 세일즈를 하는지, 나는 어떤 방법이 좋았는지 각 지점 팀장들에게 배운 노하우에는 뭐가 있는지 얘기를 나누고 계세요.”

““넵.””

나는 홍푸른을 데리고 센터 대문 앞으로 나왔다.

“저 두 사람한테 중요한 건수를 맡기는 건 실수였어.”

“음...”

“너가 담당한 회원 10명중에 세일즈 시도한 사람이 몇 명이었지?”

“3명입니다.”

“근데 그 중에 1명을 등록시킨 거잖아?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각각 내일과 모레 두 번째 수업을 예약 잡았어요.”

“그러면 아직 모르긴 몰라도 더 매출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네. 근데 다른 두 사람의 클로징율은 어떻지? 잠재적으로는 0%야. 어제는 30명 중에 가능성인 높아보이는 사람을 네가 알 방법이 없었겠지만, 지금부터는 좀 확률있는 싸움을 할 수 있어. 어제 신예인 회원을 만나서 사전에 얻을 수 있는 좋은 정보를 입수했으니까.”

“오, 좋은데요? 그럼 어떻게 할까요?”

“좋은 건수는 너랑 내가 다 나눠먹어야지.”

홍푸른은 아직까지 사회에 덜 물들여진 뭉글뭉글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순수한 마음도 좋긴 좋지만, 영업직을 하면서 언제까지나 그런 연약한 마음을 지닐 수는 없다.

나는 최지아팀을 만나면서 그걸 느꼈다. 한 팀의 팀장이란, 팀원의 단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것을. 그 동안 나는 최지아팀의 팀원이면서도 세 여자들의 멘토로써 역할을 해왔다. 그걸 그대로 우리 팀에 적용을 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뭘까? 정확히 경쟁력에 있다.

땅을 파서라도 돈을 벌어온다는 미친 서바이벌식 감성을 심어줘야 했다. 내가 했던 눈만 뜨고 있으면 밥상을 차려주는 식으로 계속 가다간 두 사람의 영업 인생을 망쳐버릴 수도 있다.

최용수가 요구하는 팀장의 조건 중 한 가지를 충족시키려고 하고 있다.

홍푸른은 내 제안이 어째 석연치 않았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쭈뼛거렸다. 당연한 반응이다. 그 놈의 의리. 그가 지켜야할 의리나 충의 따위는 사회 생활의 어두운 면을 만나게 되는 순간 커다란 벽을 만나 그대로 고꾸라져 더욱 더 어두운 방향으로 끌고 갈 가능성이 높다.

나는 쭈뼛거리는 홍푸른의 생각을 일단락시켜주기 위해 설명을 해줬다.

“우리는 단기전을 하고 있어. 일주일 동안 최대한의 성과를 내야 하지. 근데 조건을 잘 살펴보면서 할 필요가 있다는 걸 어제 BR에 대한 개념을 깨닫고서 배웠지. 오늘 우리가 배워야할 덕목은 바로 그거야. 최고의 효율성. 최용수 사장이 원하는 이번 과제의 목적은 바로 그거야. 영업의 세계에는 기간 내에 어느 정도의 매출을 맞춰야 하는 마감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상반기 실적, 하반기 실적을 괜히 나누는 게 아니거든. 그 기간 내에 최대의 실적을 내기 위해선 미드필더들이 최고의 공격수에게만 패스를 뿌린다. 이게 아주 중요한 경기고, 네가 감독이라면 어떤 작전을 실행하겠어? 뜨내기 공격수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겠어?”

“... 아닙니다.”

이제야 뭔가 깨달음을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홍푸른. 나는 씩 미소를 지어줬다.

홍푸른은 어울리지 않게 잠시 생각을 한 후에 또 말했다.

“근데 저희 팀워크 미션의 조건은 팀장을 제외한 팀원들이 매출을 해야 되는거잖아요? 저랑 형이 나눠먹어도 되요?”

“나눠먹는 방법이 있지.”

“뭔데요?”

최용수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는 이번 미션을 통해 팀장들을 시험하고자 하면서 동시에 매출을 줄일 생각일 것이다.

최용수가 아무리 최지아의 아버지이기는 하지만, 이정석과의 관계가 틀어진 순간 부녀 관계가 약간은 어긋났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따라서 그가 원하는 방향은 내 매출을 줄이고 최지아팀이 청담점에 지게 만드는 것이다. 덩달아 내 매출이 떨어지게 되면 그들이 날 청담점으로 데려올 핑계거리도 생긴다.

하지만 최용수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있다면 그거다.

나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 살아숨쉬는 것 중에서는 감히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간사한 악신들의 세상에서 몽마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나온 이 몸이시다.

“다 방법이 있어.”

나는 홍푸른에게 잔말말고 받으라는 식으로 신예인이 알려준 명단을 넘겼다.

“이 여자들한테 연락을 해서 예약을 잡을건데 센터 밖에서 약속을 잡아. 거기 적혀있는 주소인데 각각 옆방에서 볼 거야.”

“헉... 여기 모텔 아니에요?”

“응, 맞아. 모텔이야.”

“모, 모텔로 오라고 하면 그 여자들이 올까요?”

“어, 올거니까 걱정하지 말아.”

신예인이 잘 설득했다면 잔말 말고 나올 거다. 우리는 트레이너가 아니라 전문 마사지사들이니까.

세상에 공짜 싫어하는 사람 없다고 공짜로 마사지를 해주겠다는데 마다할 여자들이 아니다. 그것도 회사에서 꽤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신예인이 추천을 해줬으니 더 신뢰가 갈 것이다.

“그럼 바로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어, 그리고 방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전부 비밀이야.”

“... 네?”

“무슨 말인지는 그때 가서 보면 알게 될 거야.”

나는 전화를 돌리는 홍푸른을 등 뒤로 하고 두 뜨내기들이 있는 사무실로 다시 들어갔다.

이들에게도 시킬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은 과제를 하나 주고 나갈게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두 사람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군기가 바짝 서 있다. 처음보다는 확실히 의지가 생긴 모습이다. 가능성이 생겼다고 여겼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과연 내가 내주는 과제를 듣고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어떤 과제인가요?”

“우리는 BR에서 소스를 찾았습니다만, 어제 경험해봐서 알겠지만, 무조건적인 능사는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을 겁니다. 따라서 여전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너희들에게는 흙을 파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나가세요.”

“네?”

“밖으로 나가서 전단지 돌리면서 PT 세일즈도 같이 하는 겁니다.”

“... 네?”

렉 걸린 컴퓨터 마냥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자기네 귀를 의심하는 듯한 얼굴들이다. 나는 굴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영업이라는 건 이렇게 책상에 앉아서 얘기한다고 나오는 게 아닙니다. 저랑 홍푸른 선생님도 오늘 똑같이 현장에서 발 벗고 뛸 예정입니다. 스텝 수업도 없고 게스트, CS도 힘들다면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아...”

이제야 설득이 됐는지 납득한 얼굴로 안색이 바뀐다.

“지금이 오후 3시니까 퇴근 시간까지 밑창이 닳도록 돌아다니셔야 할 거예요. 적어도 소스를 인당 5개씩은 만들어 온다는 생각으로. 오늘 세일즈건 있으신 분은 제때 들어와서 수업 진행 후 결과 보고할 것. 아시겠죠?”

““넵!””

*

몇 시간 후, 홍푸른과 나는 함께 인근 모텔에 도착했다.

신예인과 한 여자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신예인과 모텔 507호에 들어가고 홍푸른은 신예인이 데리고 온 여성과 함께 508호 안에 들어갔다.

“후, 어제랑 오늘 연속해서 뵙네요.”

나는 겉옷을 벗어 걸면서 신예인에게 말했다.

그녀는 어제와는 다르게 멀쩡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제의 기억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었다. 우물쭈물 거리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하며 자꾸만 내 시선을 회피하는 걸 보면 확실했다.

나는 그럴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 온 술을 하나 꺼냈다.

“어, 그건?”

“데낄라~”

소주보다 훨씬 강력하고 한방에 보내버릴 수 있는 술이다.

나는 커다란 머그컵에 데낄라를 가득 따라서 신예인에게 건네줬다.

“원샷해요. 지금부터 하는 모든 건 제정신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수도 있으니까.”

“...”

망설이는 신예인.

나는 신예인의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말을 이었다.

“어제 했던 약속. 잊은거 아니죠? 이거 다 마시면 어제 느꼈던 감정보다 훨씬 좋은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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