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마학원 수석졸업생인 나와 그녀들-28화 (28/159)

〈 28화 〉 28. 코인 활용법

* * *

홍대역에서 내린 나와 최지아는 아무 말 없이 4번출구로 향했다. 확실히 지하철 인파 중 대부분은 4번출구쪽으로 나갔다. 여고생들이 말했던 아이돌 그룹의 버스킹 때문인가 보다.

우리는 파도에 이끌리듯 그쪽으로 밀려나갔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계속 최지아가 있는 쪽을 흘겨봐야 했다.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최지아가 내 팔꿈치 쪽을 살짝 잡았다.

4번출구 쪽으로 나가자 스피커에서 큰소리가 들렸고 인파들의 함성소리도 섞여 들렸다.

지하철에서 접촉이 있었던 이후로 말이 없던 최지아는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기분이 좋아져 내쪽으로 가까이 붙었다.

“구경 할래요?”

신이 난듯한 최지아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찰랑거리는 핑크빛 머리카락이 내 가슴을 일렁이게 만들었다. 퇴근할 때 운동을 하고 왔는지 레깅스 차림에 상의는 달라붙는 티셔츠, 그 위에는 집업을 걸쳤다.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만한 외모의 그녀.

토요일에는 얼굴천재 제시카랑 데이트에, 오늘은 뭐하나 빠짐없는 완벽 존예녀 최지아와 데이트라니.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좋아요.”

내가 승낙하자 꼭 놀이공원에서 솜사탕 사달라고 조르던 어린아이처럼 밝은 미소를 짓는다.

“그럼 가요. 높은데 올라가야 잘보여요.”

냉큼 손을 잡고 뛰기 시작해서 끌려가듯 따라갔다. 그녀는 나를 밑이 잘 보이는 높은 자리로 데려가고서야 잡고 있는 손을 놓았다.

왁자지껄해서 서로 말을 하려면 귓속말을 해야만 했다. 다시금 짜릿한 숨결을 주고받으면서 손가락으로 아이돌 그룹의 누가 내 스타일이니 저 친구 헤어스타일 자기도 해보고 싶은데 괜찮겠냐느니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노래 하나가 끝나고 아이돌들이 춤을 마쳤다. 리더로 보이는 한명이 마이크를 잡고 앞으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유어 마이 스페셜걸. 유스걸입니다! 저는 리더 리카입니다, 반갑습니다!”

자신을 리카라고 소개한 여자는 ‘유스걸’이라고 소개할 때 특유의 v자 그리는 제스쳐로 고개를 한번 옆으로 기울였다. 유명한 걸그룹인지 주변에서 반응이 좋다. 이 정도 인파를 모을 정도면 확실히 유명할 것 같다. 전생에서도 그랬지만, 아이돌 그룹에 별 관심이 없던 나로써는 그저 예측만 할 뿐이었다.

“오늘 여기 오신분들 전부 저희 유스걸 팬분들 맞으시죠?”

“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옆에 있는 최지아와 다른 관중들은 까치발들고 손까지 번쩍 들었다.

“원래는 이벤트로 추첨번호를 하려고 했는데 판촉물을 받은신 분들도 있고 아니신 분들도 있고 오, 저렇게! 지금 막 오시는 분들도 있고 해서 저희가 무작위로 선남선녀분들 뽑아서 무대 모시려고 하거든요.”

“와아아아!”

“못생기면 어떡합니까!”

“못생기다뇨. 저희 눈에는 그저 신민아, 장동건이신데요.”

무대에 올라가는게 뭐가 그렇게 좋다고 다들 이 난리를 치는지. 그래도 잔뜩 신난 최지아에게 찬물을 끼얹을 수 없어서 분위기는 맞춰줬다.

“그럼 제일 앞에 계신 남성분! 앞으로 나와주세요!”

“와아아아!”

“부럽다!”

처음에 뽑힌 한 남성은 멋쩍게 무대 위로 올라가서 쑥스럽게 인사도 하고 휴대폰으로 셀카도 찍었다.

“그러면 스페셜 오브 스페셜! 누구의 팬이시죠?”

“저 리카님 팬입니다!”

“오케이. 일단 합격이시구요.”

웃는 관중들.

“제 팬이시라니까 포옹 정도는...”

“앗, 감사합니다!”

“와아! 미쳤다! 부럽다!”

“잠깐! 그냥 해드릴수는 없고 개인기 하나 보고 해드릴게요.”

“으아!! 개인기요?”

좌절하는 남성. 또 좋아하는 관중들. 그의 부끄러움은 우리의 행복이다.

“그, 그럼 노래 한 소절 하겠습니다.”

“오~ 박수로 청해 듣겠습니다!”

짝짝짝. 그의 고통은 우리의 행복.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기쁘게 박수를 쳤다.

남자가 노래를 시작했고, 모두 조용히 그 한 소절을 들었다. 얼마나 떨고 있는지 염소 목소리가 나왔지만, 그럭저럭 들을만 했다. 저렇게까지 저 리카라는 여자와 포옹 한번을 해보고 싶은 거다. 아마 남자의 인생에서 오늘은 잊기 힘들 날이 될 거다. 어쩌면 훗날 이불킥을 하며 후회할 수도 있겠다.

결국 포옹까지 받은 남자는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소리를 들으며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유스걸 리더 리카는 다음 참가자를 찾는다면서 두리번두리번 찾다가 우리쪽을 향해 딱 시선을 꽂았다.

“어, 그럼... 오! 거기! 핑크머리 여성분! 엄청 선녀. 아니, 거의 천사신데요? 올라와 보시겠어요?”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 지점을 향해 모였다.

핑크머리의 소유자가 누구겠는가. 최지아는 자신을 향해 확 시선이 모이자 얼굴이 온통 벌개졌다. 샥하면서 내 뒤에 숨더니 옷깃을 붙잡고 손에 힘을 꽉 쥐었다.

“어, 어떡해요?”

“음. 그냥 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이왕 이렇게 됐으니까.”

내가 침착하게 달래주자 슬그머니 몸을 밀어넣었다.

리카도 최지아가 자리를 피하자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아, 아... 옆에 계신분은 남자친구분? 남자친구분도 엄청 선남! 부러운 커플이에요~ 나오세요. 여성분~ 부끄러우면 남자친구분이랑 같이 나와도 돼요.”

남자친구라고 오인할만 했다. 당황해서 바짝 내 등에 들러붙어 있었으니까.

“그렇다는데요? 가, 같이 나갈래요? 아니. 같이 나가줘요.”

막상 나도 나가려니까 주변 시선이 의식됐다. 하. 이러면 완전 나가린데. 그래도 최지아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가야했다. 그리고 이런 미인의 남자친구라는 오인을 받는게 마냥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럴까요?”

그러면서 은근슬쩍 최지아의 손을 잡았다. 아까도 한번 잡았던 탓에 거부반응은 없었다.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의 손을 잡는다는 건 특유의 배덕감에 짜릿해진다.

손을 잡고 무대 위로 올라가자 리카가 마이크를 최지아에게 넘겼다.

“와, 여러분! 진짜 이분 진짜 예쁘시죠.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최, 최지아라고 합니다.”

“운동하시나봐요?”

“네, 지금 휘트니스 센터 피티 트레이너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버벅거리던 그녀가 본인 트레이너로써의 본인 피알을 할 때는 또 무지하게 침착해졌다.

트레이너라는 말에 리카는 어쩐지라고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는 남자친구?”

“아, 아뇨...”

“잉? 아! 죄송해요! 써, 썸이시구나! 아니, 요즘 말로는 삼귀는 사이라고 하나요?”

관중들의 웃음소리. 최지아는 그 말에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왜 남자친구가 따로 있다는 말은 하지 않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아까 지하철에서의 접촉이 있을 때 그녀의 가슴에 불을 질러놨으니까. 뿐만 아니라 이정석은 이미 그녀의 마음을 떠난지 오래였다.

“그러면 여기서 돌발 질문 하나 드릴게요. 최지아 님. 준비되셨나요?”

“네. 돌발 질문이요? 아, 네...”

“저희 팬이라는 걸 인증을 하셔야 하기 때문에 유스걸의 야심찬 신규 앨범 ‘스페셜 마이 보이프랜드’의 안무를 살짝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리카는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 손을 번쩍 들어올렸고 관중들은 리카의 손동작에 맞춰서 환호했다.

“맞지! 인증은 해야지!”

“스페셜 마이 보이프랜드, 스마보를 모르면 간첩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유스걸 신규 앨범 들읍시다!”

인증이니 간첩이니 대한민국 사람이니 얘기를 들으니 빼도 박도 못한다. 이렇게 무대에 올랐는데 유스걸이라는 걸그룹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으면 그 얼마나 대단한 쪽팔림인가.

역시나 당황해하는 최지아. 나와 마찬가지로 유스걸에 대해 하나도 아는 게 없을 터였다. 만약 여기서 개쪽을 당하게 되면 최지아에게는 다른 의미로 이 순간이 흑역사로 남을 거다. 흑역사 속에 서있는 나 역시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거고.

하.

나는 속으로 벨라를 불렀다.

­ 벨라. 벨라. 벨라. 급해. 급해. 급해.

­ 어, 나 여깄어. 얘기해.

­ 유스걸이라는 아이돌 걸그룹 팀... 그중에 ‘스페셜 마이 보이프랜드’... 안무를 내가 지금 바로 익힐 수 있을까?

­ 코인 쓰려고?

­ 어... 좀 급할거 같아.

­ 꽤 비쌀텐데?

­ 상관없어.

­ 그러면 어렵지 않지. 몽마 아이템에도 ‘도플갱어 무브먼트’라는 동작을 베끼는 게 있거든. 근데 아이템 써도 되나? 그때 분명 노템으로 가겠다고 얘기했잖아.

­ 아니야. 노템은 여자들을 꼬실 때 직접적으로 템을 안 쓴다는 뜻이었지. 나를 위해 쓰는건 괜찮을 거야. 아마 악신들도 이 정도는 눈 감아줄 듯. 용서 안 된다고 해도 상관없어. 아이템 쓰는거 티 안날 거야.

­ 오케이~ 너만 믿어.

­ 응. 부탁좀 할게.

­ 지금 바로 넣어줬어. 코인 소모 제스쳐랑 함께 아이템 사용만 하면 그대로 동작을 재현할 거야.

­ 오케이.

나는 수신을 끝내자마자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잠깐만요!”

“엇? 써, 썸남... 님? 여기서 갑자기 나서시는 건가요?”

“사실 이 사람이 저 때문에 여기 오신거라서요. 제가 유스걸 완전 팬이거든요. 그래서 이 사람은 안무같은거 전혀 몰라요.”

내 말에 최지아는 토끼눈을 떴다. 내가 그녀 대신 춤을 춰주겠다는 것에서 첫 번째 놀람. 그리고 내가 그녀를 ‘이 사람’이라고 부른데서 두 번째 놀람. 얼굴을 붉히고 아까보다도 더 농밀하게 나를 쳐다봤다.

“아하. 흑기사같은 거구나! 멋진데요?”

“하하하...”

“그럼 시작할까요?”

“아, 죄송한데 제가 노래를 들어야 춤을 출수 있을거 같아서요.”

“으잉? 그럴까요? 원래 잠깐만 듣고 마는데.”

“부탁 좀 드릴게요. 무반주로 추면 좀 창피해서요.”

도플갱어 무브먼트는 아무래도 안무에 맞춰 주게 될 수밖에 없다. 동작을 그대로 따라한다고는 하더라도 싱크로가 음악소리에 맞춰지기 때문이다.

리카가 안쪽으로 신호를 주자 노래의 인트로가 시작됐고, 나는 성큼 무대의 중간에 섰다.

숨을 죽이고 날 빤히 올려다보는 관중들. 사실 그들은 나를 보러 온게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 나는 불청객이었다. 하지만 어쩌라고. 나는 지금 춤을 춰야만 했다.

흘깃 최지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어떻게 저렇게까지 다소곳해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소곳한 자세로 서서 날 지켜보고 있었다. 걱정 반, 기대 반.

나와 제시카 사이에 친근한 기류가 흐를 때, 최지아는 우리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었다. 그때의 나를 보는 눈빛보다 지금이 훨씬 더 짙어보인다. 속마음을 숨길 마음이 전혀 없어보이는 그 눈빛을 보며 참 사랑스러운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도 전생에서는 한 때 풋풋한 사랑을 꿈꿨던 적이 있었지.

손을 몸의 중심으로 가져가자 투명한 무언가가 손가락 끝에 걸렸다. 코인이다. 악신들이 나에게 후원해준 그 코인. 나는 손가락 끝에 힘을 줬고 바깥쪽으로 퍼져나가게 하듯 손가락을 조금씩 열었다. 아마 사람들은 내가 뭘 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코인을 사용하자 머릿속에 몇 가지 문구가 뜨면서 불투명한 컬러렌즈를 낀 것처럼 눈앞이 약간 흐릿해졌다.

[10만 코인을 소모합니다.]

[아이템 ‘도플갱어 무브먼트’를 사용합니다. 코드네임 ‘스페셜 마이 보이프랜드’]

인트로가 끝나고 노래가 시작되자 나도 모르게 발이 세차게 앞으로 뻗어나갔다. 뛰어오르는 동작이 있는지 몸이 높게 날아오른다. 관중들의 눈이 나를 따라 위로 치솟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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