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마학원 수석졸업생인 나와 그녀들-60화 (60/159)

〈 60화 〉 60. 청담점 신입 교육 (2)

* * *

청담역까지는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서 2번이나 갈아타야 갈 수 있었다.

면허 딸 능력도 있고 포인트를 돈으로 교환하면 차를 살 돈도 있지만, 굳이 차를 끌고 다니지는 않았다. 이제 막 사회에 입문한 사람의 행세를 하려면 진짜 그런 행세를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저기.”

버스에 서서 한지우에게 받은 내용을 복습하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BD짐 교육수료하러 가시는 거죠? 청담점.”

말을 건 남자는 내가 보고 있는 출력물을 가리키며 자신이 들고 있는 종이를 보여줬다.

“아.”

“반가워요. 저는 마포점 신입이에요. 이름은 홍푸른.”

홍푸른이라. 남자 주제에 이상한 이름이다. 물론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강서점 성기준입니다.”

그러자 홍푸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와... 진짜 기준쌤? 출근하고 몇 주만에 토탈 2천만원 매출 성과를 올린 그 기준쌤?”

어쩐지... 머쓱하다고 해야 할까. 딱히 뻐댈려고 한 일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센터의 주요 간부들 정도만 알았으면 좋겠는데 이 센터에는 소문이 정말 빨리 퍼지는 모양이다.

나는 괜히 뒤통수를 벅벅 긁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하. 그쪽 때문에 첫날부터 얼마나 쿠사리를 주던지. 제 트레이너 경력 첫날부터 윗대가리들한테 매출 압박을 받았다니까요. 후하...”

홍푸른은 농담조로 말했다. 그러나 그런 얘기가 괜히 나오는 건 아닐 거다. 아무리 신입이어도 다른 지점 신입과 비교되는건 사실이었을 테니까. 그에게 내가 얼마나 눈엣가시같은 존재였을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내가 말을 받아주지 않았는데 홍푸른은 뭐가 그리 신났는지 막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자기는 마포점이고 나는 강서점이니까 친하게 지내자느니 연락처 교환을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나는 연락처를 줬다.

이런 걸 요즘은 인싸라고 하던데. 그야말로 미친 친화력이다. 이런 류의 사람은 어딜 가든 적당히만 나대면 인기 많을 스타일이다.

“근데 몇 살이세요?”

“저는 25살입니다.”

“으아. 그럼 제가 형님으로 모실게요. 저는 한 달 전에 제대해서 지금 23살이에요. 형, 말 편히 하세요.”

“아... 그래.”

23살이라...

그 때즘의 나는 칼 쓰는 법 배우고 시간만 되면 몽둥이 들고 나가서 싸우고 돌아다니고 몇 차례 병원 신세를 지고 그랬었지. 이 곱게 자란 듯한 녀석이 그때의 내 고통을 알 수 있을까?

“근데 형님, 어떻게 한 거예요?”

“응?”

“매출이요! 어떻게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2천을 한 거예요? 앉혀놓고 바로 세일즈?”

세일즈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영업이다. 영업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있으니 세일즈라는 말로 순화시키는 거다. 굳이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냥 그 사람이 몸이 좀 불편해서. 게다가 돈도 많더라고 운이 좀 좋았어.”

“저희 매니저님은 그렇게 말 안 하던데요. 아무리 천운을 타고나도 절대 못 한데요. 솔직히 노하우 같은거 있으면 같이 공유해요!”

“그, 그래. 근데 진짜 딱히 알려줄건 없어.”

“으음. 알았어요. 대신에 나중에라도 마음 바뀌면 알려줘야 해요.”

글쎄 숨기는 거 없다는데 믿질 않는다.

그리고 또한, 숨기는 게 있어도 말해줄 수 없다. 말해도 믿을리 없고.

“도착했다. 청담은 처음 와봐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대체 여기가 뭘 그리 잘났기에 청담, 청담하나 싶기도 해서 궁금했는데 막상 내려보니 별 것도 없다.

“트레이너 선배들이 말하는 걸 들었는데 청담점에 있는 센터는 잘 될 수밖에 없대요. 주변에 잘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럴 거예요.”

아무래도 그건 아닐 거다.

돈 많은 사람이 많을수록 주변에 경쟁 상대도 많을 것이다. 청담점은 그 사이에서 이겨내기 위한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별 다른 말 없이 그를 따라 BD짐 청담점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같은 시각에 모이는 몸매 좋은 남녀들은 모두 신입 선생님들일 거다.

홍푸른은 재빨리 다른 선생님들에게 말을 걸고 악수하고 번호 따고 난리도 아니었다.

나도 해야 되나? 한국 사회 인간 관계에 대해서는 홍푸른에게 배울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시도 입을 멈추지 않는 홍푸른의 이마에 땀까지 맺히는 걸 보곤 곧 바로 체념했다.

교육이나 받자. 돈 버는 것도 아닌데 입 터느라 땀까지 쏟는 건 좀 아닌거 같다.

첫 교육은 악명 높은 용우가 담당하니까.

안으로 진입한 나는 청담점의 내부 시설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한국에도 이렇게 천장이 높은 센터가 있다니. 미국에 있는 여느 드넓은 센터 못지 않게 큰 규모를 자랑했다. 주변 얘기를 들어보니 예전에 수영장이었는데 그걸 개조해서 지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GX룸으로 이동했다. 전면이 거울로 이뤄져 있고 플로워 쪽으로는 전부 비치는 창문이었다. 따라서 안쪽에서는 밖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밖에서는 안에 있는 트레이너들의 교육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BD짐이 마냥 신입들을 위해 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신입 선생님들에 대한 교육을 꾸준히 실행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거다. 이는 알게 모르게 센터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청담점 박정대 팀장이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전체 통제했다. 우리는 거울에서 일정 간격을 떨어트려놓은 채 열을 만들었다. 트레이너의 성비는 여자 셋, 남자 일곱으로 총 10명. 남자가 확실히 많았다.

“청담점에 온 걸 환영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각자 다른 곳에서 왔을 겁니다. 각 지점이 여러분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에 여러분이 어느 지점을 가서 무슨 행동을 하던 그 모습이 곧 자기 지점의 얼굴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제 곧 청담점 용우 팀장께서 입장하실테니 정숙하고 있다가 오시면 전부 일어나서 인사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까?”

“네!”

박정대 팀장은 그렇게 말하고 플로워 쪽을 향해 한 차례 손을 흔들어보이더니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수업이 있는 모양이다.

나이를 백 날 처먹어도 우리는 늘 똑같다. 담당자가 빠져나가자마자 잡담 시작이다.

“어제 어디 운동했어요?”

“월요일이었잖아. 하체 뿌셨지요. 헤헤헤.”

“하체! 오실 때 다리는 무고하셨습니까?”

“거의 기어 오다시피 왔습니다. 오늘은 가슴 운동을 해야 되는데 체력이 버틸지 모르겠어요.”

“가슴 운동! 저도 가슴 운동 좀 알려주세요. 도통 자극점을 못 찾겠더라고요.”

“원래 여자들 가슴 운동 자극점 찾기 힘들대요. 계속 하다보면 늘 걸요?”

하하호호.

홍푸른이 만들어놓은 분위기에 맞춰 급진적으로 친해진 그들은 앞으로 있을 교육에 대한 걱정은 없는 모양이다. 박정대가 말한 내용에 힌트가 숨어져 있는데 말이다.

나는 아까부터 계속해서 한 가지만을 몰두해서 했다. 입으로 계속 중얼거리기. 너무 집중해서 하다보니 옆에서 홍푸른이 말을 거는 걸 못 들을 정도로.

“기준 형님? 뭐하고 계세요?”

나는 홍푸른이 몇 번 날 부르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반응할 수 있었다.

“아, 연습.”

“무슨 연습이요?”

이 말똥말똥한 눈망울이라니.

스물세 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 초등학생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은 때리고 싶을 정도로 귀엽고 앙증맞았다.

이 자식은 정말이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모든 사람에게 다 말을 걸고 다니는 모양이다.

내가 대답을 하려고 했는데 마침 GX룸의 문을 열고 용우가 들어왔다. 내 기억 속에 있던 모습보다는 중후해진 모습이지만, 전반적으로는 변함이 없다. 다른 트레이너들과는 다르게 넥타이까지 맨 정장을 입었고 머리는 전부 뒤로 넘겼다. 둔탁해 보이는 턱과 짙은 눈썹. 까무잡잡한 피부는 뾰루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새끼, 그 동안 얼마나 잘 지냈는지 때깔 참 곱네.

우리는 모두 일어나서 인사했고 용우의 손짓에 따라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는 박정대가 미리 준비해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손으로 리모컨을 작동해 롤스크린을 내리고 빔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BD짐의 교육철학에 대하여’

진짠가. 교육철학이라니. 내가 아는 용우랑 너무 안 어울리는 단어다.

“청담점 팀장 용우다. 교육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주의를 주겠다. 질문이 있는 사람은 따로 질문 시간을 주겠으니 중간에 절대 말을 끊지 말도록. 그럼 시작하지.”

그 후에 그는 으레하는 일이라는 듯 BD짐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했다.

지루한 시간. 나는 가만히 앉아서 어떻게 저렇게 지루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지갑을 열게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뺨치는 지루한 시간이 어느 정도 끝나고 내가 집중할만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처음부터 이곳의 사장님이 아니셨다. 당신께서 들어오실 때도 너희와 마찬가지로 신입 PT 사원으로 들어왔지. 밑바닥부터 올라가서 그 위치까지 올라가신 거다. 나를 비롯한 모든 간부들은 전부 그렇다. BD짐은 어디서 운동 깨나 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간부를 시키지 않는다. 그러니 너희도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7~8년 정도면 총괄 매니저가 될 수 있다. 총괄 매니저는 지점에 따라 다르지만, 아무리 적어도 연봉 1억 이상은 받을 수 있다. 너희는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바다에 놓인 거다. BD짐은 그만큼 무한한 잠재성을 갖고 있다. 어떤 대학을 놔왔든 과거 이력이 어떻든 간에 실력만 있으면 승진할 수 있다.”

광활한 바다라. 요즘 누가 저런 단어를 선택하지.

어쨌든 용우의 말은 대부분이 거짓말이다. 여기 있는 사원들도 전부 그 거짓에 속아 BD짐 에 지원한 것이리라. 다른 센터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최용수가 트레이너 사원 출신이었다는 게 상당히 신뢰가 있는 부분이었다.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토시 하나라도 진실된 소리가 없다. 물론 총괄 매니저가 되는 조건같은 거야 지들이 꼴리는대로 하니까 맞다고도, 틀리다고도 할 수 없지만.

“정명. 바를 정. 밝을 명. 내가 이름을 개명하기 전의 내 이름이다. 바르고 밝게 크라는 뜻에서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아쉽게도 그렇게 크지는 못했지. 학창시절의 나는 잔뜩 비뚤어져 있었고 얼굴도 까무잡잡하니까.”

낮은 웃음소리.

용우는 잠깐의 간격을 두고 다시 말을 이었다.

“BD짐에서 트레이너들에게 요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트레이너들은 모두 각자의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어야 한다. 정체성.”

다시 화면이 바뀌고 이번에는 어떤 뚱뚱한 사람이 나왔다.

“이 사람은 내 회원이었다. 체중이 무려 150kg에 육박하는 초고도 비만이었지. 그리고 의사에게 이대로 가다간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정확한 병명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결론은 같았다. 살을 빼야 했다. 살을 빼지 않으면 이 회원은 2~3년 내로 죽는다. 25세 이하의 꽃다운 나이였지. 내가 이 회원을 계약서에 서명하게 만드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로지 나만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임팩트를 던져줬다. 화면을 봐라.”

화면이 바뀌고 용우의 예전 이름이 다시 스크린에 나타났다. 그런데 아까와는 한문이 다르게 적혀 있었다.

“정할 정. 목숨 명. 나는 내가 수명을 정해주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 안하더군. 무슨 운명이라는 지푸라기라도 잡았는지 내 이름과 자신의 상황이 너무 잘 맞아 떨어진다고 계약서에 서명했지.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50kg에서 85kg까지 감량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지금 그 유명한.”

다시 또 화면을 넘겼고 비포 에프터처럼 완전히 역변한 남자가 등장했다. 신입생들은 전부 다 탄성을 질렀다. 사진의 남자는 유튜브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브이로그로 찍고 인스타 몸짱으로 유명한 남자로 한번쯤 봤을 법한 얼굴이었다.

“지금까지 나와 계약한 공식적인 PT 회수는 500회. 그는 BD짐에 단 한 번도 광고를 멈춘 적이 없었지. 물론 내 이름도 유명해졌다. 그리고 이 회원이 날 추천할 때마다 내 이름에 대해서 얘기한다고 하지. 갤러리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날 저승사자라고 한다는군. 손발이 다 오그라들지만, 나름 뿌듯하더군. 그리고 그게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놨다.”

나는 아까와는 다르게 용우를 바라봤다. 확실히 이 놈은 양아치 중의 양아치다. 깡패라고 해도 모자랄 게 없는 놈이지만, 트레이너로써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만큼은 인정할 부분이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씨익 웃는 그의 얼굴에서 나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어둠을 느끼고 쭈뼛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나는 이름을 다시 바꿨지. 내가 왜 이름을 또 바꿨는지 아는 사람?”

나는 알고 있었지만, 가만히 있었다. 아무도 말을 않자 용우는 다시 말을 이었다.

“소모성. 우리 트레이너에게 아이덴티티라는 것은 소모적인 것이다. 한 번 사용하고 나서 무참하게 버려도 다시 다른 아이덴티티를 찾는 거다. 그것이 우리 BD짐 트레이너들이 가져야 할 자세다. 버려질 각오를 하고 살아라. 하지만 버려지면 다시 내 무기를 찾아!”

그러더니 가장 앞에 앉아있는 신입 트레이너 하나를 지목하며 일으켜 세웠다.

바야흐로 용우의 미친듯한 질문 세례 시간이 펼쳐진 것이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