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22. 코스프레는 또 뭔데 이 ㅆㄷ아
* * *
우리는 봊이와 잦이를 이별시켰다. 아무리 천으로 가리고 있다곤 해도 잠시동안 질퍽했기 때문에 떨어트릴 때 야릇한 애액이 끈적하게 이어졌다.
야릇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그 끈적한 액체를 못본척 해야만 했다.
케겔운동 수업이 끝난 후에 잠깐동안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타이즈가 축축해진 제시카는 옷을 갈아입어야 했고 나 역시 분노한 잦이를 가라앉혀야 했다.
제시카는 옷을 갈아입고 나온 뒤에도 내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제시카쌤?”
“에, 예? 뭐, 뭐요. 저 그런 생각 안했어요.”
“? 아니이.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아하. 아하하하하하. 기준쌤도 참. 장난이잖아요. 장난!”
무안했는지 등짝 스매시를 팡팡 소리가 나도록 때린다.
내가 그런 제시카를 부드럽게 쳐다보자 그녀는 다시금 샐쭉하게 입을 내밀었다.
이쯤에서 분위기를 좀 바꿀 필요가 있었다.
“이번 한주간 제시카쌤한테 신세 많이 졌네요.”
“푸, 웃겨. 어떻게든 보답은 받는다고 몇 번이고 말했어요. 선의의 봉사가 절대 아니라는 말씀.”
“이제 슬슬 그 보답이라는 걸 말해주실 때가 됐네요. 주말 전에는 말해준다고 했으니까.”
나는 복수를 하는 사람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렇다고 나쁜쪽으로만 갚아주지는 않는다. 은혜를 받았으면 은혜또한 보답해야 마땅하다.
“아, 크흠. 안 그래도 지금 말하려고 했어요. 거, 뭐야. 기준쌤 내일 토요일인데 뭐해요.”
“예? 아, 오랜만에 집에서 좀 쉴까 했는데요.”
토요일이라. 정말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환생을 하고 요 며칠동안 여자 꼬셔서 섹스도 하고 돈 벌려고 공부도 하면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던 거다.
“내일 성기준 씨는 제시카의 사진기사가 되어주는 것이에요.”
“..? 사진기사요?”
“말하기 너무 부끄러운 얘기지만, 제시카한테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어요.”
“뭐요... 설마?”
나는 문득 연인들이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을 떠올렸다. 말이 서로지. 사실상 남자친구가 자기 애인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기사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아, 쪽팔려.”
제시카는 말보다는 사진으로 보여주는 게 낫겠다 싶었는지 스마트폰을 꺼내서 몇 번 터치하더니 내게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악신 ‘야한 걸 보면 짖는 개’가 존나 짖습니다. 1000코인을 후원합니다.]
[악신 ‘무털도사’가 제시카에게 은근히 기대합니다. 1000코인을 후원합니다.]
바니걸 차림의 제시카. 가슴은 없지만, 얼굴이 워낙 귀여워서 잘 어울린다. 다리도 예쁜 다리라 검은색 망사스타킹도 잘 어울렸다. 근데 이게 뭔...
“코스프레요. 최근 들어 여기에 맛을 들려버렸는데! 아직 내 사진을 찍어줄 사람을 구하지 못했어요. 집에서 거울 셀카 밖에 못 찍는 게 천추의 한이란 말이에요. 지인들한테는 절대 못 시키고! 왜냐면 너무 부끄러우니까. 내가 이런 짓을 하고 다닌다는 게 창피해. 근데 재밌어. 나는 날 너무 사랑해. 흐긍으으... 그니까 알겠죠? 기준쌤이 내 사진기사 해줘요.”
코스프레라니. 그게 뭔데 이 씹덕아...
그런건 덕후들이나 일본인들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제시카처럼 예쁜 여자들도 하는구나 싶었다. 그쪽 방면에는 아는 게 전혀 없다.
“요런 사진. 요런 사진도 있고. 요런 복장도 있어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슬라이드를 통해 사진들을 구경시켜줬다.
성도착증인가? 바바리맨처럼 자기걸 보여주면서 느끼는... 뭐 그런 증후군같은 게 걸렸나? 죽으면 나와 같은 환생자로 다시 태어나면 제격이겠다. 섹스트림 운영자 여러분, 여기 인재가 있습니다. 근데 아직 데려가지는 마세요. 데려가기엔 너무 예뻐요.
제시카는 나와의 거리를 점점 좁혀왔다. 자기 사진을 보여주는데 엄청 심취한 나머지 얼마나 밀착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바니걸뿐만이 아니었다. 무슨 커다란 검을 들고 있는 사진도 있었고 머리에 고양이 귀를 붙인다던지 컬러렌즈를 착용해서 구미호처럼 꾸미기도 했다.
“이게 앵글이 중요하거덩요. 근데 이게 다 뭐야앙. 가뜩이나 다리도 짧은데 엄청 콩알만하게 보인다니까요. 이거봐요. 위에서 내려다보듯 찍으니까 다리가 엄청 짧잖아. 흐앙. 나 이렇게 안 짧다고. 기준쌤도 그렇게 생각하죠?”
“네... 제시카쌤 다리 예쁘죠.”
“마자마자.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어. 으엉헝엉.”
우는 표정을 짓던 제시카는 내 팔뚝을 꽉 잡았다.
“부탁해요. 사진기사 꼭 해줘요. 플리즈.”
제시카는 슈렉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눈을 똥그랗게 뜨고 냥냥거렸다. 돈 꼴레오네의 대사인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하겠다.”라는 명대사가 생각나는 얼굴과 표정이다.
어찌 거절하겠는가.
어차피 팬사인회는 일요일이니 토요일에 할 일도 없기도 하고.
나는 다시 한번 제시카의 귀여운 얼굴을 바라봤다.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져주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예쓰! 고마워요. 고마워요.”
내 볼에 뽀뽀를 하는 제시카. 나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사진은 어디서 찍어요?”
“쌤은 그냥 시간 맞춰서 집 앞에 나오면 되요. 음, 11시에 집앞에 나와요. 문자로 주소 보내주고.”
음흉하게 씩 웃는 제시카. 대체 날 어디에 데려가려는 걸까?
*
토요일 아침 9시. 옷을 골라입고 나가야 하는데 한참을 고민했다.
제시카와의 데이트라면 남친룩 스타일링을 해야 맞는 거겠지. 근데 진짜 사진기사라면 대충 청바지에 남방같은거 입고 가야할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데 이거 나만 그러는걸까?
내가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제시카에게 문자가 왔다.
최지아팀 제시카쌤 : 오늘 멋지게 입고 와야 해요. 이상하게 입고 나오면 그대로 돌려보낼거야.
나 : 벌써 도착했어요?
최지아팀 제시카쌤 : 훗. 주차장에 있으니까 준비 되는대로 천천히 나와요.
음. 그래도 놀이공원에 가는데 셔츠를 입을 순 없고. 평상시처럼 포마드 스타일을 했다. 한지우가 해줬던대로 마무리를 했더니 확실히 괜찮아졌다. 그리고 청바지 + 맨투맨으로 간편하게 입고 신발은 하얀색 나이키 신발을 신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어디서 봤는데 청바지에 맨투맨이면 남친룩으로 손색이 없다고 했다. 물론 패완얼. 존잘 얼굴이 기반이 되야 한다.
나는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확인한 후에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에 있는 주차장으로 갔는데 한눈에 제시카의 차를 알아볼 수 있었다.
빨간색 BMW 오픈형 스포츠카다.
구웅
시동거는 소리가 무지막지하게 짧고 간략하면서 굵직하다. 제시카가 하얀 팔을 들어올려서 인사한다.
미국에서 살다 왔다는 건 알았는데 금수저였어?
“합격! 타요!”
“아니, 이게 무슨...”
기가 막히는 승차감이다. 차에 탄건지 어떤 시설물에 앉은건지 모를 정도로 안정적이다. 이전생을 통틀어도 이만큼 비싼 차를 타본적이 없다.
제시카는 내가 차에 올라탄 걸 확인하고 스포츠카 뚜껑을 닫았다.
“더워서 문좀 열어뒀어요. 후. 에어컨이 고장났거든요.”
나는 그녀의 패션을 보고 더울만 하다고 생각했다.
“더우시면 패딩을 벗으시면 되지 않나요?”
나는 그녀의 롱패딩을 가리키며 말했다. 롱패딩에 선글라스까지 차고 덥다고 하다니.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아무리 가을이라고 해도 그렇지 패딩 입을 날씨는 아니었다.
“패딩 안에 코스프레 옷을 입었어요.”
아.
“오, 봐도 되요?”
“좀 야해요. 경찰이 보면 공연음란죄로 잡혀갈지도 몰라.”
...
존나 궁금하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할 때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뭘까. 사진으로 봤던 바니걸? 아니면 치파오? 아, 그거구나. 메이드! 남자들이 환장한다는 메이드일 거다. 레이스가 달린 펑퍼짐한 치마에 제시카 특유의 매끈한 다리와 흰색 스타킹이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내가 코스프레 플레이에 딱히 관심이 있는건 아니다. 애초에 그쪽에 관심도 없고 아는 바도 없으니까.
지금도 그렇다. 제시카같은 여자가 왜 그런 코스프레를 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말 성도착증이 있는게 아닌 이상에야...
토요일이라 그런지 강남쪽으로 갈수록 차가 막혔다. 이정표를 확인했더니 잠실로 가는 중이다.
잠실... 잠실... 설마... 롯데월드?
“하, 롯데월드도 되게 오랜만이네요.”
진짜 롯데월드로 가는구나.
토요일 점심 때에 롯데월드는 사람이 많아 미여터지는 걸로 알고 있다. 근데 그런 곳에서 코스플레이를 한다니. 창피하지도 않나?
석촌호수공원을 끼고 돌자 거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우리쪽을 봤다. 누군가에게 bmw는 동경의 대상, 부러움. 누군가에게 운전석에 앉아있는 아름다운 여성은 동경의 대상, 부러움. 누군가에게 그 옆에 앉은 여자는 씹새끼, 부러움. 나는 씹새끼라서 행복하다.
제시카는 차를 롯데몰 주차장에 주차했다.
아, 드디어 제시카의 복장을 보는건가?
두근두근거렸다.
“이제 시작이네요. 제가 뭘 해야할지만 알려주면 확실하게 보필하겠습니다.”
“일단!”
운전하는 동안 참 과묵했던 제시카다. 지금은 다시 내가 알던 똥꼬발랄한 모습이 돌아온 것 같다.
“일단은요. 약속 하나만 해줘요.”
“무슨 약속이요?”
“절대 내 옷을 보고 웃거나 놀리지 않기로.”
선글라스를 벗고 또 다시 올망졸망한 눈빛을 내게 보낸다.
“약속할게요. 절대 안 웃고 안 놀려요.”
제시카는 트렁크를 오픈한 후에 그 안에서 꽤 큼지막한 가방을 꺼냈다.
“안에 있는 게 다 복장들이에요?”
“응. 오늘 총 10가지 이상의 컨셉을 찍을 거야. 그러니까 기준쌤은 엄청 힘들 준비 해야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녀는 패딩 지퍼를 쭈욱 내렸다.
하악.
모텔에서 처음 상대방의 나체를 볼 때와 비슷한 기분이다. “오빠, 잠깐 뒤돌아줄래?” “이제 준비됐어. 봐도 돼...” 그리곤 마치 자신이 나를 위한 선물인 것처럼 날씬한 몸매를 부끄럽게 보여준다.
지금이 딱 그런 기분이다.
나는 코스프레라는 걸 처음 보는 입장에서 냉철한 눈으로 품평을 해보겠다고 생각했다.
신장 154cm, 체중은 40kg 초반대 예상, 인형같은 얼굴에 노란머리, 완벽한 슬래머에 A컵.
두둥.
롱패딩이 완전히 벗겨졌다.
아? 코스프레라는 게 이런건가.
제시카는 수영복같은 걸 입고 있었다. 꼭지가 있어야할 부분에는 별 모양의 장식품이 달려있었고 가슴끈이 쭉 내려가서 주요부위들을 골고루 가리는 느낌이었다. 끈 비키니였기에 당연히 엉덩이는 그대로 드러난다. 자칫 요염한 자세를 하게 되면 음모며 사타구니가 훤히 다 보일 것 같은 아슬아슬한 복장이다.
어떤 캐릭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 눈에는 그 어떤 캐릭터보다도 제시카가 예쁠것만 같았다. 물론 빈유지만.
만찢녀라고 하지 않나. 만화를 찢고 나온 여자. 눈호강도 이런 눈호강이 없다. 물론 빈유.
“계, 계속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볼 거야?”
제시카는 자동차 트렁크에 롱패딩을 내려놓고 커다란 가방을 내게 던졌다.
“빨리 와요. 시간대별로 찍을 사진들이 다 달라요.”
성큼성큼 걸어가는 제시카. 주차장에 있던 수많은 남성들의 시선이 제시카에게 가서 꽂혔다.
그중에는 여자친구와 함께 온 남자들도 있었다.
“오빠, 지금 저 여자 보는 거야?”
“아, 아니... 내가 언제... 야! 저 봐라! 미친 여잔가봐. 이 날씨에 수영복이 말이 되냐고...”
“하, 진짜. 어이없네. 방금 그런 눈빛 아니었거든?”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당당하게 걷는 제시카. 하긴 저렇게 생겼으면 그래도 되긴 해.
나는 씩 웃으면서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놀이공원에 입장하자 사람들이 나와 제시카를 보며 웅성거렸다.
“뭐지? 연예인인가? 뒤에 사진기사도 있어.”
“저거 코스프레잖아. 나 저 캐릭터 인터넷에서 봤어. 근데 진짜 잘 어울린다.”
“엄청 예쁜데? 얼굴이 주먹만해.”
“뒤에 따라오는 남자도 엄청 잘생겼다. 둘이 유닛인가? 매니저나 사진기사치곤 너무 잘생겼는데.”
“둘이 사귀는거만 아니면 확 대시해버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웅성거림도 잦아들었다. 사람들은 각자 놀기 바쁘고 남의 일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법이다. 막말로 제시카가 유명 연예인도 아니니 몰려들 이유도 없는 거다.
제시카는 가방에서 웬 플라스틱 장갑과 헤드기어를 꺼내서 착용했다. 아, 저런 캐릭터구나. 대체 어떤 애니메이션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 캐릭터가 비키니 입고 건틀렛차고 헤드기어 쓰고 악당이랑 싸우는 내용인가보다. 그런가보다. 나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제시카를 위해 눈 딱 감고 촬영을 시작했다.
찰칵 찰칵
공원을 등지고 자세를 잡는 제시카. 그 외에도 놀이공원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중세풍의 건물들 앞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이 맛에 놀이공원에서 코스플레이하지. 얘기를 들어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은 포토샵으로 제거를 한다고 한다.
근데 뭔가 엉성한데. 자세가.
“제시카쌤!”
나는 자세를 잡고 있는 제시카에게 다가가서 냉철한 시선으로서의 조언을 해줬다.
“엉덩이는 살짝 뒤로 빼고. 응. 더요, 더. 좋아. 그리고 손을 올려서 머리카락을 귀뒤로 넘겨볼까요? 이거 좋은데요? 잠깐만 있어봐요. 이대로 찍을테니까.”
찰칵
꽤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 같다.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자 제시카도 흡족했는지 만연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역시 내가 사람 잘 봤지! 기준쌤, 진짜 잘하는거 같아요. 이참에 내 전속 사진기사가 되어주는 건 어때요?”
“... 그건 좀...”
“히히! 장난이에요. 아, 근데 나 발 아퍼... 다음 장소까지 목마 태워줭.”
“목마는 좀 그렇고 엎혀요.”
“엎히면 엉덩이 벌어진단 말양... 그럼 제시카의 골짜기가 전부 드러날 거라고.”
“아... 알겠어요.”
제시카의 겨드랑이를 잡고 내 머리 위로 올렸다. 솜털처럼 가벼운 그녀다.
내가 올려주자 그녀는 꺄륵거리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
“근데 오늘 사람 진짜 많다아~ 나는 무서운거 못 타는데 이런거 좋아하는 사람들 엄청 많더라고요.”
“무서운걸 못타요?”
“네, 높은데서 떨어지는 막 그런거. 으휴.”
그렇게 잠시 잡담을 하면서 걷고 있는데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혹시 사진 찍어도 되나요?”
“네? 아, 제시카쌤. 사진 찍자는데요? 내려와야 할 듯?”
“아뇨. 지금 딱 이 상태로 찍고 싶습니다. 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남자는 내게 명함을 보여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