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39. 두 번째 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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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애 엄마한테는 아무쪼록 비밀로 해주시고요. 찾아오지도 않겠지만.”
2주차 매출 스퍼트. 원래 영업은 2주차가 제일 바쁜 법이다. 첫 주에는 계획을 세우는 단계고 상반기 결산이라고 볼 수 있는 2주차에 얼마나 매출을 뽑아내느냐에 따라 이번 달의 매출을 가늠할 수 있다.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지만, 절반은 알아야 전체를 알 수 있다는 말도 있으니까.
따라서 BD짐의 거의 모든 매출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 팀의 매출 내용은 상당히 중요한 결과치였다.
나는 19세 안소정을 400만원에 등록시켰고 황인호 회원 중에 환불 나왔던 사람 두 명을 더 등록시켜서 도합 1000만원을 맞춰놨다. 신입생으로써는 이례적인 기록이다. 최지아는 나보다 100만원 더 많은 1100만원. 한지우는 300만원을 더 추가해서 600만원. 제시카는 코스프레어들을 대거 등록시키면서 1500만원을 달성했다.
한지우가 조금 부진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그녀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PT 매출은 팀워크였다. 이번달에 누군가가 리드를 하면 다음달에 다른 사람이 리드를 하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어쨌거나 지금은 한계선을 훌쩍 지난 상황, 2주차 결산에서 이 정도로 매출을 한 팀은 전국을 통틀어도 손에 꼽을 정도다.
4명이서 4000만원을 넘게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청담점 오정명 팀장네가 5000만원을 했대요.”
“네?!”
제시카가 화들짝 놀랐다. 당연히 매출 1등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1000만원이나 뒤지고 있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팀 내 매출 1등은 방성원이라는 슈퍼루키... 혼자서 2500만원을 싹쓸이했다네요.”
“슈퍼루키라면..?”
한지우가 나직이 물으면서 내 얼굴을 살핀다.
“들어온지 석달 됐다네요.”
“힝. 어차피 석달 뒤에는 기준쌤이 다 이겨요. 기준쌤은 들어온지 2주 밖에 안 됐는데 천만원 했잖아요.”
제시카 특유의 발을 동동 구르는 듯한 말투에 최지아는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겠죠. 근데 중요한건 이번달 매출 1등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에요. 청담점 오정명 팀장은 냉철하기로 유명한데 이번달 매출에 사활을 거는 걸로 봐서는 확실히 뭔가 있어요. 사장님이 청담점 주변에서 사셔서 미팅 때마다 자주 청담점에 나타나시는데 그때 따로 뭔가 지시했을 가능성도 있어요.”
“우리가 모르는 1등의 특혜가 있을 거라는 말인가요?”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에요. 아직 확실하지는 않아요.”
최용수의 딸인 최지아라면 충분히 그 사실을 알아볼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정확한 정보가 없다는 건, 이정석과의 이별 이후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틀어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나는 이쯤에서 나서서 말했다.
“슈퍼루킨가 뭔가 그 트레이너가 지금 2500을 했다고 하셨죠.”
“네.”
나는 최지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제가 이번 주말 이후로 2500을 맞춰놓겠습니다.”
아주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나는 어딜 가서 무슨 물건을 팔든 자신이 있다. 하물며 입만 털어서 남겨 먹는 장사다. 여태껏 살아온 짬밥이 있지, 쯧.
나는 이번 주말에 아이돌 기획사인 ATB의 초청을 받아 방문하기로 했다.
내가 그룹, 유스걸에게 원하는 건 단 하나. 다름아닌 PT였다.
내 발언에 놀란 세 여자는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내게 어떤 말을 해줘야 좋을지 고민하는 모양이다.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이미 천만원도 잘한거다. 비교하려고 했던 말은 아니다.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못하더라도 기죽을 필요 없다. 등등.
그런데 최지아는 생각이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흥미가 붙었는지 엷은 미소를 띄워보였다.
“정말 부러운 열정이네요.”
열정. 듣기에는 좋은 단어지만, 이 단어가 발목을 붙잡을 때가 많다. 호기와 객기는 한끗 차이라고 하지 않던가. 누군가의 눈에는 내 발언이나 행동이 객기처럼 보일 것이다.
내 앞에 있는 세 여자는 나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특히 한지우나 제시카는 속살을 두 세 번 섞어서 그런지 내가 똑 부러지는 발언을 하거나 충격적인 발언을 할 때마다 아랫도리가 뜨거워졌는지 야릇한 유혹의 눈길을 날리기도 했다. 특히 제시카는 지금 당장이라도 날 덮치고 싶은지 안달이 나 있었다.
반면에 차갑기도 하고 뜨겁기도 한 눈빛의 최지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매출을 올릴지 보고서를 한번 작성해서 메일로 보내주세요. 바로 유 매니저님한테 보고 올릴 거예요.”
“유후~ 기준쌤 완전 멋져요.”
“기대... 할게요.”
“자, 그럼 오늘 미팅은 여기까지 하는거로 하고. 금요일 밤인데 다들 퇴근하고 푹 쉬어요. 이번 한주도 다들 고생 많았어요.”
“아잇! 팀장님~! 솔직히 우리 진짜 고생 많이 했는데 맛있는거 먹으러 가면 안 되요?”
제시카가 어린애처럼 앙탈을 부렸다.
“흠... 회식을 너무 자주하는거 아니에요?”
최지아의 말에 웬만해선 잘 끼어들지 않는 한지우가 말했다.
“기준쌤만 괜찮으면 뭐, 회식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너무 과음하지 않는 수준에서.”
“맞아요. 운전대는 기준쌤한테 있다! 주말에 매출해야되니까.”
제시카도 신나서 맞장구쳤다. 아무래도 한지우와 제시카, 두 사람의 생각은 비슷해 보인다. 어떻게든 오늘 밤 나와의 뜨밤을 보내기 위해 허우적거리는 거다.
나는 고민을 하는 척 했다.
고민 ‘하는 척’. 왜냐면 답은 정해져있으니까. 떡을 치거나 술을 진탕 마신다고해서 나올 매출이 안 나오는건 아니다. 오히려 한 발이라도 더 빼면 매출에 더 도움이 될거 같다. 그것도 이번에는 좀 더 특별하게.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오늘이 결전의 날이냐. 아니면 보약식을 먹느냐인데.
나는 이미 마음을 정해놓고 있었다.
“회식이라면 저는 무조건 찬성입니다.”
“오예! 역시 기준쌤! 화끈해! 오늘 내 개쩌는 랩을 보여줄게요.”
“하하! 기대되는데요?”
“자, 그럼 기준쌤 보고서만 작성하고 바로 출발해요, 우리.”
“네!”
나는 속으로 벨라를 소환했다.
벨라. 이따 12시~1시 사이에 섹서타임 발동해줘. 오늘이 하이라이트라고. 최대한 많은 악신들을 다 불러줘.
으응...
반응이 왜 그래?
지금 좀 많이 바빠서. 네 채널 관리하는거 진짜 빡세. 너 얼마 전부터 채팅창 블라인드 걸어놓고 안 보더라? 후원금 받아놓고 답변도 안 하고.
섹서는 바쁘다. 섹스하랴 삶을 살아가랴. 추가적으로 나는 복수까지 계산에 넣고 있으니까.
뭐... 나도 할 일이 있고 섹스할 때는 웬만하면 집중하려고 블라인드 걸어놓는 편이야.
이번 주 내내 섹스도 하고 영업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근무가 길어져서 밤에 늦게 집에 도착했는데 은근히 꼴릿해서 옆집 이소연네 집으로 넘어가 연속 섹스 정사 후에 거기서 잠이 들기도 했다. 근무 중에는 틈틈이 제시카와 한지우와 뻔질나게 스릴 넘치는 섹스를 해댔고.
그러니 악신들의 채팅 하나하나에 답변을 해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무슨 일?
... 천신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 상장도 하지 않았는데 천신들이 몰래 방문하는 거야.
천신이라면 지옥이 아니라 천국을 관장하는 자들. 따라서 그들은 본능적으로 쾌락을 쫒지 않지만, 계속되는 지루한 일상에 지쳐서 쾌락을 탐낸다. 내가 스릴 넘치는 야외 섹스를 할 때 배덕감을 느끼듯이 그들도 그런 배덕감을 즐기고 있는 거다.
그런 천신들이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내 채널을 봐준다는 건 그만큼 유명세를 많이 탔다는 소리다.
그렇다는 말은 악신 메르세데스가 보장해줬던 상장도 이제 시간 문제라는 소리. 입에 침이 고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더 오늘의 섹스에 사활을 걸어야 하기도 했고.
잘됐네, 뭐.
응응. 잘됐지.
근데 뭐가 문젠데 그래. 벨라, 너가 원하는 그림 아니었어?
맞아.
그럼 바쁘더라도 하는게 맞잖아.
뭔가 이상했다. 잘 되고 있다면 바쁘면 바쁠수록 좋은 건데 목소리가 좋지 않았던 거다.
하는게 맞지. 안하지는 않아. 단지, 천신 중에 한 명이 좀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기분이 좀 안 좋아져 있었을 뿐이야. 자세한 건 다음에 알려줄게. 너는 오늘 있을 섹스에만 집중해...
천신이 난동을 부려? 가장 몸을 사려야 되는 천신이? 그만큼 아이러니한 상황이 또 있을까.
이상한 상황이지만, 일단 벨라가 하라는대로 하는 수밖에.
... 알겠어. 고생해.
응!
천신이라... 천신이라하면 통용적으로 알고 있는 신들이 있다. 들어보면 이름을 알 수 있는 북유럽, 그리스로마, 동양신화 등에 등장하는 신들.
내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천신을 예로 들면 아프로디테 정도. 미의 여신이라는 아프로디테와 섹스를 하면 어떤 기분일까... 물론 아직까지 몽마급 정도되는 마족을 상대한 적은 있어도 악신과 섹스를 하지 못하긴 했다. 목표는 크게 잡을수록 좋다고 하지 않았나. 기회가 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게 바로 아프로디테다. 닉네임은 ‘미의 여신’ 정도가 될까.
벨라와의 교신을 끊었다. 그 동안 보고서를 다 작성해서 최지아에게 보여주자 최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가 아이돌 그룹, 유스걸과 만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할 수 있겠어요?”
“네.”
최지아는 내 즉각적인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가시죠. 유 매니저님한테는 제가 메일로 보고를 드릴테니.”
옆에서 한지우가 말했다. 제시카는 그 옆에서 과자를 집어 먹고 있었다.
“기준쌤은 제 오토바이 타고 가요. 저번에도 탔었죠?”
그러자 제시카가 눈을 휘등그레 뜨고 벌떡 일어났다.
“무슨 소리에요. 기준쌤, 나랑 걸어가요.”
“오토바이 타면 금방 가는데...”
“원래 천리 길도 친구랑 걸으면 금방 간다고 그랬어요. 걷는게 짱!”
“저기... 팀장님을 먼저 챙기는게 맞지 않을까요?”
내 말에 두 사람은 청천벽력같은 소리라도 들은 듯 몸을 흠칫 떨었다.
“아하하... 맞죠. 팀장님. 저랑 오토바이 타고 가요.”
“아니에요... 저랑 걸어가요!”
바보들...
괘씸한 두 여자는 결국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고 나와 최지아가 단둘이 걸어가게 됐다.
“아하하... 팀장님 혹시 화났어요?”
“아뇨. 그냥 걷고 싶었는데 차라리 잘됐다 싶었어요.”
가로수가 늘어진 보도를 걷는다. 바람이 불때마다 최지아의 핑크빛 머리카락이 찰랑이고 그에 따라 기분 좋은 향기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어쩐지 위화감이 느껴지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랜만에 들어가본 내 채널의 채팅창은 난리가 나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최지아의 처녀성을 담당하고 있는 천신 하나가 난동을 피우고 있었던 거다.
[천신 ‘구르미 묻은 달’이 당신을 향해 적개심을 드러냅니다.]
[천신 ‘구르미 묻은 달’이 수 많은 악신들을 향해 “절대로 처녀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합니다.]
[천신 ‘구르미 묻은 달’이 일당백으로 수 많은 악신들과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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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자세히 들어보니 굳이 처녀인 최지아를 건드릴 필요가 없지 않냐. 섹스할 여자는 많다. 오늘밤 섹서타임의 대상이 최지아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등등.
나는 천신이 도배해둔 채팅창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덧붙여서 채팅창에 친히 글을 남겨줬다.
‘걱정마십시오. 오늘의 상대는 최지아가 아닙니다.’
라고.
최지아가 아닌데도 오늘 섹서타임은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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