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32. 코인 활용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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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부터 시작된 이정석 팀의 계약서 퍼레이드는 오후 3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 나는 남녀노소를 불문한 회원들의 행렬에 질려버렸다. 대체 어떻게..?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런 소식도 없었는데 오늘 갑자기 이렇게 되다니. 뭔가 수작을 부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정석 팀의 매출은 토탈 4천만원이 넘어갔다. 매니저인 유성목의 입장에서는 현재 최지아팀의 매출이 천만원을 조금 넘는 상황이니 이정석 팀의 하루의 폭발적인 매출은 괄목할만한 효과였다.
매출의 향연이 끝나자 전쟁 끝에 까마귀가 모여들 듯 트레이너들을 GX룸에 집합시키는 이정석. 뭔가 할말이 있다고 하는데 유성목이 함께 가지 않는 걸로 봐서는 무슨 짓을 할지 알만 했다.
또 얼마나 꼰대짓을 하려는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GX룸으로 향하고 있는데 옆으로 제시카가 쪼르르 달려왔다. 무슨 애완동물처럼 애교를 부리면서. 순간적으로 그녀의 엉덩이쪽에 꼬리가 나 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살랑살랑 흔드는 꼬리. 반가움의 표시다.
“그제 잘 들어갔어요?”
“네. 태워주셨잖아요.”
“히히. 아, 맞다. 나 그거 렌트카에요, 렌트카! 왜 안 물어보나 했어. 나는 고급승용차 렌트해서 노는거 좋아하니까.”
“알고 있었어요.”
“아, 뭐야! 재미없어. 근데 이정석 팀 완전 장난 아니던데. 이번 달에 벼르고 나온 듯.”
고등학생 여자애처럼 시시각각 화제가 전환된다. 어디 장단에 맞춰야할지 몰라서 그냥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길 수 있을까요? 이정석 팀.”
다른 말에는 다 대답하기 힘들었는데 그 말에만큼은 대답할 수 있었다.
“이길 수 있어요.”
내가 결연하게 대답하자 제시카의 금발이 부르르 떨렸다. 눈동자는 또 동그랗게 떠서 잔뜩 동경하는 눈으로 날 쳐다본다. 그러더니 별안간 내 등뒤로 가서 폴짝 뛰어 업혔다. 나도 모르게 뛰어오른 허벅지를 팔로 꽉 끌어안아버렸다.
“아, 아! 깜짝 놀랐잖아요.”
“몰라, 몰라. 나 못 걸어가. 업어줘.”
“에휴, 언제까지 이렇게 업혀 다니려고.”
“아, 몰랑. 기준쌤 등짝 기분 좋단 말야...”
“습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제시카는 내 귀옆으로 볼따구를 갖다붙이고 속삭였다.
“근데 나 가슴 쪼끔 커졌어. 그날 하도 누가 조물딱거려대서 그런가봐.”
“어허. 그렇게 가슴이 커질거면 세상에 누가 빈유겠습니까.”
“잇! 미워. 완전 못 됐어.”
퍽퍽퍽. 어깨를 툭툭 쳐댄다. 나는 솜방망이 주먹질에 오히려 안마 당하는 기분이었다. 솜방망이질에 지쳤는지 다시 가슴을 등짝에 꼭 붙이곤 노곤하게 말한다.
“이, 이따가 한번 확인해보던가.”
“뭘요?”
“... 됐어...”
“뭐가 됐는데요.”
“아, 가슴 말야. 가슴! 가슴! 가슴! 슴가! 유방! 바스트! 커졌는지 아닌지!”
나는 연신 헤헤거리며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도 제시카는 코알라처럼 딱 달라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주위에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찔하게 야한 말을 계속해서 입에 담는다.
“잔뜩 주물러줘. 나도 커질 거야. 커져서 기준쌤이 기분 좋아질 정도로.”
“흐, 나 생각해주는 거예요? 이거 기분 좋네요.”
“앗! 기분 좋아졌다. 훗. 이제 내려갈래. 이러고 GX룸 들어가면 엄청 쪽팔리잖아.”
내가 내려주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날 지나쳐서 쪼르르 먼저 GX룸으로 들어간다. 사람이 아닌게 분명하다. 분명 강아지나 고양이 둘중에 하나다. 얼굴은 고양인데 하는 짓은 댕댕이다.
나는 약간의 텀을 두고 그녀의 뒤를 따라 GX룸으로 들어갔다.
원래 GX룸은 대부분의 아줌마들이 선호하는 그룹 엑서사이즈 룸이다. 요가, 필라테스, 줌바댄스 등등. 즐기면서 다이어트를 하자는 모토로 GX강사들이 따로 있다. 요즘 내가 눈여겨 보는 요가 강사가 있기는한데 천천히 공략해볼 생각이다.
그나저나 이정석이 쌍심지를 켜고 나를 냉랭하게 바라보는게 어딘지 의심스럽다. 분명 이 집합도 나를 저격하는 것이리라.
최지아가 없어서 주변을 더 살펴보니 유성목은 물론이고 팀장급, 시니어급도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다. 따라서 평사원들만을 상대로 한 집합인 거다.
“자, 다들 내 말 잘 들어. 우리는 오늘 전지점을 통틀어 유례없는 실적을 거뒀다. 주현쌤, 인호쌤이 각각 하루만에 천만원씩 매출을 올리면서 실력 발휘를 했지. 근데 나머지, 너네는 대체 뭘 한 거냐?”
처음부터 인성질이 시작됐다. 다 지들 좋자고 한 매출이면서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과연 그게 실력일까? 예상에도 없던 매출이 쌓였다는 게 과연 실력을 의미하는건지 어떤 비리가 있다는 걸 의미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뚱한 표정으로 보고 있자 이정석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트레이너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되는 해부학, 영양학, 운동역학 등등. 너네를 보면 그 기본이 안 되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니까 지금부터 시험을 보겠다. 내가 질문하는 거에 대답 못하는 사람은 회원들 다 보는 앞에서 얼차려 받을줄 알아.”
이정석은 특히 ‘회원들 다 보는 앞에서’ 라는 말을 강조했다.
회원들 앞에서 꼽 당한 트레이너는 재기 하기가 힘들어진다. 트레이너에게 이미지는 밥줄과도 같아서 얼차려를 당하는 순간, 회원들은 그 트레이너의 어딘가 하자가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최악의 패널티라면 최악의 패널티.
하지만 나는 겁을 먹을 필요가 없었다.
“성기준.”
“... 네.”
“일자목증후군에 대해서 설명해 봐. 1분 준다.”
“일자목증후군이란 앞으로 목을 길게 빼는 자세 때문에 정상적인 경추 만곡인 'C'자 형태의 경추 정렬이 소실되어 생기는 증상을 말합니다. 일자목증후군의 증상으로는 경항통, 견비통, 수지 저림, 두통, 만성피로, 어지럼증, 안구 피로 등이 있고 해결책으로는 자세 교정 및 근육 강화 스트레칭을 비롯한 길항근 운동이 있습니다.”
1분은커녕 3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내가 신속하고 확실하게 속사포로 뱉어내자 이정석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전히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눈빛을 낮게 깔았다.
“상완이두근의 오리진(Origin) 인설션(Insertion).”
이미 얼마 전에 제시카가 물어본 질문이다. 빠르게 내뱉자 거울에 비치는 제시카의 얼굴이 환해졌다.
“회원 어깨에서 소리가 난다. 뭘 의심할 수 있지?”
“어깨 충돌증후군과 상완 이두근 힘줄의 이탈구.”
“... 젖산시스템에 대해서 설명해봐.”
흔히 말하는 ATPPC 시스템을 말하는 거다. 나는 콧방귀를 뀌면서 자신있게 읊어줬고 이정석은 질문이 막혔는지 우물쭈물해댔다. 그래서 내가 바로 반격기를 넣어줬다.
“좀 고난이도의 질문은 없으십니까? 계속 하시는 질문들이 너무 1차원적인 질문들이어서 대답하기 시시할 정돕니다.”
내가 말하자 약간의 정적 후에 곳곳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잔뜩 꼴 받은 이정석은 다른 방법을 생각했는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남자 트레이너 전원 탈의 실시! 여자 트레이너는 탑브라만 빼고 다 탈의해!”
“..?”
“시발, 트레이너라면 몸이 좋아야지 안 그래? 어디 멸치같은 몸으로는 절대 실력있는 트레이너라는 소리 못 듣지. 지 몸도 못 만드는데 누구 몸을 만들겠다는 거야, 안 그래?”
이 새끼가 정신이 나갔나. 아무리 여기가 GX룸이라지만, 투명한 유리창으로 되어있어서 밖에 있는 회원들에게도 다 보인다. 그런데 남자들은 상의를 완전 탈의하라고 하고, 여자들은 탑브라만 걸치라고? 고소당하면 콩밥 먹을 소리를 이렇게 한다.
하지만 다른 트레이너들 중에 불만은 있어도 반론을 재기하는 트레이너는 없었다. 아마 내가 오기 전에 몇 번 정도는 이런 경우가 있었던 모양이다. 참 저질스러운 악습도 다 있네.
한지우가 겉옷을 벗자 수 많은 문신들이 드러났고 이를 놓칠 일 없는 이정석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몸에 낙서했네?”
“... 네?”
“이래서 지아네 팀이 매출이 별로구나? 자기 몸에다 낙서하는 사람이 있네?”
“...”
“몸매는 좋네.”
혀로 입술을 쓱 핥는 이정석. 미친놈이 아닌가 싶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댄데.
속히 저 새끼를 좆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속으로 벨라를 찾았다.
벨라.
어.
코인 쓰자. 나 지금 코인 얼마나 쌓였지?
음. 수수료 떼고 환전 받을거 생각하면 한 300만 코인 정도 쌓였지? 얼마나 쓰게?
100만 코인.
헉. 100만이나?
응. 여기서 아주 콧대를 꺾어버릴 생각이야. 몽마들이 쓰는 아이템 중에 있잖아. 여자들이 환장하는 슬림하면서도 탄탄한 잔근육 몸매로 바꿔주는 아이템 있지? 그걸로 부탁해.
있기야 하지. 허가가 떨어지면... 아니다. 해주겠구나... 어떻게든 허가 받을게. 근데 아무리 비싼 아이템이어도 약 12시간 정도 지나면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거야.
상관없어. 지금 조지면 그만이야.
오케이. 그럼 이번에도 코인 사용하는 제스쳐랑 아이템 사용하면 바로 적용될 거야.
후우...
내가 한숨을 쉬고 있자 이정석이 딱 내 앞에 서서 말했다.
“어때. 이 시팔롬아. 공부만 졸라 열심히 하면 될줄 알았지? 이게 이 바닥 실황이야. 얼굴 믿고 깝치면 좆되는 거라고.”
“이정석 팀장님은 몸이 좋으십니까?”
“... 뭐?”
“이정석 팀장님도 벗으시면 저도 벗겠습니다. 팀장님은 당연히 몸이 좋으셔야 겠죠.”
“야, 그걸 말이라고 하냐?”
이정석은 씩씩거리면서 입고 있던 저지를 벗어 바닥에 던졌다. 확실히 근육질 몸매인건 맞다. 덩치도 그만큼 크다. 하지만 평소에 담배 피고 술도 많이 마시러다니니 보이지 않는 배쪽의 살은? 어쩔 수 없을 거다.
그래도 자신있게 웃통을 벗어서 보여줬다. 커다란 근육. 하지만 관리가 안 됐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가 지금 벌크업 중이라 이렇지. 시즌 들어가면 다 좆되는 거야.”
“분명 아까 말씀하셨지요. 회원들은 트레이너의 몸을 보면서 자기 몸을 가꿀 생각을 한다고요. 근데 회원들한테도 시즌이랑 비시즌이 따로 나뉘어져 있습니까?”
“... 이 새끼가 근데... 말빨 조지지 말고 니 옷이나 벗어. 내가 벗으면 벗겠다며.”
놈이 잔뜩 흥분하는 동안 재빠르게 몸쪽 가까운 곳에 주먹을 두고 유스걸 무대에 섰던 때처럼 투명한 코인을 바깥쪽으로 던지듯이 손짓했다. 그러자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며 쩌적거리는 소리가 낮게 들렸다.
“벗으라니까?”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옷을 하나 하나 벗기 시작했다. 환생한 이후로 이렇게까지 몸에서 힘이 느껴져 본적이 없다. 근육이 꽉 끼어서 부풀어올랐다. 티 하나만 걸치고 있는데 팔뚝 때문에 소매가 꽉 끼는 게 은근히 기분 좋다.
내가 아우터만 벗었는데도 주변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와. 기준쌤 원래 저렇게 몸 좋았어?”
“요즘 밤마다 운동하더니 장난 아닌데?”
제시카와 한지우도 이런 내 몸매를 본적이 없었으니 자기들 눈을 의심했다. 의심과 동시에 눈이 반짝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남은 티를 벗는 순간. 모든 트레이너들이 숨을 죽였다.
무려 100만코인을 써서 만든 몸이다. 한화로 따지면 천만원 정도. 12시간 효력이 있는 아이템이니 효과가 얼마나 좋겠는가.
딱 벌어진 어깨와 흉근. 그리고 선명하다 못해 윤기가 좔좔 흐르는 식스팩. 누가봐도 환상적인 몸매였다.
나는 이정석의 앞에 서서 잔뜩 등근육을 부풀려서 보여줬다.
“이 정도면 됩니까?”
“... 아, 뭐, 그 정도면 볼만 하긴 하네.”
“이제 다시 옷 입어도 됩니까?”
“어... 그, 그래... 입어라.”
나는 일부러 티셔츠만 입고 아우터는 벗어둔 채로 마주선 이정석을 노려봤다. 그는 입술을 연신 달싹이고 있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원래라면 내게 꼽을 줘서 정신을 못 차리게 할 생각이었을 거다.
한참을 눈알을 굴리던 이정석은 지끈거리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손 때문에 가려진 눈. 그 밑으로 다시금 미소가 띄었다.
“그래. 그럼 마지막 시험을 보자. 트레이너라면 뭐니뭐니 해도 웨이트지. 회원한테 시범 보여주는데 벤치 90kg 밀면서 벌벌 떨면 그건 또 무슨 쪽이냐? 안 그래?”
1절. 2절. 3절을 지나 뇌절까지.
나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50만 코인을 더 지불하려고 다시 벨라를 불렀다.
그러자 시청하고 있던 악신들이 미친 듯이 후원금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악신 왕자지제가 10만 코인을 후원합니다.]
[악신 고품격 승차감이 10만 코인을 후원합니다.]
[악신 눈 가리고 아흫이 10만 코인을 후원합니다.]
[악신 일곱 마리 발정난 암캐가 10만 코인을 후원합니다.]
[악신 모세의 어두운 면이 10만 코인을 후원합니다.]
[악신 염소머리 군주가 10만 코인을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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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은 당신이 본 때를 보여주길 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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