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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어플-597화 (597/599)

〈 597화 〉 [뜻 밖의 상황]

* * *

“이제 계약을 할 수 있을 거야.”

“정말로요? 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수진이가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정말로 내가 해낼 거라곤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반면에 다른 애들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런 걸 하도 많이 봐서 그런 걸까?

나는 잠시 애들의 반응을 살펴보다가 슬쩍 수진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평범하게 말로 설득했지.”

“그, 그걸로 됐다고요?”

거듭 놀라는 수진이의 태도에 나는 적당한 변명을 둘러댔다.

“안 될 건 없지. 그리고 지금은 스켈레톤이 되었지만, 원래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잖아. 안 그래?”

“아……. 그렇죠. 그러네요. 오빠 말대로……. 사람이었죠. 혹시 저하고 계약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제가 멋대로 되살려낸 것 때문인 건가요? 만약에 그것 때문에 화난 거라면…….”

수진이가 스켈레톤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근데 지금은 화가 풀렸으니까 괜찮을 거야. 자, 어서 계약해봐.”

“지금 바로요?”

“그래.”

나는 수진이가 그녀, 스켈레톤과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살짝 옆으로 비켜줬다. 이 때, 둘 사이에 잠깐 정적이 흐르긴 했지만 이내 둘은 내가 한 말대로 계약을 맺기 위해서 서로를 마주 보며 몇 가지 손짓을 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올려다보며 손으로 자꾸 무언가를 누르는 걸 보면 시스템으로 계약을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어때? 계약이 된 거야?”

“아, 네. 일단 되긴 했는데……. 조건부 계약이래요. 정식 주인으로 계약되진 않고, 임시라고 하는데 이거 괜찮은 걸까요?”

수진이가 조건부 계약을 맺게 된 건, 아마도 나 때문일 것이다. 슬며시 곁눈질로 스켈레톤을 바라보자, 그녀가 마치 뿌듯해하는 것 같은 몸짓으로 나를 마주 봤다. 그걸 보니, 나 때문인 게 확실했다.

나는 도로 수진이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조건부 계약이란 거면, 뭔가 따로 조건이 있다는 거지? 조건이 뭔데?”

“일단 1년 계약이래요. 그리고 진정한 주인의 부름이 있을 땐, 계약이 즉시 파기하고 본래의 주인에게 돌아간다고 하는데……. 본래의 주인이 누굴까요?”

“아마 본인이 살아생전에 모셨던 주군이 아닐까?”

내가 그럴듯한 추측을 늘어놓자, 옆에서 듣고 있던 진호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탄성을 질렀다.

“와, 죽어서도 주군을 모시는 기사라니……! 진짜 멋있네요. 아니, 기사는 아니려나? 착용하고 있던 갑옷이 약간 허름했으니까……. 병사였을까요?”

“그거야 모르지. 아무튼 크게 문제될 건 없을 거야.”

나는 적당히 맞장구쳐주는 동시에 수진이를 안심시켰다.

“문제 없을까요?”

“수진이, 네가 하기 나름이겠지. 열심히 노력해서 주인으로 인정받아봐.”

“으음, 한 번 노력해볼게요.”

열심히 해보라며 격려해줬지만, 수진이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별로 없었다. 뒤에서 스켈레톤도 어림없단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아니, 불편해하고 있다고 해야 하려나? 내가 자기를 버리려고 한다고 오해한 모양이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일단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고자, 나는 애들 몰래 스켈레톤에게 눈짓을 보냈다.

달그락.

눈짓 한 번에 스켈레톤의 기색이 환하게 풀렸다.

방긋 웃는 스켈레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나는 다시 애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이제 통로로 되돌아가 보자.”

“네!”

다들 아직 기운이 넘치는 모양인지, 힘차게 대답했다. 아니면 단순히 주변에 시체가 즐비한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걸지도 몰랐다. 아무튼 우린 여길 빠르게 벗어난 뒤에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선두는 진호가 섰다. 진호는 앞쪽에 투명한 벽이 없는지, 시시때때로 손을 뻗으며 앞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 산을 오르는데, 돌연 진호가 손등으로 허공을 두드리며 걸음을 멈췄다.

“형, 투명한 벽이에요.”

투명한 벽에 다다랐으니, 더 이상 앞으로 나가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옆에 서있는 수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수진아, 한 번 들어가 보라고 해볼래?”

“하아, 네. 앞으로 가세요. 아니, 가주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수진이가 긴장된 표정으로 스켈레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명령에 스켈레톤이 군말 없이 앞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스켈레톤이 점차 투명한 벽에 가까웠다.

“오, 됐다! 형, 봤어요?”

이윽고 스켈레톤의 몸이 투명한 벽을 통과한 순간, 진호가 감탄성을 터트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 봤어.”

“이제 남은 건, 스켈레톤한테 맡기면 되겠네요. 수진아, 어서 스켈레톤 보고 갔다 오라고 해봐.”

진호의 보챔에 수진이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스켈레톤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제법 구체적으로 해야 할 것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이대로 쭉 걸어가다 보면 동굴 입구 같은 게 보일 거예요. 거기 안에 들어가면 남자랑 여자 시체가 하나씩 있을 텐데, 그걸 가지고 나와주세요. 최대한 조심해서요. 알았죠? 조심해서 가지고 나오셔야 해요.”

달그락.

수진이의 설명을 다 들은 스켈레톤이 마치 대답을 하듯이 턱을 한 차례 움직이고는 곧바로 뒤돌아섰다. 그리곤 거침없이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린 스켈레톤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근처에 잠깐 앉아서 쉬었다.

“잘 될까요?”

“믿고 기다려봐야겠지.”

“스켈레톤이라서 조금 걱정되긴 하는데……. 그래도 제가 아는 스켈레톤하곤 다르게 똑똑해 보여서 다행이네요. 옛 주군에 대한 충성심도 남아있고. 혹시 수진이가 제작술로 제작한 거라서 그런 걸까요?”

“정예화시킨다고 그랬으니까, 제작술 영향도 없잖아 있겠지.”

나는 스켈레톤 제작술이란 스킬이 가진 잠재력에 대해서 생각하며 대답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수진이가 가진 스켈레톤 제작술은 높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저 정도로 높은 자의식을 가진 스켈레톤이라니. 심지어 정예화를 통해서 성장의 여지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내가 너무 과대평가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좋은 스킬이라는 건, 변함없지.’

잘만 키운다면 수진이 혼자서도 멸망한 세계의 탑을 정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짜보는데, 문득 다은이가 물주머니를 가지고 나한테 다가왔다.

“오빠, 물 좀 마실래요?”

“오, 마침 목 말랐는데 나 좀 주라.”

물주머니를 본 진호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끼어들었다. 하지만 다은이는 순순히 내어줄 생각이 없는지, 필사적으로 물주머니를 사수하며 말했다.

“너한테 안 물어봤거든? 현이 오빠, 이거 받으세요.”

“아, 치사하게 이럴 거야?”

“그러게 누가 물주머니 챙기지 말래?”

이처럼 두 사람 티격태격하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진하가 자기 물주머니를 진호한테 건네주며 말렸다.

“둘이 그만 싸우고, 진호야. 내 거 마셔. 난 마셨으니까.”

“어? 괘, 괜찮아?”

“응.”

진하한테서 물주머니를 받은 진호가 빨개진 얼굴로 좋아했다. 어찌나 좋아하던지, 잇몸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한창 좋을 때다.’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고는 다은이가 준 물주머니를 풀어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그렇게 목을 축이고 나자, 진호가 불쑥 수진이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아참, 그러고 보니 계속 묻고 싶었는데……. 시체를 가지고 와서 뭐 하려고 하는 거야? 아, 설마 좀비……. 컥!”

진호가 좀비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다은이가 손바닥으로 그의 등을 세게 때렸다.

“야, 이 미친놈아! 뭔 개소리야!”

“아, 아니……. 난 어디까지나 현실적으로…….”

“현실적이긴 뭐가 현실적이야? 넌 친했던 사람을 좀비로 만들고 싶냐?”

“그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래서 시체를 가지고 와서 뭐 하려고?”

이 정도로 혼났으면, 그만 포기할 법도 하건만 진호는 꿋꿋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질문에 수진이가 조금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탑 밖으로 데려가고 싶어서요.”

“탑 밖으로……?”

“네, 물론 여기서 탈출부터 해야겠지만……. 일단 되든 안 되든, 현실로 함께 돌아가고 싶어서요. 언니랑 오빠도 가족들이 보고 싶을 테니까요.”

“그건, 뭐……. 그렇지. 그러네. 미안, 내가 아까 헛소리를 해서.”

“아, 아니예요. 괜찮아요.”

진호가 머리를 숙여서 사과하자, 수진이가 다급히 손을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처럼 우리가 잡담을 나누고 있는 사이, 멀리서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약간 묵직한 소리였다. 마치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것처럼.

“아, 왔다. 그리고……. 있다!”

달그락.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남녀 한 쌍의 시체가 스켈레톤의 옆구리에 각각 끌어 안겨있는 게 보였다.

“아, 아…….”

그 모습을 본 수진이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신음했다.

“수진아, 괜찮아?”

“흐윽, 윽……. 네, 괜찮아요. 전 괜찮아요, 언니.”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안색이 많이 힘들어 보였다. 다은이도 그리 생각한 모양인지, 수진이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말했다.

“힘들면 말해. 나한테 말하기 힘들면 아무한테라도. 알았지?”

“네…….”

힘겹게 고개를 끄덕여 대답한 수진이는 스켈레톤이 데려온 남녀 시체를 확인했다. 두 구의 시체는 이전에 봤던 대로 끔찍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게다가 부패도 꽤 진행된 상태였다.

수진이는 그 모습을 보며 한참동안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가끔씩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우리는 일단 못 본 척해줬다.

“이제 어떻게 하죠?”

수진이를 배려해주고자, 살짝 자리를 비켜줬더니 진호가 나한테 다가와서 질문을 던졌다. 이에 나는 오늘 일정을 조정할 필요성을 느꼈다. 원래대로라면 오염된 괴물을 찾기 위해서 좀 더 도시 외곽을 돌아다녀야 했지만, 수진이의 상태가 저래서야 더 돌아다니긴 무리일 것이다.

“일단 도시로 되돌아가자. 천 같은 거로 덮어둔 다음에 헛간에 보관해둔다면 최대한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을 거야. 관 같은 걸 구할 수 있으면 더 좋고. 아니, 아예 도시로 돌아가자마자 내가 장의사부터 찾아볼게.”

“아, 그러면 저도 도와드릴게요.”

“도와주면 나야 좋지.”

진호가 평소보다 더 의욕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아까 전에 막말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 것 같았다.

“오빠, 저도 같이 갈래요.”

그리고 우리 이야기를 뒤에서 몰래 엿듣고 있던 다은이가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이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음대로 해.”

“아싸.”

내 허락에 다은이가 어린애처럼 좋아하며 웃었다. 다만, 수진이를 배려해서인지 크게 소리를 내어 웃거나 그러진 않았다.

“자, 그럼 내려가자. 다들 배고프지? 일단 돌아가서 뭐라도 좀 먹자.”

이미 점심시간을 한참 넘겨서 다들 배고플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진호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근데 이대로 스켈레톤을 데리고 도시로 가도 괜찮을까요? 그 왜 있잖아요. 소설이나 영화 같은데서 보면, 흑마법사나 네크로멘서는 대개 악의 축이잖아요. 여기서도 그런 거 아닐까요?”

악의 축이라.

확실히 일리 있는 이야기였기에 나는 적당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러네. 그럼 도시에 들어가기 전에 스켈레톤은 잠깐 도시 외곽에 숨겨두고, 시체만 우리가 직접 옮기자.”

“그러죠.”

이렇듯 스켈레톤에 대한 처우까지 정한 우리는 수진이가 울음을 완전히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 뭐, 뭐야? 도시에서 연기가 나고 있는데요?”

그리고 이처럼 산을 거의 다 내려갔을 때쯤에 진호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불이라도 난 걸까요? 다들 괜찮으려나?”

애들의 말대로 도시 안에서 검은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멀리 보이는 도시를 자세히 살펴봤다.

‘단순히 불이 났다고 하기에는 사람들의 반응이 조금 이상한데?’

보통 화재가 일어났다고 해서 사람들이 도시 밖으로 대피까지 하던가? 실제로 도시 성문 쪽이 많은 수의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 이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물밀 듯이 도시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성벽 위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활을 든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뭔가를 조준하고 있는 게 보였다.

“어서 가보자. 수진아, 스켈레톤은 여기에 잠깐 두자.”

“네.”

우린 스켈레톤과 두 구의 시체를 이곳에 잠시 놔둔 채, 빠르게 산을 내려갔다. 그리고 이윽고 도시 성문 앞에 도착하자,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괴, 괴물이야……. 괴물이 우릴 모두 죽일 거야……!”

“이젠 다 끝났어. 여기도, 이젠…….”

역시 단순한 화재 사고가 아니었던 모양인지, 사람들이 하나 같이 괴물을 언급하고 있었다.

“형, 이거…….”

“십중팔구 오염된 괴물이겠지.”

왜 하필 지금 오염된 괴물이 나타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벌어진 이상 놈을 처치하는 게 우선이었다.

나는 손에 쥔 창을 꽉 움켜쥔 채로 애들을 돌아봤다.

“나하고 진호만 도시 안으로 들어갈게. 다은이랑 진하, 수진이는 여기에 남아있어.”

지금 여기서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은 나와 진호뿐이었다. 그러니 이 판단이 옳았다. 하지만 다은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인지, 단번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 앞으로 뛰다시피 다가왔다.

“저도 같이 들어갈래요!”

“아니, 너희는 여기에 남아있어. 그게 더 안전할 테니까. 그리고 여차할 때, 다은이 네가 진하랑 수진이를 지켜줘야지.”

“하지만…….”

“부탁할게.”

다은이의 어깨를 한 차례 두드려서 진정시킨 나는 진호만 데리고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어이, 이봐! 지금 도시 안은 위험하니까 당장 돌아가!”

병사 한 명이 도시 안으로 들어가는 우리를 발견하곤 큰 소리로 제지했다. 하지만 도시 밖으로 도망치려는 사람들이 워낙에 많다 보니, 직접적으로 우리를 제지하진 못 했다. 그렇게 우린 밀려드는 인파를 이용해서 수월하게 도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형, 이제 어디로 가죠?”

“일단 숙소부터 확인해보자. 혹시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네, 그러죠.”

나와 진호는 큰 대로를 따라 숙소 쪽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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