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6화 〉 [뜻 밖의 상황]
* * *
스켈레톤이라면 투명한 벽을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시험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애들도 내 말이 일리 있다고 여긴 모양인지,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해줬다.
“근데 시체는 어디서 구하죠?”
다만, 스켈레톤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시체가 필요했다. 그것도 인체를 구성하는 뼈가 90퍼센트 이상 남아있는 온전한 시체가 말이다.
‘시체라.’
공동묘지에 가면 쉽게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과연, 묘지기가 우리한테 시체를 순순히 넘겨줄까? 오히려 수상쩍게 여기고, 경비대에 신고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내가 경비대 대장인 니르케와 친분이 있는 만큼 감옥에 갇히거나 벌을 받는 일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동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이야기였다.
‘공동묘지 말고 시체를 얻을 만한 장소라면…….’
곰곰이 생각해보던 나는 문득 이전에 진호가 나한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진호야, 저번에 네가 나한테 말했던 거 기억나? 도시 안의 남자들이 괴물이랑 싸우다가 다 죽었다고.”
“페놀 누님이 했던 이야기요? 네, 기억나요. 그때, 남자들이 싹 다 죽고 용사라는 사람이 겨우겨우 막았다고 했었죠.”
“혹시 그때 죽은 남자들이 어디에 묻혔는지 들었어?”
“네? 아뇨, 그건 못 들었어요. 근데 아마도 전부 다 공동묘지 같은 곳에 묻히지 않았을까요?”
진호의 대답은 지극히 합리적인 대답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글쎄……. 그거야 모르지. 애초에 여긴 남자와 여자의 지위가 역전된 세상이잖아. 굳이 힘과 시간을 들여서 남자들의 시신을 수습할 필요가 있겠냐면서 내버려 뒀을 수도 있지.”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요?”
진호가 꺼림칙하단 표정을 지으며 부정하자, 곁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은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끼어들었다.
“근데 오빠, 좀 이상하지 않아요? 남자하고 여자의 지위가 역전된 세상인데 왜 남자들만 죽은 거예요? 남자와 여자의 지위가 역전됐다면 당연히 여자들이 괴물하고 싸우는 게 맞지 않아요?”
갑작스러운 질문이긴 했지만, 동시에 시기적절한 질문이기도 했다. 나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두 가지 가능성이 있어.”
“어떤 가능성이요?”
“하나는 도시의 남자들이 괴물하고 싸우다가 전부 다 죽은 게 굉장히 오래된 일이라는 거지. 거의 100년쯤. 도시의 남자가 극단적으로 줄어들고, 여자들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여자들의 지위가 높아진 거지. 상대적으로 남자들은 지위가 낮아지고. 하지만 이건 솔직히 말하자면 그다지 가능성이 높지 않아.”
“왜요?”
“인식이 변할 정도로 오래된 일인데도 불구하고 도시의 인구 성비가 여전히 극단적으로 여자가 많잖아. 아무리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여자아이들만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인구 성비가 안 맞는 건, 절대로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야.”
“아, 하긴…….”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여기, 탑이 일부러 사람들의 기억을 조작했다는 거지. 애초에 여긴 멸망한 세계잖아. 멸망한 세상에서 여기 있는 사람들만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건, 너무 속편한 이야기 아냐?”
“하지만 어쩌면……. 정말로 용사라는 사람이 구해준 걸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면 최소한 괴물로부터 도시를 지키다가 죽은 남자들을 애도하는 추모비라던가 동상 같은 게 세워져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남편 혹은 아들, 애인의 죽음에 슬퍼하는 여자들이라던가.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도시 안의 여자들은 죽은 남자들을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였어.”
“그러고 보니 도시 안에서 울거나 슬퍼하는 사람을 한 명도 못 봤어요.”
“내 추측이긴 한데, 지금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은 전부 다 가짜인 건 아닐까? 탑이 일부러 이런 환경을 조성했다고 하면 앞뒤가 딱 들어맞긴 해. 물론 남녀 역전 세계관을 굳이 넣을 필요가 있겠냐 싶긴 하지만……. 남자들과 여자들을 분열시키기 위해서 만든 함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주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야.”
“이게 함정이요? 아, 뭐……. 오늘 아침에 사람들이 서로 싸운 걸 보면 함정인 것 같긴 한데.”
오늘 아침에 봤던 광경을 머릿속으로 떠올린 모양인지, 다은이가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대답했다. 이에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터트리고는 재차 입을 열었다.
“근데 사실 더 중요한 건, 남자들이 싸울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거지.”
“맞아요. 그게 가장 큰 문제긴 하죠. 그런데 이제 괜찮지 않아요? 투명한 벽이 점점 도시 쪽으로 좁혀오고 있잖아요.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다 같이 사이좋게 투명한 벽에 압사당해서 죽게 생겼는데, 설마 계속 안 싸우려고 하겠어요?”
“맞아. 다은이, 네 말대로 이젠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이번에는 진호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며 질문을 던졌다.
“형, 근데 이러면 남녀 역전 세계관이란 게 함정이 아니게 되지 않아요?”
“아니, 함정으로선 여전히 유효하긴 해. 우리가 이 사실을 일찍 알아차렸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몰랐다면 영문도 모른 채 꼼짝없이 벽에 압사당해서 죽는 거였잖아.”
“아, 그러네요.”
“그나저나 남자들이 괴물과 싸우다가 죽은 장소. 거기에 대해서 뭐 들은 거 없어?”
내 물음에 진호가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뭔가 떠올린 모양인지 손뼉을 치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경비대 부대장님하고 도시 외곽 쪽 순찰을 돌다가 얼핏 들었었어요. 근처에서 용사님이 괴물을 쓰러트렸었다고요.”
“여기서 멀어?”
“부대장님이 가르쳐주신 장소가 정확하기만 하면 여기서 그렇게 멀지 않아요.”
“잘됐네. 그럼 거기로 가보자.”
행운이 높은 덕분일까?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풀렸다.
나는 잘 잘했다는 의미에서 진호의 등을 한 차례 탁 두드려주고는 그를 앞장세워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진호를 따라 20분 정도를 걷자, 수진이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보다 훨씬 더 지독한 악취가 코끝을 찔렀다.
“형, 아무래도 형이 한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진호가 코를 붙잡으며 나를 돌아봤다.
지금 우리가 맡고 있는 악취가 뭘 의미하는 건지, 바보가 아닌 이상 바로 알 수 있었다. 시체 썩는 냄새였다.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지만,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전진했다.
“우윽.”
수풀을 뚫고 냄새의 진원지에 다다른 순간, 비위가 약한 진하가 헛구역질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다른 애들의 표정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눈에 보이는 건, 온통 시체뿐이었다.
당시의 전투가 얼마나 처절했는지, 멀쩡한 시체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잘 찾아보면, 멀쩡한 시체 하나둘쯤은 건질 수 있겠지.’
어차피 인체를 구성하는 뼈가 90퍼센트만 온전하면 됐다. 그런 생각에서 주변을 돌아보는데, 문득 내 눈에 거대한 알 같은 게 보였다. 흡사 영화 속 외계인의 알주머니를 보는 것만 같았다.
섬뜩한 기분에 나는 손에 쥔 창을 꽉 움켜쥔 채로 다가갔다.
“오빠?”
“잠깐 여기서 기다려.”
나는 애들만 놔둔 채, 한 걸음씩 신중하게 다가갔다.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저게 오염된 괴물의 알이라면……?’
그리고 아직 오염된 괴물이 태어나지 않은 거라면? 만약에 내 추측이 맞다면 이건 절호의 기회였다. 절대로 놓쳐선 안 될 기회였기에 나는 충분히 알 쪽으로 다가간 다음에 있는 힘껏 창을 찔러넣었다.
콰직!
창을 찔러넣은 순간, 알껍데기가 힘없이 부서졌다.
‘속이 비었다고?’
놀랍게도 속이 텅 비어있었다.
반대편으로 돌아가 보니, 이미 알에서 부화한 듯 끈적한 점액질만 땅바닥에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을 뿐이었다.
“오빠, 괜찮아요?”
“형, 해치운 거예요?”
이처럼 내가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때, 애들이 다가와서 물어봤다. 이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이미 비어있었어. 아무래도 벌써 부화해서 어디로 가버린 모양이야.”
“으, 아깝네요. 만약에 저게 오염된 괴물이었다면 지금 바로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
아깝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만약에 어제 허투루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곧장 오염된 괴물을 찾아서 돌아다녔다면 어쩌면 진작 해치웠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안타까움에 살짝 탄식한 나는 땅바닥에 길게 나있는 끈적끈적한 점액질을 바라봤다.
‘저걸 따라가면 오염된 괴물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무작정 점액질을 쫓아가기엔 여기저기 중구난방으로 흩뿌려져 있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건, 이 알에서 태어난 괴물이 정말로 오염된 괴물이냐는 것이었다.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알에서 부화한 이상, 나 혼자서 놈을 처리하긴 살짝 부담스러웠다.
‘안전하게 하자. 너무 서두를 필요 없어.’
나보다 강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절대로 간과할 수 없었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고는 애들한테 말했다.
“나는 이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올게. 혹시라도 위험에 있을지도 모르잖아.”
“형, 그럼 저도 같이…….”
“아니. 진호, 너는 애들하고 같이 스켈레톤으로 만들만한 시체를 찾아줘. 여차할 때, 애들도 지켜주고. 알았지?”
나는 내가 들고 있는 창을 진호에게 건네줬다. 그러자 그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형은요?”
“난 이거 쓸게.”
진호의 물음에 나는 허리를 숙여,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창을 집어 들었다. 창끝이 살짝 녹슬어 있긴 했지만, 창대 자체는 여전히 튼튼해 보였다. 실제로도 금이 간 곳 없이 멀쩡했다.
“차라리 제가 그걸 쓸게요.”
“됐어. 괜찮으니까 그거 써. 난 이거면 충분하니까.”
나는 진호를 억지로 애들한테 돌려보내고는 공터 주변을 꼼꼼히 살펴봤다. 혹시라도 오염된 괴물이 멀리 가지 않고, 이 근처에서 먹잇감을 노리듯이 우리를 노리고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내 기우에 불과했던 모양인지, 괴물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주변의 안전은 확보됐고.’
이처럼 주변을 꼼꼼히 살펴본 나는 다시 애들한테 돌아갔다. 그러자 이미 시체를 확보해서 스켈레톤을 제작하고 있는 모양인지, 수진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허공에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뼈를 맞추고 있는 건가?’
신기하게도 수진이가 허공에 손을 댈 때마다 진물처럼 뭉개진 피부 속에 묻혀있던 뼈가 밖으로 튀어나와선 레고처럼 하나씩 조립되었다. 그 모습이 정말로 스켈레톤을 제작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잠자코 수진이를 지켜봤다.
“아……. 윽. 가만히 있어. 으윽.”
그렇게 한참 스켈레톤을 제작하던 수진이가 돌연 끙끙 앓는 신음을 내며 힘겨워했다. 더불어 스켈레톤의 신체 부위가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며 그녀를 거부하는 듯한 행위를 취했다. 설마 이런 변수가 존재할 줄이야.
달그락. 달그락!
“대체 왜 이러는 거야. 큭! 빨리 조립한 다음에 언니랑 오빠를 구해와야 하는데……!”
서로 씨름을 하듯이, 한동안 팽팽한 신경전이 계속 오고 갔다. 스켈레톤은 끝까지 수진이를 밀어냈고, 그녀는 어서 빨리 스켈레톤을 제작한 다음에 언니와 오빠의 시신을 수습하고 싶다는 생각에 다소 강압적으로 조립을 이어가려고 했다.
‘서두르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스켈레톤이 저토록 거부하는 걸 보면, 분명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반쯤 완성된 스켈레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녀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수진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응? 그녀?’
왜 나는 저걸 여자라고 생각하는 거지? 슬쩍 시선을 아래로 내려봤다. 그러자 반쯤 다져진 고기처럼 짓뭉개져 있는 시신이 눈에 들어왔다. 심지어 피부는 진물과 구더기로 온통 뒤덮여 있어서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기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나는 저걸 여자라고 느꼈다.
‘그냥 스켈레톤을 많이 봐서 그런 건가?’
얼떨떨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이내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수진이의 어깨 위에 손을 살포시 얹었다.
“오, 오빠?”
“조급해하지 말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봐.”
“존중이요? 하지만 이 사람은 이미 죽어서…….”
“이것도 어떻게 보면 죽은 사람을 억지로 부활시키는 거잖아. 혹시 허락은 구해봤어? 스켈레톤으로 만들어도 되냐고.”
“아, 아뇨…….”
“그럼 한 번 물어봐.”
내가 차분한 어조로 권하자, 수진이가 슬쩍 눈앞의 스켈레톤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는 잠시 손을 멈추고, 스켈레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그쪽을……. 스켈레톤으로 만들어도 될까요?”
달그락. 달그락.
수진이의 말에 스켈레톤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반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수진이가 두 눈을 화등잔처럼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의사소통이 된다는 걸 깨달은 수진이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진지하게 부탁했다.
“부탁드릴게요. 저 좀 도와주세요.”
달그락.
그녀의 진지함을 엿본 걸까. 스켈레톤의 움직임이 드디어 멈췄다. 그걸 본 그녀는 다시금 신중하게 뼈를 맞추기 시작했다. 달깍. 딸깍. 각각의 뼈가 본래 있어야 하는 장소에 맞춰짐에 따라 스켈레톤의 모습이 점점 온전한 형태를 띠었다.
‘이렇게 보니까, 마치 프라모델을 조립하는 것 같네.’
처음엔 하나의 뼈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어느새 머리부터 팔과 다리, 발까지 완성되고 있었다. 다은이와 진호, 진하도 신기하단 듯 멍하니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스켈레톤 제작술을 배워서, 스켈레톤 하나 조립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나저나 뼈의 형태를 보니…….’
두개골의 크기와 골반의 형태, 대퇴골과 비골의 길이로 보건데 상당히 큰 키의 미녀였을 게 분명했다. 생전에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당히 궁금했다.
나는 이런저런 모습을 상상하며 스켈레톤이 완성되기를 기다렸고, 이윽고 5분 정도를 더 기다리자 드디어 온전한 모습을 갖춘 스켈레톤이 땅 뒤에 두 발로 서며 우리를 바라봤다.
“하아, 드디어 완성했어요. 이제 주인 의식을 치르기만 하면…….”
거의 1시간이 걸렸던 만큼 수진이의 안색이 무척이나 지쳐 보였다.
그녀는 가쁘게 숨을 내쉬며, 마지막 남은 주인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 스켈레톤에게 손을 뻗었다.
탁!
달그락.
“……!”
하지만 그 순간, 스켈레톤이 붉은 안광을 흉흉하게 빛내며 수진이의 손을 차갑게 쳐냈다. 그리고는 마치 시위를 하듯이, 혹은 깔보듯이 수진이를 내려다보며 턱을 달그락거렸다.
그 모습이 마치, ‘내 주인은 오직 한 분 뿐이다.’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뭐, 뭐예요! 스켈레톤으로 만들어도 된다고 했잖아요! 허락도 받았잖아요!”
갑자기 자신을 거부하는 스켈레톤의 태도에 수진이가 억울하단 표정으로 소리치자, 스켈레톤이 고개를 홱 돌리며 외면했다.
‘스켈레톤으로 만드는 건 동의했지만, 널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건 동의한 적 없다……. 인가.’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스켈레톤이 지금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 저절로 이해가 되었다. 이것도 매니저 어플의 영향 때문인 걸까? 나는 잠시 스켈레톤과 수진이를 바라보다가 다은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다은아, 미안한데 잠깐 수진이랑 다른 애들 좀 데리고 저기 좀 가 있어 줄래? 내가 스켈레톤이랑 이야기 좀 해볼게.”
“네? 오빠가요?”
“음, 왠지 이야기가 통할 것 같아서. 수진아, 내가 이야기 좀 해도 되지?”
내가 수진이를 바라보며 묻자, 그녀는 잠깐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윽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은이와 함께, 잠깐 뒤로 물러나 줬다. 이를 확인한 나는 단둘이 남게 된 스켈레톤을 바라봤다.
‘스켈레톤을 다시 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지만.’
스켈레톤 한 마리를 제작하는데만 거의 1시간이 걸렸다. 심지어 수진이는 지금 많이 지친 상태였다.
여기서 스켈레톤을 다시 제작한 건, 여러모로 힘들 것이다. 게다가 기껏 다시 제작한 스켈레톤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스켈레톤처럼 반항적이라면, 그야말로 헛수고를 한 셈이었다. 그러니 차라리 지금 여기서 설득하는 편이 옳았다.
‘정확히는 거짓말을 할 거지만.’
물론 이게 통하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스킬이니, 통하지 않을까 싶다.
“죽으면서 기억을 잃은 것 같은데, 당신의 주군은 한수진이 맞습니다.”
[연기 스킬이 발동됩니다.]
[행운에 따른 보너스 효과가 부여됩니다.]
[행운이 재미없단 표정을 짓습니다. 우우~! 심지어 야유까지 보냅니다. 행운은 남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당신의 말을 듣고 무척이나 크게 화냅니다!]
달그락.
설마하니 실패라니.
전혀 예상지도 못한 실패에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스켈레톤은 마치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턱뼈를 연신 위아래로 움직이며 내게 분노를 쏟아냈다. 흡사 모욕적인 욕설을 내뱉고 있는 것 같았다.
‘남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을 줄이야.’
아무래도 내가 이득 보는 쪽으로 거짓말을 해야 하는 듯 싶었다. 나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의 충정을 시험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달그락?
“왜냐하면, 제가 당신의 주군이니까요.”
[연기 스킬이 발동됩니다.]
[행운에 따른 보너스 효과가 부여됩니다.]
[행운이 박수를 치며 휘바람을 붑니다. 까르륵! 웃는 소리가 천상에 울려 퍼집니다. 상대방이 당신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기겁합니다.]
쿵! 달그락! 달그락!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켈레톤이 땅바닥에 넙쭉 엎드리며 덜덜 떨었다.
방금 전, 나한테 욕설을 내뱉었던 게 어지간히도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그녀는 당장에라도 엉엉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심하게 덜그럭거렸다. 이에 나는 재빨리 그녀의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사과할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기뻤습니다. 당신의 충정이 여전히 저를 향하고 있었으니까요.”
달그락…….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있어서 저 말고 한수진을 섬겨줬으면 합니다.”
달그락!
“당신을 버리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게 당신이 절 지켜주는 겁니다.”
달그락?
“이건 일종의 위장입니다. 제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요. 저는 지금 불특정 다수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있으니까요.”
[연기 스킬이 발동됩니다.]
[행운에 따른 보너스 효과가 부여됩니다.]
[행운이 크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얼굴이 발그레 붉어집니다. 상대방이 당신의 말을 철썩 같이 믿습니다.]
달그락! 달그락!
다행히도 내 뜻을 이해해준 스켈레톤이 붉은 안광을 강렬하게 빛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를 확인한 나는 뒤에서 우릴 지켜보고 있던 애들을 손짓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