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19. 매출 축하해요
* * *
PT룸에서 나왔을 때는 40분이나 지나 있었다.
정규 수업 시간은 50분이고 스텝 수업 시간이 40분이기에 이미 수업 시간은 끝난 거다.
붉게 달아오른 신예인의 얼굴, 엉망진창이 된 그녀의 머릿결과 메이크업. 꽤 오랜 시간이 걸려 나왔다는 점에서 제시카는 내게 따봉을 올려줬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회원님.”
“아, 네... 근데 저 일단 옷을 좀 갈아입고 와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아, 그리고 이거...”
신예인은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서 건네줬다.
“쌤, 원하는만큼 긁어도 되요.”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카드를 받아들었다. 내가 카드를 받자마자 신예인은 후다닥 여자탈의실로 들어갔다.
원하는만큼이라고? 시발, 억대로 긁어버릴까?
내가 카드를 들고 사무실로 향하자 제시카가가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했다.
“얼마 하기로 했어요?”
“음. 백지수표같은 느낌이랄까. 제가 원하는만큼 긁으라던데요.”
“헐~ 대박! 진짜 짱인데요, 그 회원님. 엄청 만족했나봐요.”
“다 제시카쌤 덕분이에요. PT룸도 그렇고.”
“섹스도 그렇고.”
“아닛. 무슨 말씀을...”
“크큭. 날 속일 생각일랑 접어두시어요. 끝까지 다 한 거예요?”
제시카는 다 알고있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하여튼 엄청 개방적인 여자다.
“아뇨. 손가락만 좀 넣었어요.”
입에도 한발 싸줬지만, 이 정도만 얘기해둘까.
“흐흥. 아직 삽입에 대한 판타지는 남아있는 거로군. 잘했어요. 그렇게 줄 듯 말 듯 다 주진 말라고요. 그나저나 기준쌤의 핸드잡이 만족스러웠나보네. 실력이 좋은걸로.”
“하하...”
당연하지. 나 몽마학원 수석합격자야!
“이번 일에 대한 보답은 언젠가 받겠어요.”
“감사합니다. 뭐든 말씀만 하시면 다 해드릴게요.”
“후훗. 뭐, 야한 부탁할거 아니니까 너무 기대하지는 마시고.”
이 빈유가 뭐라는 거야.
다 들켰네.
“근데 얼마를 긁어야 할까요?”
“음. 첫등록이니까 너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긁어요. 솔직히 말이 백지수표지. 트레이너가 인성 확인하는 차원이니까. 한 300 정도? 그래야 빨리 수업 돌리고 재등록하라고 하죠.”
“300이요. 그게 좋겠네요.”
“아니면 또 이런 방법이 있어요. 업그레이드라고. 이번 달 말쯤에 회원님한테 이렇게 소개해요. 300에 35회 진행해드리는건데 만약 500으로 올리시면 65회로 업그레이드 해드리겠다.”
“아, 그런 방법도 있겠네요. 그럼 처음에 500 긁어버리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부담이 덜하겠어요.”
“바로 그거에요.”
확실히 경험자는 다르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300만원에 35세션을 긁었다. 이 금액도 팀장가격으로 받은 걸로, 기존보다 100만원이 추가된 금액이다. 양아치같긴 하지만, 이렇게 해도 신예인은 별 말을 하지 않을 거다.
사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온 신예인을 상담실에 앉혔다.
“여기 300만원 결제했고 영수증 있습니다. 회원님한테 필요한 세션인 35회를 기준으로 결제했습니다.”
“300만원이요? 더 하셔도 되는데...”
“에이, 그래도 회원님이 필요한 세션보다 더 많은 세션을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세션을 다 채우고도 혼자서 운동하기 어렵다 싶으시면 그때 다시 재등록을 하는 방식으로 하세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앞으로 수업할 때 쭉 PT룸에서 해주시는거죠? 수업 효과가 좋은거 같아요.”
나는 그 말에는 고개를 저었다. 회원의 니즈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강건하게 내 페이스에 맞추게끔 유도한다.
“회원님. 언제까지 마사지만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트레이너지 마사지사가 아니니까요. 근데 제가 시키는 미션 잘하시면 PT룸 마사지 도와드릴게요.”
“미션이요?”
나는 그녀에게 운동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내가 어젯밤에 작성한 미션 항목도 보여줬다.
“미션은 총 다섯 개 정도가 있습니다. 원하는 몸무게 달성. 식단을 잘 지켰는지. 운동은 얼마나 성실하게 나왔는지. 웨이트 무게는 얼마나 늘어났는지. 약속시간을 잘 지켰는지. 이 다섯가지 미션을 달성할 때마다 동기부여 차원에서 마사지 해드릴게요.”
“네. 알겠어요. 그럼 다섯 개 다 완료하면 적어도 한달에 다섯 번은 PT룸 갈 수 있는 거네요?”
“네. 이론상으로는 그렇습니다.”
“알겠어요. 여기 서명하면 되요?”
“넵. 여기 체크한 곳에 전부 서명하시면 됩니다.”
계약서에 전부 서명한 신예인은 날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쌤.”
“네?”
“오늘 진짜 좋았어요. 이렇게 기분 좋았던 적은 처음이었어요.”
“아, 예... 뭐, 나름 열심히 했습니다.”
“혹시 식사를 대접해도 될까요?”
“네?”
“제가 이번주말부터 다음주 수요일까지는 비행이 잡혀서 그런데... 오늘이나 내일 중에 일 끝나실 때 맞춰서 밥 사드릴게요.”
그날, 아주 제대로 뽕을 뽑아보자는 소리로 들리네.
아마 내 대물을 보고 지금쯤 사타구니가 후끈후끈할 거다. 그 커다란 걸 자기 보지에 집어넣는 상상만해도 전신이 떨려올 거다.
하루 날 잡아서 밤새도록 섹스만 해? 그럼 코인이 얼마야... 팬사인회를 위한 준비도 하고 채널 상장을 위한 코인을 모으는데 큰 도움이 될 거다.
나는 신예인의 얼굴을 한번 훑었다.
예쁘고 깔끔한 얼굴. 승무원이라 그런지 키도 크고 몸매도 좋다. 그리고 돈도 많다. 일시불로 300을 긁고도 500을 긁으라고 나무라는 그녀니까.
대어도 이런 대어가 없지. 표면만 놓고보면 잡는 게 확실히 이득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회원님. 저는 이 센터에 최근에 들어왔습니다. 따라서 퇴근 시간에 맞춰서 퇴근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공부도 해야하고 운동도 해야하거든요. 제가 좀 여유로워지면 그때 식사해요.”
신예인은 내 말을 수긍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대신 꼭 다음에 식사하기에요.”
“물론이죠.”
그 전까지 확실히 달아오르게 한 후에 먹을 생각이다.
자주 먹는 떡은 그렇게 맛있지 않다. 가끔 별미로 먹어줘야 개꿀맛이지. 달아오른만큼 시청률도 높아질 것이다.
하자는대로 다 해주면 나중에는 그게 권리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딱 이 정도의 선을 유지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그럼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음주 수요일 이후에 스케줄 잡을게요.”
“네. 감사합니다.”
감사할건 난데 오히려 인사를 받고 있다. 이게 트레이너라는 직업의 현주소다. 밖에서는 욕 먹고 손가락질 당해도 결국 선생님은 선생님.
나는 그녀를 문 앞까지 마중하고 다시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어느새 인포데스크에 모인 세 여자가 내게 박수를 쳐줬다.
“기준쌤, 첫 매출 축하해요!”
“축하해요, 기준쌤!”
“히히히. 기준쌤 짱이에요!”
어느새 사무실 밖으로 나온 유성목도 맞장구쳤다.
“우와! 결국 등록한 거야? 300? 캬... 어떻게 출근 하루만에 매출을 찍어버리냐. 역시 내가 직원 하나는 잘 뽑았다. 안 그래, 지아팀장?”
“아, 예, 뭐...”
나는 이쯤에서 최지아의 기를 살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 지아팀장님 덕분입니다. 어제 엄청 알려주셨거든요.”
“오, 그래그래. 지아팀장도 대단해. 이러다 최지아팀이 1등하겠어?”
“지우쌤도 오늘 소개건으로 매출 올릴 예정입니다.”
“뭐, 지우쌤도? 이야~ 잘 나가네? 근데 누가 소개해준 거야?”
“그것도 기준쌤이 소개해준 거예요.”
유성목은 자기 귀를 의심하는 제스쳐로 손가락으로 귀를 후벼팠다.
“뭐? 내가 잘못 들은거 아니지? 그럼 하루만에 팀 매출 2건을 올린 거잖아. 그것도 신입이. 키야~ 대단한데.”
마침 복도를 따라 이소연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 저기 오네요. 누나~”
내가 손을 흔들자 이소연이 끝쪽에서부터 날 발견하고 같이 손을 흔들었다.
이소연은 오늘 꽤 차려입은 티를 냈다. 시스루 소매에 몸매가 드러나는 타이트 원피스. 가슴이 돋보이게 쇄골 가운데 부분에 타원형 구멍이 뚫려 있어서 골이 드러났다.
유성목은 이소연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으이그... 유매니저님 육덕 스타일만 보면 침 흘리는 버릇 못 고치셨네요.”
“아내분이 보시면 경을 칠 노릇... 쯧쯧...”
“야, 야! 내가 언제 침을 흘렸다고 그래. 스읍 응? 이게 왜... 야, 난 들어가본다. 매출 잘해.”
나는 들어오는 이소연의 등을 끌어안 듯 안으며 상담실로 데려갔다.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왔어? 남자들 다 눈 돌아가잖아.”
“뭐, 뭔 소리야. 아무것도 안 하고 왔는데.”
“이쪽은 지우쌤이야. 앞으로 누나 운동 봐줄 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회원님.”
역시.
이소연은 한지우의 스타일을 보고 한눈에 뻑이 가버렸다.
옷 안쪽으로 보이는 선명한 복근. 걸크러쉬를 상징하는 화끈한 단발. 여자들의 동경의 대상.
“헐, 진짜 예쁘세요...”
“고맙습니다. 회원님도 엄청 예쁘세요.”
“자, 그럼 저는 이쯤에서 빠질게요. 꼭 소개팅 주선해주는거 같네, 분위기가.”
“뭐, 뭐래는 거야.”
한지우에게 짧게 목례를 하고 상담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제시카가 쪼르르 달려와서 분기탱천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가져간다더니! 도움은 내가 주고 소개는 지우쌤이 가져가다니!”
“아참. 이런.”
“아참? 이러언? 흑... 너무해. 제시카는 오늘 일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미안해요. 그래도 부탁은 꼭 들어줄게요.”
“참내. 됐습니다. 어차피 혼자 살고 혼자 가는 인생... 고독하구만. 거 담배에 불좀 붙여봐라.”
제시카는 손가락 담배를 입에 가져다 물었고 나는 라이터로 불을 켜주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그녀가 피식 웃으면서 내 어깨를 토닥여줬다. 그녀가 내 어깨를 토닥여주려면 까치발을 들고도 모자라서 폴짝 뛰어야 했다.
“이씽. 되는 일이 없네.”
크크크. 졸귀탱이네. 선임이고 뭐고 나도 모르게 제시카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았다. 제시카는 익숙한 상황인지 내 무례한 행동에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30분 후.
“지우쌤, 매출 축하해요!”
최지아, 나, 제시카는 인포데스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들어오는 한지우를 향해 박수를 쳐줬다.
그녀는 감사인사를 꾸벅하며 (특히 나를 바라보며) 고맙다고 말했다.
사무실에는 ‘매출 현황판’이라는 게 존재했다. 이정석과 최지아 그리고 김준 팀장의 세 개 팀으로 나뉘어진 오후 3개 팀에는 각각의 매출이 적혀있었다. 최지아는 0이라고 써있는 팀 매출 비고에 500만원을 적어넣었다.
유성목은 최지아팀의 매출로 인해 센터 분위기가 올라가자 중간 미팅을 소집했다.
그때였다. 아직까지도 출근을 하지 않고 있던 이정석이 계약서를 들고 나타났다.
“뭐야, 왜 지금 출근해?”
유성목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런데 유성목도 눈치가 빨라서 이정석이 들고있는 계약서를 번갈아 쳐다봤다.
“매니저님도 참. 아직도 절 모르시나요? 제가 밖에서 놀고 왔겠어요?”
“어, 놀고 온거 같은데?”
“네, 맞습니다. 골프 좀 치고 왔습니다. 골프도 치고 계약서도 쓰고.”
그는 성큼성큼 걸어서 칠판 앞에 서 있던 최지아를 지나쳤다. 그러더니 자기 팀 매출란에 적혀 있는 4백만이라는 숫자를 지우고 1000만원을 적어넣었다.
“700만원 짜리 계약섭니다. 누구랑은 다르게 현장에서 뛴 값어치죠.”
“대체 누구를..?”
“저번에 말씀드렸던 전준호 회장님 기억하십니까?”
“응. 그 돈 많은 사람? 근데 와이프가 말려서 못한다고 했잖아.”
“그 와이프를 제가 설득하고 오는 길입니다.”
그리곤 모든 사람이 다 들릴 얘기를 굳이 귓속말로 했다.
“아내분이 외로움을 많이 타시더라고요.”
최지아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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