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마학원 수석졸업생인 나와 그녀들-62화 (62/159)

〈 62화 〉 62. 청담점 신입 교육 (4)

* * *

방 안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들 내가 어떤 식으로 용우 팀장을 구워 삶을지 궁금한 모양이다. 말이 팀장이지 사실은 총괄 매니저나 다름이 없을 정도의 파워를 지닌 남자. 실제로 청담점에는 매니저가 존재하지 않았다. 사장인 최용수가 들락거리면서 매니저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금의 나와 용우와의 간격은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였다.

하지만 오로지 나만 알고 있는 사실로는, 이 상태는 전생에 한 번 역전된 적이 있었다. 내 수발은 아니었지만, 내게 형님형님하던 녀석이다. 위압감을 느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 상황은 나에게 유리했다. 용우가 최용수, 이정석과의 일을 알고 있다고 해도 내 정체에 관해서는 모를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점을 이용하려 했다.

“롤플레잉을 하기 전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게 있습니다. 이건 질문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용우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이놈 봐라?’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패턴. 어떤 신입생도 용우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을 터였다.

그가 대답이 없길래 나는 그냥 말을 이었다.

“각자 개개인의 개성이 뚜렷한 영업을 하라고 했으니 거기에 부응하는 세일즈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그 누구도 갖고 있지 않은 기상천외한 방법을 사용하니까요. 그런데 한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팀장님과 저는 전제를 두고 안 두고의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 무슨 뜻이지?”

“전제라는 건 그런 것입니다. 팀장님은 홍푸른 선생님에게 세일즈 시범을 보일 때, 그의 몸 상태와 특정 상황을 만들어내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롤플레잉은 역할극에 의한 것이고, 홍푸른 선생님이 아닌 한 사람의 회원을 상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지만 저는 전제를 두지 않겠습니다. 이 순간, 저는 회원이 아닌 팀장님의 지갑을 열겠습니다.”

“뭐, 뭐? 크하하학! 미친... 미친놈이구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리에 너털 웃음을 터트리는 용우. 방 안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웃은 용우는 입맛까지 다시면서 자세를 고쳐잡았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희한한 눈으로 날 우두커니 쳐다보던 용우는 약간은 개방된 가슴을 내밀며 손을 휘적거리는 신호를 보냈다.

“재밌네. 해봐.”

내가 했던 얘기를 정리하자면 간단하다. 역할극이 아닌 진짜 용우라는 사람의 지갑을 열어 리얼리티쇼를 보여주겠다는 것. 사전의 약속도 없이 이뤄지는 최악의 최악으로 어려운 조건이다.

“우선 팀장님의 몸 상태를 잠깐 확인하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용우의 곁으로 갔다. 그리곤 발끝부터 허리의 높낮이와 어깨를 확인했다. 그리곤 목까지 올라와서 목줄기에 위치한 흉쇄유돌근이라는 근육을 꽉 잡았다 느슨하게 풀었다.

신경질적으로 날아오는 손.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을 건드렸기에 자동반사적으로 올라오는 파이터의 기질이다. 녀석은 싸움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해왔다.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을 건드리는 순간 곧 바로 방어태세를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곧 내가 태연한 표정으로 손을 떼내자 머쓱하게 손을 내렸다.

나는 다시 용우의 맞은편 자리에 가서 앉았다.

“운동을 많이 하셨지만, 관절의 이곳저곳에 손상을 입었군요. 상처도 많고 수술한 곳도 많습니다. 꼭 무슨 해외에 파병이라도 나갔다 온 사람처럼요. 직업 군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몸입니다.”

“... 호오... 그래.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지?”

용우는 약간 흥미가 동했는지 상체를 앞으로 조금 숙였다.

“근육도 많은데 전부 실용적인 근육들입니다. 하드한 트레이닝 보다는 실전을 통해 쌓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외복사근을 비롯한 회전근 대부분이 발달됐습니다. 체질을 보아하니 아마 어렸을 때부터 복근이 없었던 적이 없을 겁니다. 따라서 팀장님은 웨이트 트레이닝 보다는 킥복싱이나 무에타이류의 무술을 통해 근육을 발달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어떻습니까?”

“하하하. 그래. 맞아. 나는 꾸준히 무술을 연마하고 있지. 왜 그러는지 알아? 말만 번드르르하고 속은 비어있는 놈들 줘패려고...”

나는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말을 끊고 들어갔다.

“무술을 배운 사람들은 따로 밸런싱 트레이닝을 통해 근육을 잡아줘야 한다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

용우는 자세를 또 다시 고쳐잡으며 자기 말이 끊겼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내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체형을 봐도 그렇습니다. 왼쪽 어깨가 상대적으로 낮고 목 부분이 경직된 모습이죠. 이미 기능을 상실한 오른쪽 무릎 때문에 부적절한 쓰임새, 짧은 레인지 모션(RM) 등의 현상이 나타나 이대로 가다간 절름발이가 되실 수도 있습니다.”

“...”

용우는 한참 얘기를 듣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결국 그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거냐는 표정.

“디스크는 물론이고 협착증, 측만증이 10년 이내로 발생할 가능성이 70% 이상. 무릎 쪽의 기능 하락으로 인해 바닥이 미끄러운 겨울이나 장시간 운전을 할 경우 죽음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더 높아지겠죠. 팀장님은 지금 당장 운동을 해야하지만, 팀장님이 원하는 격투기 쪽으로 운동을 해서는 한치의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물론 근력 트레이닝도 할줄 아시겠지요. 하지만 코어 트레이닝을 비롯한 전문가의 견해를 필요로 하는 트레이닝은 반드시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계실 겁니다. 팀장님은 왜 10년 이내에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전문가에게 자기 몸을 맡기지 않으시는 겁니까? 돈이라는 건 아무리 많이 모아봐야 죽고나면 의미가 없어집니다. 어차피 10년 후 언저리쯤에는 병원에 가실 운명이시니 병원비 아끼는 셈 치고 저한테 수업을 받으시면 되겠군요.”

장황하게 설명하는 동안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다. 논점에서 어긋나지도 않았고 나름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용우 입장에서는 석연치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 거야 조금만 눈썰미가 좋으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 내가 이 짬밥 먹으면서 그런 소리 한 번도 못 들어봤을거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내가 다른 누구에게 맡겼으면 맡겼지. 너 같은 신입한테 내 몸을 맡길거 같아? 왜 내가 너한테 트레이닝을 받아야하지? 너의 어딜 믿고?”

나는 좋은 설명을 했다. 그러나 아직 한 가지를 보여주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하는 말은 단순한 통계일 뿐. 흡연자들에게 백날 건강 어쩌구 얘기를 해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말하자면 나는 계속해서 아웃복싱으로 용우를 간간히 타격을 넣었을 뿐. 승리를 위한 커다란 한방을 넣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용우가 원하는 건 그 강력한 한방이었다.

대단해 보이는 설명을 하는 동안, 신입생들은 숨을 죽인채 날 보고 있었다. 특히 앞서 영혼까지 탈탈 털린 홍푸른을 비롯한 두 명의 신입은 이 자리가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용우 앞에서 나는 생각보다 잘 해내고 있었던 거다.

“자, 그럼 내가 여기서 한 가지...”

용우는 내 세일즈를 자신이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 말은 즉, 지금까지는 나름 괜찮았다는 의미다. 오늘 수업의 목적은 자신의 개성을 보여주는 것. 나는 마치 선견지명을 갖은 사람이나 눈에 X­RAY 라도 달아놓은 사이보그처럼 용우의 몸 상태를 짧은 순간에 캐치해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기반으로 용우를 설득하려고 했었기에 합격점을 받은 거다.

그러나 나는 이 싸움을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나는 링 위에 싸우러 올라온 거지. 합격점을 받으러 올라온 게 아니다.

여기서 용우의 드높은 콧대를 누른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내 페이스대로 흘러가게 만들 것이다.

“저를 어떻게 믿게 만들거냐고 물으셨죠.”

“... 아직 더 할 생각이냐?”

용우는 짐짓 놀란 표정이었다.

“지금 여기서 끝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거다. 다른 신입 중에서 너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네가 말한대로 내 몸 상태는 딱 그런 정도다. 아주 짧은 시간에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 몸 상태를 그렇게 알아낸 사람은 또 처음이다. 하지만 지금은 세일즈 교육이니 내가 교육을 마무리하겠다는 뜻이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겠지.”

“네,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용우 팀장님께서 한 가지 놓치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팀장님의 지갑을 열려고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 기가 차군.”

용우는 이제 화를 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감정을 억누르고 있지만, 그 감정이 스멀스멀 혈액을 타고 올라가는 듯 관자놀이쪽이 불룩불룩 튀어나왔다. 인내심의 한계가 온 거다.

“여기까지 하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기어이 그렇게까지 하겠다는 거냐?”

“네.”

“하. 진짜 어이가 없군. 좋은 신입이 들어왔는줄 알았더니 기어 오를 생각만 하는 기고만장한 놈이었어. 오냐, 좋다. 한 번 해봐라. 못하게 되면 네 놈의 머리를 이 테이블에 그대로 쳐박아주마.”

용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좌중이 모두 침을 꼴깍 삼켰다.

그들의 표정은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있었다. “저렇게까지 해야 돼?” “저 사람 왜 저래?” 정도였다.

나도 내가 선을 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신을 갖고 있었다. 내가 갖고 있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드는 순간. 이들의 표정은 모두 바뀔 것이라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팀장님이 저한테만 수업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뭐냐.”

“그건 조금씩 흐릿해지고 있는 팀장님의 시야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

용우는 내 말을 듣자마자 아주 이상한 제스쳐를 취했다. 목과 팔 부분이 드륵거리며 흔들거리더니 고개가 거짓말처럼 옆으로 떨어졌다. 마치 교통사고라도 당한 사람처럼 내 말에 세게 맞아서 정신을 잃은 듯.

“불의의 사고였겠지요.”

이제 용우의 눈동자는 갈 곳을 잃은채 마구 흔들렸다.

“조금씩 시야를 잃고. 어느 순간 얼굴에 피가 확 쏠리면... 지금처럼 점차 시야를 잃어가다가 안경을 써야하는 사람처럼 한쪽 눈이 차츰 안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 너... 그걸... 어떻게...”

“관찰입니다. 팀장님. 아까도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제가 갖고있는 능력은 기상천외한 방법이라고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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