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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학원 수석졸업생인 나와 그녀들-34화 (34/159)

〈 34화 〉 34. 1월 1일 00시에 저랑 해주세요!

* * *

최지아는 멘탈이 참 좋은 여자였다. 잠깐 다독여주고 보듬어줬더니 별안간 주먹을 꽉 쥐고는 “화이팅!”하고 옥상 계단을 내려갔다. 어쨌거나 지금은 근무시간이니 자기 업무에 충실하겠다는 뜻이다. 그녀가 항상 언급했던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 확실히 이런 사람과 함께 일하면 기복없이 편안할 듯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고등학생 3학년짜리 여자아이를 상대로 상담을 해야했다. 전생까지 다 포함해서 나랑은 거의 30년 정도 차이나는 천둥벌거숭이 꼬맹이다.

처음에 그 꼬맹이는 어머니와 함께 날 찾아왔다. 원형 테이블에 앉아서 어머니는 자기 딸아이를 소개했다.

“소정아, 너가 이 트레이너 선생님한테 PT 받고 싶다며. 인사해.”

“아, 안녕하세요.”

이름은 안소정이라고 한다. 열아홉살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해 보이는 그녀는 키가 168cm에 꽤 괜찮은 바디 프로필을 보유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사다준 옷치고는 꽤 달라붙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애는 애였다. 풋풋한 냄새가 잔뜩 풍기는 동그란 안경에 앳되 보이는 얼굴은 아직 젖살이 채 빠지지 않았다. 쭈뼛쭈뼛거리면서 내 눈치를 살피는 어린 눈. 이런 그녀가 2달도 채 안 걸려서 성인이 된다니 세상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안소정은 앉은채로 내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오...”

나는 씩 웃으면서 마주 인사했다. 액면으로 봤을 때, 나와 그녀의 나이 차이가 여섯 살이란건가. 고작 여섯 살 밖에 차이 안나는데 반말하는 것도 뭐해서 존대를 하기로 했다.

워낙 쑥쓰러움을 잘타는 성격인지 내가 미소 짓고 인사해주는 것만으로 두 손으로 주먹을 꼭 쥐고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귀엽네.

“얘가요. 여기저기 군살이 좀 생겨서 이렇지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엄청 예뻤어요.”

“아, 엄마!”

“어이쿠 미안~ 아무튼 그래서 대학교 가기 전에 살 좀 빼려고 운동좀 시키려고요. 근데 PT는 가격이 어떻게 되나요?”

나는 세일즈북을 펼치면서 그녀에게 PT상담을 해줬다. 대학 가기 전까지 몇 일동안 몇 세션을 공을 들여야 하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그러기 위해선 얼마의 돈을 투자하시라.

그런데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셨다.

“아이고. 비싸기도 해라. 그렇게까지는 투자하기 힘들어요. 소정아.”

“응?”

“혼자서 운동할 수 있지?”

“나 운동 안해봤다니까.”

“트레이너 선생님이 3회 무료로 PT 해주시면 그걸로 열심히 운동해. 그리고 적게 먹으면 충분히 빠지니까.”

“...”

내 입장에서는 황당하고 맥 빠지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회원이 원해서 날 붙여준건데 PT 등록을 안하면 매니저 입장에서는 내가 무능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어머님.”

으레 그렇듯 이런 멘트로 시작한다.

“소정 회원님의 말씀대로 운동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리고 동기부여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는 운동을 실패할 가능성이 너무 높습니다. 어머니, 소정이가 대학에 가기 위해 학원을 다닌다고 하는데 200만원을 내면 인서울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대학 진학을 실패한다면 투자하지 않으실 건가요?”

“아니... 그건...”

“맞습니다. 투자 하시겠죠. 다이어트도 똑같습니다. 소정 회원님이 고등학교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열심히 노력해서 대학교 진학도 성공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남은건 그간의 고생을 보상 받는건데 이 정도 금액도 투자해주시지 못한다면 소정 회원님은 PT를 받지 않는 다른 회원님들과 마찬가지로 운동을 포기하게 될 겁니다.”

“아이고~ 선생님 말씀 무슨 말인지 제가 잘 알지요. 근데 어째요. 여윳돈이 없는 것을. 소정아, 할 수 있지?”

안소정은 대답없이 내쪽만 흘깃흘깃 쳐다볼뿐 어머니에게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주 꽉 막힌 사람이다. 전생에서도 충분히 겪어본 타입. 이런 타입은 무슨 말로 설득을 해도 먹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딸을 설득하는 거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소정아 선생님이랑 얘기 좀 나누고 있어~”

“응...”

마침 어머니가 자리를 비워준다. 나는 둘만 남은 상태에서 잠깐의 시간을 두고 안소정을 관찰했다. 어떤 성격일까. 어머니랑 비슷한 성격일까. 어쨌거나 남의 지갑을 벌리는 일이다. 운동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나와 함께 해야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안소정이 테이블 쪽으로 상체를 숙여 딱 붙였다. 거의 테이블의 절반을 넘게 넘어왔는데 테이블에 닿은 젖가슴이 탱탱하게 가서 부딪친다.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탄성이 좋다. 아니, 그것보다 지금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뭘까. 눈동자를 빤히 뜨고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쌤.”

“네?”

“저 1월1일부터 성인이에요.”

“... 근데요?”

요즘 애들은 다 이런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들이댄다고?

“쌤, 아시다시피 우리 엄마는 절대 등록 안해요. 근데 아빠는 무조건 해줄거에요. 내가 부탁하면 무조건 다 해주니까.”

나는 지그시 그녀의 얼굴을 봤다. 눈빛을 보니 거짓말은 아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는 거다.

“그래요? 그럼 내가 연락을 해볼까요?”

“아뇨. 제가 직접하는게 더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해요. 아버님 오시면 그때 다시 상담하는 걸로.”

“아니. 상담은 나랑 해요.”

그녀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더니 다리를 꼬았다.

지금까지 어머니 곁에서 수줍어하던 안소정이 아니다. 한 남자를 쥐었다 필 준비가 된 그야말로 마성의 여자로 둔갑해 있었다.

“1월1일 되자마자 저랑 섹스 해요. 그럼 PT 100회 끊을게요.”

나는 너무 놀라서 할말을 잃었다. 시발, 내 인생을 다 합치면 그녀와 몇 십년 차이인데 하룻강아지같은 년한테 휘둘리고 있었다. 그런데 휘둘리는 게 싫지만은 않은 느낌. 1월1일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섹스를 하자고? 이것보다 꼴릿한 소리가 있을까 싶다.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지. 센터 내에 안 좋은 소문이 퍼질 수도 있고 일이 자칫 잘못되면 좆될 수도 있다.

“우리 아빠 돈 많아요.”

“그게 문제가 아닌데.”

“그럼 뭐가 문젠데요? 저 엄청 맛있대요. 지금까지 꽤 많이 사귀었거든요. 저 잘하는데.”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지?”

“쌤... 거울도 안 봐요? 개잘생겼잖아요.”

크흠. 환생한 성기준의 얼굴이 잘생기긴 했지. 참 여러모로 외모가 잘생기면 편리한 일이 많구나.

“단지 그게 전부야?”

“아, 몰라요. 일단 저는 쌤이랑 하고 싶어요. 근데 19살의 저랑은 절대 안 해줄거 뻔하니까 1월1일에 하자는 거예요.”

진짜 세상이 미쳐돌아가네. 근데 이와중에 나는 또 왜 여기서 발기가 되냐고.

머리를 한 차례 긁적였다.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다. 나는 이성과 본능의 기로에서 서 있었다. 달리기 시합이다. 이성이라는 놈과 본능이라는 놈의 달리기 시합. 1등과 2등을 서로 뺏고 빼앗기는 미친듯한 접전. 하나가 이기면 돈도 못 얻고 섹스도 없다. 다른 하나가 이기면 돈도 받을수 있고 섹스도 할 수 있다. 그것도 존나게 꼴릿한 섹스를!

최연소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상대들 중, 최연소 중의 최연소 임은 확실하다.

그리고 지금쯤 후원금이 미친 듯이 쏟아질 것도 알고 있었다.

[섹스 해라, 섹스!]

[1월1일에 농밀하게 섹스하면 십만 코인.]

[먹을 수 있을 때 먹으라고 했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고우니까.]

[복상사 감행하더라도 무조건 고 아님?]

그러니까 그게 쉬운 얘기가 아니라니까.

“왜요, 쌤? 혹시 고자에요?”

우오오오! 이 미친년이? 다른건 몰라도 고자냐는 질문에는 참을 수가 없다. 나의 이성이 본능을 앞지르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본성에게 져주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여자에게 휘둘릴 생각은 없었기에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네, 네! 그렇게 해요!”

얘기 하기도 전에 미쳐 날뛰는 안소정.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니다.

“목표 체중을 정할 거야. 근육량도 늘려야 하고, 체지방률은 내려야 하지. 그리고 너희 어머니가 말씀하신 그 군살들을 모두 제거해야 해. 그럼 내가 상으로 한번 해줄게.”

“흐, 과연 한번만 하고 안 할 수 있을까요? 저 진짜 명기래요. 애들이 한번만 더 달라고 조르기도 해요.”

“아, 글쎄. 그건 목표 달성하고 나서 말해.”

“하, 진짜 고잔가...”

“내가 고자냐고? 1월1일에 제대로 확인시켜주지. 대신 목표 달성은 무조건 해야해.”

“하... 존나 꼴리네... 쌤 나 번호 알려줘요.”

“... 갑자기?”

“아, 좀 제발.”

뭘 하려는건지는 몰라도 성질머리가 더럽게 급하다. 폰을 건네주기에 번호를 찍어줬다.

“아, 미치겠네. 갑자기 쌤 말 들으니까 하고 싶어졌어요.”

“너 대체 섹스를 얼마나 해댄거냐, 그 나이에?”

“남자친구 있으면 당연히 존나 하는거 아닌가요? 원래 우리 때는 다 중학교 때 아다 떼요.”

“크흠... 일단 알겠고 내 번호 줬으니까 아버지한테 연락해보고 나한테 다시 연락을 줘. 알겠지?”

헤헤 웃으며 폰을 만지작거리는 그녀는 이미 절반 정도 가버린 듯했다. 벌겋게 물들어서 꼼지락꼼지락 하반신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런데 찰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진이 찍혔고 나는 그게 날 찍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야, 너 뭐하는 거야?”

“아, 왜요. 이거 보고 집 가서 혼자 할 거예요. 아니면 쌤이 사진 하나 보내주던가.”

“... 아니다. 그냥 그거 가져가.”

“아싸.”

바로 그때 어머니가 상담실로 돌아왔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미안해요. 소정아 트레이너 선생님이랑 잘 얘기했어?”

안소정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완전 얘기 잘 됐어.”

“다행이네~ 엄마가 믿고 맡겨도 되겠어. 물론 무료 PT 3회만이야.”

“응~ 당연하지. 내가 알아서 잘할게. 그러니까 이제 엄마는 신경쓰지마.”

“왠일이야? 갑자기?”

“쌤이 3회 동안 빡세게 알려줘서 그거 그대로만 하면 된다고 했어.”

아. 모녀가 얘기하고 있는데 아까의 비밀스러운 대화가 자꾸 떠올라서 잔뜩 꼴릿꼴릿하다. 시발... 이걸 어떻게라도 풀어야겠다. 어제 하루 섹스를 쉬었다고 이렇게까지 될줄이야. 역시 섹스는 마약과도 같은 것이다.

“그럼 선생님~ 우리 애 잘좀 부탁드릴게요~”

왜. 뭘. 어떻게. 아줌마는 참 대단한 사상을 갖고 계시네요. 돈도 주지 않고 부탁을 하는 꼴이라니. 어떻게든 안소정은 내게 PT를 받게 되겠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답답하다는 건 변함 없는 듯하다.

나는 접대 웃음을 선사하며 인사를 했고 모녀는 그렇게 센터를 빠져나갔다.

하.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머릿속이 아득해지려는데 상담실 유리문 바깥에서 한지우가 똑똑 노크를 한다.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개를 들고 있었다. 얼굴이 베시시 붉게 물들어선 나한테 한잔 준비했다고 자랑하는 거냐고.

나는 그런 그녀가 너무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아. 문득 그녀가 보내준 타투 사진이 떠올랐다. 새로 한 타투라고 했는데 보고 싶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지.

아무래도 그게 지금이 아닐까 한다.

상담실 밖으로 나가서 그녀가 주는 아메리카노를 받아들고 물었다.

“지우쌤 다음 타임에 뭐 있어요?”

“아, 아뇨. 없어요.”

“그럼 잠깐 상담 괜찮아요? 옥상?”

“아, 좋아요. 팀장님한테만 보고 드리고 바로 올라갈게요.”

그래서 나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팀장님한테는 비밀로요.”

잔뜩 꼴린데다가 마성의 19세 마녀를 만나고 오는 길이라 장난이 짓궂게 나왔다. 내 말을 들은 한지우는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차리고 손까지 떨었다.

“알겠어요. 먼저 올라가 계실래요? 뒤따라 갈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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