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마학원 수석졸업생인 나와 그녀들-75화 (75/159)

〈 75화 〉 75. 팀플레이(3)

* * *

“BR이요?”

BR은 기존 담당 회원에게 소개를 받는 것을 뜻한다.

“네. BR. 스텝을 주지 말라고 했지, 다른 트레이너에게 소개를 해주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까요.”

나는 그녀의 열띤 웃음에 담긴 의미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확실히 그렇다. 팀장더러 매출을 하지 말라고 했지. 팀장 지인이나 팀장의 회원의 지인을 소개해주지 말라는 법은 없다. 엄연히 말하면 그들은 스텝 회원도 아니고 기존 회원도 아닐뿐더러 어느 곳에도 속해 있지 않은 천연 자원이나 다름 없으니까.

“굳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요.”

“황금 알을 낳을 필요는 없고 그냥 알 낳을 거위만 있으면 되는군요.”

“..? 하하! 그러네요. 역시 기준쌤은 비유도 남 다르다니까.”

“고마워요. 지아 팀장님.”

“에이, 뭘요...”

그녀는 쑥스러운지 자기 머리 끝부분을 손가락으로 돌돌 말아댔다.

나는 어쩐지 그녀의 속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섹스에 눈을 뜬 젊은 여자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달뜬 눈으로 날 바라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이번 신입생 미션이 끝나면 단둘이 시간 가져요. 하루 정도 스케줄 비워줘요.”

내가 원하는 말을 해줬는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그녀. 누가 그녀를 나무랄 수 있을까.

“알겠어요. 그럼...”

빠른 걸음으로 멀어지는 최지아의 발걸음은 이전의 어떤 발걸음보다도 가벼워보였다.

예쁘다. 최지아는 화사하게 웃으며 담당 회원과 마주했다. 센터에 있는 쨍한 조명이 그녀의 분홍빛 머릿결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줬다. 그런 그녀가 스트레칭을 지시하면서 곁눈질로 날 인식하며 얼굴을 붉혔다. 제법 설렌다. 이러다 정분나는건 아닌가 모를 정도로.

어이쿠. 나는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지금도 송하윤 팀은 미친 듯이 매출을 하고 있을 터. 최용수가 말한 무한 경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분일초가 아깝운건 사실이다.

나는 사무실로 들어가 세 사람이 앉아있는 자리에 앉았다.

이게 팀장의 시각인가.

막상 팀장의 자리에 앉게 되니까 책임감이 생기는 걸 느꼈다. 물론 내가 인생 경험이 누구보다도 많아서 여유는 있었지만, 그래도 이들의 앞길에 도움을 줄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건 막상 겪어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이리라.

그것도 이런 멍청한 것들이 매출을 하도록 만들어야한다는 건 골치아픈 일이다. 이 세상에 나 같은 신입만 있으면 팀장들이 얼마나 편하겠니.

나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나서 얘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CS를 할 겁니다.”

“CS요?”

멍청한 얼굴을 한 이준원과는 다르게 홍푸른은 CS에 대한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는지 자기가 하고싶은 말을 줄줄 외기 시작했다.

“형님... CS는 가능성이 제일 낮아요. 그것도 타지점에서 매출을 하려는건데 CS로 해봤자 누군들 저희 얼굴을 알겠어요? 그러니까 제 말은 이런 거예요. 기존 회원한테 전화를 했는데 어이쿠, 안녕하세요. 회원님 참 오랜만입니다. 저 아시죠? 저 누구누구 트레이너예요. 아~ 예~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참 매끄러운데 어... 누구세요? 이러면 참 막막하단 말이죠.”

“마, 맞아요. 전화를 하는건 딱히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나는 가만히 지켜보다가 파일 하나를 꺼내서 보여줬다.

“이 회원의 이름은 신예인이예요.”

세 남자는 신예인의 프로필에 있는 사진을 보고 감탄했다.

우와­ 우와­ 예쁘다­

하, 남자들이 다 그렇다. 그나저나 홍푸른 이 자식도 이럴줄은 몰랐다. 송하윤 앞에서도 평정심 유지하던 놈이 신예인 얼굴 보고 눈이 돌아가다니.

“이 회원은 스튜어디스고요.”

우와­ 우와­

지랄하네, 진짜.

“원래는 나한테 회원 소개해주기로 했는데 이번에 선생님들한테 기회를 드릴게요.”

우와­ 우와­

머리가 비어있는 두 남자와는 다르게 정신을 차린 홍푸른이 눈을 뻔뜩이며 말했다.

“BR이군요. 스텝 회원을 받지 말라는 얘기는 있었지만, BR을 막은건 아니니까. 엄연히 말하면 스텝 회원도 아니니까 룰을 어기는게 아니군요. 역시 형님!”

그래도 확실히 인지하고 대신 설명해주는 녀석이 있어서 다행이다.

“자, 그럼 나는 신예인 회원 만나러 갈테니까 명단 넘기면 바로 스케줄 잡고 오늘 저녁 내로 전부 진행해요. 그래야 내일도 새로운 소스를 찾을 수 있을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형님, 명대로 하겠슴돠!”

“쓸데없이 군기 잡지마.”

“넵!”

“하­ 난 그럼 가본다. 푸른이가 나머지 두 사람한테 잘 설명하고 서로 CS 롤플레잉 할 수 있도록 준비해놔.”

나는 그렇게만 지시를 해놓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홍푸른 정도면 그들에게 기본적인 교육 정도는 해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휴대폰을 꺼내서 신예인에게 전화했다.

“회원님. 오늘 오프예요?”

­ 어머나, 오랜만에 연락이 왔네요. 지난주 내내 죽었나 살았나 궁금했잖아요.

“말도 마요. 저번주 내내 신입 교육 때문에 강서점에 발도 못 디뎠어요.”

­ 오늘 오프 맞아요. 근데 왜요?

“지난번에 했던 약속이요. 회원님이랑 술 같이 마시면 회원님 친구들 싹 다 데려온다고 했었잖아요.”

­ 응... 그랬죠. 그게 오늘인가? 훗. 나 아직 메이크업도 안했는데.

“아, 근데 저 말고 다른 선생님들한테 소개 좀 시켜줬으면 해서요.”

­ 오? 그건 무슨 뜻이죠?

신예인은 혼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베시시 웃었다. 아무래도 자기 친구를 내게 소개해주기가 내심 싫었나보다. 맛있는건 혼자 먹으려는 심리가 있듯이 나 역시 독차지하고 싶어한 거다.

그럼 어디 장단에 맞춰줄까.

“좀 그렇잖아요? 회원님 친구들이랑 있으면 왠지 좀...”

­ 음? 왜일까?

“이따 술 마시면서 얘기할까요?”

­ 그럴까요?

전화를 끊은 뒤에 나는 그녀가 살고 있는 김포공항 쪽으로 향했다. 전철을 타고 20분 정도 되는 거리인데 역과 좀 거리가 있는 곳에 살고 있어서 버스로 갈아타서 한참을 또 안으로 들어가야했다.

결국 한시간 정도 걸려서 목적지에 도착했더니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신예인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승무원은 확실히 트레이너들과는 다른 무드가 있다. 저 미소가 진심인지 서비스 차원의 미소인지는 알 수 없다. 입술은 안젤리나 졸리만큼이나 두꺼운 편이고 새빨갛게 칠해서 섹시했다. 일단 무엇보다 확실히 다른건 위아래가 참 길쭉길쭉하다는 거다.

그나저나 오늘 추울텐데 꽤나 과감한 옷을 입고 왔다. 속이 비치는 시스루 스타킹을 신었는데 자칫 잘못하면 다리 사이의 음탕한 골짜기가 보일 정도였다.

“일주일만에 뵙네요.”

“그러니까요.”

“크흠. 여기까지 오는데 한 시간이나 걸릴줄은 몰랐네요. 여기까지 온 게 헛수고가 아니었으면 좋을거 같은데.”

“헛수고?”

“비지니스는 비즈니스니까요. 신예인 씨 약속 지킬거잖아요.”

“명단은 보내놨는데... 그 친구들이 다 다니는 헬스장이 없어서 나한테 좋은 트레이너 소개시켜달라고 했었거든요.”

“아, 지금 확인할게요.”

나는 아름다운 신예인을 앞에 냅두고 꽤나 이성적일 수 있었다. 휴대폰을 꺼내서 그녀가 보낸 그림파일을 확인했다. 확대해서 전화번호가 깨지는지 안 깨지는지 확인한 후에 그걸 다시 홍푸른에게 전송시켰다.

“스무명 정도네요.”

“네.”

마치 자기 연줄이 이 정도는 된다는 듯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가 이래봬도 승무원들 사이에서 인싸거든요.”

“하하. 승무원들은 다 인싸 아닌가?”

“무슨 소리예요? 소심한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집에 박혀서 밖에 안 나오는 애들 진짜 많아요.”

“나는 그런 스타일이 좋던데.”

“흥... 일단 술이나 한잔 마셔요.”

그녀는 잔뜩 기분이 나빠졌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다리를 꼬았다. 테이블 밑에 숨겨져 있지만, 저 정도 각도면 분명 속옷이 훤히 비칠 것이다.

나는 신예인이 했던 약속을 그대로 이행하고 있다. 같이 술을 마신다 = 친구를 소개해준다. 다른건 절대 할 생각이 없었다.

처음 내게 PT를 등록할 때의 신예인은 당연히 나와의 잠자리를 원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쉽게 고추를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특히 신예인같은 스타일은 쉽게 잠자리를 해주면 금방 질려서 환상이 깨지는 스타일이다. 다른 여자라면 상관없지만, 내 돈줄을 그런 식으로 내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녀는 과일 안주를 시켜놨다. 과일 몇 개 내주면서 만 얼마 받는 그 안주 말이다.

그래도 바깥 경치가 꽤 좋은 2층 테라스 자리에 위치해서인지 술은 쑥쑥 들어가는 편이었다.

시간은 6시가 좀 넘어가는 시점. 지금쯤 홍푸른이나 다른 팀원들이 매출을 하고 있을 거다. 나는 이렇게 여자랑 술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지금쯤 잘하고 있으려나.’

홍푸른의 성격상 누군가 매출을 하면 바로바로 피드백이 날아올 건데 그렇지 않은걸 보면 희소식은 아직인가보다. 당일 클로징이라는 말이 있는데 말 그대로 원샷원킬이다. 그만큼 회원이 만족을 해야하는거고 휘트니스계의 홀인원이라고 불릴만큼이나 고난이도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하­”

얼추 취했는지 신예인의 입에서 뜨거운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씩 웃으면서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많이 취하셨으면 이쯤 마시고 돌아갈까요?”

“아뇨! 그럴 순 없죠. 이게 어떻게 따낸 기회인데.”

“하하, 다음에도 또 마시면 되죠. 오늘도 마셨는데 다음에는 못 마시려고요?”

“읏... 그런가? 히히... 아, 나 근데 오늘은 좀 늦게 들어가고 싶은데.”

홀짝.

짠도 안하고 혼자 소주잔을 쫄랑 마신다. 입술에 묻을 정도로만 빨아들인 알코올은 얼마 못가서 입술에만 묻고 메마른다.

일반적인 남자같았으면 지금 당장 그녀를 데리고 모텔로 뛰어갔을 거다. 그만큼 신예인의 표정이나 말투는 노골적이었다. 가끔씩 테이블 밑으로 다리를 건드리는 제스쳐가 킬링 포인트였다.

“오늘 술맛 좋네요. 취하는 날이려나?”

내가 말하자 신예인은 잔뜩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지?”

“뭐가요?”

내가 빙글거리면서 웃자 더 열이 뻗친 신예인은 결국 몸을 일으켜 내쪽으로 오려다가 기우뚱 몸을 내쪽으로 쏟아버렸다. 나는 별안간 일어난 일에 대비라도 된 듯 본능적으로 그녀의 몸을 잡아서 끌었고.

이전처럼 맛뵈기라도 보여줘야 하려나.

나는 슬쩍 휴대폰 화면을 봤다. 홍푸른에게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 홍푸른 : 매출 성공!!! 완전 대박이에요.

­ 홍푸른 : 준원쌤이랑 창식쌤은 다음 스케줄 예약했는데 이번 주 내로 진행할거 같아요.

오케이.

그럼 나는 나대로 즐겨볼까?

“신예인 씨.”

“후으음... 네엥...”

“댁으로 모실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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