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27. 만원 지하철에서
* * *
황금같은 일요일 아침부터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진짜냐?”
“우움... 움늄...”
미안해하는 벨라. 부풀어오른 입으로 잘도 미안하다고 의사전달을 한다.
“하, 팬사인회가 취소되다니... 완전 계획에 어긋나는데.”
“웁웁... 음음... 쭙...”
“더 깊게 넣어봐. 목구멍 조임 좀 느껴보게.”
내 말에 벨라는 이미 입에 꽉찬 귀두를 목구멍 안쪽까지 깊숙하게 집어넣었다. 껄떡대는 소리와는 무관하게 목구멍 쪽에서의 조임이 강렬한 쾌감으로 밀려들어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임은 더 강해졌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어떻게든 날 기분좋게 하려는 벨라의 마음이 애틋하게 느껴져서 목구멍 안에 뜨끈한 정액을 발사해줬다.
파르르 떠는 벨라.
자신의 실수를 이렇게라도 만회하고 싶은 모양이다.
역시 모닝에는 펠라치오지. 나는 한동안 이 쾌감에 빠져들어 누운 채로 극락을 떠올렸다. 극락을 보여주는 존재가 악마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정액에 사래가 들린 벨라는 한참을 괴로워하다가 결국 꿀떡 정액을 삼키곤 숨을 몰아쉬었다.
“메르세데스가 말하는데 상장은 걱정하지 말랬어.”
“벨라, 그 말을 믿는 거야? 메르세데스는 지금 당장이라도 우릴 내쳐도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잖아.”
“아니야... 그렇지 않을 거야. 이번만큼은 정말 날 믿어도 좋아.”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내막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고생한 벨라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줬고 그녀는 얌전하게 내 옆에 와서 앉았다. 이럴 때 보면 몽마학원 다닐 때의 그 교생 이사벨라가 맞나 싶다. 교생 때는 카리스마가 있어서 애널 실습을 할 때 몇 번 혼났었다. 너무 뻐근하게 박아대면 아프기만 할 뿐이라고. 애널 삽입을 하기 전에 충분히 안쪽 근육을 손가락으로 풀어주라고 했었다.
“상장이 확정인 건 그렇다치고 팬사인회를 하겠다고 광고를 했을 텐데, 시청악신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럼?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할텐데.”
“섹스트림 쪽에서 그 부분은 확실하게 사과를 하고 넘어갈 거야. 네 잘못이 아니라 주최측의 잘못이라는 걸 알게 되면 비난이 가라앉겠지.”
“오케이... 그럼 다른 이벤트를 생각해 봐야겠네.”
내가 골똘히 생각하는 동안 벨라는 아직 정액이 묻은 내 고추를 삭삭 핥아먹기 시작했다. 혓바늘이 닿을 때마다 0.1mm씩 부활하는 내 고추는 어느샌가 다시 또 빳빳하게 섰다.
“이번에 악신들 줄 세워놓고 내 싸인 기다리는 모습 보고 싶었는데. 얼마나 좋아. 맨날 예명 뒤에 가려서 관찰하고 평가만 하던 악신들이 내 싸인 받으려고 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벨라는 고추에서 혀를 떨어트리고 손으로 조물조물거리기 시작했다.
“의외로 불만이 더 많아지지 않았을까. 악신들은 분명 그보다 더 한걸 요구했을텐데.”
“뭐, 섹스?”
“응.”
“섹스라... 뭐, 한두 명 정도는 상대 해줄 생각도 있었어.”
“뭐, 뭐? 진짜?”
“응. 추첨 해서 룰렛 돌리려고 했지. 내가 전에 룰렛 만드는거 못봤구나.”
나는 장롱 뒤에 숨겨둔 커다란 룰렛판을 보여줬다. 골판지로 만든 조잡한 룰렛판이지만, 꽤 공을 들여 만든 작품이었다. 룰렛의 상단에는 ‘여악신만을 대상으로 함’이라고 똑.똑.히. 적혀 있다.
12시 ~ 2시 방향 ‘삽입 상태로 성기 윗부분에 싸인 해주기’
2시 ~ 4시 방향 ‘5분만에 사정시키기. 못 했을 시 벌칙있음’
4시 ~ 6시 방향 ‘옥상에서 야외섹스’
6시 ~ 8시 방향 ‘눈앞에서 섹스 관전’
8시 ~ 10시 방향 ‘한번 넣었다 빼기’
10시 ~ 12시 방향 ‘6시간 섹방 합방’
“한번 돌려볼래?”
“어? 응.”
신기해하는 벨라에게 기회를 줬다. 골판지로 된 화살표를 돌렸고 그 골판지는 8시~10시 방향에 가서 멈췄다.
“오예. 이리와.”
“아잉... 아깝다. 당첨될 수 있었는데.”
“당첨이 뭔데?”
“6시간 섹방 합방!”
“뭐야. 6시간이나 하고 싶어?”
“응... 나 요즘 애닳았어.”
“훗. 다음에. 다음에 하자. 지금은 일단 삽입 한번만이야. 흐읏... 아, 역시 벨라 똥구멍은 진짜 명기야. 존나 기분좋네.”
“읏! 안에 잔뜩 들어왔어어... 아직 좀 더 넣을 수 있지 않아?”
“잠깐 이러고 있게. 하. 이대로 잠들고 싶다. 어제 하루종일 제시카랑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더니 입에 게거품 물겠어.”
“히. 내게 그렇게 좋아?”
“어. 벨라 똥구녕 완전 좋아. 흐읏! 아, 끝까지 넣었다.”
“하앙... 진짜 뺄 거야? 좀 더 해도 좋은데.”
“안돼. 지금 시청하고 있는 악신들도 있어.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걸 인지시켜줘야 해. 하아... 학... 와 진짜 존나 빼기 싫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벨라의 애널에서 천천히 고추를 빼냈다. 안쪽에 있는 살집이 묵직하게 성기를 붙잡아서 놔주질 않고 딸려나왔다. 물컥 쏟아져 나온 애액도 마찬가지였다. 꼭 방금 사정한 성기처럼 허여멀건한 액체를 잔뜩 뒤집어 썼다.
“와. 여전하네. 애널리스트의 S급 애액. 미친 듯이 후끈거려.”
“하아... 하아... 나 룰렛 또 돌릴래...”
“안 돼. 버릇 들어.”
“진짜. 진짜 버릇 될거 같아.”
나는 잠깐동안 벨라와 옥신각신하다가 룰렛을 다시 장롱 안에 넣었다. 언젠가는 다시 또 쓸일이 있겠지. 그리고 나는 그 언젠가가 조만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벨라는 결국 지옥으로 돌아갔다.
팬사인회 일정이 취소되서 할일이 없어진 나는 가만히 시간을 죽이고 있다가 이대로는 안 될거 같아서 대충 차려입은 후에 거리로 나갔다. 홍대로 가는 길. 번화가의 백화점같은 데라도 가서 트레이닝닝 옷이나 신발을 사야겠다.
일전에 최지아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신발은 트레이너의 얼굴과도 같은 것이라고. 사람들은 트레이너의 얼굴도 보지만, 스타일도 얼굴 못지 않게 본다고 한다.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의 신발이라면 배려심있고 성실한 트레이너를, 확 눈에 띄고 왁자한 신발이라면 재밌고 열정적인 트레이너를 생각하기 마련이라고 한다.
지하철을 탔는데 사람이 꽤 많다. 최근에는 출근하는 직장이 가까운데 있다보니 걸어만 다니고 대중교통은 이용하지 않았더니 지하철 만차에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아니, 일요일인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
옆에서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엿들었다.
“1번 출구였나?”
“4번 출구. 병신년아.”
“헐~ 말넘심.”
“야 근데 진짜 맞긴 맞냐? 유스걸 신곡 나온지 얼마나 됐다고 홍대 버스킹이야.”
유스걸? 처음 듣는 이름이다. 연예인 이름이겠거니.
“신예들은 원래 그렇게 하는 거야. 막말로 신곡 나온거 아는 사람 몇 안 되잖아.”
“뭔소리야.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유스걸 보러가는 사람 꽤 될걸?”
아. 그래서 이렇게 사람이 많나.
홍대까지는 앞으로 다섯 정거장은 더 가야한다. 꽉 끼어서 서로 몸이 맞닿을 정도다. 내 주변에서 몸집이 큰 사람이 나밖에 없는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키도 커서 얼굴만 쏙 나와있다. 한편으로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부둥켜안은 듯한 사람들을 관람하는 재미도 있었다. 뭔가 나만 볼 수 있는 광경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내 눈에 희끄무레하게 누군가의 움직임이 보였다. 얼굴쪽으로 따가운 시선이 이따금 날아와 꽂히길래 그쪽을 봤더니 지하철 칸의 구석진 곳에서 최지아가 내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최지아랑 만원 지하철에서 만나다니 이런 행운이 있나.
나는 빡빡한 상태에서 어떻게든 폰을 꺼내서 최지아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 팀장님 어디 가요?
문자를 보낸지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최지아도 품에서 폰을 꺼냈다.
최지아 팀장님 : 잠깐 센터 들렸다가 집 가는 길이에요. 주말 수업이 있어서.
나 : 원래 지하철 타고 다니셨어요?
최지아 팀장님 : 저 항상 이거 타고 퇴근해요.
나 : 그랬구나. 깜짝 놀랐어요.
나 : 근데 어떻게 알았냐고 안 놀라는거 보니까 아까부터 저 보고 계셨죠?
최지아는 고개를 슥 들어서 내쪽을 봤다. 머쓱하게 웃더니 다시 폰을 본다.
최지아 팀장님 : 지금 말 걸기는 애매한 상황이니까. (웃음)
나 : 이따 사람 좀 빠지면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최지아 팀장님 : 엇
최지아 팀장님 : 굳이 안 오셔도 되는데.
마침 지하철이 정차했고 관성 때문에 한쪽으로 모두가 기우뚱한 후에 몇 명이 빠져나갔다. 밖에서는 들어올 사람이 대기하고 있는 사이, 빠르게 인파를 헤치고 최지아가 있는 곳까지 갔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내가 웃자 그녀도 싫지는 않은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했다.
바로 그때 사람들이 와르르 안쪽으로 밀려드러왔고 나는 그들을 등지고 서서 최지아를 보호했다. 나머지는 다 가득찼는데 내 앞쪽에만 최지아존이 펼쳐졌다. 뒤쪽에서 미는 힘이 강하다보니 벽쪽으로 손을 콱 짚으면서 버텨야 했다.
“괜찮아요?”
버티느라 신경쓰지 못했는데 어느새 그녀와 나 사이에 간격이 딱 팔 하나 정도 차이났다. 어쩌다보니 박력있게 벽으로 몰아붙인 꼴이 됐다.
“무리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네... 뭐, 괜찮습니다. 이러려고 운동 했으니까요.”
“풉. 뭐에요. 바보같아.”
주먹으로 입을 가리며 눈을 반달 모양으로 웃는 최지아. 이렇게보니까 환상적으로 예쁘다. 생각해보면 세상은 참 요지경이다. 이렇게 예쁘고 착한 최지아가 하필 최용수의 딸로 태어나 개좆만도 못한 이정석의 여자친구로 살고 있느냔 말이다. 나는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이 땅에 부활했다. 그러니까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라도 꼬실 자격은 충분했다.
“댁은 어디세요?”
“연희동이요.”
“자취하는 거예요?”
“... 네. 아, 그보다 기준쌤은 어디 가는 중이에요? 집이 센터 근처라면서.”
“저번에 팀장님이 저한테 신발의 중요성에 대해 알려주셨잖아요? 그래서 지금 신발 사러 가요.”
최지아는 내 말을 듣고 뿌듯하게 웃었다.
“착한 부하직원이네요.”
“팀장님이 저 좀 도와줄래요? 저한테 맞는 신발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 음, 그럴까요?”
최지아라면 당연히 이렇게 대답할 거라고 생각했다. 팀원들을 끔찍하게 아끼는 최지아다. 그리고 팀장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첫 번째로 결성된 팀의 실적을 높이고 싶은 욕구가 가득하다. 신입 트레이너가 영업에 필요한 신발을 사겠다는데 그걸 돕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
“아, 제가 너무 무리한 부탁을 드린건 아닐까요? 팀장님은 아무래도 이정석 팀장님이랑 사귀고 있는데 괜히 남자 트레이너랑 같이 다니면 오해하실 수도 있겠다 싶어서.”
“아니에요! 하나도 안 무리에요. 완전 제가 원해서 하고 싶어요.”
속으로 그렇게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최지아도 그걸 느낀 모양이다. 순간적으로 내 시선을 회피했다.
“이정석 팀장이랑 요즘 소원해요. 연락도 잘 안해요.”
갈 곳을 잃은 시선이 요리조리 굴러다니느라 바쁘다.
바로 그때, 뒤쪽에서 어떤 아줌마가 커다란 엉덩이로 툭 밀어서 순간 힘이 빠져버렸다.
“어, 어!”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줌마가 휘청이며 뒤로 넘어가려고 했고 나 역시 덩달아 벽쪽으로 몸을 붙일 수밖에 없었다. 버티고 있던 결계가 풀리면서 와르르 밀려 최지아와 정면에서 포개졌다. 그녀는 자기 가슴 앞에 주먹을 쥐고 있는 채였다.
“아...”
그녀의 입술이 내 목덜미쪽에 가까이 붙어서 숨결이 귀를 간지렀다.
최지아에게는 좋은 냄새가 났다.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마시다 아차 싶어서 숨을 내뱉자 최지아가 어깨를 움츠렸다.
“아큿!”
엉겁결에 끌어안아 버렸는데 뒤쪽에서 아줌마가 커다란 엉덩이로 계속 눌러대는 바람에 떨어질 수 없었다.
최지아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동안 내 가슴께에 물컹거리며 그녀의 가슴이 와서 닿았다. 손으로 막고 있는데도 풍만한 가슴을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리는 미안하다느니 어쩔수 없다느니 같은 핑계도 대지 않았고 서로의 숨소리와 닿아있는 표면에만 집중했다. 고개만 살짝 돌려서 비틀면 입술끼리 부딪칠 거다. 내가 고개를 조금씩 돌리자 최지아도 움찔거리며 고개를 돌려 내 입술을 찾는 듯했다.
“하아...”
닿지는 않았지만, 손가락 한마디만큼 떨어진 채 서로의 달콤한 숨결을 나눴다.
아줌마 나이스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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