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8. 매출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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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아의 팀은 소위 말하는 비주얼 담당이었다.
이정석이 “왜 남자가 들어가냐”고 물은 이유가 있었다. 나는 4명으로 이뤄진 팀의 청일점이었다. 제각각 예쁘고 몸매 좋은 팀원들.
최지아는 말할 것도 없이 어리고 예쁘다. 사장 빽인지 어쨌는지 23살에 팀장을 달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실력도 좋은 모양이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바스트. B컵 정도. 하지만 그 바스트 크기를 조율해주는 나머지 몸매가 워낙 넘사벽이다.
한지우는 딥다크한 단발 머리에 나름 시크한 매력이 있는 여자였다. 원래는 스노우보딩 강사를 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전체적인 굴곡이 남다르다. 나이는 27살. 어린 팀장이라고 대들지 않고 고분고분 잘 따른다. 스포츠브라 위에 집업을 걸친 형태여서 가슴 크기는 확실치 않다. 근데 작지는 않아 보인다.
그리고 한 명은 제시카. 본명은 비밀인 듯. 나이도 안 알려준다. 미국물 좀 먹고 왔는지 한국말이 어수룩하다. 근데 그 부분이 매력 포인트였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였고 눈이 무슨 얼굴의 절반을 가릴 정도로 컸고 피부는 진성 우윳빛깔, 애기처럼 귀여운 얼굴이다. 미국에서 왔다고 해서 몸매나 얼굴이 이국적이지는 않다. 정석적인 슬렌더 스타일. 가슴은 A컵이다. 이건 빼박이다.
이 세 명의 트레이너가 플로워를 거닐면 운동하던 남자들이 전부 주목한다. 당연하게도 주요 회원층도 남자들로 포진됐다. 예쁜 여자들에게도 상담문의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다. 유유상종이라고 할까. 예쁜 여자가 자기보다 예쁜 여자에게 트레이닝 받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 가운데 내가 있는 거다.
확실히 부담된다. 하지만 부담되는 만큼 섹서로서의 눈도 호강하고. 악신들도 매우 만족한 듯. 저마다 자기가 점찍은 여자들을 외치며 그 여자와 섹스해달라고 후원금을 보냈다. 아무튼 개이득.
첫 타임에 제일 한가한 제시카가 내 안내를 도왔다.
“여기 남자 탈의실. 화장실은 밖에 건물 공용으로 써요. 여자 탈의실은 들어가면 안 돼요. 남자 트레이너가 들어갈 일은 없으니까 신경쓰지 마요.”
혀가 짧은건가. 발음이 시원챦다. 근데 그것도 나름 매력적이다. 말할 때마다 안간힘을 쓰는 듯이 몸을 흔드는것도 꽤나 귀엽다.
“여기서는 다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기준쌤. 지우쌤. 지아팀장님은 지아팀장님.”
“알겠습니다. 제시카쌤.”
“기준쌤은 뭐, 뭐 잘해요.”
섹스.
“뭘 잘한다뇨?”
“남트는 보통 그래요. 웨이트 잘해서 벌크업. 여자들 다이어트 잘 시켜주는 조교 스타일. 그것도 아니면 말 잘하는 제비.”
“음, 굳이 따지자면 말 잘하는 제비? 정도일까요. 누구 몸 만들어본적이 없어서요.”
“하. 완전 싫어. 완전. 완전! 공부 안하죠. 웨이트나 다이어트 관련해서.”
싫어라는 발음에서 혀가 짧다는 티가 여실이 증명됐다. 문득 제시카는 자기 이름을 제대로 발음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책 줄 테니까, 공부해요. 진짜 싫어. 기본적인 지식 없으면 여기서 못 살아남아요.”
“... 알겠습니다.”
“내 캐비닛 위치 어딘지 알죠? 거기 안에 책 몇 권 있어요. 아무거나 하나라도 읽어봐. 나머지 교육은 아마 다른 쌤들이 하시지 않을까. 저는 이만 여자탈의실에 볼 일이 있어서.”
“아, 넵! 감사합니다.”
“빠잉.”
귀엽게 손짓하며 남자탈의실에 살짝 들어갔다가 아차차하며 여자탈의실로 노선을 변경한다.
나는 다음 교육 시간동안 제시카가 빌려준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해부학과 더불어 근육에 따른 운동법이 세부적으로 적혀있는데 일단 눈에 익혀두기만 할 생각이다.
다음 타임에는 한지우가 일부러 시간을 빼서 내 교육을 맡았다. 제시카가 블링블링하게 옷을 입었다면 한지우는 딱 정석적인 트레이너의 옷차림이다. 자크를 내린 옷 안쪽으로 갈라진 복근이 보일 정도로 몸매 관리에 충실한 여자.
그녀는 내 운동을 봐주겠다고 했고, 나는 그녀 앞에서 벤치 프레스를 보여줬다.
이래봬도 이전 생에서 몸을 단련하기 위해 운동을 했던 몸이다.
하지만 트레이너가 봤을 때는 지적할 게 꽤 많았는지 자세를 교정받았다. 생각보다 트레이닝 효과가 좋다. 이전에는 어디에 자극이 오는지 몰랐는데 확실히 가슴쪽에 아릿한 기운이 느껴졌다.
잠시 휴식하는 동안에도 교육은 계속됐다.
“가슴은 벨리에 따라서 자극이 달라요. 시작점 끝점 배웠어요? 모르겠죠. 가슴은 총 3가지의 시작점과 끝점이 나뉘어져 있어요. 그래서 3개의 벨리에서 각각 다른 자극을 받을 수 있어요. 1번 벨리는 여기. 2번 벨리는 여기. 3번 벨리는 여기. 수평바가 놓여지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되요.”
“1번 벨리가 어디라고요?”
“여기.”
한지우는 손끝으로 내 쇄골의 살짝 밑부분을 터치했다. 그리고 점차 내려가면서 2번과 3번을 찍어줬는데 손끝의 움직임이 꽤나 야릇하게 느껴졌다. 부드럽게 쓰는 것같은 느낌. 와, 이 여자 안 그럴것처럼 하면서 여우짓 한번 확실하게 한다.
“느꼈어요?”
난 내 귀를 의심했다. 느꼈냐니? 어케 알았누?
“예? 아, 아니. 뭐가요?”
“뭘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회원들을 상대할 때 어떻게 하는지 느꼈냐고요. 스킨십은 트레이너에게 있어서 덕목이에요. 만약 그쪽이 내 손길을 야릇하게 생각했다면 성공이에요. 그 회원에게 재정적인 여유만 있다면 분명 등록할 거니까. 그러니까 내놔요. 200만원. 피티등록금이에요.”
200만원은 당연히 장난이겠지. 근데 한지우 이 여자 무슨 무당이냐. 내 생각을 어떻게 훤히 꿰뚫고 있지.
벤치프레스 시팅을 할 때도 자기 허벅지 사이에 내 머리를 위치시키고 사타구니를 훤히 보여줬다. 스포츠브라 때문에 가슴이 보이지는 않지만, 집업 아래로 복부가 훤히 드러나서 엄청 야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니.
겉보기엔 정석만 추구할 것 같은데 나름의 스킬도 장착 중이다. 중요한 걸 배웠다.
“너무 노골적으로 만지진 마요. 진짜 신고 들어올 수도 있어. 상대를 가려서 해야되.”
그렇게 50분 간의 황홀한 PT가 끝나고, 나는 실제로 한지우에게 PT를 받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은 좆까고 사심. 오로지 사심.
“감사합니다.”
“후, 아니에요. 신입들 들어오면 죄다 금방 나가는데 이번만큼은 안 나갔으면 좋겠네요.”
“신입들이 오래 버티기 힘든 환경인가봐요?”
“풋. 그거보단 어린 팀장한테 굽실대는 게 딴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거죠. 특히 남자들은 더 심해요. 우리가 비주얼 팀이니까 좀 생긴 남자를 꽂아주는데 어디서 양아치같은 버릇을 배워와서 여기에 적용하려니까 힘든 거죠. 기준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런거라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름 대학도 나왔고 남들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으니까요.”
“그럼 다행이고.”
그러더니 슥 내 얼굴을 한 번 스캔한다.
“머리는 직접했어요?”
“네.”
“잘하긴 하는데 마무리가 좀 별로네. 오늘 끝나고 뭐해요?”
“어... 생각해보진 않았습니다. 별 다른 스케줄 없습니다.”
“그럼 오늘 끝나고 같이 운동해요. 샤워하고 머리 말리지 말고 여자 탈의실로 와요. 내가 남자 머리는 잘 만져. 어떻게 마무리하는지 알려줄게요.”
사심. 오로지 사심.
“저야 좋죠. 지우쌤 시간을 제가 뺐는 것 같아서 죄송해서 어쩌죠.”
“나중에 밥 사요. 200만원 짜리로.”
“하하하...”
“지아팀장님한테 마무리 교육 받아요. 내가 알고 있는 트레이너 중에 가장 평가절하된 트레이너에요.”
그건 아마도 최용수 때문이겠지. 본인 힘으로 팀장을 달수 있을텐데도 낙하산으로 진급했다는 오명을 벗어내기 쉽지 않을 거다.
“그리고 최악의 연애고자...”
“네?”
“아니에요. 전 이만 수업하러 가볼게요.”
팀 분위기는 그럭저럭 좋았다. 최지아는 밝고 명량했고 분위기를 띄우는 파이팅 넘치는 여자였다. 한지우는 똑똑했고 가끔씩 너무 과하게 올라가는 텐션을 누그러뜨리는 안정제 역할을 했다. 반면 제시카는 푼수 그 자체. 완벽해보이는 이 조합에서 인간성을 보여주는 푼수떼기. 이 삼합이 잘 어우러져 톱니바퀴가 형성된 느낌. 중요한 건 내 역할이다.
나는 한동안 이 사각구도를 살피며 내가 할 역할이 무엇일지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섹서지? 응... 섹서야. 그것도 오늘밤 한지우부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섹스로 끝나게 된다. 정말이지 뇌가 정액에 절여졌다. 어젯밤에 이소연과 장장 2시간 반동안 뻔질나게 그 짓을 해대면서 정액 냄새를 너무 많이 맡아버렸다. 이러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무슨 생각해요?”
베시시 웃으며 날 보는 최지아. 어느새 내 맞은편에 와서 앉았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마주보고 앉는 건 처음이다. 짙은 상커풀이 자리 잡고 있는 큼직한 눈망울 밑에 작은 점이 있는데 아무래도 저 점이 킬링포인트인 듯. 점을 돋보이게 하는 듯 금가루같은 반짝이 파운데이션을 찍어 발랐다.
얼굴이 너무 작아서 큰 눈망울이 깜빡일 때마다 인형인가 싶은 얼굴이다.
“오늘 제시카쌤이랑 지우쌤한테 배운 내용들 복습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자세네요. 다들 성격이 좀 특이해서 잘 어울릴까 했는데.”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지우쌤이랑은 끝나고 같이 운동하기로 했거든요.”
“오~ 벌써요? 꽤 친해졌네요. 지우쌤이 기준쌤 꽤 맘에 들어하나보다.”
“네? 마음에 들어한다고요?”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고 트레이너 후배로써.”
“아...”
“뭔가 아쉬워하는 눈친데요? 기준쌤, 지우쌤 마음에 들어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피~ 지우쌤 남자들한테 인기 엄청 많으니까 숨기려고 안 해도 되요. 그게 다 인간의 본성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그런 감정을 갖기엔 너무 이른게 아닌가 싶네요.”
“흥흥. 순진한 척하는 건지~ 기준쌤은 여자들 꽤나 울리고 다녔을거 같은데 말은 되게 선비처럼 하시네요. 잘생겼는데 무겁고 진중한 이미지라... 오히려 잘 통할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오늘 교육을 해드려야 되는데 딱히 교육할 건 없고. 쌤들한테 배운 내용들 복습하면서 일단 센터에 적응할수 있도록 해봐요.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는 센터에서 기준쌤한테 크게 요구하는 것도 없으니까요.”
신입사원에게 뭘 바라는 회사는 없다. 적응하고 살아남아주기만을 바랄 뿐. 첫 번째 난관을 거치고 기대치가 높아지는 순간, 그때부터가 지옥의 시작이 될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나에게 그런 단계가 필요할까?
인생 단맛, 쓴맛, 매운맛 다 느껴보고 다시 사는 인생이다. 나에게는 야망이 있고 복수를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게도 느껴진다. 그리고 이 세상의 미인들을 다 따먹으려면 당연히 부족한 게 시간이다. 하루 빨리 성공의 지름길을 찾아야 했다.
“매출할 겁니다.”
영업직이 자길 증명하는 방법은 당연히 매출이다.
“응? 매출?”
“네. 매출해서 팀에 보탬이 되겠습니다. 제 자신을 증명하고 싶기도 하고요.”
내 말을 들은 최지아는 아까와는 다른 눈으로 날 바라봤다. 반신반의. 묘한 느낌. 이 사람은 뭐지? 같은 의문의 표현이었다. 그렇다고 짓밟고 싶지는 않았는지 씩 웃으면서 맞장구쳐준다.
“그래요. 잘해봐요. 기대할게요.”
일어나서 내 어깨를 한 번 쓰다듬고 사무실로 들어간다.
최용수의 딸 최지아.
널 어떻게든 내 씨받이로 삼아주겠다. 죄가 있다면 아비를 잘못 둔 죄.
물론 그녀에게 직접적인 고통을 줄 생각은 없다. 그녀를 통해 최용수에게 복수할 뿐이다.
비주얼은 압도적. 지금까지 몇몇 여자를 봤지만, 그녀들 중에서도 최지아는 압도적으로 레벨이 높았다.
무엇보다 그 난이도를 높이는데에는 저 이정석이라는 남자도 포함된다. 현재 남자친구. 나이차이는 9살.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들을 위해 저 도둑놈을 거세시키겠다.
나는 이정석을 보다가 다시 플로워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녁 타임이 되자 퇴근한 직장인들, 학생들이 잔뜩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회원이 있었다. 거울을 마주보고 서서 스트레칭 하는 한 여자. 남자들은 그 회원을 중심으로 학익진을 펼쳐 운동을 했다.
근무 종료까지는 앞으로 2시간.
신입 트레이너의 패기를 보여주기에는 넉넉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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