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마학원 수석졸업생인 나와 그녀들-51화 (51/159)

〈 51화 〉 51. 유스걸 주니 & 리카 (3)

* * *

일요일, BD짐은 쾌적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카메라맨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자 몇 안 되는 회원들이 우릴 보며 의아해했다.

들어가자마자 인포데스크 직원에게 말해서 수건과 라커 열쇠를 받아서 주니와 리카에게 나눠줬다. 일요일 당직 트레이너들은 주니와 리카를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누군지 아는 눈치라기보다는 저렇게 예쁜 여자들이 둘씩이나 여기서 뭘 하나 싶은 거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카메라 촬영이 있을 거라고 얘기했다.

사람이 거의 없는 프리웨이트존을 정리하고 두 사람이 옷을 갈아입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자 또 한 명의 팀장인 김준이 잠시 어딜 나갔다 왔는지 한 손에 아메리카노를 들고 스트로를 쪽쪽 빨면서 내쪽으로 걸어왔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요?”

“아, 안녕하십니까, 팀장님. 오늘 아이돌들 트레이닝시키고 계약서 쓰려고요. 촬영도 할 예정인데 매니저님이랑 이쪽 기획사 사장님이랑 다 얘기 되셨답니다.”

“그래요? 난 왜 못 들었지.”

당연히 못 들었겠지. 구라거든. 일단 선조치 후보고다. 솔직히 거짓말 하나 안 보태서 이렇게 해주는 신입 있으면 쌍수 들고 환영이다. 안 그럴 매니저가 있을까? 어디 가서 아이돌 두 명 물어오겠다고 하는데 말이다.

“근데 신기하네. 어디서 연줄이 닿아서 아이돌들을 데려왔대?”

“하하, 그러게요...”

딱 봐도 아니꼽게 보는게 느껴지는 말투. 사실 김준의 입장에서는 내가 좀 아니꼽게 보일 수도 있겠다. 녀석은 항상 이정석의 그늘에 가려져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었을텐데 갑자기 신예 트레이너가 나타나 자기가 못 해본 걸 다 해보니 말이다.

“근데 있잖아요.”

역시나 얘기를 끝내지 않고 더 말을 걸어왔다.

“솔직히 이런 얘기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지난번 이정석 팀장 환불 사건 비롯해서 이번 일도 그렇고. 아무리 매니저님한테 허가를 받았어도 당직 팀장한테 먼저 보고를 하는게 맞지 않나 싶네요?”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입술이 달싹거렸다. 그런 소리를 하려면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지 않나. 웃기는 양반이다.

“그리고 이거.”

그는 내 사복차림을 노려보면서 손가락으로 찔렀다. 처음에는 시비를 걸 요량으로 쿡쿡 찌른 모양인데 생각보다 단단한 내 몸에 놀라서 흠칫 손가락을 뒤로 뺐다.

“음... 크흠! 유니폼 안 입으면 곤란하죠. 예? 아무리 오프날이어도 수업을 하려면 유니폼은 필수지. 유니폼이 없으면 나한테 말이라도 해야죠. 이러고 수업하려고 했어요?”

“갑자기 생긴 일정이라 최지아 팀장한테 보고는 해놨습니다.”

“아~ 오늘 오프인 최지아 팀장?”

“...”

“그러니까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잖아요. 예? 착한 사람 괜히 험한 표정 짓게 만들지 맙시다. 수업 끝나고 계약 전에도 꼭 나한테 보고 하고. 알겠죠?”

딱 타이밍 좋게 탈의실에서부터 주니와 리카가 옷을 다 갈아입고 쫄레쫄레 걸어왔다. 두 사람은 우리 둘 사이에 차가운 기류가 흐른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듯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웬걸, 김준은 두 아이돌을 보자마자 눈이 확 돌아버렸다.

그러더니 내게 잔뜩 콧대를 높이며 으름장을 놨다.

“앞으로 잘합시다, 예?”

“... 네, 알겠습니다.”

김준은 두 사람에게 목례를 한 후, 사무실로 돌아갔다. 지가 뭐라도 되는 양 두 여자에게 눈도장이라도 찍어주겠다는 저 표정이 아니꼽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높으신... 분이세요?”

“아니. 그냥 팀장님이야.”

“혼나신 거예요?”

“아, 혹시 우리 때문에? 죄송해요... 쌤.”

잔뜩 미안해 하며 내게 아양을 부리는 일본인 출신의 주니. 오히려 김준 덕에 스킨십이 늘어났다. 리카도 얼른 내 옆으로 와서 상체를 숙이고 팔에 매달리며 미안해 했다.

“미안해요... 쌤. 우리 때문에 많이 곤란해지셨어. 어떻게...”

리카는 가슴선이 살짝 드러나는 옷을 입었는데 아까와는 다르게 딱 달라붙지 않는 옷을 입어서인지 고개를 숙였을 때, 가슴이 출렁 내려앉는게 느껴졌다. 배꼽이 드러나는 옷을 입었는데도 살집이 있는게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전체적으로는 분명 슬랜더인데 가슴은 육덕... 슬래머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약하고, 육덕랜더라고 해야하나.

나는 입안 가득 고이는 침을 꿀떡 삼키고 사무실 방향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고맙다, 김준아. 너 덕에 이 어린 친구들의 모성애를 발동시켰다.

“괜찮아. 대신에 수업 잘 따라와줘. 그럼 팀장님도 눈 감아줄 거야.”

“좋아요! 좋아!”

“완전 열심히 할게요, 쌤. 저 그리고 되게 유연해요.”

리카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다리를 찢어서 벽에 걸쳤다.

“저 발레도 했었거든요.”

가슴은 거짓말 좀 보태서 G컵. 허리는 모래시계 마냥 잘록. 다리는 발레리나 못지 않게 유연하다니. 시발, 이거 완전 사기캐잖아?

근데 어쩌라고 저러고 있는 거지? 리카는 한동안 다리를 올려놓은 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칭찬이라도 바라는 걸까.

“뭐해?”

“아. 지금 스트레칭하는 시간 아닌가요? 다들 그러던데... 헤헤. 죄송...”

그 와중에 주니는 예쁜 얼굴로 뿜뿜 매력을 뽐내면서 거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막 생각난 것처럼 폰을 꺼내서 셀카를 찍어댔다.

“이얍! 오늘은 새로운 트쌤과 함께 BD짐에 운동하러 왔다. 뿅뿅. 운동 전 짤막하게 한 컷. 히히, 선생님이 일본어 엄청 잘해요!”

동영상이었구나... 요즘 애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는 일부러 그녀에게 바싹 붙어서 촬영에 동참했다.

“동영상이야?”

“네! 쌤! 쌤도 같이 찍어요. 이거 요즘 유행하는건데 라이브방송이에요.”

“라이브? 실시간이라고?”

“넹! 저희 유스걸 팬분들이랑 저 팔로우 해주시는 분들이 들어와서 막 채팅 쳐요. 이거 봐요. 와아아~ 인사해요~ 와아아~”

오우... 이 텐션 어쩔 거야. 제시카보다 더 방방 뛰는게 역시나 아이돌답다. 이런 여자가 일본어 못하는 멤버들 사이에서 시무룩해 있었으니 내가 구세주처럼 느껴질 법도 했다.

나는 일본어를 구사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 동안 정말 힘들었겠다. 일본어 할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회사가 아직 안 커서 그렇다고 프로듀서님이 말했어요. 좀 더 성장하면 일본어 잘 하는 직원들 붙여줄 거래요. 뭐, 이제 막 시작했는데 불평불만 하기도 그렇겠지만.”

아니, 그래도 그렇지. 연습생 시절까지 다 포함하면 되게 오랜 시간을 보냈을 텐데. 참, 이게 대한민국 연예계의 현실이구나. 빈익부부익빈. 윗 공기와 아랫 공기의 온도 차이가 이렇게나 심하다.

실제로 이 헬스장 안에서도 유스걸이라는 그룹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이렇게나 이쁘고 몸매가 좋은데 말이다. 노래 하나만 뜨고 예능 프로라도 하나 나오면 대박 터져서 얼굴, 이름 다 알려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게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런 트렌디한 sns 하나하나라도 하지 않으면 연예인 수명이 금방 확 줄어드는 거다.

채팅창을 봐도 오늘의 반응이 확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오늘 주니 텐션 개 높앜ㅋㅋㅋ

­ 텐션 무엇ㅋㅋㅋㅋㅋ

­ 저기요, 주니 씨~ 약주하고 오셨어요?

­ 기분 엄청 좋나보네. 내가 다 기분이 좋다 ㅎㅎ

­ 예뻐요~ 특히 오늘 더 예뻐요~

삼촌팬들 흐뭇해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즐거움도 여기까지. 우리는 할 일이 있었다.

“자, 여기까지 하고 둘 다 이쪽으로 모여봐.”

나 역시 두 사람을 동시에 수업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누군가 하는걸 본적도 없고 배워본적도 없기에 그저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것만으로 진행해야 했다.

“자, 지금부터 내가 하는 동작을 따라할 건데. 계속 하면서 내가 자세 지시를 해줄 거야.”

동시에 주니도 확실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줬다. 주니도 한국말을 아예 못하는 건 아니지만, 한국말로 해줄 때와 일본어로 해줄 때와 차이가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무래도 모국어로 말할 때가 한결 편안할 거다.

스쿼트의 기본 자세를 알려줬는데 리카는 곧잘 따라해도 주니가 문제였다. 주니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려줘야 하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초보자들이 사용하는 짐볼을 써야 할 정도. 반면에 리카는 바닥에 보수(bosu)를 깔아놓고 해도 곧잘 했다.

“주니야. 여기서는 엉덩이를 더 쭉 뒤로 빼야 해. 짐볼 테두리 부분이 허리에 쑥 들어간다는 느낌으로. 응, 그렇지. 잘하네. 이거 전에 있던 트레이너 선생님이 안 알려주셨어?”

“응. 안 알려줬어요.”

주니는 ‘네’라고 말하는 법이 없이 무조건 ‘응’이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는데 귀여워 죽을 뻔한 걸 몇 번 참아야 했다.

“이렇게 하면 허벅지에 힘 들어가?”

“응.”

나는 그녀의 허벅지에 가볍게 터치를 해줬다. 그러자 주니가 자극이 더 잘 들어가는 것 같다면서 좋아했다.

“손 갖다 대니까 더 잘 느껴지는거 같아.”

“이게 시냅스라고 해서 접촉이 있는 쪽에 더 신경이 쓰여서 그러는 거야.”

“응! 좋아요.”

“하, 두 사람 되게 스윗한 건 좋은데 나 지금 계속 이거 하고 있어야 되는 거예요?”

리카는 주니의 자세를 교정하는 동안 보수 위에서 스쿼트를 무려 50개나 하고 있었다.

“내려와서 좀 쉬어.”

“네. 하~ 주니랑 둘이 그러고 있으니까 꼭 연인같다. 쌤! 여기 연인들도 운동하러 많이 와요?”

“그... 렇게 많지는 않은 느낌이야. 커플 운동하면 싸움난다고 들었는데.”

“흥~ 쌤이랑 하면 딱히 안 싸울거 같은데.”

“응? 그게 무슨 뜻이야?”

“아니에요.”

나는 왜 리카가 날 조만간 덮칠거 같다는 생각이 들까. 이것도 김칫국의 일종인가. 아니면 합리적인 의심인가.

두 사람의 스쿼트 교육이 끝나자 정규 수업 시간으로 따졌을때 대략 20분 정도 남았다. 리카도 아무리 자세를 잘 따라와도 강도가 높은 운동으로 접근을 하자 온몸에 땀이 맺혔고 주니는 뭐, 말할 것도 없이 기진맥진 상태에 빠졌다.

“후... 흐하... 운동한 것 같다아... 쌤 우리 이제 좀 쉬어요.”

“으긋... 나는 이제 더 이상 못해. 완전 녹초 됐어.”

“자, 앓는 소리 그만하고. 배웠던거 그대로 적용해서 스쿼트 40회할 거야. 주니는 자세 집중하고 리카는 중량쳐서 할 거야.”

딱 봐도 리카는 트레이닝을 열심히 한 티가 난다. 그런데 주니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제 맨몸 스쿼트도 얼추 자세가 나오는 편인데 할때마다 하기 싫다고 칭얼댄다. 근데 뭐 이 정도면 예뻐서 애교라고 하고 넘어갈 정도.

“피. 쌤도 하는거 보여줘요.”

이 정도가 딱 선을 살짝 넘는 수준. 보통 같았으면 열이 잔뜩 올랐겠지만, 지금만큼은 오히려 고마운 정도다.

사실 저 말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나? 내가 시범 보여줘?”

“응! 응!”

“나도! 보고 싶었어. 쌤이 운동하는거.”

“훗. 그래? 니들 감당할 수 있겠냐?”

나는 슬쩍 카메라맨들의 눈치를 살폈다. 이쯤에서 한번 매력 발산을 할 생각이었으니까.

“감당은 뭘 감당해요~ 쌤이니까 당연히 시범 보여주는 거지~”

“쌤은 몇 kg으로 해요?”

“나? 흠, 가볍게 100kg 정도는 하지. 진짜 맘 먹고 하면 200kg 정도?”

“에이~ 무슨 200이야~ 진짜 웃겨.”

“원래 남자들은 무게 부심 부린다면서요? 역시 쌤도 예외는 아니었군.”

“부심이 아니라 진짠데. 암튼 지금 보여주면 되는거 아니야?”

나는 그렇게 말하곤 상의를 훌렁 벗었다.

코인으로 범벅질이 된 완벽에 가까운 자태가 드러나자 두 여자가 동시에 눈을 가리면서 꺅꺅 거렸다.

와, 이건 내가 봐도 너무 사기적인데. 거울에 비친 모습은 그야말로 머슬매니아 1등의 몸이었다. 이런건 TV나 잡지에서 봤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선명한 근육들. 특히 눈에 띄는건 도드라지고 갈라진 복근이었다. 키가 큰만큼 복근이 쫙쫙 갈라졌다.

이래서 김준도 내 몸에 손지검을 하더니 놀라서 움츠렸던 거다.

마침 플로워 저편에서 김준이 흘깃 내 벗은 몸을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새끼, 촬영중이니까 뭐라고 하지도 못하겠지.

나는 김준이 그러든 말든 힘껏 과시하며 스쿼트랙으로 가서 바벨 양쪽에 무거운 플레이트들을 덕지덕지 꽂았다.

두 여자는 이제 대놓고 내 몸을 구경하면서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보기도 했다.

“쌤... 이거 진짜에요?”

“그럼 가짜겠니?”

내가 씩 웃어주자 옆에 있던 주니가 자기 심장쪽에 손을 가져다댔다.

“나 진짜 엄청 쿵쾅거려, 리카 언니. 이거 봐봐.”

“볼 거도 없어. 나도 이런거 처음 보거든.”

“아잉 확인해 봐. 내 가슴에 손.”

“헐. 엄청 뛴다, 진짜. 설마 반한거?”

“응! 몰라...”

“히히, 귀여워. 근데 우리 쌤 진짜 최고다. 옷 입고 있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다시금 내 근육을 아래서부터 샅샅이 살피는 리카. 그녀는 마침내 금단의 구역까지도 눈으로 흘깃 보면서 호기심을 드러냈다.

바의 무게까지 합쳐서 160kg 정도 되는 무게의 바 밑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나는 거울에 비치는 카메라를 인지하고서 힘껏 바벨을 들어올렸다.

“우와 우와!”

“꺄아... 못 보겠어. 막 근육들이 움직여...”

이거지. 이게 헬창남의 마음이 아닐까. 아이돌들도 사족을 못 쓰는 이 실전압축형 근육.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스쿼트를 실시했다.

*

벨라는 문득 자신의 실수를 떠올렸다.

“아, 맞다... 근육 셰잎만 예쁘게 잡아주고 스트렝스는 안 늘려줬네. 뭐,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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