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73. 팀플레이(1)
* * *
“참... 진짜... 어이없네.”
송하윤은 홍푸른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한숨만 푹푹 쉬었다.
애꿎은 시계만 몇 번을 확인하자 앞에 앉은 홍푸른이 보다못해 한 마디 했다.
“사채 썼어요?”
“에?”
“그렇잖아요. 누구한테 돈 빌린 사람처럼 조마조마. 아까부터 계속 시계 쳐다보고 한숨 푹푹 쉬고 왜 그러는 거예요?”
“아니, 그니까 이게 말이 되냐 이거지 나는... 누구는 열심히 수업 듣고 누구는 어디서 뭘하는지도 모르게 돌아다니고. 이거이거 본부장이랑 바람난거 아닌가 몰라.”
“본부장님이요? 지금 기준이 형 얘기하는거죠.”
송하윤은 따로 대답하지 않고 젓가락으로 먹는둥 마는둥 자기 앞에 놓인 접시를 깨작거렸다.
“에이, 기준이 형을 뭘로 보고. 그 형이 뭐가 아까워서 본부장같은 나이 많은 여자랑 붙어 먹어요?”
홍푸른은 순진무구한 눈으로 송하윤을 바라봤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그런지 인간들의 세계가 얼마나 더럽고 추잡한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송하윤은 이번에는 다른 의미의 한숨을 내쉬면서 턱을 괴고 말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럼요.”
“솔직히 본부장 그 여자 완전 노땅이지? 내가 훨 낫잫아.”
“그럼요. 그럼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풋. 진짠가~ 근데 기준쌤은 왜 날 곱등이만도 못하게 취급하는지.”
“그거야 본부장님은 노땅이고 하윤쌤은 그보다는 낫다고 느껴서?”
“에이, 씨. 진짜. 병을 주는 거야? 약을 주는 거야?”
“그러니까 내 말은. 기준이 형이 굳이 본부장님을 여자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죠. 그리고 그 형님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요. 그러니까... 어? 어?”
홍푸른은 말하다 말고 식당 창문 밖으로 뭔갈 발견했는지 목을 미어캣처럼 쭉 뽑았다. 송하윤도 그를 따라서 고라니처럼 목을 뻗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동공이 무지막지하게 커졌다.
“본부장님 아니야?”
“예. 맞아요. 근데 좀 이상하네요.”
“응... 저렇게 다급해 보인적이 없었는데. 구두 신고 뛰어다니실 정도인가.”
“본부장님을 저렇게 만들 사람 자체가 없죠. 아예.”
“그럴... 까? 난 있다고 보는데.”
“누구요?”
정말 몰라서 하는 얘기인 걸까.
송하윤은 홍푸른의 곱상한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
“최용수. BD짐의 사장님! 본부장이 굳이 누구한테 굽신거리겠어.”
“아... 사장님... 잘 모르겠네요. 두분이 부부신데 그렇게까지 군기를 잡을까요?”
그것도 그랬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남편과 아내 사이인데 굳이 저렇게 발바닥에 불 날 정도로 달릴 필요가 있느냔 말이다.
송하윤은 가만히 이수진 본부장이 왔던 방향을 쳐다보다가 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날 까고 노땅이랑 그렇고 그렇게 된 사이란 말이지?”
“네?”
“응, 아니야.”
“진짜 못들어서 그래요.”
“응. 못들으라고 한 소리야.”
‘넌 이미 성기준의 충직한 부하잖아. 성기준. 어떻게든 날 꼽준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주마.’
그녀의 시선이 꽂혀있는 쪽에는 다름아닌 기준이 서 있었다. 그는 일부러 이수진과 어긋나게 들어가기 위해 건물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모쏠아다 찌질이가 보더라도 냄새가 구린게 사실이었다.
밤꽃냄새 잘 맡기로 유명한 송하윤이 그 정도도 눈치채지 못할 이유도 없었던 거고, 따라서 그녀의 마음속에는 분노의 감정이 솟구쳤다.
그런데 그런 기준이 성큼성큼 걸어서 송하윤과 홍푸른이 식사하고 있는 식당으로 무심하게 들어왔다.
놀란 송하윤은 멍하니 앉아서 기준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이윽고 기준이 홍푸른과 인사하고 그의 옆자리에 앉자마자 자초지종을 깨닫고는 홍푸른을 째려봤다.
“기준이 형이 지금 도착했다고 해서 제가 불렀어요. 형 식사는 하셨어요?”
“어, 맛있는거 많이 먹고 왔지.”
송하윤은 그 말을 냉큼 받아쳤다.
“그쵸, 아주 맛있는걸 먹고 왔겠죠. 수업 빼고 어딜 그렇게 갔다 오셨을까요? 여기 청담점에 좋은 호텔이 몇 개 있는데 호텔 음식이라도 먹고 온거 아닌가 몰라.”
송하윤은 이렇게 말하면 기준이 당황할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기준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어요? 호텔 음식 먹고 왔어요. 본부장님이 사줬는데 아주 맛있더라고요.”
“큭.”
“오~ 호텔 음식이요? 난 한 번도 안 먹어봤는데.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제가 한턱 거하게 쏘겠습니다, 형님.”
“아이고. 너보다 돈 많이 벌테니까 내 밥은 내가 알아서 살게.”
“흑흑. 사준다는 말씀은 절대 안 하시는군요. 근데 형님. 본부장님이랑 뭐 하다가 오신 겁니까?”
째릿.
송하윤은 턱을 치켜들며 또 한 번 냉큼 받아쳤다.
“뭘하긴 뭘했겠어. 호텔에서.”
“밥도 먹고 다른 것도 먹고.”
“다른 거요?”
“응. 디저트.”
“아~”
“크윽...”
또 한번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는 기준 때문에 머리가 다 아플 지경에 이르렀다.
식사를 다 마치고 먼저 계산을 하고 나간 송하윤을 따라 기준이 나왔다. 그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송하윤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디저트는 에피타이저로 먹었지. 아주 맛있었어. 누구랑 다르게 아주 농 익었더라고.”
“크윽...”
“하하하! 장난이에요.”
“뭐가 장난이에요?”
“아니야, 어서 들어가자.”
기준은 송하윤의 열 뻗친 얼굴을 보면서 재밌어 했다. 홍푸른은 영문을 모른채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한 시간의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 시간이 다시 시작되자 이번에는 어딘지 모르게 분위기가 많이 어둡고 숙연했다. 신입생들 뒤쪽에 청담점 간부들이 전부 모여서 일렬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더할 나위 없이 싸늘해지더니 저벅거리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강당 문을 열고 최용수가 들어왔다. 그는 하얀색 셋업 수트를 입고 있었고 목에는 금색의 목걸이를, 허리에는 구찌 벨트를 메고 있었는데 허영심이 그득그득해 보이면서도 부티가 났다.
“무슨 두바이 석유재벌처럼 보이네요.”
“그러니까.”
홍푸른이 속삭이자 기준이 답해줬다.
이제 어느정도 친해진 두 사람이었다. 반면에 송하윤은 멀찍이 떨어져서 팔짱을 끼고 앉아서 혼자 씩씩거리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구령 소리에 맞춰 모두가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 최용수가 씩 웃으면서 신입생들을 둘러보곤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거고, 모르는 사람도 있을 거다.”
사실은 모를 수가 없었다. 그 동안 용우 팀장이 사장님을 얼마나 언급했던가. 동시에 최용수 사장의 얼굴을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존경과 흠모의 말들을 쏟아냈었다. 신입생들 중에는 용우가 최용수 사장을 인간적으로 좋아하는게 아니라 이성적으로 좋아하는게 아닐까 의심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하나. 바로 신입생들에게 동기부여를 심어주기 위한 거다.”
또 뭘 시키려고 그러는 걸까. 거울에 비친 신입생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 드리워졌다.
“경쟁. 휘트니스 업계는 출범때부터 피 나는 경쟁을 해왔다. 도태되면 죽는다. 내 옆 사람의 발목을 잡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이것은 전쟁이다. 예로부터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아군도 없지. 지금 너희들은 일주일 간 꽤나 친해졌을 거다.”
그렇다. 지금도 강의실에 앉은 신입생들이 무리 별로 따로따로 떨어져 앉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혼자 앉기도 했지만.
“그렇지만, 또 팀워크라는 단어도 무시할 수는 없지. 그만큼 이 업계가 어려운 거다. 너희가 모를 수도 있는데 BD짐은 신입 교육이 참 빡세기로 유명하다. 여기서 그만두고 다른 헬스장에 가서 BD짐 신입 교육 수료했다고 말하면 어느정도 먹어주는 경우가 있을 정도지. 지금부터는 점수제도를 도입할 거다.”
‘점수제도?’
기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지 않나. 다른 때도 아니고, 본부장이 잠깐 한눈판 걸 들킨 시점에서 최용수가 저런 조치를 취한다는 게.
이상한 건 이상한 거였지만,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단상 위에 선 최용수는 다시금 신입들 얼굴을 쭉 훑어보더니 이번에는 기준을 명확하게 응시했다. 기준은 최용수에 대해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은땀이 나면서 목구멍에 가득 찬 침을 간신히 넘겼다.
“점수 하한선보다 낮게 책정된 사람은 신입 교육을 다시 이수 받아야 한다. 2주 동안 매출도 뭣도 못하지. 그게 싫다면 나가도 좋다. 그리고 전체 평균보다 낮은 신입의 담당 팀장은 어떠한 패널티가 발생할 거다. 그러니까 오기를 갖고 죽기살기로 임하도록.”
잠깐 장내가 술렁거렸다. 뒤에 서 있는 팀장들이 조용히시키자 다시 조용해졌다.
최용수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신입들의 반응을 보며 재밌어 했다. 아직 운도 떼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술렁인다는 표정이었다.
손으로 턱을 문지른 최용수는 다시 운을 떼기 시작했다.
“첫 과제는 팀플레이다.”
‘팀플레이?’
“팀은 뒤에 있는 팀장들이 임의적으로 정해줄 것이다. 팀플레이인만큼 당연히 점수도 팀원 전부 똑같이 받을 거다. 자, 그럼 팀장을 호명하겠다.”
최용수는 세 명의 팀장이 있다고 말했다. 총 12명의 신입생이니 4명씩 짝을 지어 세 팀을 만들거다.
기준은 아까부터 괜시리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팀을 어떻게 짜줄지 대충 예상이 됐기 때문이다.
첫 호명은 황준형이라는 이름의 남자 신입 트레이너였는데 우선 피지컬이 좋고 운동선수 출신이라 운동능력도 탁월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송하윤. 그녀는 예쁜 외모를 바탕으로 좋은 영업수완을 보여줬던 이력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은 다름아닌 기준이었다.
“팀장 성기준, 홍푸른, 이준원, 정창식.”
‘이런...’
홍푸른은 철없는 꼬맹이였으나 미친듯한 친화력의 소유자. 하지만 이준원과 정창식은 말 그대로 뜨내기 중의 뜨내기였다. 아는 것도 없고 입사한 후부터 처음으로 트레이닝을 배웠다. 이준원은 그렇다치지만, 정창식은 나이도 많아서 배움이 더뎠다.
‘나한테 똥을 던져? 설마 눈치를 챈 건가?’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앞으로는 이수진을 만나러 다닐 시간도 없이 바쁠 예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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