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마학원 수석졸업생인 나와 그녀들-29화 (29/159)

〈 29화 〉 29. 최지아 섹서타임 물음표

* * *

“와아아아!”

높게 뛰어오르고 반박자 빠르게 턴 그리고 미친 듯이 현란한 손동작. 내 눈으로도 쫒기 힘든 고난이도 동작이었다. 도플갱어 무브먼트답게 현직 아이돌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이 몸은 거의 신생아의 몸과 다름 없어서 유연성으로는 탑급에 속하기에 어떤 자세든 다 가능했다.

생각보다 실력이 좋아서 리카를 비롯한 유스걸 멤버 전원이 주춤했다.

리카는 마이크로 격하게 반응했다.

“와! 춤 실력이 수준급인데요? 역시 이렇게 예쁜 여자분이랑 썸타려면 이 정도 춤 실력은 되야 하나요!?”

또 다시 턴. 빠르게 턴. 내가 무슨 김연아도 아니고. 회전할 때마다 머리가 띵하고 하늘이 빙빙 돈다. 어질어질한 상황에서도 동작만큼은 확실했다. 나는 그냥 술에 취한듯 몸을 동작에 맡겼다.

그러자 다른 유스걸 멤버들이 내 옆으로 나란히 서서 함께 군무를 맞추기 시작했다. 원래는 1~2 소절 들으려고 했는데 워낙 잘 추다보니 함께 춰주는 거다. 리카도 마이크를 내려놓고 내 뒤쪽으로 와서 안무를 맞췄다.

안무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게 양옆을 통해 보여진다. 가을바람이 차가운데도 불구하고 땀이 송골송골 맺혀 동작에 따라 떨어진다. 어느새 무아지경에 빠졌고 부담스럽던 관중들의 시선을 즐기기 시작했다.

클라이맥스에 다다르자 아이돌 그룹답게 동선에 맞춰 이동한다. 그런데 가만히 서서 안무를 맞출줄 알았던 내가 그들과 동화돼서 자연스럽게 움직이자 모두 깜짝 놀란 분위기다.

“오오오!”

기대 이상, 발군의 실력에 놀란 관중들이 감탄을 했다. 남정네 하나가 나와서 잠깐 춤차다 내려가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갑작스런 이벤트,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진행은 연출된 듯 매끄럽게 느껴졌다.

거기에 쉬엄쉬엄 추는게 아니라 일반인인 내가 워낙 칼군무로 추니까 유스걸 멤버 전부 빡세게 춤을 추고 있다.

유스걸은 총 여섯 명으로 이뤄진 6인조 걸그룹이다. 횡대로 시작해서 다이아몬드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역삼각형 진형으로 짜서 메인보컬이 가운데로 향한다. 나는 이번에는 사이드로 빠졌다. 나는 내가 맡은 역할인 유스걸 리더 리카의 동향을 그대로 따라했고 그녀는 내 뒤를 따라다니면서 꼭두각시 인형처럼 안무를 맞췄다.

1절이 끝나는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음악이 꺼졌다.

한바탕 안무를 끝낸 멤버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치려는데 최지아가 얼른 뛰어와서 내 이마를 손수건으로 도닥도닥 닦아줬다. 그녀의 입가에는 연신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언제 또 이런걸 준비했어요?”

“그게 그렇게 됐네요.”

뭐라고 설명하겠는가. 그냥 어물적 넘어가자 내 땀을 다 닦더니 빤히 얼굴을 바라봤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눈맞춤은 계속 됐다. 뭘 말하고 싶은걸까. 입술을 달싹거리며 하고싶은 말을 몇 번 집어삼키는 중이다.

“저기...”

“저...”

둘다 할말이 있어서 입을 열었는데 마침 숨을 다 고른 유스걸 멤버들이 몰려왔다.

“엄청 잘하세요!”

“혹시 누구한테 배우신거에요?”

“저희 안무를 이렇게까지 연습하셨다니...”

“진짜 엄청 팬이시구나.”

여섯명이 전부 따로따로 말을 해대니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랐다. 최지아는 옆으로 슬쩍 빠져줬고 나는 머리를 긁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집에 있을때 한번씩 췄어요. 워낙 좋아하는 걸그룹이기도 하다보니.”

“재능러네요 재능러.”

“맞아요. 다음에 한번 저희 소속사에 놀러오세요.”

“미나야 그래도 돼?”

“리카 언니, 돼죠?”

“응! 이 정도면 진짜 우리한테 큰 공헌해주시는 팬분이시니까!”

“하하하. 그럼 저야 영광이죠.”

리카가 마이크를 들었다.

“여러분! 이분 너~무 잘추셔서 저희 유스걸 소속사에 초청하기로 했어요!”

“와, 대박! 부럽다!”

“으아아아! 나도 가고싶어.”

그중에 한명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유스걸 멤버들이랑 식사하나요?”

“네, 그럼요. 오셨는데 그냥 돌아가실수는 없잖아요. 히히.”

“진짜냐!”

“부럽다아아아. 오늘부터 안무 연습 오지게 합니다.”

“역시 유스걸 갓그룹이야. 팬 서비스가 진짜 대단한거 같다니까.”

리카는 관중들의 반응을 보며 씩 웃었다.

“그럼 저희가 매니저님 전화번호를 이분께 드리겠습니다. 아, 실례지만 혹시 성함이?”

나는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갑자기 걸그룹이랑 식사 약속이 잡혔으니 당황스러웠다. 나는 곁눈질로 최지아 쪽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괜찮냐는 신호를. 그러자 최지아가 엄지와 검지를 모아서 동그라미 표시를 보내줬다.

“BD짐 강서점 트레이너 성기준이라고 합니다.”

“성기준 님. BD짐 강서점이면 어디에 있는 거죠?”

내가 자세한 위치를 설명해줬고 인터뷰는 그렇게 끝이 났다. 리카는 내가 열렬한 팬인데도 불구하고 사인을 해달라고 하지 않아서 약간의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경황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왜 안 받았긴... 필요 없으니까.

“다음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오늘은 이만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성기준 님과 함께 동행한 여신 최지아님에게 다들 박수 한번 쳐주세요. 두분 잘 됐으면 좋겠어요!”

꽤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이곳, 홍대에서 어쩌다보니 얼굴이 팔리게 됐지만, 대외적인 홍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매출에 영향이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을 거다.

이제 본업으로 돌아와서 쇼핑을 할 차례였다. 유스걸의 공연을 뒤로 하고 밖으로 빠져나온 우리는 나란히 걸어서 양옆에 포장마차가 있는 골목으로 돌아 들어갔다. 옆에서 계속 우물쭈물거리던 최자아가 마침내 내게 말을 걸었다.

“놀랐어요. 그렇게 잘 추시는거 보고.”

“하하. 별 말씀을요.”

“진짜 그렇게 안 보였는데... 아니, 일단 먼저 감사하다고 해야할지... 진짜 고마워요. 아까 진짜 정신이 멍했거든요. 차라리 안 나왔으면 좋았을걸 하면서.”

“저였어도 엄청 당황했을거 같아요. 아까 다른 사람은 그냥 장기자랑만 하고 끝났는데.”

“맞아요! 그래서 하늘에서 구세주라도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기준쌤이 똿! 진짜 멋있었어요.”

“... 근데 장기자랑했으면 뭐하려고 했어요?”

“네?”

“장기자랑이요. 앞에 나가면 장기자랑시켰을거 아니에요.”

“아... 그냥 연습했던 무용이 있거든요. 그거나 하려고 했었죠.”

“무용이요?”

“네... 한국무용을 했었거든요. 근데 좀 대중적으로 안무를 짠게 있어서.”

“오, 한번 보고 싶네요. 아쉬워요. 오히려 죄송한데요. 제가 나서서 못 보게 됐으니까.”

“아니에요! 나서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뭐라도 해드리면 좋을지...”

“뭘 해줘요~ 그냥 오늘 같이 쇼핑 해주는것만으로 감사하죠.”

우리는 함께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그녀가 또 말했다.

“근데 그 소속사에 진짜 찾아갈 거예요?”

“네, 뭐... 좋은 경험이 될거 같기도 해서요.”

“진짜 팬인가보다.”

“아뇨. 사실 그렇게까지는...”

최지아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여자들한테 너무 인기 많은거 아니에요?”

그렇게 얘기하는 사이 어느새 신발 매장까지 도착했다. 나이키, 아디다스, 뉴발란스 등등. 스포츠매장으로는 유명한 브랜드들이 대거 몰려있었다.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꽤 많다. 요즘은 운동이 생활화되어 사람들이 특히나 관심을 갖는 분야가 됐다. 전생 때까지만 해도 이런 스포츠매장은 운동화만 사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프로티나 나시같은 것에도 눈길이 쏠린다.

위아래로 스포티한 냄새를 잔뜩 풍기는 최지아가 들어오자 매장 직원들이 동시에 눈을 흘겼다. 손님 중에서도 이런 차림의 손님은 확실히 뭐라도 살 가능성이 높을 거다. 게 중에 최지아를 여성으로 생각하고 본 남성들은 옆에 서 있는 나를 힐끔 보더니 고개를 떨궜다.

“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아, 남성 운동화요.”

“보시고 사이즈 필요하시면 말씀해주세요~”

으레 하듯 친절하게 대응하는 손님. 하지만 다른 손님들과 확실한 온도 차이를 느꼈다.

“기준쌤은 쇼핑할 때 어떤 스타일?”

“저는 보통 마네킹에 있는거 벗겨서 입는 편이죠.”

“쿡쿡. 남자들 대부분 그러잖아요. 흠~ 근데 기준쌤은 몸매도 슬림하고 옷걸이가 살아서 뭘 입어도 괜찮을 듯해요. 신발도 마찬가지고.”

“과찬이네요.”

“아니, 진짜로요. 이거 한번 신어볼래요? 사이즈 몇이에요?”

“270입니다.”

“여기요. 이 신발 사이즈 270짜리로 좀 보여주세요.”

“네, 바로 준비해 드릴게요.”

그 뒤부터는 흔한 여자 쇼퍼들처럼 이것도 입어보고 저것도 신어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꽤 깐깐한 편이어서 신발을 10켤레를 신었다 벗어야 했고 옆에 있는 매장도 돌아다니면서 가격도 비교하고 편의성도 고려했다. 그러다 결국 신발 1켤레와 프로티 2개, 운동할 때 편리한 반바지 하나 정도를 구매했다.

“후. 역시 쇼핑이 제일 힘든거 같아요.”

“그래요? 나는 완전 재밌는데 지금. 그리고 기준쌤.”

“네?”

“아직 안 끝났어요.”

그녀는 나를 데리고 일반의류 매장으로 데려갔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코트를 탁탁 치면서 혀를 찼다.

“이렇게 좋은 옷걸이 냅두고 후줄근하게 이게 뭐에요. 입혀보는 맛도 있으니까 제가 몇 벌 사드릴게요.”

“예, 예? 안 그러셔도 되는데요.”

“아니야. 내가 오늘 빚을 져서 꼭 해주고 싶어서 그래요. 자, 그럼 이거 입어봐요. 이거도. 아니다, 이거도. 다 들고 들어가서 싹 다 갈아입고 나와봐요.”

나는 마치 옷 입히기 게임의 주인공이 된 듯 그녀가 골라주는 옷을 닥치는대로 다 입어봤다. 캐쥬얼 정장에 구두, 겨울에 잘 입는 스웨터나 가디건, 셔츠와 그 위를 덧대 입는 베스트 등등.

한참을 그렇게 탈의실을 왔다갔다 하다가 갑자기 그녀가 사진을 찍기도 하고 팔짱을 끼며 셀카를 찍기도 했다. 이러고 있으니까 진짜 연인같다. 소소한 곳에서 행복을 찾는 셀럽같은 느낌. 특히 최지아처럼 연예인 뺨치는 외모의 여성과 함께 있으면 이런 기분이 드는 것 같다. 주변의 시선이 화끈하다. 누군가는 부러워하고 누군가는 질투를 한다.

옷 외에도 중절모처럼 생긴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쓴다거나 악세사리까지 착용해봤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쇼핑백이 한 가득 찼다.

“얼마에요?”

“37만 8천원입니다.”

“결제해주세요.”

내 옷만 37만원을 넘게 결제하는 최지아. 아무리 팀원을 챙겨준다지만, 이렇게까지 챙겨주다니. 확실히 아까의 임팩트가 크긴 컸나보다. 스페셜 마이 보이프랜드...

“진짜 이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입혀놓고 보니까 예뻐서 어쩔 수가 없네요. 제가 사주는거니까 출퇴근할 때 잘 챙겨입고 다녀요.”

“...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

“어디 가셔야 해요?”

“아뇨, 오늘은 딱히 일정이...”

“그럼 같이 나가요. 나가서 술 한잔 해요, 우리. 그 정도는 괜찮죠?”

나는 순간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아무리 최지아가 나한테 마음이 있는게 뻔하긴 해도 이렇게 대놓고 술 마시자고 할 정도라니.

나는 속으로 벨라를 부를까 고민했다.

오늘 최지아와 섹스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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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주변 지형같은 경우에는 특정 건물을 대놓고 밝히게 될 수도 있어서 대충 얼버무리듯 쓴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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