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16. 몇 번째 가는 거야
* * *
한지우는 죽기 전의 주마등을 보듯 과거가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절망적이었던 과거. 부모님의 이혼, 친구의 배신. 괴롭고 외로울 때마다 술을 마시고 정처없이 여행을 떠나면 어김없이 몸에 문신을 하나씩 새기고 돌아왔다.
꾸깃.
그런데 그런 과거가 잔인할 정도로 빠르게 구겨졌다.
엉망진창이 될 정도로 찌르고 들어오는 기준의 흉기에 꼬리뼈에서부터 시작해서 골까지 울려댔다.
즈르륵
쾌감에 젖은 구멍에서 고추를 뽑아내는 소리. 기다란 것이 질의 윗벽을 드륵 긁고 지나가면 그것도 그것대로 절정에 이르렀다.
“하윽!”
그러다.
퍽!
때리듯이 쳐올리는 허리. 공성추로 성문을 뽀개듯이 아랫배 깊숙이 자궁을 때렸다.
‘아파. 죽을 정도로 아파. 근데... 기분이 너무 좋아. 이 사람은... 이 사람은...’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몰랐다. 아픈데 기분이 좋다? 기준이 자신의 취향까지 바꿔버린 걸까.
기준은 그 행위를 즐기는 듯했다. 자신의 기다랗고 커다란 것이 좁은 통로를 지나가는 것을 내려다보며 희열감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뿌리 끝까지 뽑은 다음에 그대로 안까지 쳐넣는 행위를 말이다.
신체적인 학대.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극락 그 자체.
과거를 모두 잊게 만들 정도의 쾌감에 눈을 질끈 감게 된다.
“하윽! 큭!”
입술을 질끈 깨물어서 혈액의 비릿함이 입안 가득 스며들었다.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거 같았다. 아파서 정신을 잃는 걸 걱정하는 게 아니다. 몇 번이고 가버려서 기절할까봐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이 자극의 1분 1초도 놓치고 싶지 않아.’
“지우쌤한테 엄청 야한 소리 나요.”
과격한 하반신과는 다르게 전과 다름없이 다정한 목소리.
‘안 돼. 지금은 제발. 제발 날 더 자극하는 소리를 하지말아줘. 미칠거 같아.’
쪽쪽쪽.
기준은 한지우의 문신을 하나씩 찾아가서 입술을 맞추기 시작했다.
‘아...’
고개를 뒤로 젖히고 기쁨에 몸을 떨었다.
‘보상. 내가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을 주는 것 같다. 이 사람은 내 과거를 알아도 아무렇지 않게 내게 손을 내밀것만 같아.’
몇 번째일까.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버린 게.
한지우에게는 이 시간이 아주 짧게 느껴졌다.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하고 있으니까.
*
여덟 번이다.
한지우는 지금까지 총 여덟 번 숨을 멎었다가 돌아왔다.
처음에는 위험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지만, 뜨거운 숨을 내뱉을 때는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역시 한지우는 기뻐할 때 예쁘다. 묵묵하고 차가운 표정보다 이렇게 쾌감에 젖은 표정이 훨씬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상체를 들어올린 한지우와 마주보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그녀가 스스로 허리를 움직였다. 딱 봐도 그건 의식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쾌감을 느끼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찌걱 찌걱
앞뒤로 흔드는 허리. 우리는 서로 내 커다랗고 딱딱한 게 한지우의 부드러운 보지에 파묻히는 모습을 구경했다.
“엄청 야해요. 소리도...”
“하, 기준쌤. 나 진짜 미칠거 같아요... 윽! 앗!”
갑자기 또 내 몸통을 끌어안고 더듬었다. 숨을 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러다 다시 돌아와서 내 얼굴을 마주봤다.
야릇하게 뜬 눈. 벌어진 입술. 나는 주저할 것 없이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서로 꽉 끌어안은 채 허리는 움직이지 않고 오로지 서로의 입술만 탐하고 있다. 질척이는 타액이 들락날락거릴 때마다 질내벽이 고추를 꽉 조였다 풀기를 반복했다.
나는 천천히 그녀의 등을 쓸어내렸다. 목덜미에서부터 떨어지는 라인이 아주 매끄럽다. 거기에 땀까지 흘려서 미끄덩하기도 했다. 타투가 그려진 부위는 감촉이 다르다. 나는 타투를 따라서 손끝을 돌렸다. 지금까지 느껴본 바로는 한지우는 타투 주변을 만질 때 더 잘 느꼈다.
사악
엉덩이까지 내려간 손. 운동으로 다져진 애플힙은 톡 치면 터질 것처럼 탄력적으로 내 손끝을 튕겨댔다.
이게 운동한 여자의 엉덩이. 나는 그 엉덩이를 양손으로 꽉 쥐었다.
내벽이 다시금 고추를 휘감듯 꽉 쥐어댄다. 나도 모르게 사정감이 물씬 올라왔다.
“크읏!”
“싸줘요. 기준 씨. 안에다 잔뜨으흑!”
불알까지 차오른 정액이 길을 터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참을 수 있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지우의 엉덩이를 잡은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코알라 새끼처럼 매달린 한지우는 내가 마지막 사정을 할거라는 걸 알아차리고 내 입술에 자기 입술을 포갰다.
즈릇 보지에서 고추가 기다랗게 뽑힌다. 그리고 다시 쿵하고 떨어지듯 쳐올렸다.
그와 동시에 쌓아뒀던 정액을 질펀하게 토정했다.
“하악!”
한지우는 정신을 잃었는지 뒤로 자빠져버렸다. 그와 동시에 기다란 고추도 빠졌다.
즈륵! 한 차례 사정이 더 남아있었다. 분출된 정액은 쓰러진 한지우의 얼굴에 그대로 후두득하고 떨어졌다.
“하악... 하악...”
나조차도 격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극심한 운동이었다. 하지만 해야할 일은 해야했다. 침대 옆에 놓인 테이블에서 물티슈를 뽑아 그녀의 얼굴에 묻은 정액을 닦아줬다. 한지우는 정신을 차렸는지 얼굴을 닦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형어할 수 없을 정도로 야릇한 눈길이다.
내가 그녀의 옆에 눕자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와락 껴안았다.
“나 내일 출근 못하면 책임져요.”
“다리 후들거려요?”
“네. 진짜아. 너무해요. 엄청 아팠다고요.”
살포시 솜주먹 세례를 하는 한지우. 그 전까지의 츤츤거렸던 성격이 조금 유해졌다고 해야할까.
그녀가 팔 한쪽을 들어올려 내게 보여줬다. 타투가 하나도 없는 깨끗한 팔이었다.
“타투 하나 더 하고 싶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 이미 충분하지 않나요?”
나는 한지우의 옆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어 말했다.
“이미 충분히 아름다워요.”
“앗. 으큭.”
내 말을 들은 한지우는 내 가슴폭에 얼굴을 파묻었다.
“말 너무 예쁘게 해. 기준쌤, 내일 내 얼굴 볼 수 있겠어요?”
“왜 그런 질문을 해요?”
“어쨌거나 몸을 섞은 사이잖아요. 나는 아직 남자를 만나서 사귈 자신이 없어서.”
오늘 밤을 쿨하게 묻어놓자는 제안을 이런 식으로 하는 건가. 그건 나 역시 원하던 바였다.
“저는 상관없어요. 그렇다고 오늘 밤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는 없겠지만.”
“그건 나도 그래요. 고마워요, 이런 날 이해해줘서.”
“먼저 씻을래요?”
“히힛, 네. 얼굴에 찐득한 게 잔뜩 묻어갖고.”
그녀는 내게 원망의 눈길을 보내곤 화장실로 향했다. 탄력있는 엉덩이가 예쁘게 씰룩였다. 내가 저기에 박았다니. 꿀꺽. 다음에 한지우랑 할 때는 꼭 뒤로도 해봐야지. 음, 엎드린 상태로 박아도 맛있겠다. 벽잡고 해도 좋겠는데. 각선미가 예쁘니까 일어서서. 흠... 아무래도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섹스해야 겠다.
나에 대한 호감도는 이미 최상이다. 사귀자고는 안 했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얘기도 없었으니까. 하긴 내 좆맛을 보고 나와의 섹스를 엄금하는 짓은 하지 않겠지.
속으로 벨라를 불렀다.
벨라. 오늘 방송 매출 어땠어?
기준! 기준! 내 영웅, 내 선수. 내 보물. 있잖아. 오늘 섹서타임은 완전 성황리에 종료됐어. 너가 섹스트림 신인 1위에 등극했어! 지난번에 이소연 때 30만 코인을 벌었는데 오늘은 어땠는지 알아? 무려 200만 코인이야!
엄청 신나서 속사포 랩을 하는 벨라.
뭐, 뭐? 200만 코인? 진짜야?
어! 아우, 정말 사랑스러워 죽겠다니까. 악신들이 한지우라는 여자를 엄청 좋아해. 있지. 악마나 악신들은 타투가 없거든. 어쨌거나 우리의 몸은 유일신의 소유니까.
유일신? 아니, 지들끼리 악신이니 천신이니 부르면서 유일신은 또 웬 말장난이야? 아니지.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타투가 엄청 끌렸나봐. 특히 하이라이트는 네가 타투에 키스할 때였어. 그때는 진짜 메르세데스도 자위 도중에 가버렸다니까. 아무튼 잘했어. 이게 다 내 애널에 한 번 싸고 난 덕분인가! 다음에도 거사 전에 제사 지내듯 내 애널을 이용하라, 인간이여.
크크크. 오케이.
음음. 그러면 어떡할래? 꽤 많은 코인이 들어왔잖아.
나는 채널 상장을 생각 중이야. 천신들도 볼 수 있는 유니버셜 섹스트림에 가입하려고.
오... 그건 나도 동감이야. 근데 유니버셜 섹스트림의 진입장벽이 생각보다 높은건 알고 있지?
응. 최고 시청자 2만 악신 이상. 300만 코인도 지불해야되고.
그럼 그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서 뭘 하고 싶은데?
섹스트림에 있는 유명한 환생자들. 그들의 방송을 보면 대게 시청자 초대석을 많이 한다. 유명하 악신을 초청해서 섹스를 하는 거다.
그러나 내 방송은 다르다. 스토리텔링이 있는 컨셉. 노템 컨셉인 만큼 내추럴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 컨셉을 유지하면서도 시청자들의 니즈를 만족시켜줄수 있는 방법을 착안했다.
팬사인회를 한 번 열어보려고. 장소는 우리집.
팬사인회? 네 자취방에서?
응. 찾아오는 악신들한테 사인해주는 거야.
음. 그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은데. 오고싶은 시청자들이 있을까?
원래 진성 덕후들은 떡잎부터 입덕하는 법이야. 몇 명 오지 않아도 괜찮아. 그걸 보여주기만 해도 돼. 그리고 나잖아. 찾아온 사람들은 반드시 만족하고 돌아갈 거야.
음음. 그럼 널 믿어볼게. 지금까지도 네가 하자는대로 해서 다 잘 됐으니까. 팬사인회을 개최. 악신들이 현신할 때 모셔와야 하니까 100만 코인 정도는 지불할 각오를 해야해.
괜찮아. 그거 이상으로 다시 돌려받을 수 있으니까.
오케이. 오늘도 수고했어.
응. 수고.
벨라는 저번 교신 때보다 훨씬 목소리가 좋아졌다. 내가 잘 돼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안풀렸던 일이 풀려서일까. 뭐가 됐든 내 매니저가 기분이 나아졌다는 건 좋은 소식이다.
화장실에서 한지우가 샤워하는 소리가 잔잔하게 들렸다. 차박차박거리는 기분 좋은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그녀의 아리따운 실루엣이 머릿속에 반사적으로 그려졌다.
하.
연떡이 보약이라고는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어쨌거나 내일부터 출근해서 얼굴 마주할 사람이다. 더 이상 질펀하게 섹스를 했다간 헤어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는 법.
나는 옷을 챙겨입고 한지우보다 먼저 모텔을 나왔다.
*
땅거미가 낮게 깔린 한강 둔치에서 한 남자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지포 라이터를 딸칵거리며 열자 불빛이 한곳으로 모였고 얼굴이 비쳤다. 이정석이다. 이정석은 깊게 담배를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소위 담배 피는 것을 한숨 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지 않나. 지금의 이정석이 딱 그런 심정이었다.
“씨발.”
지금까지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직원은 없었다. 그리고 그 직원이 자신의 과거를 다 알고 있었다. 이 약점은 치명적이었다.
또 한가지. 그 새끼가 자기 여자친구도 끼어있는 예쁜 여자들 무리에서 히히덕거리는 모습이 아니꼬왔다. 질투심 비슷한 것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주차장에 차가 한 대 더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이정석은 황급히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쪽 빨고 손가락으로 톡톡치고 발밑으로 뭉개서 껐다.
“오셨습니까!”
차에서 내리는 사람을 향해 깍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최용수. BD짐의 사장이자 연청그룹의 이사. 몸집이 곰같이 크고 힘이 장사다. 양옆에는 수행원이 뒷짐을 지고 서 있다. 이정석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땀을 뻘뻘 흘렸다.
“담배.”
“예, 형님.”
최용수의 표정이 썩 좋지 않다. 원래라면 이정석에게 살갑게 대하면서 인사했을 그였지만, 오늘은 다르다. 주인이 개를 부르는 경우는 있어도 개가 주인을 부르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개가 주인을 부른다고 주인이 안 나오기도 뭐 한 상황이다. 자칫 일이 수틀러지면 여기서 이정석을 내칠 생각도 하고 있었다.
“용건이 뭐야?”
최용수는 입에 담배를 물고 재킷을 벗었다. 수행원이 따라붙어서 벗은 옷을 가지런히 팔에 감는다.
이정석은 생각이 많아졌다. 눈동자가 양옆으로 굴렀고 수행원들을 포함한 이 사나운 분위기에 어쩔줄 몰라했다.
‘크윽! 이게 다 그 성기준이라는 새끼 때문이잖아! 난 잘못한거 없어!’
하지만 이정석은 큰 결단을 내려야했다.
그는 최용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형님! 제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뭐가? 무슨 일인지 알아듣게 설명해야 할거 아냐.”
“누군가 제 과거를 알았습니다. 철저하게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때 그 사건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 그 사건이라면... 들키면 너부터 죽인다고 했지, 아마.”
“예, 형님! 절 죽여주십시오.”
최용수는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입에서 뽑았다. 일이 복잡해졌다. 비단 이정석에게만 뭐라고 할 상황도 아닌 거다. 머리를 차갑게 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차례였다.
‘누굴까... 어느 놈이 뒷조사를 한단 말인가.’
“그 놈이 너한테 직접 그 사건을 언급했나?”
“아닙니다. 하지만 뉘앙스로 봤을 때는 이미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이정석은 괜한 지레짐작을 할 놈이 아니다. 특히 이렇게 위중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어떤 미친놈이 증거도 없는 일을 나불댈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소리다.
‘이 말이 진실이라면 경쟁조직의 스파이나 우리 조직 프락치놈이겠지. 달건이 생활 몇 년찬데 그따위 놈한테 놀아나겠는가. 내 사냥개는 협박할 수 있어도 나는 협박 못한다. 어차피 사냥개 새끼는 사냥이 끝나면 길에다 버려야 되는데 내가 사사로운 정이 많았구나. 이런 놈한테 내 딸을 준다고 약속했으니...’
“정석아.”
“네, 형님.”
“내가 일전에 스승님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적이 있다. 토사구팽. 토끼를 다 잡은 사냥개는 버림 받는다. 역사적으로도 그런 전례가 많았다.”
이정석은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잔뜩 긴장했다.
“혀, 형님...”
“푸핫! 그렇게 너무 겁 먹지 말아라. 내가 스승님한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었으니까.”
“저, 정말이십니까?”
“그럼.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 근데 그 질문을 듣고 내가 한 말이 뭐였는지 아냐?”
“... 모르겠습니다.”
“그럼 역사적으로 그 사냥개 중에서 살아남은 놈은 없습니까?”
섬칫. 이정석은 순간 차가웠던 혈액이 뜨겁게 변하는 게 느껴졌다.
“짓밟아라.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밑바닥에 있는 놈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