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44. 양각 제대로 잡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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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르릅 츄릅
야릇한 소리가 룸 안을 가득 채웠다. 제시카는 숨을 몰아쉬다가 두 사람이 나가자마자 내게 달려들었고 나는 못 이기는척 나쁘지 않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제시카는 내 허벅다리 위에 올라타서 내 목덜미를 끌어안고 격렬하게 키스했다. 타액에 소주의 진한 향이 섞인데다 메로나의 꾸덕한 당이 섞여져서 달콤하게 느껴진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키스로 취해버릴 수도 있는 수준의 알코올 농도다.
나랑 한지우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엄청나게 마신 모양이다.
“흐음”
오래 참았다는 듯이 진한 숨을 내뱉는 제시카. 진짜 행복한 한숨이다.
잠시동안의 찐행복을 끝내고 입술을 떨어트렸다.
“지우쌤 돌아오면 어쩌게 이렇게 매달려 있어요.”
“잉깃! 떨어지기 싫어어... 여기서 하고 싶어요.”
“여기서요? 그건 좀 안 될거 같은데. 지우쌤이 팀장님 택시만 태워드리고 돌아올텐데요.”
“히잉... 지우쌤은 아까 충분히 즐겼잖아.”
“알고 있었어요?”
“부정도 안 하고! 나빠 죽겠어... 뽀뽀해줘요.”
피식.
나는 뭐, 청문회라도 열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뜨거울줄만 알았던 제시카는 한지우 못지 않게 쿨했다.
턱을 살짝 내리고 노려보듯 날 바라보는데 어쩜 이렇게 귀여운지. 해달라고 하기 전에 먼저 입술이 달려들었을 것이다.
쪼옥 진하게 입술을 맞추고 떼자 화가 풀렸다는 듯이 부스럭거리며 내 위에서 내려온다.
“칫... 지우쌤은 10분 넘게 이걸 계속하고 있었단 거잖아... 부러워.”
“지우쌤이랑은 키스 잘 안 해요.”
“엥? 왜요?”
“글쎄요. 왜 그럴까요?”
“근데 나랑은 왜?”
“좋아서?”
물끄럼 날 바라보는 제시카를 향해 베시시 웃어줬다. 그러자 조금 후에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른다.
“으아! 저, 뭐야... 술 한잔 합시다, 우리!”
푸하하
나도 모르게 크게 웃은 후에 그녀가 손수 만들어준 칵테일 빨대를 쪽 빨아먹었다.
“제시카쌤은 진짜 만능인거 같아요. 영어랑 중국어도 잘하고 술게임도 잘하고 술도 잘 만들고.”
“더요, 더. 더더더!”
“음, 랩도 잘하고?”
“오예! 그 말이 듣고 싶었다고. 그리고요? 그리고요?”
“음... 섹스랑 키스도 잘 하고.”
“하응... 나 그 말 들으니까 또 하고 싶어졌어.”
“제시카쌤.”
“네?”
“지우쌤이랑은 사이가 어때요? 아까 오토바이도 같이 타고 왔잖아요.”
“이잇! 갑자기 이 타이밍에?”
제시카는 곤란한 질문을 받은 것처럼 아랫입술에 손가락 끝을 갖다 대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딱히 서로 친해질 계기도 없긴 해서. 나는 지우쌤이 되게 예쁘고 멋있다고 생각하는데 지우쌤은 도통 마음을 알기가 힘드네요.”
“하긴... 속마음을 잘 말하지 않긴 하죠.”
“맞아요. 근데 얘기를 듣긴 들었던거 같아요. 왜 타투를 시작했는지에 관한 얘기... 뭐, 제가 할 얘기는 아니지만요.”
사연? 사연이 있었구나. 성격이 그렇게 차분하고 조용해진 것도 그렇고. 츤데레처럼 몰래몰래 챙겨주는 것도 그렇고. 온몸에 타투가 있는 것도 그렇고. 오토바이야 어렸을 때부터 탔다고 하지만, 다른 건 사실 모르고 있었다.
“근데 확실한 건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거 같다는거?”
“풋. 세상에 제시카쌤 싫어할 사람 거의 없을 걸요? 성격 엄청 좋잖아요.”
“에헤헤. 그런가? 고마워요.”
“제시카쌤은 학창시절에 별일 없었어요? 왜 트레이너가 됐는지, 이런거.”
“오옹... 갑자기 캠프파이어 분위기... 후움... 초등, 중등교육은 미국에서 마쳤고 고등학교때 한국으로 돌아왔고... 음, 별거 없는데. 트레이너 된거는 내가 원체 앉아있기만 하는걸 못해서요. 대학교 때도 못 앉아있기로 유명했는데 회사 들어가니까 더 힘들더라고요. 내 맘대로 못하니까. 헤헤.”
“크큭. 그럼 트레이너가 천직이네요.”
제시카는 가끔씩 회원과 함께 센터 내에 있는 트랙을 따라 조깅을 하곤 한다. 다른 회원들이 봤을 때는 회원과 함께 참여하는 그림이어서 긍정적인 효과, 그러나 정작 본인은 가만히 있질 못해서 따라다니는 것 뿐이라는 걸 모른다.
땀을 흘린 뒤에 수건을 목 뒤에 걸치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피식피식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럼... 기준쌤은?”
“네?”
“기준쌤의 과거가 궁금해요.”
제시카가 묻는 순간 살짝 벙쪄졌다. 뭐라고 대답하지. 나는 문득 전생의 내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면서 끝맛이 떫어졌다. 다시 돌아가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쓰레기같은 인생. 붉은피와 검은돈의 향연. 친군줄만 알았던 놈들의 얼굴과 한때 사랑했던 와이프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던 거다.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내가 말하려고 하자 마침 한지우가 밖에서 문을 열었다. 그녀는 허겁지겁 뛰어왔는지 숨을 헉헉거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팀장님 택시에 태워드리고 왔어요.”
“빨리 오셨네요. 고생하셨어요. 제가 했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제가 할 일이었어요.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요?”
“음. 지우쌤?”
“예?”
내가 능청스럽게 말하자 놀라서 눈을 치켜뜬다. 제시카는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찰랑거리는 소주잔을 홀짝거리고 있다.
“제... 무슨 얘기요?”
“하하. 농담이에요. 제시카쌤이 지우쌤을 되게 좋아하는거 같아서.”
“앗! 갑자기 이상한 소리하려고.”
푸푸 소주의 진한 향기를 뿜어내면서 제시카는 알딸딸한 목소리를 내었다.
“흐응... 나 취한거 같아요. 지금 몇 시지?”
“우리가 빨리 달려서 그렇지 아직 12시 안 됐어요.”
“푸힝... 근데 여기 좀 불편해요. 기준쌤 보려면 몸도 틀어야 하고. 벽도 딱딱하고 누워서 술 먹고 싶당.”
이제 슬슬 자리 옮기기를 제안하는 제시카. 한지우와 관계가 좋다고는 하지만, 방금 화장실에서 섹스하고 온 주인공이 나타나자 은근히 질투가 생기는 모양이다. 여전히 자기는 왜 간식을 안 주냐고 묻는 강아지같이 토라졌다.
“그럼 자리 옮길까요?”
“그럴까요?”
한지우도 내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했다.
“우리 집은 어때요?”
내가 제안하자 두 사람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다른 누구의 집도 아니고 우리 집이다. 두 사람의 최근 관심사가 나라는 걸 감안한다면 파격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좋아요! 가요! 가요!”
“궁금했어요. 기준쌤 자취방...”
생각해보면 제시카와 편안하게 섹스해본 기억이 없다. 놀이공원에서의 땀에 젖는 섹스 이후에 비상계단에서도 한바탕 했었고. 그 외에도 갑자기 생각날 때마다 야외에서 섹스를 했지, 어딘가 편안한 곳에서 섹스를 했던 적은 없다.
한지우와는 모텔에서 섹스를 했었다지만, 그 이후에는 전부 야외섹스.
두 사람과의 섹스 장소는 보통 주차장 구석진 곳이나 옥상 혹은 아무도 없는 헬스장 탈의실이었다.
“그럼 가죠. 맥주 몇 캔 사가면 되겠다. 안주는 필요 없죠?”
“네, 네! 안주 필요 없어요. 배 불러...”
“오토바이는 또 놓고 가야 겠네요.”
우리는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술집을 나섰다. 여기서 걸어서 자취방까지 가려면 20분 정도는 걸어야 한다.
그런데 심심하지는 않을거 같다. 양쪽에 서로 다른 두 여자가 걸어가면서 하염없이 재잘거렸으니까.
“그거 알아요? 우리 센터 앞에 노래방 사장님이요. 유니폼으로 갈아입을 때 노팬티로 입는데요.”
“엥? 아이고, 진짜 그 아저씨 참. 누가 아재 아니랄까봐.”
“... 유니폼 입으면 당연히 노팬티 아닌가요? 안에 속바지 있는데...”
“끄앙꺅! 설마 기준쌤도?”
“네... 사우나 가면 남자들 다 그러는데.”
“에이, 누가 요즘 그래요~ 진짜 기준쌤도 아재네. 아재.”
아재 맞지. 그리고 전혀 신경쓰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고.
“근데 노래방 사장님은 노래방 왔다갔다하면서 거의 하루종일 운동하면서 왜 살이 안빠지나 몰라.”
“끝나고 술 마시러 갈텐데 뭔 소용이겠어요.”
“맞아, 맞아. 유산소하면서 CCTV 확인하던데. 장사도 더럽게 안 되나봐요.”
“유지비는 어떻게 부담하는지 몰라.”
“밤에는 그래도 꽤 잘 되는 듯.”
“하~ 나도 사장님하고 싶다. 사장님 되면 내 맘대로 막 해도 되잖아.”
제시카는 철없는 소리를 하면서 은근슬쩍 내 손에 자기 손을 스쳤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의도성이 다분한 스킨십이었다. 근데 정말 놀라운건 그와 같은 타이밍에 한지우도 내 반대쪽 손에 자기 손을 스쳤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텔레파시로 뭐라도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기가막힌 타이밍이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그 직후에 제시카는 내 새끼 손가락에 자기 새끼 손가락을 걸어버렸다는 거고 한지우는 의도였다는 걸 들키기 싫은지 자기 주머니 속으로 제 손을 집어넣었다.
내가 가만히 있자 제시카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나풀나풀 걸었다.
“히히.”
이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지 보이지 않는 한지우는 뭣도 모르고 걷고 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측은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침 뒤쪽에서 차가 다가오길래 은근슬쩍 한지우의 허리를 잡고 내쪽으로 끌어당겼다.
“읏?”
“조심해요. 뒤에 차와요.”
“네...”
“차도가 가까우니까 저한테 붙어있어요.”
한지우는 내 말에 못 이기는척 가까이 다가와 붙었다.
누가 보면 참 이상한 그림이라고 생각할 거다. 양쪽에서 붙은 여자가 나랑 무슨 관계인지 전혀 알 수가 없을 거다.
“근데 되게 신기하다.”
제시카가 뜬금없이 말했다.
“뭐가요?”
“맞잖아요. 기준쌤 여기 들어온지 진짜 얼마 안 됐는데. 꼭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처럼 편안한게 되게 신기해요.”
“맞아요. 저도 엄청 편안해요. 뭔가... 생각이 맑아지고 다음 날에도 개운한 느낌?”
“아니, 난 직후에 개운해지던데.”
“직후에요?”
“아, 아니... 그니까 기준쌤이랑 얘기하고 난 직후요!”
나는 동공이 흔들리는 한지우의 귀에다 대고 속삭여줬다.
“제시카쌤 알고 있어요. 아까 우리 화장실에서 섹스한거.”
“으아아... 그거 들킨 거예요?”
나는 대답 대신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줬다.
“아까 내가 했던 말 기억하죠?”
“...”
처음에 그녀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듯했지만, 이내 무슨 뜻인지 깨달았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곤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아, 안 돼요! 그건 진짜 말도 안 돼요.”
“지금 우리 같이 자취방 가고 있잖아요. 나랑 지우쌤이 그렇고 그런 사이인거 알면서도. 제시카쌤도 원하고 있을 거예요.”
“흐응...”
한지우는 제시카를 곁눈질로 바라보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둘이서 뭘 그렇게 속닥속닥?”
“흐흐, 제시카쌤 뒷담했어요.”
“뭐에요, 그게! 이게 무슨 뒷담이야 그리고! 옆담이지, 옆담.”
나는 한지우가 제시카를 바라보는 눈을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 이런 비슷한 눈빛을 본적이 있으니까. 동성을 바라볼때의 눈빛이 아니다. 제시카가 한없이 귀여운 짓을 할때마다 어쩔줄 몰라하는 저 표정과 몸짓.
내 예상이 맞다면 한지우는 바이섹슈얼. 양성애자다.
우리는 자취방에 들어가기 전에 해외맥주 4캔에 만원짜리를 샀다.
양쪽에 두 사람을 끼고 집 앞에 섰다.
시간은 1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여기에요.”
섹서타임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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