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몽마학원 수석졸업생인 나와 그녀들-3화 (3/159)

〈 3화 〉 3. 들어와도 돼

* * *

얼마 기다리지 않아 다시 문이 열리고 이소연이 종종걸음으로 나왔다.

딱 봐도 내가 오래 기다릴까봐 옷도 안 갈아입고 허겁지겁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묶은 머리만 풀고 들고있던 파우치만 내려놓고 나온 거다.

순진한건지 착한건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건 그녀는 명량하게 말했다.

“갈까요?”

나는 그녀의 옆에 붙어서 천천히 걸음을 맞췄다.

“휴, 엄청 어색할거 같은데 생각보단 덜하네요. 어후, 더워. 기준 씨는 안 더우세요? 밖이 왜 이렇게 더운지.”

“허겁지겁 나오셔서 그런거 같은데요.”

“하하... 기다리실거 같아서. 후우... 어디부터 갈까요?”

“이 근처에 편의점 있어요?”

“편의점 있죠! 가요. 가요.”

씩씩하게 걸어가는 이소연. 본인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저기요, 왼팔과 왼다리가 함께 나가고 있다고요. 착해빠진건 둘째치고 엄청 허당이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잠깐 그대로 냅두기로 했다.

5분 정도 걸었더니 편의점이 나왔다.

“여기가 편의점이에요. 저는 주말만 되면 여기서 아예 장을 봐버려요. 혼자 살면 요리 좀 할줄 알았더니 힘들어서 못하겠더라고요.”

“저도 그래요. 온김에 맥주 살게요. 가까운 공원에서 한잔 해요.”

“어, 어? 그럴까요? 죄송해요. 제가 지갑을 안 갖고 나와서.”

“아니에요. 주변 안내 부탁드린 대신 제가 사는 거예요.”

“에이~ 그럼 맥주 한잔으로 퉁 치는건 좀 아니다. 나중에 밥 한 번 사요.”

“맥주도 사고 밥도 사라? 저노동 고임금인가요?”

“하하, 그게 또 그렇게 되나요? 그럼 밥은 이사 떡 돌리는 셈 쳐요.”

이 여자가 은근슬쩍 섹드립을 날리네. 그치, 떡은 돌려먹어야지.

“그러죠. 쿨해서 좋네요.”

“히히, 거래는 뭐니뭐니 해도 쿨거래죠.”

“맥주 뭐 마셔요? 전 이거.”

“아, 그럼 전 이거!”

맥주를 계산해서 편의점을 나서자 이소연이 웃으면서 말했다.

“되게 묘한 기분이네요. 어제 처음 본 사람한테 맥주 얻어 마시고.”

“이소연 씨 정도면 그런 일 자주 있으실거 같은데요? 예뻐서 남자들한테 대시 자주 받지 않나?”

“으앗... 아부 되게 잘하신다... 저 예쁘다는 소리 처음 들어봐요.”

딱.

맥주 캔을 따서 건네자 고개를 90도로 숙여서 고맙다고 인사한다. 나도 내 맥주를 입에 가져가 한입 꼴깍 마셨다. 밤공기가 따뜻해서 그런지 시원한 목넘김이 즐겁다. 그녀도 한 모금 마시더니 금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엄청 예뻐서 당연히 남자친구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봐요?”

“헐, 저 남자친구 없어요. 기준 씨는 남자친구 있어요?”

“네?”

“아! 아, 죄송해요! 여자친구. 여자친구요!”

“푸하핫! 재밌는 분이시네요. 안타깝게도 여자친구 없습니다. 제대한지 얼마 안 돼서.”

“잉? 실례지만 나이가?”

“스물다섯입니다.”

“헐. 전 당연히 저보다 오빠일줄 알았어요. 저는 스물여덟이거든요. 아,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그게 아니고. 죄송해요. 죄송해요. 나이 들어보인다는 얘기는 아니었어요. 그냥 옷차림이나 머리 스타일 때문에...”

“괜찮아요.”

부드럽게 웃어주고 공원 벤치에 앉았다. 이소연은 다행이라는 듯 방긋 웃으며 내 옆에 앉아서 연신 호로록거리며 맥주를 마셨다.

“근데 주량은 어느 정도에요?”

“저 완전 알쓰에요. 알코올 쓰레기. 맥주 한잔 마시면 곯아 떨어져요. 근데 어차피 여기는 집에서 가까우니까.”

“천천히 마셔요. 그리고 누나. 말 편하게 하시려면 편하게 해도 되요. 서로 나이도 밝혔는데.”

내 입에서 누나라는 말이 나오자 이소연의 얼굴은 방금보다도 훨씬 더 빨갛게 달아올랐다. 귀까지 달아올라서 누가 보면 아주 민망한 소리라도 들은줄 알겠다.

“어. 그럴까? 기준이라고 불러도 돼?”

“네.”

“기준이는 어쩌다가 자취하게 된 거야?”

“같이 살 부모님이 안 계셔서 어쩔수 없다고 할까요. 제가 군대에 있을 때 다 돌아가셨거든요.”

“어머...”

순간 급조심해지는 이소연.

긴장한 기색은 사라지고 최대한 온화한 표정을 짓는다.

모성애다. 이소연에게 모성애가 솟아오르고 있다.

“난 그것도 모르고. 내가 괜한 얘기를 했네.”

“아니에요. 누구든 먼저 말해야 하는 일인데요, 뭐.”

“넌 괜찮아? 힘들지 않아?”

“힘들죠. 많이 외롭고. 침대에 누우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오고 그래요.”

그녀의 손이 내 어깨에 와서 닿는다.

“헤헤. 그래도 괜찮아요. 열심히 살아야 하늘에 계신 부모님도 기뻐하시겠죠.”

“응. 그럴거야. 후... 생각해보면 나는 되게 행복한 거였네. 기준이 너에 비하면 오늘 하루 내가 회사에서 받은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거였어. 아, 그리고 밥 사달라고 한 얘기는 취소야! 내가 사줄게.”

“푸핫. 누나 그렇게 안 미안해 하셔도 되요. 저 이래봬도 돈은 좀 있어요.”

“오, 정말? 가끔 누나 맛있는거 사줄래?”

맛있는거 싸드릴순 있는데.

“크크. 지금 들고있는거 원샷하면요.”

“이, 이거? 나 그럼 완전 골로 갈텐데.”

그게 내가 원하는 바다.

“에이, 모르겠다. 벌주라고 생각하고 마신다.”

벌컥벌컥. 음료수 마시듯 빠르게 맥주를 삼키는 이소연. 빈 캔을 내려놓고 숨을 고른다. 척 보기에도 숨결이 뜨겁다.

“오. 잘 마시는데요?”

“맥주같고 뭘... 히히... 아, 나 취하면 진짜 못 말리는데.”

“근데 아까 회사에서 고통받았다고 했잖아요. 오늘은 무슨 일 있었어요?”

나는 취기를 동원해서 그녀의 속마음을 들었다. 힘든 일과 더불어 모든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 이소연. 여자들은 뭐니뭐니해도 공감이다. 공감과 리액션만으로 충분히 호감을 살 수 있다.

물론 잘생긴 얼굴이 깔려있어야겠지만.

이소연의 불평은 평범한 직장생활이었다. 딱히 과할 것도 없고 엄청 억울한 일도 아니다.

잔뜩 하고싶은 얘기를 다 한 이소연은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너무 내 얘기만 했다. 미안해. 나 취했나봐.”

“괜찮아요. 누나가 얘기 재밌게 잘해서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들었네요.”

“... 기준이 너는 나이에 맞지 않게 되게 자상하네.”

“풉. 제가 좀 한 자상하죠.”

갈색 눈동자는 어느새 은은한 가로등빛에 현혹되서 조금씩 풀려간다. 내가 한동안 바라보고 있자 그녀도 반쯤 감긴 눈으로 날 바라본다. 사람의 눈은 어떤 황홀한 걸 바라볼 때 저렇게 바뀐다.

이 정도면 이미 고추의 절반 정도는 삽입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여자는 분위기에 취하기도 하고 우스갯소리로 분위기에 오르가즘을 느끼기도 한다고 들었다.

몸은 뜨거운데 상대적으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가슴은 빠르게 뛰고 눈 앞에는 잘생긴 남자가 앉아있다. 부드러운 눈으로 자길 바라보며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꾹 닫혀있던 입술이 힘을 잃고 살포시 열렸다.

바로 입술을 부딪쳐도 거부반응이 오지 않을 거다.

그러나 나는 조금 더 악신들의 애간장을 녹이고 극적인 스토리텔링을 만들 생각이었다.

[악신 ‘왕자지제’가 당신의 행동에 주목합니다. 100코인을 후원합니다.]

[악신 ‘염소머리 군주’가 당신의 행동에 주목합니다. 100코인을 후원합니다.]

“누나.”

“응?”

“이만 들어가죠.”

[악신 ‘왕자지제’가 당신의 반응에 무척 실망합니다. 100코인을 후원합니다.]

[악신 ‘염소머리 군주’가 다 된 밥에 재를 뿌렸다며 한숨을 쉽니다. 100코인을 후원합니다.]

[악신 ‘그러려니’가 당신의 행동에 그저 그러려니 합니다. 100코인을 후원합니다.]

아, 글쎄 좀 기다리시라니까.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봤을 때 악신들의 참을성은 거의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이다.

그만큼 반전 줬을 때 효과도 더 크다는 소리다.

“그럴까? 후우, 엄청 덥다.”

“그러게요. 윗단추 하나 정도는 풀어야 겠어요.”

“음. 나도 그래야겠다.”

이소연은 이미 풀려있는 단추 바로 다음에 있는 단추를 거침없이 풀었다. 와이셔츠의 단추가 두 개 정도 풀리자 그녀의 거대한 가슴골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가슴의 스타트 지점과 전체적인 볼륨을 비교해봤을 때, 적어도 D컵 이상이다. 일어나면서 몸이 약간 흔들릴 때 가슴도 함께 흔들렸다. 고탄력. 자연산 참젖이 확실하다.

한캔이다. 고작 맥주 한캔 밖에 마시지 않았기에 비틀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소연은 아까보다 긴장이 풀려서 이상한 걸음을 하지 않게 됐다.

돌아가는 길에는 완만한 경사도 있었고 좁은 길목이었기에 차량이 지나갈 때 벽에 붙어야 할 정도였다.

뒤쪽에서 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재빨리 이소연의 어깨를 끌어당겨 벽쪽으로 밀쳤다.

“엄마양...”

차가 지나갈 때까지 마주본 채로 있었다. 거리가 가깝다. 1cm만 더 숙이면 키스할 수 있는 거리다. 그녀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날 올려다봤다.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기도 했다.

“조심해요. 좀 취하신거 같아요.”

“으응... 나 좀 취한거 같아.”

“부축해드려요? 비틀거리지는 않는데 혹시 몰라서요.”

“그, 그럴래?”

이소연의 팔을 내 목 뒤로 넘기고 몸을 바싹 밀어넣었다. 그녀의 출렁이는 옆가슴이 내 몸에 와서 뭉개졌다. 부드러운 촉감이 아주 좋다. 아마 그녀도 자기 가슴이 닿았다는 건 느낄 수 있을 거다.

얼굴을 살펴보니 시선을 은근히 다른 곳으로 보내놓는다.

두근두근두근. 빠르게 맥박 뛰는 소리가 그녀의 가슴을 타고 느껴졌다.

몸이 붙어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걸음이 부자연스럽게 비틀거린다. 그때마다 가슴이 마구 붙었다 떨어졌다.

“하아...”

고온의 숨결이 뱉어졌다. 어쩐지 침도 끈적끈적해져 있을 것만 같은 달달한 한숨이다.

“누나.”

이 ‘누나’라는 단어에 그녀의 몸이 격하게 반응한다. 허리부터 부르르 떨린다.

“응.”

“집에 가서 맥주 한 잔씩 더하고 잘까요?”

쿵쾅쿵쾅쿵쾅.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 동공이 격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자, 자자고?”

“네. 바로 옆 방이니까요. 근데 누나 방 깨끗해요? 제 방은 아무것도 없어서 좀... 알다시피 이사온지 1일 차라.”

“어... 내 방 잘 정리해놨어. 음.”

“그럼 잘 됐네요. 누나 방으로 가요. 아까 맥주 살 때 4캔에 만원짜리로 산 거라. 2캔 남았어요.”

나는 반대쪽 손에 들려있는 검은 비닐봉지를 보여줬다.

이소연의 동공이 하염없이 돌았다. 그러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그러자. 옆방이니까 뭐. 나도 마시고 바로 자면 돼고.”

“쿡쿡. 술 약하시니까 짠만 하고 저 마시는 거 구경해도 돼요. 저 술 먹이는 꼰대 아니니까 걱정 안 해도 되고요.”

“걱정은... 그런 걱정이 아닌데.”

“그럼 무슨 걱정요?”

내가 씩 웃으면서 말하자 이소연은 이번에도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했다.

“아니야. 부축이나 잘해줘. 나 차에 치이면 다 네 책임이야.”

“아이고, 알겠습니다. 걱정 붙들어 매세요.”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이소연의 허리를 꼭 붙잡았다. 육덕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바디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만하면 골반도 넓고 허벅지도 탱글탱글하다. 얼굴이 달걀형인 걸로 봐선 뚱뚱한 것도 아닌데 이런 바디라면 콜롬비아산 혼혈 육덕 정도.

왜 오피스룩 같은 걸 입어서 그런 몸매를 상쇄시켰는지 모르겠다.

집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 그녀가 살포시 나를 밀어내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이제 부축 안 해줘도 될 거 같아. 술 다 깼어.”

“올~ 알았어.”

“뭐야. 반말하는 거야?”

“반말하면 안 돼?”

“아니야. 해... 너 되게 자연스럽다. 많이 해본 솜씨네.”

“뭘 또 많이 해봐. 누나야말로 말 놓으라고 할 시기를 놓쳐버린거 아니냐고.”

“쿡쿡. 맞네. 내 정신 좀 봐.”

아까랑은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 잔뜩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자기 자취방에 남자를 들이는데 무방비한 여자가 더 이상할 것이다.

띡띡거리는 소리와 함께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가는 이소연은 안에서 잠깐 멈칫하더니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잠깐만, 여기 있을래?”

“응. 그럼 나도 들어가서 옷 간편하게 입고 나올게.”

“어, 그게 낫겠다. 천천히 입고 나와! 천천히 입어야 되. 꼭이야.”

“응.”

귀엽네.

말한대로 옷을 갈아입고 나가서 기다리자 조금 후에 현관문이 열렸다.

이소연은 입술을 주먹으로 가리고 부끄럽다는 듯 말했다.

“들어와도 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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