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마학원 수석졸업생인 나와 그녀들-61화 (61/159)

〈 61화 〉 61. 청담점 신입 교육 (3)

* * *

용우는 부모가 지어주신 이름을 버리고 최용수의 아들을 자처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녀석이 어둠의 길에 빠져들었던 것은. 나는 녀석이 최용수와 함께 다니면서 퇴락해 가는 모습을 봤다.

영업직에 발을 들이고선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그저 돈일 뿐.

따라서 자신의 시그니쳐였던 이름도 개명했다. 말 그대로 그는 180도 바뀐 사람이다.

제일 맨앞에 앉은 신입생 한명이 죽어라 털리는 동안, 몰래 검색해봤는데 지금은 마약 관련 비리에 연류되서 완전히 폭망했다. 딱히 메스컴을 타지 않아서 이슈가 되지는 않았지만, 한때 빛을 발했다가 지는 별처럼 역변의 아이콘으로 급상승했다가 급격하게 추락한 인사 중에 하나다.

아무래도 용우의 손길과 입김이 닿았기 때문이 아닐까. 감히 예측해봤다.

용우는 신입생 한 명을 두고 롤플레잉을 하고 있었다.

롤플레잉이란 역할극. 신입생이 용우를 상대로 영업을 하는건데 청산유수처럼 풀어나가던 신입생은 용우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과 잡아떼는 언행 때문에 딱 막혀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거의 1분 정도를 버벅거리며 굳어있었는데도 용우는 턱을 괴고 앉아서 한참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러다 3분이 더 경과하자 한숨을 푹 쉬더니 말했다.

“지금 장난해?”

“아, 아닙니다.”

“영업이라는 건 내가 도망갈 곳은 사방팔방으로 만들어놓고 정작 상대방은 나갈 곳이 없게 만드는 게 영업이야. 근데 자기 스스로 도랑에 빠져서 어떻게 풀어내야할지도 모르고 있으면 대체 어쩌자는 거야?”

“... 죄송합니다.”

“죄송? 죄송이 아니지. 이딴 식으로 할 거면 때려치워. 너 어디 지점이야?”

“... 수서입니다.”

“수서 지점 얼굴 마담으로 내놓은 신입이 이 정도면 수서점도 조만간 일 없겠는데? 입김 좀 제대로 불어넣어야 겠어. 신입이 빠져가지고 하등 준비는 안 하고 교육 와서 엎어져 잠만 자고 동기들이랑 개잡소리나 늘어놓으면서 시간 보내기나 한다고. 그럼 너네 매니저가 니 얼굴을 보고 아주 좋아할 거야, 그치?”

용우 입장에서는 나름 순화해서 하는 말들이었다. 정작 듣는 사람은 숨이 턱턱 막힌다. 대답은 해야겠는데 무슨 대답을 할지 모른다. 그저 들으면서 말맛 귀싸대기를 존나 후려쳐맞는 수밖에.

항상 밝은 모습만 보여주던 홍푸른도 지금 상황에서만큼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서 혼나는 동기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앞을 응시할 뿐이었다.

“영업이라는 건 이런 거야. 거기 아무나 한 명. 앞으로 나와봐.”

당연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고. 용우가 손가락으로 가리켜 홍푸른을 일으켜 세웠다.

“나와. 왜 그렇게 굳어 있어. 여기가 무슨 군기 교육대야?”

쭈뼛쭈뼛 앞으로 나간 홍푸른. 두 사람이 마주하자 어린아이와 성인이 함께 있는 듯했다. 신장의 문제가 아니었다.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다르다. 왜 강한 사람은 기세로 상대방을 기선제압한다고 하지 않나. 딱 그 모양이었다.

홍푸른은 금방이라도 울 것같은 표정이었다.

“크크. 딱 이 느낌이지. 영업을 하기 위해 마주앉은 소비자는 내 앞에서만큼은 잘 조련된 강아지와 비견할만 해. 주인이 매로 때려서 잘 키운 강아지 말이야. 이런 건 좀 키운 다음에 잡아먹으면 육질이 아주 질기지. 항상 긴장하고 있어서 근육이 뻣뻣하니까.”

순간 착각한 건가. 용우의 손길이 홍푸른의 말랑말랑한 볼을 쓰다듬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세에서 오는 착시였다. 용우의 성 정체성이 의심될 정도로 남자를 향해 쏘아대는 저 더럽고 추악스러운 눈짓이 혀가 되어 홍푸른의 순수한 살결을 한번 훑고 지나간 듯했다.

그걸 나만 느낀 건 아니었을 것이다. 홍푸른 본인부터 소름끼치는 무언가를 느끼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한 걸 옆에 있던 다른 신입이 붙잡아서 겨우 막았다.

“그래. 그렇게 일으켜 세우라고. 이 정도로 쓰러지면 곤란하잖아. 자, 서 있기가 불편하면 마주 앉아볼까? 내 앞에 앉아봐라.”

손수 의자를 내어주곤 홍푸른에게 앉으라고 지시한다.

“지금부터 네가 고객이고 나는 트레이너다. 지금부터 나는 네 지갑을 열 거야. 나만의 방법으로 말이지. 자, 그럼 시작한다. 준비됐어?”

“네... 네, 준비 됐습니다.”

전혀 준비가 된 것 같지 않지만 억지로 대답을 하는 모습이다.

용우는 씩 한번 웃으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그 다음부터 온갖 폭언과 비난과 욕설을 내뱉으면서 홍푸른을 깔아뭉개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차마 들어주지 못할 정도로 과도한 언사들이었으나 정작 용우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말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실패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운동을 좆도 안 했는데 평소에 체력은 부족하고 말라 꼴아서 어딜 가든 어깨를 펴지도 못할 것이고 곧 있으면 허리 디스크에 탈장에 퇴행성 관절염이네, 뭐네. 그러다 결국 여자친구가 있는지 없는지 물어보고선 여자친구가 있다고 하는데도 보나마나 여자친구 외모 수준이 떨어지고 어떻게 하면 더 매력있는 여자를 자기 여자로 쟁취할 수 있을지를 설명하면서 갖은 인신공격을 다 쏟아부었다.

내가 회원이었으면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테지만, 홍푸른같은 인간은 감히 자리를 뜰 엄두도 하지 못할 것이다.

조금씩. 용우가 하는 말에 휘둘리고 있었다.

분명 약을 파는 것도 알고, 그 약이 나쁜 약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어느순간 저 개소리가 진짜가 되는 마술.

조금씩 언행이 순화되면서 거칠었던 숨소리는 진정되고 폭풍같은 분위기도 점차 사그라들며 홍푸른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었다.

완급조절이다. 처음에는 강하고 빡센 소리를 해서 집중과 두려움으로 경각심을 일으키게 만든 후에 이미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살짝 느슨하게 만들어 자기 편으로 만드는 작전이다.

말이야 번드르해서 완급조절이네 강약조절이지. 사실 쌍팔년대 수법이다. 지금은 인권이 적절하게 잘 보호되는 시절이라 저런 동대문 깡패 스타일 영업을 하면 바로 잡혀 들어간다.

그런데 웃기는 점은, 현재 여러 헬스장에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거다. 심지어 회원들이 자기 트레이너를 의사보다 더 높게 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말에 의해 단단히 걸린 최면은 쉽게 벗겨낼 수가 없다.

“그러니까~ 운동을 하셔야 하는데 회원님께서는 지금 혼자 운동할 능력이 전혀 없으시잖아요? 심지어 운동을 잘하는, 예를 들어 비시즌에 박지성이나 김연아 선수도 전문가가 붙어서 데일리한 운동을 하는데 아예 운동 초보인 회원님이 혼자서 운동해서 건강과 체중감소를 취한다는 건 완전히 어불성설이죠. 우리가 헬스장에 온 이유가 뭐예요? 그냥 시간이나 죽이고 갈거면 차라리 도서관 가지. 아니면 차라리 집에 들어가서 발 닦고 자는 게 더 이득일 수 있어요. 근데 여기까지 왔으면 어떡해요. 남자가 칼을 들었으면 무라도 베야죠. 적어도 최소한의 남길 거리는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회원님에게 있어서 오늘은 기회에요. 오늘을 놓치면 앞으로 회원님에게 있을 무수한 기회 중에 가장 첫 번째 기회를 하나 놓치는 겁니다. 계속 기회를 놓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변함없이 똑같은 사람으로서 살아가게 되겠죠. 그걸 원하나요?”

“... 아뇨...”

“그러면 최소한의 투자를 하셔야죠? 회원님 하루에 커피 몇 잔 드세요?”

“2잔?”

“그러면 커피 값만 하루에 만원 정도 쓰시겠네요?”

“뭐... 그렇죠?”

“하루 커피 값 만원을 한 달치로 하면 300만원이에요. 근데 회원님이 저랑 같이 운동을 하시면 하루에 커피 하나 아껴서 150만원을 남기실 수 있어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건지 아세요?”

“음... 아뇨? 잘 모르겠는데.”

“커피를 왜 드시죠?”

“피곤해서요.”

“운동을 하게 되면 피곤하지 않으세요. 우선적으로 밤에 잠도 잘 오실거고, 숙면을 취하는만큼 아침이 개운할 겁니다. 그럼 커피를 마실 이유가 없는 거예요. 더불어서 몸 관리를 하기 때문에 술도 절제를 하게 될 거고 야식도 안 먹어서 그만큼 돈을 저축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럼 이 돈을 그대로 내 건강과 체중감량을 위해 쓰면 되는 거죠.”

“아아...”

“그래서 한달에 150만원을 아끼시게 되는데 왜 굳이 운동을 안 하려고 하세요? 나는 자본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으로서 참 이해가 안 되네요.”

“그렇군요...”

“그럼 한 달에 150만원 저축하게 만들어드렸으니 3개월 할부로 450만원 정도 투자하시면 되겠죠?”

“...”

“회원님이 생각하시기에 부담스러울 수 있는 가격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렇지가 않아요. 옷장에 있는 옷들 중에 옷맵시가 예전만치 않아서 못 입는 옷이 대체 몇 벌일까요? 이걸 다 버려? 나 같으면 운동해서 옷태 잔뜩 낸 다음에 그 옷 다시 입어서 옷 사는 비용도 줄일거 같아요. 제 말을 정리하면 간단해요.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얘깁니다. 윤택해져요. 아까 뭐, 여자친구 만나신다고 했죠? 제 친구들은 운동해서 인스타에 올라오는 셀럽들 만나고 다녀요. 원래 끼리끼리 논다고 하잖아요. 몸매 좋은 남자가 몸매 좋은 여자 만나는거 이상한 거 아니에요. 그렇게 되야 하지 않을까요?”

“아, 뭐... 근데 지금 여자친구도 충분히 예쁜데.”

“회원님.”

용우는 씩 한번 웃어줬다.

“저는 섹스할 때 여자 배에 군살 박혀 있으면 바로 쌍욕 박아버려요. 그런 여자랑 떡 치느니 아무 여자나 비닐봉다리 씌워놓고 하죠.”

더럽고 추잡한 소리를 아무렇게나 한다. 근데 진짜 저런 멘트를 영업할 때 날려서 먹히느냐? 대답은 yes. 여자들한테나 안 통하겠지. 남자들 모여서 하는 얘기가 19금 수준을 넘어선다는 건 뻔한 일이고. 다가가기 힘들거 같은 몸 좋은 남자 트레이너가 이렇듯 동네 형처럼 말해주면 오히려 마음이 열리면서 거부감이 없어진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회원님은 여자 볼 때 어딜 제일 보세요?”

저러면서 아까는 영업 얘기를 하다가도 이번에는 화제를 돌려서 대화의 중점을 빙빙 돌린다. 영업질 특유의 화법인데 저러다가 결국 영업 얘기를 다시하게 되면 아까보다는 거부감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세일즈 롤플레잉이 끝나자 신입생들에게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페이스대로 몰고 간 용우의 세일즈는 그야말로 자기만의 방식, 스타일이었다.

“세일즈에 정석은 없다. 하지만 내 트레이닝 철학 그리고 영업 철학에는 자기만의 시그니쳐 스킬이 필요하다는 게 이 수업의 주요 관건이다.”

용우는 그렇게 말하고선 주변을 쓱 훑어보다가 의도적으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원래 알고 있던 녀석이라 그런지 다른 신입들보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눈빛을 맞받아치자 용우는 제법이라는 듯 씩하고 웃으며 날 지목했다.

“성기준. 맞지? 강서점 신입.”

“네, 맞습니다.”

“듣자하니 얼마 전에 아이돌들 클로징 성공했다고. 이번 달에만 2천만원으로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다는데 우리 초짜 신입들을 위해 해줄 말이 있을거 같은데 앞으로 나와봐.”

이제 시작인건가.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까까지 홍푸른이 앉아있던 자리에 앉았다. 홍푸른이 얼마나 긴장했는지 앉을 자리가 푹 익어 있었다.

“자, 여러분들도 소문으로 익히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장안의 화제가 됐던 성기준 선생님이야. 들어오자마자 2주 내로 천만원, 그리고 한 건의 대형 클로징을 통해 또 천만원. 지금 내가 생각했을 때, 여기 있는 어떤 사람들이 덤벼도 이 선생님보다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혹시 다른 생각 갖고 있는 사람 있나?”

사위가 조용했다. 마치 사전에 짜맞춘 듯이 너도 나도 용우의 말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침묵을 끌어모은 용우는 얼핏 잔인해 보이는 살육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신입 깡패의 세일즈를 들어볼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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