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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학원 수석졸업생인 나와 그녀들-36화 (36/159)

〈 36화 〉 36. 도둑이 제 발 저린다

* * *

사무실은 조용했다. 매니저는 잠시 다른 지점에 출장을 나갔고 다른 트레이너들도 전부 수업을 가거나 식사를 하러 갔다. 황인호는 조용히 사무실 문을 열었다. 도둑질이라도 하려는 듯 발끝을 세워 종종 걸음으로 들어와서 숨을 죽인채 문을 닫았다. 안에 아무도 없고 밖에서 뒤따라오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으니 여기서 무슨 짓을 하든 아무도 모를 거다.

그는 떨리는 가슴을 움켜잡은채 캐비닛을 하나씩 열어봤다. 아무래도 이런 짓을 하기엔 간이 콩알만한 모양이다. 그러다 어느 캐비닛 앞에서 딱 멈춰섰다. 안에는 검은색 가방이 들어있었고 황인호는 그 가방을 꺼내서 바닥에 내려놓고 안을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현 듯 한쪽 구석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등줄기에 땀이 가득 솟아났다.

“황인호 선생님.”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구석에서 이 가방의 주인이 으슥하게 튀어나왔다.

***

투명화 아이템은 아이템들 중에서도 꽤 비싼 아이템에 속했다. 약 20만에 가까운 코인 지출이 있었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그리고 여자랑 섹스하기 위해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써도 된다는 내 나름대로의 규칙을 그대로 적용했다.

게다가 악신들은 일전에 있었던 옥상에서의 꼴릿한 섹스 덕분에 불만이 없다. 뭐, 불만이 있어도 좆까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나는 제시카랑 밥을 먹으러 나가기 전에 느꼈던 시선이 황인호의 시선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황인호가 들어오는 것 같아서 투명화 아이템을 사용했다. 구석에서 보고 있자니 참 저질스러운 짓을 해댄다. 황인호는 이정석의 끄나풀이다. 아마 지시가 내려왔거나 스스로 앙갚음을 하기 위해 저런 짓을 하는 것일 터.

처음에는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투명화 아이템이 너무 비싸서 안 되겠다.

“황인호 선생님, 지금 뭐하시는 거죠?”

황인호는 날 보더니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무도 없던 곳에서 사람이 튀어나오니 이상한 반응은 아니다.

“그거 제 가방인데요.”

“아, 이건... 그, 뭐지? 아... 혹시 스트랩 갖고 계신거 없나 해서요.”

스트랩은 당기는 운동을 할 때 사용하는 스포츠용품이다. 대게 등운동을 할 때 많이 쓴다.

“저 스트랩 없는데요? 저한테 물어보시면 좋았을걸.”

“아, 없으시구나! 죄송... 죄송해요. 그, 다시 넣어드릴테니까.”

“아니, 뭐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두시면 제가 넣죠. 제거니까요.”

나는 내것이라는 말에 악센트를 힘있게 주며 황인호와 나란히 쪼그려 앉았다.

헤집어진 내용물을 주워담으려는 그의 손이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이정석이 시켰구만.

나는 그의 얼굴을 노려보다가 말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죠?”

“네? 아, 아니...”

“쉽지 않을 거예요. 나쁜짓 하는거.”

“...”

“이정석 팀장이 시켰어요?”

“...”

“바른대로 말하면 매니저한테 얘기 안할게요. 안그래도 매니저님 한번만 더 이정석 팀장이 선 넘으면 바로 내쫒을거라고 하니까 생각 잘 하고 대답해요. 그렇게 되면 이런 짓에 가담한 황인호 선생님도 여기서 돈 벌 생각은 안하는게 좋을거고.”

“시, 시켰습니다! 시켰어요!”

바로 실토해버리고 만다. 이를 봤을 때, 조직에 몸 담는 끄나풀이 아니라 그저 일반인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월급이 끊길 걱정보다는 조직의 보복을 두려워하는게 정상이니까.

나는 희미하게 입꼬리를 당겨 올리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잠깐 나가서 얘기 좀 할까요?”

황인호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상담실로 향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맞은편에 앉았다. 황인호는 내 시선을 회피했고 나는 팔짱을 낀채 그를 봤다.

“이정석 팀장이 시켰다고요?”

“네...”

“뭘 시켰죠?”

“짐을 뒤져보라고... 뭔가 뒤통수 잡을 건덕지가 없냐고 물어보셨어요.”

“흐흐... 이정석 팀장 다운 짓을 하네요. 근데 황인호 씨는 그런 타입이 아닌거 같은데.”

“네?”

“사무실에 누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긴장했다는거 잖아요? 심성은 착하신 분 같은데. 어쩌다 이정석 밑에서 그런 짓을 하실까 싶어서.”

“... 죄송해요. 진짜 아무도 없는줄... 아니, 하... 죄송합니다.”

그는 진심으로 괴롭고 미안한지 고개를 떨구고 들지 못했다.

토독토독.

유리 테이블을 손가락을 치면서 생각에 잠겼다. 아침에 있었던 매출. 전혀 예정에 없던 4천만원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런 짓을 시켰는데 만약 황인호가 손절을 했으면 어땠을까. 황인호가 손절을 하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들었겠지. 황인호 개인 매출 천만원은 그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는 소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어느정도 알고는 있어요.”

무슨 뜻인지 모른다는 표정으로 날 본다. 당연했다.

“아침에 이정석 팀장이 역사적인 매출을 올릴 때, 뭔가 비리가 있을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자 황인호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다급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지, 진짜 그건 제가 하려고 그랬던 게 아니에요. 팀장님이 시키셨어요. 모든 회원들한테 그렇게 문자를 돌려라. 저의 경우에는 특히 아줌마들을 상대로... 그, 그리고 그건 주현쌤도 똑같아요. 그때부터 막 재등록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었어요.”

나는 씩 웃었다.

무슨 뜻인지 대충 감이 잡힌다. 남자 트레이너에게 아줌마 회원을 상대로 문자 보내라고 하는게 뭐가 있겠는가. 은밀한 만남을 갖자고 했겠지. 그 후에는 어떻게 될지 상상에 맡기면서 말이다.

근데 같은 팀인 여자 트레이너, 이주현한테도 그걸 시켰다는건 놀랄 노자다. 미친 어떻게 그런 양날의 검을 휘두를 수 있단 말인가. 잘못 뽑아들면 자기 목을 쳐낼 수 있는 그런 양날의 검. 이정석은 위험천만한 도박을 한 거다.

이주현이 최지아나 한지우, 제시카에 비하면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트레이너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몸매를 소유하고 있다.

내가 면접 보러 왔을 때, 회원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휑하고 가버린 것도 바로 그녀였다.

성격은 개차반. 돈이 안 되면 아무것도 안하는 스타일이니 어쩌면 몸을 팔라는 소리에 혹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그럼 약속한대로 해주지 않으면 회원들 다 달아나겠네요?”

“그렇겠... 죠?”

나는 다리를 꼬았다.

“선생님은 어떻게 하고 싶은 거예요? 그게 안 좋은 일인건 알고 계시죠? 더군다나 비공식적으로 말한 것도 아니고 문자를 남겨뒀으니까 나중에 법정에서도 효력이 있을 수 있어요. 센터에도 막대한 손해를 입힐 거고. 그러면 그거 소송 들어갔을 때, 감당할 자신 있어요?”

황인호는 내 말에 당연히 대답하지 못할 거다. 여기까지는 내 예상대로.

“선생님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으니 제가 도와주겠습니다.”

“어떤... 식으로요?”

“이번 일을 눈 감아줄 수는 없습니다. 이정석 팀장이 시킨 그 짓을 하지 않겠다고 하세요. 이주현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해가 있었고 그런 은밀한 만남은 없었던 일로 하겠다는 식으로요.”

“그럼 팀장님이 저흴 가만 놔둘까요?”

“가만 놔두지 않겠죠. 그 새끼는 깡패 새끼니까.”

“... 깡패요?”

“네. 그것도 아주 악질이에요. 내가 그 사람의 비밀을 쥐고 있으니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겁니다.”

이제 좀 마음이 놓이는지 황인호의 표정이 방금보다는 나아졌다. 이전 같은 얼굴로 센터를 돌아다니면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무슨 일이 생각할 게 뻔했으니 표정이 바뀐건 정말 다행이다.

모든 일은 은밀하게 진행되어야 했다.

나는 테이블 바로 밑에 놓여진 계약서 한쪽 귀퉁이를 찢어 뒷면에 글씨를 적었다. 종이를 두 번 접어서 황인호에게 건넸다.

“이정석 팀장에게 전달하세요. 이걸 제 가방에서 발견했다고. 절대 펼쳐서 확인하지 마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기준쌤... 저 정말 괜찮은거 맞죠? 이렇게만 하면 괜찮아지는 거죠?”

나는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당연히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선 일어나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자리에 휴대폰을 그대로 남겨둔 채.

내가 사무실을 나가고서도 황인호는 뒤따라나오지 않았다. 아마 남겨두고 간 내 휴대폰 때문에 마음이 급격하게 흔들리는 모양이다. 그걸 그대로 이정석에게 가져가느냐, 아니면 나에게 돌려주느냐는 그의 몫이었다.

***

­센터 주차장­

“뭐? 그 좆준 그 새끼가 자리에 폰을 그대로 남겨두고 갔다고?”

“네. 상담실에서 잠깐 상담하고서는 그대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가방 뒤졌을 때 나온건데 다른건 수상한게 없고 이것만 좀 수상하게 생겨서 가져왔습니다.”

“와하핫! 그 병신새끼가. 좋아. 잘했다. 잘했어. 얼른 돌아가봐. 의심받을 수도 있으니까.”

“넵!”

이정석은 기준의 폰과 두 번 접은 종이 쪽지를 보고 복수할 생각에 미쳐 돌아버릴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다행히 잠금 장치는 없다.

문자내역들을 보면 아무리 뒤가 구리지 않은 놈이라도 덜미를 잡힐 건덕지가 있을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뭐? 아, 아니... 이거... 이건 뭐지?’

터치하면서 문자내역을 내리다가 놀라운 걸 발견했다.

자기를 끝까지 믿고 따랐다고 생각했던 팀원, 이주현. 그녀가 기준과 함께 한 방에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터치를 하자 문자 내용이 공개됐다.

이정석팀 이주현 : (사진 첨부)

이정석팀 이주현 : ♡

이정석팀 이주현 : 혼자 봐요

사진을 보니 이주현과 기준이 벌거벗은 채로 서로 붙어먹고 있었다. 이정석은 일전에 회식 때 술 취한 이주현을 따먹은 기억이 있어서 몸매의 실루엣이 이주현이라는 걸 확실히 알고 있었다.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고?’

­ 이정석팀 이주현 : 오늘 이정석 팀장 벤치에서 깔리는거 보니까 완전 짜릿하자너

­ 이정석팀 이주현 : 아랫도리 흥건 해졌으니까 당장 책임져요

­ (10분 뒤)

­ 이정석팀 이주현 : (사진 첨부)

­ 이정석팀 이주현 : 아까 우리 할 때 찍은거 ♡

이정석은 화가 단단히 뻗쳤다. 얼마나 화가났는지 심장이 쿵쾅거려서 숨을 가쁘게 쉬어야 할 정도였다. 부들부들 떨다가 결국 기준의 휴대폰을 벽에다 집어던졌다. 박살난 휴대폰이 바닥에 덩그러니 놓였다.

“이런 개씨발년놈들이! 날 갖고 장난을 쳐?”

후... 후...

이를 악물고 자기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렇게 끝나면 최용수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아직 최지아를 뺏긴건 아니지만, 팀원을 빼앗겼으니 그게 그거 아닌가. 아니, 오히려 더 심하게 문책 당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여자를 빼앗긴거랑 내 사람을 빼앗긴 것중 무엇이 더 과중한가.

‘도망갈까? 아니야. 무조건 잡힐 거야. 세상 어디에 있어도 쫒아와서 죽일 거야. 그 사람이라면 그러고도 남아. 으으... 미치겠네.’

그러다 문득 기준이 황인호에게 건네줬던 그 종이 쪼가리가 떠올라서 얼른 펴봤다.

꼬깃하게 접힌 종이에 쓰인 글을 보자마자 이정석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용대갈한테 내가 살아있다고 전해라.’

머리가 쭈뼛쭈뼛 선다. 최용수를 용대갈이라고 불렀던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다. 비 오는 날 자신의 칼에 찔려 죽은... 이정석은 무릎을 꿇은 채로 오들오들 떨었다.

어쩐지 조직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 했다. 기준을 보낸 배후가 누군가 했더니... 분명 죽은줄 알았다. 아니, 확실히 죽었다. 장례를 치르는 것까지 확인했다. 그의 아내는 공식적으로 미망인 됐다. 그렇다면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런데 뒤쪽에서 최지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 빠?”

고개를 들고 황망하게 최지아쪽을 바라봤다.

“오빠가 나 여기로 부른거 맞지? 하, 할 얘기가 뭐야... 해 봐.”

이정석은 최지아를 이곳에 부른 기억이 없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갔다.

“왜 그러고 있는 거야? 어, 근데 저거... 기준쌤 핸드폰 아니야?”

뛰어가서 떨어진 휴대폰의 액정을 확인한 그녀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이정석을 바라봤다.

“오빠 진짜... 다시는 나 볼 생각하지마. 센터에서도 나한테 다가오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

“신고해...”

“?”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땅에 못 박혀서 절규하는 이정석.

“신고해...”

“... 진짜...”

최지아는 고개를 홱 돌려서 빠르게 주차장을 벗어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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