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마학원 수석졸업생인 나와 그녀들-37화 (37/159)

〈 37화 〉 37. 난 다른게 먹고 싶은데

* * *

다음날, 센터 분위기는 생각보다 어수선했다. 이정석이 그 난리를 치고 근신 처분을 받은 후, FC 상담실로 많은 전화가 왔고 유성목 매니저의 전용 전화기와 개인 휴대폰까지 마비가 올 정도로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전부 이정석 팀의 환불 건이었다. 오늘 했던 매출의 절반 정도는 환불 요청이 쇄도했다. 불순한 의도로 피티 재계약을 했던 사람들이 일종의 접대 제안을 취소했다는 대가로 환불 신청을 한 거다. 게 중에는 최근에 신규 등록을 한 사람들도 있어서 센터로서는 치명적인 사단이 벌어진 셈이다.

아마 이정석은 다시 돌아온다한들 유성목에 의해 목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정석은 결코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걸. 그놈에게 악몽같은 존재가 살아돌아왔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이상, 절대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놈이 최용수에게 고해 바치는 변수도 불가능하다. 내가 최용수를 몇 년을 알고 살았는가. 그는 이정석이 내 전생의 이름을 꺼내는 순간, 이정석을 사정없이 찔러 죽일 거다. 그러고도 남을 놈이니까.

최지아는 팀 미팅을 소집했다.

“자, 지금 센터가 꽤 소란스러워요. 중요한건 사태를 수습하는 것보다 우리쪽 회원들이 불안해하지 않게 안정시키는 거예요. 수습은 매니저님이 하실 일이니까. 그리고 앞으로 나올 매출들에 집중하면 되요.”

최지아는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이정석과 헤어진건 맞지만, 이토록 빠르게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무리 좆같았어도 그간의 애정이라는게 생겼을 터.

제시카와 한지우도 마찬가지였다. 눈매들이 차갑기 그지없다. 프로 중의 프로들이다. 확실히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멘탈 관리가 중요한 모양이다. 나 역시 그들의 분위기를 따라가는게 어렵지는 않았다.

세 사람이 앞으로 나올 매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중에 나는 일부러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최지아가 내게 질문을 할 수 있도록.

“기준쌤?”

“네, 팀장님.”

“무슨 생각 중이에요?”

반짝이는 여섯 개의 눈동자. 세 사람이 동시에 내게 집중했다. 딴청을 피웠다고 질타를 하려는게 아니다. 원래 같으면 항상 경청을 하고 집중을 하던 내가 다른 생각을 하기에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무...슨 생각이요?”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이 세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얼마나 충격을 받을지.

이전 생. 나는 꽤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었다. 헬스장에서 벌어지는 암투. 이정석이 했던 역겨운 발상들은 내게 어린애 장난처럼 느껴진다.

한때는 최고의 위치까지도 올라갔었다. 물론 그 위치까지 올라갔던 게 내 발목을 잡아서 칼날이 되어 돌아왔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처럼 살 자신이 없다. 아니, 그러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어린애들 장난에 한 번 숟가락 얹어보련다.

“위기를 기회로 삼으라는 말. 제가 참 좋아하거든요. 회사에는 언제나 암묵적인 룰이 있죠. 다른 사람의 먹잇감을 가로채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룰. 제가 처음 여기에 입사했을 때, 이정석이 절 옥상으로 따로 불러서 했던 말처럼 자기가 건드리려 했던 먹잇감조차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죠.”

“네, 그렇죠. 그런 룰이 존재하긴 하죠. 정해진건 아니지만.”

“지금 이정석 팀장 때문에 센터 전체적인 이미지가 하락하고 있습니다. 센터 입장에서 말하자면 위기 상황입니다. 오늘 올렸던 매출의 절반 정도가 발을 돌렸고 이어서 내막도 밝혀지면 더 큰 타격을 입겠죠. 하지만 이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센터는 센터대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지도 않고 매출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팀은 우리 팀대로 매출을 기하급수적으로 올릴 수 있습니다.”

세 여자의 눈빛이 전부 제각각이었다. 반짝거리는 눈빛도 있었고 우려 섞인 채 걱정스럽게 날 쳐다보는 눈빛도 있었다. 최지아는 아무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 챈 모양이다.

“기준쌤... 설마?”

“네. 맞습니다. 이정석 팀에서 환불 나온 그 사람들을 다시 붙잡는 겁니다.”

““!””

제시카와 한지우는 이제야 내 뜻을 알아차리고 놀라했다. 뭔가 당장 말하고 싶은데 못하는 듯 입을 뻥긋거리는게 퍽 우습게 보였다. 그렇다고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아니다. 내가 그만큼 미친 소리를 했다는 것도 사실이니까.

영업직에게 이는 민감한 부분이다. 먹어도 뒤가 구리고 못 먹어도 손해가 막대한 계륵. 다른 사람의 환불 회원을 건드리는건 그만큼 상도덕에 어긋나는 행위이면서 영양가도 없는 짓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번만큼은 회원들을 붙잡을 이유가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이정석 팀장이 근신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과 선정적인 제안으로 2천만원이라는 매출을 땡겼다는 이 특별한 상황이 뒷배경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100% 떳떳한 영업전략이라고 보기는 어렵기에 세 사람의 갈등도 이해는 됐다.

최지아가 세 여자를 대표해서 내게 말했다.

“기준쌤. 그건 진짜 실현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요. 불구덩이에 한 번 데인 사람은 다시 불구덩이로 오지 않는 법이라고요. 적어도 이번달 안에는 힘들어요. 그리고... 다른 팀에서 발생한 오점을 이용하는건데 강서점은 당연하고 다른 지점 전부의 질타를 살 거예요.”

“상관 없습니다. 저희도 이기적인 생각으로 행한게 아니라 강서점을 위한 일이었으니까요. 지금 당장은 까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잊혀질 겁니다.”

여기서 한지우가 내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기상천외한 방법이긴 하네요. 만약 그 회원들의 떠나간 걸음을 돌릴수만 있다면.”

“그건 저한테 맡겨주세요.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시 돌아오게 만들겠습니다.”

“제시카쌤 생각은 어때요?”

최지아는 가만히 있는 제시카에게 물었다. 제시카는 흠칫 턱을 뒤로 빼다가 내 얼굴을 보면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쌤이 하자면 괜찮은 제안인거 같아요. 사실 큰 기대는 안 하고 있지만.”

솔직한 대답이다. 의도는 나쁘지 않지만,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는 애매하다는 소리다.

최지아의 생각은 어떨까. 지금 누구보다도 최지아의 생각이 중요하다. 그녀가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있다면 이 모든 계획은 헛수고다. 물론 나는 이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최지아는 침착한 편이기도 하지만, 아버지를 닮아서 성공에 대한 갈망이 대단히 큰 편에 속한다. 낙하산 인재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서라도 팀장이 되길 자처했었던 그녀다.

“좋아요. 그럼 해볼까요?”

“우선 팀장님께서 유 매니저님한테 허락만 받아오시면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다녀오죠.”

최지아가 자리를 뜨자마자 나는 두 사람을 가까이 불렀다.

“제가 명단을 전부 뽑아놨어요.”

“엥? 이 명단을 어떻게 샘이 갖고 있어요?”

“인호쌤이 이정석한테 돌아서서 저한테 붙었어요. 대신 그와 주현쌤의 비밀을 제가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요.”

“무... 슨 비밀이요? 아, 비밀이구나.”

제시카가 바보처럼 말하고 황급하게 자기 말을 주워담았다.

“팀장님한테 허락 떨어지자마자 바로 콜 돌려요. 여기 회원 별로 말해야 하는 필수적인 문장들을 정리해놨으니까 이 방법대로 영업 진행하면 아마 편하실 거예요.”

두 사람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차트를 훑어보고는 감탄했다.

“이걸 다 언제 준비한 거예요?”

“짧은 시간에 준비할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도 그럴 것이 모든 회원들의 성향과 재정 상황과 니즈를 파악해서 그들이 들어야 할 말들만 적어놨으니 저런 반응이 나올만도 하다. 황인호가 내게 이정석의 파일을 준 게 컸다. 이정석이 성격은 개차반이어도 지점 에이스답게 회원 관리는 빠삭했던 거다. 그걸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내 역량이었고.

개인 프로필의 경우에는 몽마들이 사용하는 하급 아이템을 사용하면 간단하게 해결됐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몸 상태와 욕망같은 게 출력물에 기록되듯 나왔다. 그러면 내가 그에 따라 맞춤형 멘트를 적는 식.

­ 회원님. 이정석 팀장하고 마찰이 있으셨다고 들었는데 어쨌거나 회원님의 현재 몸 상태가 운동을 반드시 해야하는 상황이니 담당 트레이너를 변경해서 진행하셔야 합니다.

이정석의 미팅 이후 나에게 변화가 있다면 이런 부분이다. 이제는 더 이상 힘을 숨길 필요가 없어졌다.

어물쩡거릴 시간이 없다.

“수락 떨어졌어요. 환불 철회하고 우리 이름으로 올려도 된대요. 대신 재등록건은 기존에 있는 수업까지 받아서 진행해야된다는 조건으로.”

바로 착수했다.

나를 포함한 네 사람은 마치 콜센터 직원이 된 마냥 회원들에게 전화를 했다.

불만 가득한 회원들은 친절한 목소리에 차츰 화를 누그러트렸다. 물론 그렇지 않은 회원들도 있었다. 방금 환불하고 왔는데 뭘 또 전화를 하느냐면서 열을 내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기도 했다.

이 정도 감정소모는 예정되어 있던 거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을 한다.

약 30명 정도에게 전화를 돌린 상황에서, 약 10명 정도가 다시 방문해서 상담예약을 잡았다.

최지아의 표현대로 불구덩이에 한 번 데인 사람이 다시 불구덩이로 찾아온 격이니 꽤나 고무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30명 중에 10명이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관점에서 볼 수 있었다.

괄목할 만한 결과를 유성목에게 보고하자 그가 한숨을 쉬면서 회전의자를 빙빙돌렸다. 한참을 그렇게 빙그르 돌던 유성목은 멈춰서서 우리 팀 멤버들을 한번씩 찬찬히 훑어봤다.

“너네 이거 꽤 민감한 사항인거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런만큼 흐지부지 보여주면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 욕을 먹더라도 매출하고 시원깔끔하게 먹어야 되는 거야.”

그리곤 다시 컴퓨터 모니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제 생기면 내가 다 책임질테니까 밀어 붙여. 오늘 안에 적어도 3명은 등록시키도록.”

“넵!”

“하, 그 새끼는 진짜 일을 왜 이렇게 만들어 갖고 사람 곤란하게 만드냐.”

쯧쯔 혀를 차는 유성목.

“너는 괜찮냐?”

누가 뭐래도 최지아를 향해 말하는 거였다. 눈치껏 나머지 세 사람이 빠져줘야 할 때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 말을 뒤로 하고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은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모두가 수업을 하러 간 후의 조용한 상담실. 한지우가 못 쉬었던 숨을 몰아내쉬며 운을 띄웠다.

“후.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거 같네요.”

“그러게요.”

“아까 김준 팀장이 곁눈질하고 간 거 봤어요? 살벌하더라.”

“그런 눈으로 보는게 당연해요. 남이 흘린 고깃덩어리를 잽싸게 낚아챈 꼴이니까.”

“그쵸... 마치 식당에서 남이 버리고 간 찌꺼기를 가져다 먹는 것처럼! 근데 어쩔 거야... 누구든 해야되는 일이고 내가 하겠다는데.”

“이정석 팀장네서 환불 나온 건들을 조사해본 결과, 이 센터에 오래 다녔던 회원들도 대거 있더라고요. 그래서 상담예약 확정 받은 10명 중에 5명 정도도 이 센터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생각을 바꿨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미래가치를 위해 저희 상도덕을 희생한 겁니다.”

제시카가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캬항~ 진짜 잘 됐으면 좋겠다! 이거에 신규 회원들 등록까지 시키면 진짜 우리가 무조건 전지점 1등인데.”

“그리고 이정석 팀장이 리타이어한 시점에서 우리팀이 강서점 1등이라는건 변함없는 사실이네요. 지우쌤 이제 그럼 지우 시니어님 되는 건가.”

“오홋! 지우 시니어니임~ 축하해요~”

“... 아직 끝난거 아니니까. 아, 저 이제 곧 수업이라 가볼게요. 두 분은 수업 없어요?”

“잉? 나는 수업 없는데 기준쌤도 없어요?”

“네... 저야 뭐, 아직까지는 수업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오예! 오늘 또 밥 같이 먹겠네요. 아자뵤.”

“그럼 저는 가볼게요... 두 분 식사 맛있게 하세요.”

한지우가 상담실을 나서자 제시카가 내게 아양을 떨기 시작했다.

“뭐 먹으러 갈까요? 한식, 중식, 양식, 일식.”

허리를 살랑살랑 흔드는게 꼭 꼬리 흔드는 강아지같다.

“이번에는 내가 정하는 거예요?”

“힛. 어제 내가 먹고 싶은거 먹었으니까. 오늘은 기준쌤 먹고 싶은 걸로.”

나는 잠시 텀을 두고 말했다.

“난 다른게 먹고 싶은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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