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63. 청담점 신입 교육 (5)
* * *
“조금씩 시야를 잃고. 어느 순간 얼굴에 피가 확 쏠리면... 지금처럼 점차 시야를 잃어가다가 안경을 써야하는 사람처럼 한쪽 눈이 차츰 안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 너... 그걸... 어떻게...”
“관찰입니다. 팀장님. 아까도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제가 갖고있는 능력은 기상천외한 방법이라고요.”
용우는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얘졌다. 눈동자가 커지고 구역질이 확 올라왔다. 맞은편에 앉은 기준이 두 사람으로 보였다.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우두커니 있다가 발작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다.”
수업 시간이 끝났다는 얘긴지 수업을 중도에 포기하겠다는 건지 모를 소리를 내뱉곤 일어나서 출구쪽으로 휘청거리며 걸었다.
용우에게는 신입 교육을 위한 룸과 사무실까지의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센터를 가로질러 걷는 동안 주변의 시선을 자기도 모르게 너무 인식했다. 사람들의 시선 하나하나가 너무도 따갑게 느껴진다. 그들은 마치 어렸을 때의 자신에게 누군가 놀려댔던 것처럼 “개눈깔”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트라우마다. 제 아무리 강인한 신체를 지녔다 할지라도 감정적인 부분에 타격을 입으면 쉽게 회복할 수 없다.
방금 있었던 기준과의 스파링에서 용우는 제대로 된 한 방을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용우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을 신경질적으로 홱 돌아봤다. 이런 모습은 누구에게도 보여준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를 아는 사람은 사장인 최용수 밖에 없다. 적어도 지금 살아있는 사람 중에서는 말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티가 났던 걸까?
수술이 완벽하지는 않았다. 오른쪽 눈에 타격을 입은 후에 실명의 위기에 처했으나 수술을 통해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완치는 아니었기에 가끔씩 혈압이 높아지면 시야가 흐릿해지는 현상이 있었다.
의사는 이런 현상이 계속 반복되다보면 다시 수술을 해야할 거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거나 또 한 번의 타격을 입게 되면 영영 한쪽 눈을 쓰지 못할 거라고 했다.
학창시절에 잦은 싸움을 하고 다녔던 용우는 혈압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아서 싸우다 보면 한쪽 눈이 죽은 생선 눈깔처럼 하얗게 변질되곤 했다. 따라서 아이들은 그를 개눈깔이라고 불렀다. 일반학생들은 그를 무서워했고 뒤에서 개눈깔이라고 놀려댔다.
“생각보다...”
생각보다 그 추억이 안 좋은 추억으로 자리 잡은 모양이다. 자신은 애써 태연한 척 하려 했지만, 다시 들통나려하자 몸이 제 멋대로 반응을 하는걸 보면 말이다.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지? 성기준... 녀석은 마치 내가 혈압이 높아지기 전부터 눈 상태를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아무리 돌이켜봐도 그럴 건수를 보인 적이 없었는데.’
어쩌면 기준이 말한 기상천외한 방법에 해답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그나마 긴장이 풀리면서 피식하고 웃었다.
“어이가 없군.”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기준에게는 뭔가 비밀이 있을 거다. 정말 관찰력이 좋아서 알아낸 거라면 기준의 관찰력은 역대급 재능이다. 최용수가 그를 가까이 두려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을 듯싶었다.
기준을 어떻게든 구워 삶아서 청담점으로 데려와야 했다. 강서점에 있기에는 아쉬운 능력이다. 또한 청담점에 데려오기만 한다면 당장에라도 돈방석에 앉는 건 시간 문제다.
왜, 그런 게 있지 않나. 눈만 보면 몸 상태를 스캔할 수 있어서 공중파며 지상파며 이름을 알리고 그 네이밍벨류를 이용해서 돈을 쉽게 끌어모으는 거다. 그렇게만 되면 청담점은 기준의 영향을 알게모르게 받게 될 거다. 센터는 유명해질 거고 지점을 계속 추가할 수 있을 터.
그런데 무슨 말로 구워 삶는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당연히 돈이었다. 돈만 있으면 데려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용우는 빠르게 지금 기준이 받는 월급과 커미션을 계산했다. 어느 정도 선이라면 넘어올 거라는 생각을 한 거다.
그리고 마침 신입 선생님 하나가 사무실 문을 열고 걸어들어왔다.
청담점 신입도 예외없이 교육을 수료해야 했기에 수업이 끝난 직후에 잠시 밖에서 대기하다가 들어온 거다.
용우는 아무렇지 않은척 그에게 말했다.
“준원쌤.”
“네, 네...”
아직까지 용우에게 두려움을 품고 있는 준원은 얼굴은 잘생겼지만, 영업 수완이 형편 없는 신입이었다.
“뭐 하나만 부탁할게요.”
용우는 소심하게 어깨가 말린 준원에게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렇게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있는데 사무실 문이 다시 열리면서 또각거리는 구두소리가 들렸다.
“출근하셨습니까, 본부장님.”
본부장은 다름아닌 최용수의 아내인 이수진이었다. 그녀는 최용수보다 10살 연하였다. 스무살 이른 나이에 최용수의 아기를 낳은 그녀는 이제 마흔 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할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또 신입 괴롭히는 거예요?”
“아, 아닙니다! 잘 알려주고 계십니다.”
“풋. 왜 본인이 더 난리람.”
“준원쌤이 말한대로 오늘 신입 교육을 끝내고 와서요.”
“아.”
이수진은 한쪽 눈썹을 찡긋 올리면서 자기 자리에 앉았다. 다리를 꼬자 두 남자의 시선이 다리 맵시를 향해 꽂혔다. 필라테스 강사 출신에 현재는 쇼핑몰 두 개를 운영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 셀럽 중 하나다. 최용수의 아내로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연예인을 비롯한 여러 스타들과 교류했는데 어린 남자 아이돌 중에는 이수진에게 대쉬를 했다가 유부녀라는 사실을 알고 좌절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이수진이 신입 교육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사장님 나더러 신입 교육에 한번 들어가보라던데.”
“아, 그러셨습니까?”
“응. 필라테스 강의라도 해야하나.”
“하하... 아마 그건 아닐겁니다.”
“그렇지? 나한테 그런 걸 원하진 않았을 거야. 근데 왜 하필 이번 신입 때 참가하라고 했을까? 난 그게 제일 궁금하네.”
“... 눈 여겨 보는 신입이라도 있는 게 아닐지요.”
“아! 그러고보니 뭐, 강서점에 대형 신인이 하나 있다고 들었는데.”
용우는 준원과 눈을 마주쳤다. 준원은 용우의 눈빛만으로도 겁을 먹었는지 입만 뻐끔거렸고, 용우는 그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기 전에 먼저 말했다.
“안 그래도 저도 방금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오, 그래? 어때? 진짜 소문값 하나?”
“직접 보시면 아실 듯합니다.”
“흐흥. 그래봐야 신입이 신입이지. 내가 여기서 그이랑 같이 일하면서 이런저런 애들 다 봤는데 다 거기서 거기였어. 최근에는 유성목 매니저가 그나마 실력 입증한 케이스고.”
“아, 유성목 매니저요.”
“왜 떨떠름한 표정이야? 설마 그 신입이 그 정도라는 얘기?”
“아, 아닙니다. 아. 본부장님 교육은 언제 들어가실 예정이십니까?”
“나는 내일~ 오늘은 이미 늦었잖아.”
“알겠습니다. 그럼 시간을 만들어두겠습니다.”
“후후. 오랜만에 재밌겠네.”
용우는 그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이수진이 기준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자기가 받았던 충격을 그녀도 받을 수 있을까. 남들은 알아채지 못한 비밀스러운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기분. 이수진은 분명 놀랄 것이다.
*
나는 두 가지를 고려하고 있었다.
통제. 언젠가는 내 능력은 의심을 살 거다. 많은 사람이 내 실력에 의문을 품기 전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실력을 행사한다. 나에게 다른 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사람을 잘 관찰할 뿐이라는 꽤나 신빙성있는 소리를 늘어놓는 거다. 그게 내가 인생을 다시 살았기 때문이라는 건 전혀 모르도록 말이다.
두 번째는 시험이다.
용우는 이 BD짐의 2인자라고 볼 수 있다. 청담점은 본점. 깡패들이 운영하는 회사가 늘 그렇듯 빡빡한 관료제가 기반이다. 따라서 수뇌부의 청담점에서 사장 다음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2인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면 분명 나를 시험하려고 할 터. 때에 따라서는 내 자존심을 뭉개버리려고 했겠지.
그래서 나는 용우가 어느 정도의 시험을 할 거라고 예상했고,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가장 접근이 쉽고 흔한 질병들에 대해 미리 피악을 해뒀고 일부러 교육 양식에 나와있는 각종 증후군들에 대한 원인을 공부하고 외워뒀다.
전생에서 나는 용우와 싸우지는 않았지만, 밑 사람의 약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그의 신체 약점들을 파악했던 적이 있었다.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니 1대1 상황에서 철저한 분석을 해놓지 않으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 성격 탓이었다.
홍푸른이 나에게 뭘 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용우가 앓고 있을만한 질병들을 유추하고 달달 외웠던 거다. 계속되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용우가 내게 어떤 질문을 해도 완벽하게 브리핑 할 수 있도록 했다.
결과는 보란 듯이 성공적이었다.
정곡을 찔린 용우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허점을 드러냈고 결정타를 먹였을 때는 휘청거리기 까지. 결국 자기 스스로 링 위에 수건을 던져버렸다.
“기준이 형! 진짜 쩔었어요! 역시 주목받는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니까요. 말을 어떻게 그렇게 잘 하세요?”
홍푸른은 용우의 몸 상태를 알아챈 것보다 내 말빨에 더 감명받은 모양이다. 아니, 나머지 신입들도 다 그런 생각일까. 그들은 이게 공부를 해서 얻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천만의 말씀이다. 내가 뭔 점쟁이도 아니고. 나는 그저 과거의 용우가 어떤 녀석이었는지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 용우 팀장님도 꼼짝 못하는 모습 보고 완전 놀랐어요.”
용우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대체 어느 누가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의 눈... 그 사실을 내가 말했을 때, 그의 다급한 반응이라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하지만 나는 아무쪼록 입단속을 해야 했다. 남의 치부를 더 이상 함부로 말하고 다니고 싶지는 않으니까.
나에게 관심이 생긴 건 홍푸른 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트레이너들이 찾아와서 한 마디씩 걸고 전화번호를 물어봤다.
그들은 모르는 게 생기면 내게 물어보겠다고 했다.
언제든지.
어차피 내가 알고 있는거나 그들이 알고 있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다.
아마 이들 중에는 나보다 지식이 많은 사람도 있을 거다.
특히 강변점 신입 트레이너 송아윤. 그녀는 물리치료사 출신으로 근육학에 꽤 해박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의사가 꿈이었다고도 한다. 다른 여자 트레이너가 말해준 내용인데 얼굴이 너무 예뻐서 안 아픈 남자들이 물리치료 받겠다고 줄을 섰었다고 한다. 이 바닥에서 미모는 최고의 경쟁력이다. 입 다섯 번 터는 것보다 한 번 얼굴 예쁜 게 효과가 좋다.
그리고 홍대점 신입 트레이너 박승환. 그는 현 보디빌더인데 근육 운동과 포징에 대해 모르는 게 거의 없다. 스무살부터 10년 동안 운동했고 선수 PT를 받은 경험도 있었다. 물론 다른 센터에서의 트레이너 경험도 많았다.
생각보다 경쟁자들이 쟁쟁하다. 홍푸른만 하더라도 테니스 선수 출신에 말도 못할 금수저. 하긴 그의 경쟁력은 말도 안 되는 친화력이겠지만.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선 청담점 신입 트레이너 이준원. 그는 무색무취였다. 얼굴은 잘생겼지만, 표정만큼은 흐리멍텅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던 이준원이 지금까지는 조용히 있다가 내게 말을 걸었다.
“기준쌤, 저랑 밥 같이 먹으면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
“개인적으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밥은 제가 사겠습니다.”
느낌이 묘하다. 청담점 신입 트레이너가 내게만 긴밀히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2회차 살면서 생긴 건 눈칫밥이다. 나는 그가 건네는 의미심장한 태도를 훑으며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같이 밥 먹자는 다른 트레이너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이준원과 함께 가까운 김치찌개 집으로 향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