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마학원 수석졸업생인 나와 그녀들-23화 (23/159)

〈 23화 〉 23. 양아치 조지는 사람

* * *

‘TEAM MIKA' 김용호 실장

팀 미카? 옆에 작은 글씨로 studio라고 써 있는 걸로 봐선 촬영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모양이다.

“저는 코스프레 전문 스튜디오 팀 실장 김용호라고 합니다. 지금 목마하고 있는 모습을 찍고 싶습니다.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제 영감 때문에 찍는겁니다.”

“아, 근데 저는 모델이 아니라서요.”

“네? 모델이 아니시라고요?”

김용호는 진심으로 놀랐는지 나와 제시카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럴수가. 하, 제가 완전 착각했네요. 지금 컨셉에 맞춰서 목마를 태우신줄 알았어요.”

“뭐, 어때요. 찍자요. 기준쌤.”

“네? 아니 그건 좀...”

“나 목마 태우고 있는 것도 찍고 싶어요. 기준쌤 목마 타는거 짱 기분 조아. 일단 높잖아!”

“크흠흠. 얼굴이 나오는 게 좀 그러시면 남성분은 뒤 돌아계시고 여성분은 몸을 살짝 틀어서 손으로 v만 해주시면 어떨까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뭐, 얼굴만 안나오면 상관없겠지.

내 위에서 어린애처럼 신나보이는 제시카를 실망시킬 수 없었기에 제안을 승낙했다.

뒤쪽에서 사진찍는 소리가 들렸고 김용호가 기분 좋게 웃으며 다시 우리쪽으로 걸어왔다.

“사진 찍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목은 ‘매니저님과 바닷가에 왔는데 너무 신나버렸다.’ 정도가 좋겠네요.”

“기준쌤이 매니저 크크크. 그럼 나는 뭐징?”

“음. 아이돌스타겠죠? 그편이 더 재밌을거 같고 아이돌처럼 예쁘시기도 하니까요. 실제로는 무슨 일을 하세요?”

“저 이래봬도 트레이너에요! 헬스 트레이너!”

“오... 그래서 그렇게 탄력있는 몸매를 유지하시는 거군요. 보기 좋습니다. 코스프레하기에 딱 좋아요.”

“히히, 감사해요.”

“혹시 프로로 일하고 싶은 생각 있으시면 명함에 있는 번호로 연락주세요. 아참 그리고 탈의실이 필요하시면 화장실에서 갈아입지 마시고 저쪽에 있는 저희 코스프레 모델들 전용 탈의부스를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오오. 감사해요. 안 그래도 지금 옷 갈아입을 타이밍이었는데에!”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저희 촬영장소는 완전 반대쪽에 있어서요.”

“앗! 코스프레 팀 촬영 구경하고 싶다. 이따가 가도 되요?”

“물론입니다.”

김용호는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제시카는 내 귓불을 장난스럽게 꼬집었다.

“나 어떡해! 혹시 대스타가 되는거 아닐까? 꺄아... 더 많은 사람한테 보여져 버려.”

“잘 됐으면 좋겠네요. 이 사람한테 연락할 거예요?”

“으음. 아니에요. 일단 좀 생각 해봐야죠. 본업도 있는데 영향을 주면 곤란하니까.”

제시카는 철부지 같으면서도 이성적인 면이 있었다. 애처럼 해맑은 건 성격 탓이거나 혹은 완전 반대로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숨기기 위한 일종의 가면이 아닐까 한다.

나를 위해 야근을 하면서까지 공부를 도와준 것부터 그렇고. 여러모로 사려깊은 면이 많았다.

나는 김용호가 소개해준 탈의부스로 제시카를 데려다줬다.

그녀가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탈의부스에는 미카 코스프레팀이 놓고 간 짐들이 어질러져 있었다. 비어있는 탈의실 안을 힐끔 보자 여자속옷도 번잡하게 벗겨져 있었다. 누가 가져가면 어쩌려고 저렇게 벗어놨는지 참 궁금할 따름이다. 가끔 코스프레어가 달려와서 옷을 갈아입고 나가기도 했다.

마침내 제시카가 나왔다. 이번에는 또 무슨 캐릭터인지 마녀복장에 빗자루를 들고 나왔는데 이게 또 은근히 잘 어울린다. 물론 섹시함은 다소 줄어든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데 특이점이 찾아왔다.

마녀복장을 하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같이 사진을 찍으면 안 되냐고 물어봤다.

제시카가 예쁘긴 예쁘지만, 아직 아마추어 티가 많이 날 탠데도 꽤 인기가 많다. 사진을 찍자고 요청한 사람들 중에는 어린아이도 있었고 여자들도 꽤 있었다.

“제시카쌤 인기 엄청 많네요. 근데 조심해요. 혹시나 변태같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에이, 구냥 다들 순진해 보이는데.”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제시카와 그녀의 팬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한 번은 세 명의 고등학생 남자애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런데 역시나 내 예상대로 남자애 하나가 사진 찍을 때 자세를 잡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엉덩이를 만졌다. 처음에는 실수겠거니 했는데 이번에는 좀 심하게 더듬었다.

“읏?”

제시카도 느낌이 왔는지 고개를 훽 돌렸다. 근데 셋 중에 누가 했는지 모르니까 뭐라고 말하기 애매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스마트폰 셀카봉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 봐주세요~ 찍습니다.”

나는 성큼성큼 그쪽으로 걸어갔다.

찍는 순간을 노려서 재차 제시카의 엉덩이에 손을 대려는 놈의 손목을 대뜸 낚아챘다. 관절 반대쪽으로 확 꺾어 올리자 비명이 터져나왔다.

“끄아아아악!”

“이 새끼가 어디에 손이 올라가?”

“끄아아아... 놔, 놔주세요... 으으아아... 저 아무것도 안 했어요.”

“확 분질러 버릴까보다.”

제시카는 아무 말없이 나만 빤히 쳐다봤다.

“크윽... 저 진짜 안 했다니까요? 이거 놓으세요.”

손이 잡히지 않은 옆에 놈도 말을 건다.

“시발, 안 했다잖아요. 왜 폭력이에요. 아저씨가 누군데요?”

아무래도 이 녀석들 상습적으로 코스프레어들한테 성추행하러 돌아다니는 양아치들인가 보다.

“나?”

나는 씩 웃었다. 내가 누구냐고?

“양아치들 대신 조져주는 사람이다.”

“시발, 뭐라는 거야. 손 놓으라니까!”

손바닥이 날아온다. 내 눈에는 그 움직임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오늘처럼 기분 좋은 날, 잡치고 싶지 않다. 제시카도 코스프레한다고 완전 들떠있는데 방해하면 안 되겠지.

싸움을 길게 끌면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한방에 임펙트있게 끝장내야 했다.

나는 날아오는 손바닥을 살짝 피한 다음, 달려드는 놈의 복부를 팔꿈치로 가격했다.

“커헉!”

맞자마자 숨을 못 쉬겠는지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초식동물철머 연약한 놈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내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는지 맞은 놈과 구경하던 놈은 그대로 도망쳤다.

남은 건 하나. 아까 제시카의 엉덩이를 만졌던 새끼는 여전히 손목을 붙들린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죄송해요... 다음부터 안 그럴게요. 놔주세요.”

나는 녀석의 귓가에 대고 이렇게 속삭여줬다.

“다음에도 이런 짓거릴 했다간 끝까지 찾아가서 다시는 쓸수 없도록 고추를 뜯어버릴 거야, 알겠냐?”

“네... 네...”

“가봐.”

손목을 놔주자 친구들이 도망간 곳을 향해 뛰어간다.

“하...”

나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약간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잡았다.

지켜보고 있던 제시카가 내 팔에 자기 팔을 휘감았다.

“고마워요. 쌤... 다친 데는 없어요?”

“전 괜찮아요. 저런 놈들을 주의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왜 아무한테나 다 사진을 찍어주고 그래요?”

“힝, 미안해요... 괜히 나 때문에.”

“됐어요. 빨리 촬영이나 해요.”

“힝.”

내가 매몰차게 굴자 제시카는 한동안 시무룩한 표정으로 촬영을 했다.

더 이상 모르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어주지는 않았다.

두어번 정도 옷을 더 갈아입었고 점심시간이 될 때즘에 제시카가 내게 말했다.

“쌤, 밥 뭐 먹을래요?”

“아무거나 쌤 드시는 걸로 먹을게요.”

“치... 기준쌤 아직도 화났어요?”

“뭘 화가 나요.”

“화 풀어요!”

처음에는 그저 장난으로 시작한 건데 귀여워서 계속하게 됐다. 근데 왜 지가 언성은 높이는 건데.

“화 안났다니까요.”

“참내. 진짜로.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네.”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어요?”

“네, 전혀요. 빨리 화 풀어요.”

“그럼 나랑 저거 타요.”

나는 자이로드롭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제시카는 아주 높이까지 올라간 자이로드롭의 웅장한 모습을 보며 치를 떨었다.

“끄앙! 말도 안 돼. 나 저런거 절대 못 타요!”

“그럼 뭐, 어쩔 수 없네요.”

내가 최대한 인정사정없이 말하자 제시카는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으으... 진짜요? 진짜 저거 타요?”

“네. 저거 타면 제 마음이 좀 너그러워질거 같아요.”

“흐윽... 이 차림으로?”

“네, 그 차림으로.”

현재 제시카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속살이 다 드러나는 하얀 시스루 스타킹은 핑크색 리본으로 장식했다.

제시카는 내게 가까이 와서 속삭이듯 말했다.

“저, 저... 근데 노팬틴데... 내려올 때 치마가 다 올라갈 거예요.”

노팬티라고! 좋지. 더 좋지. 완전 좋지.

펑퍼짐한 드레스라 자이로드롭에서 떨어질 때 공기의 저항을 받으면 확실히 치맛자락이 뒤집힐 거다.

“그래서 안 탈 거예요?”

“응기잇! 진짜 나빴어요. 알겠어요. 타요, 타!”

마지막에 용기있게 말한 제시카였지만, 줄을 기다리면서 여전히 내 손을 꼭 쥐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무서우면 안 타도 됩니다.”

“탈거에요. 흐윽...”

흐흐. 진심으로 무서워하는 모습이 이렇게나 깜찍할 수가 있나. 주변에서도 날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남자들이 다 그렇지. 수 많은 남자들은 얼빠에 속한다. 키가 작든 빈유든 개의치 않고 얼굴만 좋아하는 남자들이 득시글거린다.

문제는 여기 찾아온 남성들의 대게는 여자친구와 함께 왔다는 거다. 자기 여자친구보다 월등히 뛰어난 미모의 제시카가 시선을 훔치자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정작 그 제시카는 내 손을 꼭 잡은채 손에 땀까지 흘리고 있다.

크흣.

이 우월감이라니.

마침내 우리 차례가 왔고 제시카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동안 잠시 손을 놓고 있었는데 안전벨트를 착용하자마자 바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손 줘요. 손!”

골룸이 반지를 잃어버렸을 때, 저렇게 다급한 목소리였지, 아마.

나는 군말 없이 손을 내줬고 그녀는 안전벨트보다 이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 다시 꼬옥 잡았다.

“올라가도 놓으면 안 돼요. 죽어도 같이 죽는 거야.”

“죽긴 누가 죽어요.”

“아, 올라간다. 올라간다. 올라간다. 올라간드아아아아. 끄힛♡”

“밑에 보지 마요. 무서울 거야.”

“그렇게 말하니까 더 보게 되잖... 아요오오오!”

어느새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신발을 벗으면 바람을 타고 호수공원까지 날아가버리겠지. 나는 여유롭게 다리를 흔들었다. 이 두근대는 심장. 아마 제시카는 내 심장박동보다 훨씬 더 빠르게 심장이 뛰고 있을 거다.

여자를 꼬실 때는 공포영화를 보거나 놀이공원에 데려가라. 그것도 아니면 스포츠카를 태워서 심장박동을 미친 듯이 빠르게 울려라.

공식이다. 그리고 지금 손까지 잡고 있으니 확실한 시그널이 아닐 수 없다. 드랍을 알리는 카운트가 들려왔다.

3!!!!

“제시카쌤.”

“으극♡ 꼭 지금 말을 시켜야 해요?”

2!!!!

제시카는 한쪽 눈을 질끈 감은채 날 봤다.

1!!!!

“사실 저 화 안 났어요.”

“네?!”

DROP!!!!

누가 머리를 짓누르는 것만 같은 느낌. 와락 쏟아지는 벼락처럼 순식간에 추락이 이뤄졌다.

그리고 나는 봤다. 하얀 속살의 밋밋한 사타구니를. 이번에도 무털도사가 난리가 나겠구만.

자이로드롭은 전부 내려오기 전에 한 차례 다시 떴다가 내려가고, 다시 떴다가 내려가길 반복하고서야 끝났다.

“흐아아아앙! 엄청 무서웠어요! 진짜 나빴어요! 기준쌤!”

내 허리를 끌어안는 제시카. 나는 여전히 내 손을 꽉 쥐고 있는 그녀의 등을 다독여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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