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9. 분위기 좋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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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초부터 매출을 팍팍 치고 올라가는 게 진정 잘하는 트레이너라고 할 수 있다. 진짜 인기있는 트레이너는 저번달 매출을 쟁여뒀다가 다음 달이 시작하자마자 바로 매출 스타트를 끊는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영업직의 모토가 되는 말이다.
BD짐 강서점의 에이스라고 불리는 이정석은 당연히 그 잘나가는 트레이너들 중 하나였다. 따스운 바람이 부는 9월. 여름이 끝나고 어쩌면 금방 있을 추석 때문에 모두가 지갑을 굳히는 와중에 전지점을 통틀어 가장 먼저 매출 스타트를 끊었다.
계약서를 들고 사무실 쪽으로 성큼성큼 걸으며 최지아를 향해 손으로 V 표시를 한다.
사무실 안에 들어가자 유성목이 박수를 치며 그를 맞이했다.
“역시 우리 지점 에이스. 네 덕에 내 어깨가 올라간다.”
“매니저님 기뻐하시긴 이릅니다. 오늘 밤에 회원 하나 더 끊을 생각이니까요.”
“응? 누구? 계획표에는 없었잖아.”
“그 뭐야. 우리 센터 관종 있잖아요. 맨날 딱 달라붙는 옷 입고 거울 앞에서 셀카 찍는.”
“아. 그 여자. 음... 이름이 신예인이었나? 그 스튜어디스?”
“네, 맞아요. 어? 근데 어떻게 매니저님이 그 회원을 알아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성목을 바라보는 이정석. 뭔가 불길한 예감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유성목도 이정석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 씨. 그러게 왜 계획서에 안 적어놨어. 임자 없는줄 알고 신입한테 던져줬잖아.”
“뭐라고요? 신입 누구요? 설마 그 성기준? 좆준새끼? 이번에 지아네 팀 들어간 좆준한테 준 거예요? 예?”
“좆좆 하지 말아라. 여기 여직원들도 있는데.”
“아니, 대답을 하세요. 진짜 그 새끼한테 준 거예요? 와, 진짜 이거 뒤통수 맞은 느낌인데?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네. 아주 그냥.”
의자에 앉으면서 방금 등록시킨 계약서를 책상에 던진다.
선을 넘는 모습에 유성목도 화가 났지만, 오늘 매출 스타트를 끊은 에이스에게 꼽을 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부드럽게 말했다.
“이 새끼야. 계획서에 적어야지. 계획서에. 그리고 어? 신입이 패기있게 등록해보겠다고 그러는데 양보 해줄수도 있는거 아니냐.”
“신예인이 존나 맛있게 생겼으니까 그러는거 아닙니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남자끼리 배려 좀 합시다.”
“하. 원래 있는 놈들이 더 지랄이라더니 지아는 냅두고 신예인이 눈에 들어오냐?”
“원래 안 먹어본 음식에 호기심이 동하는 법이랍니다. 그나저나 성기준한테 들어갔으면 다시는 PT 등록 안하겠네요.”
“뭐?”
“맞잖아요. 저니까 그 정도 클래스 등록시키지. 핫바리가 뭘 하겠어요. 괜히 수질이나 낮추는 거지.”
“그래도 경험이잖아. 경험.”
“안 되겠다. 구경하러 가야겠어요.”
“야, 야! 너 뭐 다른 짓하면 안 된다? 지아 봐서라도 성기준, 걔 좀 잘 봐줘.”
“매출 인터셉트는 안 할테니 걱정 마십시오.”
이정석은 곧바로 사무실을 빠져나와 인포데스크로 갔다. 마침 수업을 마친 최지아도 인포데스크에서 회원들에게 인사하는 중이었다.
“자기 수업 끝났어?”
“응. 근데요 이정석 팀장님. 근무시간에는 애칭으로 부르지 마시라니까요. 회원들 들으면 어쩌려고. 유매니저님도 뭐라고 하시던데.”
“뭐 어때. 지들이 뭘 어쩔거야 내가 여기 에이슨데. 나 방금 매출하고 왔다? 잘했지.”
“어.”
“왜 또 삐졌어.”
“나 지금 바빠요. 신입쌤 트레이닝 들어간거 봐줘야 되.”
“하, 좆준...”
“그건 또 뭐야.”
“왜, 성기준이니까 좆준 맞잖아.”
“아... 하나도 재미없어.”
최지아의 싸늘한 말에도 이정석은 계속 저질스러운 개그를 뱉어댔다.
옆에서 수건을 개던 인포데스크 직원 김지원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명 사귀는 사이는 맞는데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 이정석은 삼십대라곤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나잇값을 못했고 반면에 최지아는 어른스러웠다.
‘대체 왜 사귀는 거야..? 들어보니까 사귄지 200일 밖에 안 됐다는데. 나 같으면 바로 헤어진다. 하긴 내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긴 하지.’
최지아가 넘사벽 수준으로 예쁘니까 옆에 있는 것만으로 주눅이 들어버리기도 한다.
그런 여자가 이정석같은 놈이랑 사귀는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그나저나 자기 설마 저 자식이 신예인 등록시킬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길고 짧은건 대봐야 알죠.”
“대보긴 뭘 대봐. 댈걸 대. 등록 못 시킨다에 내 커리어 건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세요. 이정석 팀장님은 볼 일 보러 가시죠?”
“아, 예예. 알겠습니다. 그래도 등록 못 시킨다는 건 변치 않거든요. 뭣하면 최지아 팀장님도 뭐 거시던가요.”
“휴. 이 얘기는 그만하자.”
최지아는 연신 기준의 행동을 관찰했다.
저렇게 남자들이 많이 쳐다보고 있는데 주눅 들지 않고 말을 거는 용기.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패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을 이어나가는 방식이나 자연스러운 행동에서 프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처음하는 거라곤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워.’
아무리 여자에 익숙한 남자더라도 저렇듯 능숙할 수 없었다. 기준은 마치 여자를 잘 알고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젠틀하면서도 위트 있었다. 최지아의 입장에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잘생겼어...’
기준은 밝게 웃으면서 서슴없이 가벼운 스킨십을 자주했고 신예인도 그런 손동작들이 싫지만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기준이 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절대 저런 반응이 나올 수 없었다.
“분위기 좋은데?”
최지아의 말에 이정석도 그쪽을 바라봤다. 이어서 얼굴이 험하게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정석 팀장님, 이래도 나랑 내기 하고 싶어요? 우리 신입이 여자 꼬시는 재주가 뛰어난 모양인데.”
“뭘 모르고 하는 말. 저 여자가 성기준을 트레이너로 보겠어? 얼굴 보고 그냥 하룻밤 잠자리 상대 정도로 생각하겠지. 난 아직도 절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좋아. 내기하자.”
“뭐 걸래요?”
“내가 이기면 저번에 한 번 가기로 하고 못 갔던 여행 가자.”
최지아는 그 말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그건... 합의 해서 안 가기로 했잖아.”
아무리 김지원이 수건을 개고 있어도 이런 얘기는 특히 귀에 잘 들어오는 법이다. 목소리를 낮추라고 주의를 줬다.
“우리 사귄지 200일이나 됐는데 아직 여행 한 번도 못 갔잖아. 가끔은 자기가 나 좋아하는지도 의심스러워.”
“내가 마음 준비 되면 가기로 약속했잖아... 사귈 때도 그 얘기로 신경쓰지 않게 하겠다고 했으면서.”
“그니까 내기하자고. 자신 있으면 하는 거지 뭐. 신입한테 거는 기대가 크면 자기도 걸어.”
최지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오케이. 그럼 기준쌤이 신예인 등록시키면 다시는 여행가는 걸로 보채지 말기야.”
“응. 그럼 기한은?”
“3일.”
“크크크. 콜. 여행 일정이나 잡아야겠네.”
이정석은 볼일이 끝났다는 듯 인포데스크를 빠져나왔다. 사무실로 향하는 그의 표정이 심히 어두웠다. 꼭 당장 누구라도 죽이려는 듯한 살기를 눈가에 가득 품었다.
‘시발년, 한번 따먹기 존나 힘드네.’
*
신예인은 가슴이 깊게 파인 검정색 튜브탑에 복부 중간까지 올라오는 타이즈를 입었다. 몸매에 자신있지 않고서는 소화할 수 없는 스타일이다. 얼굴도 이만하면 예쁘장하게 생겼다. 매니저한테 물어보니까 스튜어디스인 모양인데 주변 시선을 꽤 신경쓰는 듯. 이런 여자일수록 자기 옆에 있는 남자 외모를 더 따지는 법이다.
다행히도 신예인은 내 얼굴에 합격점을 준 모양이다. 말을 할 때마다 호의적이고 별 말 안해도 빵빵 터졌다.
신예인과 분위기 좋은 시간을 보내고 전화번호를 교환하는데 성공했다. 느낌이 좋다. 내가 물어보기 전에 그녀가 내게 먼저 번호를 물어봤다.
“그럼 다음에도 뵐게요, 회원님. 문자로 일정 조율해요.”
“네, 쌤. 오늘 봐주셔서 고마웠어요.”
“뭘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뒤도 안돌아보고 인포데스크로 직행했다.
최지아가 밝게 웃으면서 두세 차례 깡총 뛰었다.
“어땠어요? 어땠어요? 분위기 좋던데.”
“하하. 전화번호 교환했고 다음에 또 봐드리기로 했어요.”
“시작 좋네요. 빠른 시일 내로 수업 잡아봐요. 수업 코칭은 제가 내일 봐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내일 바로 스케줄 잡을 생각이에요. 스튜어디스니까 언제 시간이 날지 모르니까요.”
“능숙하시던데요.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거 같았어요.”
“진짜 처음이긴 합니다. 떨려서 죽는줄 알았어요.”
최지아가 손바닥을 보이길래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게 직장인의 마음이라는 건가. 소속감이다. 매출을 통해 팀에 기여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다른 목적으로 들어온건데 시작이 좋아서 재미가 붙는다.
방송쪽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악신 ‘왕자지제’가 당신의 능청스러움에 감탄합니다. 또한 ‘신예인’에게 빨리 대물을 박길 원합니다. 500코인을 후원합니다.]
[악신 ‘고품격 승차감’이 당신의 말솜씨와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보며 잔뜩 흥분했습니다. 20000코인을 후원합니다.]
[악신 ‘눈가리고 아흫’이 이 방송을 ‘스토리텔링이 있는 방송’에 추천했습니다. 100코인을 후원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벨라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이상하네. 악신들이 섹스할 때도 아닌데 방송을 이렇게까지 오래 보는 건 처음있는 일이야.
섹서의 사생활에도 관심이 있다는 건가?
아무래도 악신들끼리 다음 섹스 상대를 놓고 내기를 하는 모양이야.
엥. 가장 유력한 후보가 누군데?
한지우지! 오늘 밤에 단둘이서 운동하기로 했다면서. 다들 네가 여자 꼬시는 능력을 믿고 있다고. 오늘 밤에도 기대에 부응하기를 바라고 있어.
크크. 한지우. 그렇구나. 다들 한지우로 예상하는구나.
섹서타임 할 거야?
음. 시도 해야지. 빨리 코인 땡겨서 할 게 있거든.
그렇구나. 좋아. 이번에도 악신들 많이 모아볼게. 아, 그러고보니 괜찮은 정보가 하나 있어.
뭔데?
고품격 승차감이라는 악신 후원자가 생겼지? 메르세데스라고 하는 악신인데 그 후원자가 채널에서도 유명한 vip야. 악신들 중에서도 꽤 높은 등급의 악신이야.
그으래?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메르세데스가 너한테 협찬 아이템을 하나 제안했는데 오늘 밤에 한지우한테 한번 써볼래?
악마의 아이템에 대한 얘기다.
몽마학원에서 배운 아이템으로는, 상대방을 손쉽게 흥분상태로 만들거나 생각 읽기, 성감대를 찾아주는 것 등이 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거라면 생각나는 아이템이 여럿 생각난다. 한지우처럼 시크한 스타일은 아무래도 공략이 쉽지 않다. 아무리 잘 나가는 픽업 아티스트라도 확신할 수 없는 스타일인 거다.
그래서 난 잔뜩 기대했다. 메르세데스는 대체 어떤 아이템을 내게 협찬하고 싶은 걸까.
주면 좋지. 악신들한테 잔뜩 홍보해주겠어. 어떤 아이템인데?
음. 지금 당장 필요한 아이템? 성능 보니까 너한테 엄청 어울릴거 같은데.
뭔데, 뭔데. 궁금해진다.
대물일수록 좋은 아이템이야. 너한테 딱이지? ‘대물 페로몬초’라고 하는 건데 고추 크기에 비례해서 반경 10m 이내에 페로몬을 뿌리는 건데 내가 한번 맡아봤거든? 완전 뿅가는거 있지. 나, 지렸다?
생각보다 평범한 아이템. 하지만 몽마인 벨라를 뿅가게 만들었다는 건 그만큼 효력이 뒤지게 좋다는 소리겠지.
오호... 천하의 벨라가 뿅갔단 말이지. 그래서 그 뿅간 채로 어디다 풀었으려나? 벨라 뒷구멍은 분명 나한테 귀속됐을텐데.
앞구멍은 장식이니? 그리고 우리 몽마들은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상대해. 네 고추에만 귀속된다지만, 여자의 손을 막지는 못한다고.
하긴.
나는 벨라가 다른 여몽마나 여악신들과 뒹구는 모습을 상상해버렸다. 혹시 메르세데스라는 악신이랑 뒹군거 아니야? 내 촉은 언제나 잘 들어맞던데.
아무튼 아이템 보낼테니까 쓰고싶을 때 써. 쓰는법은 알고있지?
당연하지. 나 수석이야~
오케이, 그럼 수고.
벨라... 어딘가 고민이 있어보이는 말투와 분위기다. 애써 숨기려하지만, 몸을 섞은 사이끼리 숨길 수 있는 게 있을까.
우선 교신을 끊고 아이템을 확인했다. 아이템의 이름이 허공에 뜨는 걸 확인했다. ‘대물 페로몬초’ 효과를 보기 위해선 2시간 전에 사용해야 한다.
센터 오프 시간이 앞으로 1시간 30분 정도 남았으니까 지금 사용해야 했다.
나는 대물 페로몬초를 사용하고 마무리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사무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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