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7. 좀 생겼네
* * *
아침에 일어나니 이소연은 없었다. 출근하기 위해 부랴부랴 씻고 나갔을 것이다.
테이블에 보니까 자기 전화번호를 적어둔 쪽지를 남겨놨다.
맥주 마시고 싶을 때 전화해. 소연.
맥주 조옷치. 어제밤을 떠올리면 아직까지도 고추가 얼얼한데 그만큼 만족스럽기도 했다.
코인도 30만 코인을 벌었다. 이 정도 코인이면 활용도가 상당히 높다. 당장 아이템 상점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아직은 아니다. 나름대로 코인 투자할 곳을 생각해뒀는데 그걸 위해서라면 조금 더 모아야했다.
시간을 확인했다. 휘트니스 면접까지 2시간 정도 남았나.
트레이너라... 이전 생의 나는 운동을 참 열심히 했었다. 누군가를 대신해서 복수를 하기 위해선 어느정도의 무력은 필수불가결했다. 보디빌딩 이외에도 복싱, 무에타이, 주짓수 등을 배웠고 조직에서 손 털고 나왔을 때는 여러 가지 레포츠를 즐겨서 꽤 경험이 풍부하다.
어차피 조직에 들어갈 것도 아니고. 앉아서 컴퓨터할 성격은 아니니 트레이너라는 직업이 그나마 적성에 맞을지도 모른다.
섹스로 모은 코인으로 충분히 삶을 영위할 수는 있겠지만, 사회생활을 하고 한층 더 높은 수준의 여자들과 섹스를 하려면 직업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 사회적 지위도 필요했다.
트레이너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은 바닥 수준.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실력있는 트레이너에 한해서 지위가 꽤 높은 편에 속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오죽하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트레이너에게 선생님, 선생님 하겠는가.
어제와 마찬가지로 스타일링을 하고 정장을 빼입었다. 머리는 포마드로 넘겼고 면도 및 잔털정리를 마쳤다. 피부가 어제보다 더 깨끗해 보인다. 어쩌면 질내사정을 해서 이소연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정자의 영양이 흡수된 건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최용수의 헬스장까지 거리는 걸어서 10분 정도. BD짐 강서점은 최용수가 운영하는 헬스장 중 가장 변두리에 위치한 지점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강남지역에 위치했다.
나는 면접 시간보다 10분 일찍 헬스장에 도착했다.
BD(Birth to Death) GYM.
탄생부터 죽음까지라니. 간판 한번 더럽게 거창하네. 니들이 죽음에 대해 뭘 알아?
헛방귀를 뀌며 안으로 들어가자 인포데스크 여직원이 친절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회원님.”
“아, 예.”
“처음 오셨나요?”
“네. 잠깐 둘러보려고 왔습니다.”
“그러면 천천히 둘러보시고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물어봐주세요.”
인포데스크 직원 교육은 잘 시켜놨네. 근데 여직원의 나이가 상당히 어려보인다. 스무살이거나 스물한살 정도로 엄청 풋풋하게 생겼다. 예쁜 얼굴은 절대 아니다. 화장하는 법을 모르는 모양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환한 조명이 나를 반겼다. 한쪽에는 프리웨이트존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거울을 보면서 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이 준비됐고 가운데 널찍한 공간에는 일정한 간격을 둔 웨이트머신이 배치됐다. 구석에는 스트레칭을 하는 공간도 있고 벽쪽에는 스무개 가량 되는 러닝머신이 있었다. 낮부터 운동하는 사람이 꽤 있어서 한가해 보이지는 않았다.
톡톡.
누군가 내 어깨를 손끝으로 건드려서 뒤돌아보니 트레이너처럼 보이는 한 여자가 밝게 웃고 있었다.
“회원님이세요? 남자탈의실은 저쪽인데.”
“아, 아뇨. 사실 저 오늘 여기 면접보러 왔는데 전에 센터 구경좀 하고 있었습니다.”
“아, 아... 안녕하세요. 전 이만...”
“예. 안녕하세요. 아니, 안녕히 가세요.”
??
면접보러 왔다는데 자기 할 일 하러 가버리는 여자 트레이너. 잘빠진 몸매라는 건 저런 몸매를 말하는 거다. 가슴은 크지 않지만, 호리병같은 허리라인과 움푹들어간 기립근. 일직선으로 뻗은 얄상한 다리는 뭇 남성들을 현혹시킬 것이다.
이 여자도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여긴 다들 어린 사람들만 뽑나.
아무튼 내가 회원이 아니란 걸 알게 된 이상 용건 따위 없다는 식. 좀 돌아다니다가 한 중년 남성에게 다각가서 말을 건다. 오로지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모습. 꼭 악마들을 닮았다.
“성기준 씨?”
이번에는 남자다. 키는 작은데 몸집이 커서 거인처럼 느껴지는 근육질의 남자. 보자마자 분노조절장애가 치료될 것 같은 그런 몸이다. 아마도 이 사람이 강서점의 매니저 유성목인 모양이다.
“안녕하십니까. 네, 제가 성기준입니다.”
“음. 제가 전화 받았던 유성목 매니저입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면접 시간보다 좀 일찍 오셨네요.”
“예. 약속은 칼같이 지키는 성격이라서요.”
“좋습니다. 좋은 자세에요. 자, 여기 앉으시죠. 원래는 PT상담을 위한 자리인데 딱히 면접 볼 자리도 없고 해서. 괜찮으시죠?”
“네. 괜찮습니다.”
“그럼 바로 면접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이력서를 건넸다.
사실 뭐 적을 만한 게 없다. 이력서라고 출력은 해봤는데 대학교 휴학 중이라는 것 외에 성기준이라는 사람의 기억은 없었다. 다만, 특이사항이 있다면.
“합기도, 태권도, 무에타이, 복싱을 배우셨다고요?”
조직에 몸 담았던 전생의 기억. 몇 가지 싸움의 기술 정도는 몸에 익었다.
“네. 잘은 못하지만, 보고 배운건 있습니다.”
“허, 깝치면 안 되겠네.”
“하하... 아닙니다.”
“그나저나 제대하고 바로 구직하러 오신 거예요? 패기가 남다르신데. 와꾸도 잘 빠지셨고 키도 크고. 집은 어디에요?”
“여기 근처 삽니다. 그저께 이사 왔어요.”
“트레이너 경력은 없으시죠?”
“네, 없습니다.”
“근육학은 좀 아세요?”
“네?”
“근육이요. 대흉근의 시작과 끝이 어디에요?”
“아... 모릅니다.”
“가자미근은? 흉쇄유돌근은? 위치는 알아요?”
계속해서 모르는 질문을 퍼부어서 대충 아는 것만 대답했다.
사실 나는 스쿼트 트레이닝처럼 회원 트레이닝에 대한 질문을 할줄 알고 준비했었다. 그래서 이런 이론적인 걸 물어보니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이대로는 심사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매니저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신입 트레이너를 뽑는다.
하지만 말투나 분위기로 봐서는 내가 충분히 좋은 자원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눈칫밥으로 따지면 내가 여기있는 누구보다 위다.
유성목이 고민하는 듯 해서 목소리에 키워서 말했다.
“열심히 보고 배우겠습니다! 꼭 트레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하하. 여긴 학원같은 곳이 아닌데... 성기준 씨는 왜 그렇게 저희 짐에 입사하고 싶은 건데요? 그 정도 얼굴이면 강남같은 데서 꽤 잘 나갈텐데.”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당연히 최용수 사장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이 강서점을 고른건...
아, 마침 플로워로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어딜 가서도 못 볼 핑크색으로 물들인 머리. 최용수의 딸, 최지아.
나는 그녀를 흘끗 보고 말했다.
“BD짐 최용수 사장님이 제 롤모델입니다.”
“예? 최용수 사장님을 알아요?”
“네. 밑바닥 트레이너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스펙을 쌓아올리셨다고... 홈페이지에 써있더군요.”
밑바닥이라. 두말할 것도 없는 거짓말이다. 최용수는 조직의 핵심인물이었고 거대한 자본을 이용해서 이 휘트니스 사업을 시작했다. 밑바닥부터 시작은 개뿔. 난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사업을 하나씩 차근차근 부러뜨릴 생각이다.
“푸핫! 아니, 난 또 우리 사장님이랑 개인적으로 아시는줄 알았네. 그럼 더더욱 강남쪽으로 가시지. 청담점에 최용수 사장님 가끔 출근하시는데. 왜 강서점에 지원하신 거예요? 이해를 못하겠네.”
“그건...”
질문에 대답하려고 했는데 최지아가 상담 테이블로 걸어왔다. 엉덩이를 살짝 치면서 걷는 게 꼭 모델 워킹같다. 키는 170정도. 벨라보다는 조금 작다. 벨라보다 작을 뿐이지, 여자 170과 남자 170은 느낌이 확 다르다. 몸매는 휘트니스 모델 뺨치는 몸매. 비키니 선발대회에서 입상한 기록도 있지, 아마.
가장 중요한 건 얼굴이다. 최용수를 하나도 빼닮지 않은 얼굴. 엄마를 닮아서 강아지상. 동그란 눈매와 진한 쌍커풀. 낮지도, 높지도 않은 적당한 콧대와 앙증맞은 콧망울. 군살없는 얼굴라인은 연예인 못지 않은 신비감을 조성했다.
무척이나 예쁘다. 오죽했으면 핑크색 머리카락을 소화하겠는가.
“어머, 유 매니저님! 이분이 말씀하신 그 면접?”
“응. 아직 면접 보는 중이야.”
“오... 잘생겼네요. 나는 합격!”
“뭔 소리야. 얼굴보고 뽑냐? 저리 안 가?”
“히히. 누군진 모르겠지만, 잘생기신 분~ 파이팅!”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곤 다시 예쁘게 걸어서 퇴장한다. 뒤태가 오우야... 아까 나한테 차갑게 말 걸었던 여자 트레이너의 몸매가 무색할 정도로 예쁜 뒤태다.
“저 자식, 저거... 하우... 최지아 팀장이에요. 참고로 저는 얼굴 믿고 깝치는 사람 채용 안합니다. 특히 최지아 팀장! 자기 예쁜거는 알아가지고!”
유성목이 마지막에 일부러 최지아가 들리게 큰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최지아도 고개를 홱 돌려서 혀를 쭉 내밀었다.
아빠랑 다르게 말랑한 스타일이네. 성격도 모나지 않고 좋아보이고.
뭐, 그건 까봐야 아는 건가.
나는 장난치는 그들과 다르게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예. 저도 얼굴 믿고 온 건 아닙니다.”
내 말에 유성목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푸핫! 잘생겼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네요. 솔직한 게 마음에 들어요. 그래요, 인정합니다. 성기준 씨 잘생겼어요. 여자 회원들 많이 꼬이겠네요. 근데 오히려 돈 많은 중년 남성들한테 반감을 살 수도 있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어... 그 말씀은.”
“출근하면 언제부터 출근 가능해요?”
“바로 오늘부터도 가능합니다.”
“흠. 최팀장도 꽤 마음에 들어하는거 같으니까 최팀장네 팀으로 편성할게요. 업무보고같은 거 최팀장 통해서 하시면 되고. 계약서랑 수입구조같은건 나중에 따로 설명할게요. 여기까지 이해 안 되는 부분 있으세요?”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후. 원래 이렇게 빨리 합격 통보 안드리는데, 제대하고 바로 왔다는 게 마음에 드네요. 잘 해봐요.”
유성목은 내게 손을 건넸고 나 역시 그 손을 맞잡았다.
“아, 참고로 최팀장 남자친구 있어요. 이정석이라고 우리 센터 에이스야. 꽤 잘 나가.”
“예? 그걸 왜 저한테...”
“가끔 신입 PT 중에 최팀장한테 껄떡대다 큰코 다친 애들이 몇 있어서 충고해주는 거예요. 최팀장이 오죽 예뻐야지. 뭐, 아니면 그냥 흘려들으면 되는거고.”
“예...”
최지아한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입수했다.
근데 뭐 어쩌라고..?
고추 싸움에서 내가 질 이유가 없잖아.
그런데 이정석이라고..?
내가 아는 그 이정석이 맞다면 일이 한결 쉬워진다.
최용수 밑에서 따까리 짓하던 양아치. 어떻게 그 얼굴을 잊겠는가. 비 오는 날 떼거리처럼 몰려온 깡패새끼들과 손에 들려있는 방망이와 칼. 돌아가면서 내 배에 칼을 쑤셔넣을 때 얼마나 서스럼 없었던가.
그때 이정석 나이가 이십대 중반 정도로 지금 나와 비슷한 나이였을 터. 시간이 지난 지금은 최지아랑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날텐데. 정말 그 이정석이 맞나?
만약 맞다면 복수할 놈 찾아다닐 수고를 줄일 수 있다.
나는 유성목의 안내에 따라 바로 옆에 딸려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는 다른 직원들에게 날 소개해줬다.
“오늘부터 같이 일할 성기준 트레이너야. 다들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 마음껏 신입한테 교육하라고 알겠지?”
“네, 매니저님.”
최지아를 비롯한 트레이너들이 박수로 날 환영해줬다. 그런데 한 명만은 사무실 책상에 엎어져서 자고 있었다.
“거기 누구야? 깨워.”
눈치보던 다른 트레이너가 자고 있는 트레이너를 깨우자 회전의자를 빙글 돌면서 씩 웃는 이정석.
“오셨습니까?”
“한팀장, 너였냐. 출근해서 쳐자기나 하고. 팀장이면 다야? 여기 신입 트레이너 왔으니까 앞으로 잘 챙겨. 최팀장네 팀으로 배정했지만, 자기네 팀이라고 생각하고 잘 챙기라고.”
“오~ 우리 팀. 우리 팀!”
기뻐하는 최지아와 다르게 심각한 표정의 이정석.
“울 애기 팀에 남자 트레이너를요?”
이정석은 내 발끝부터 머리를 훑고는 마지막에 썩은 미소를 날려주었다.
“안녕? 뭐야, 쫌 생겼네? 성기준? 그럼 좆준이넼?”
그래 안녕이다. 이 개새끼야.
찾았다, 이놈새끼.
너는 아주 정석적으로 복수해줄게.
[악신 ‘왕자지제’가 새로운 여성들의 등장에 잔뜩 기대합니다. 200코인을 후원합니다.]
[악신 ‘일곱마리 발정난 개’가 트레이너들의 난교파티를 상상합니다. 500코인을 후원합니다.]
[악신 ‘고품격 승차감’이 새롭게 형성된 대결 구도에 흥미를 느낍니다. 20000코인을 후원합니다.]
20000코인? 고품격 승차감..? 타 보고 싶은 아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대결 구도라면 나와 이정석을 두고 하는 얘기겠지.
대결 구도...
그것도 내 바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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