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595화 (595/599)

〈 595화 〉 [뜻 밖의 상황]

* * *

“뭐, 뭐? 그게 정말인가?”

니르케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네, 제가 어젯밤 확실히 봤습니다.”

“봤다고? 어디서?”

“지하로 통하는 하수구에서 봤습니다. 좀 더 정확히는 사람들이 버린 음식을 입에 물고서 하수구로 들어가는 걸 본 거지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괴물이 아니라 쥐새끼를 잘 못 본 것이겠지!”

“저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두 마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걱정이 든 저는 괴물들을 몰래 쫓아갔고, 거기서 직접 보게 된 겁니다. 지하 하수구에 잔뜩 모여있는 수십 마리의 괴물들을요!”

“수, 수십 마리라고……? 하, 용케 살아 돌아왔군.”

니르케가 도저히 믿기 어렵단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단호히 부정하지 않는 걸 보면, 연기 스킬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의 안색을 힐끔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순전히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운이라.”

“그나저나 괴물들을 이대로 놔두실 생각입니까?”

“아니, 자네의 말대로 도시 지하에 괴물들이 모여 살고 있다면 한시라도 빨리 토벌해야겠지.”

니르케는 경비 대장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 바지를 도로 입었다. 다행히도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아는 여자였다.

혹시라도 막무가내로 내게 쿤닐을 요구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린 나는 정복을 차려입고 있는 니르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경비 대장님.”

“음? 아직 더 할 말이 남아있나? 아, 혹시 괴물을 발견하여 신고한 것에 대한 포상을 원하는 건가? 그거라면 내가 직접 사실 여부를 확인한 다음에 영주님께 보고를 올려서 적합한 포상을 주도록 하지. 물론, 자네가 포상을 노리고 거짓으로 신고한 경우에는 내가 영주님을 대신해서 혹독한 벌을 내려주게 되겠지만. 흐흐, 기대해도 좋을 거야.”

니르케가 음흉하게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혹독한 벌이라. 그녀가 어떤 식으로 나한테 벌을 줄지 얼추 상상되었다. 기껏 해봐야 밤새도록 쥐어 짜내기 정도이려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건 벌이 아니라 상이었다. 물론 지금처럼 씻지도 않은 채, 나한테 쿤닐을 요구한다면 제법 지독한 벌이 되겠지만…….

‘지하 하수구 탐색을 도시 병사들에게 맡길 수 있다면 절대로 밑지는 장사가 아니지.’

안 그래도 도시 지하를 어떻게 수색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고민을 해결하게 됐다.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는 동시에 무척이나 억울하단 표정을 지었다.

“거짓말이라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 그거 참 아쉽군. 그나저나 날 부른 이유가 뭐지?”

“아, 그게 사실은……. 잠깐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허락을 받고 싶어서 찾아온 겁니다.”

도시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말에 니르케가 인상을 찡그리며 나를 추궁했다.

“도시 밖으로? 어째서지?”

“죽은 친척의 시신을 찾아서 땅에 제대로 묻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시신은 이 앞의 산에 묻혀 있습니다.”

“설마 도망칠 셈은 아니겠지?”

“제가 뭣 하러 도망을 칩니까? 저는 여기가 좋습니다.”

[진실 속 거짓 스킬이 발동됩니다.]

[행운에 따른 보너스 효과가 부여됩니다.]

[행운이 계란을 탁! 깹니다. 쌍란입니다!]

참 저렴한 행운이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니르케는 더 이상 날 추궁하지 않고, 통행증 하나를 끊어주었다.

“이걸 들고 가라. 너무 늦게 오진 말고.”

“감사합니다.”

이렇듯 무사히 통행증을 발급받은 나는 경비 대장의 집무실을 빠져나간 다음에 경비대 건물 밖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애들과 합류했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아니에요, 그냥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만 구경해도 시간이 금방 가던 걸요.”

“그래? 그럼 다행이네.”

하긴 애들한테 있어서 여긴 온통 신기한 것 투성이일 것이다.

나는 살짝 웃고는 애들을 데리고 도시를 빠져나갔다. 경비 대장인 니르케가 발급해준 통행증 덕분에 별다른 문제 없이 수월하게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도시 밖으로 나온 우린 처음 이야기했던 대로 통로로 향했다. 산을 오르는 동안 혹시라도 오염된 괴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진 않을까 꼼꼼히 주변을 살펴봤지만, 아쉽게도 오염된 괴물은커녕 고블린의 발자국조차도 발견할 수 없었다.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설마 진짜로 도시 지하 하수구에 있는 건 아니겠지? 만약에 그렇다면 지금쯤 니르케가 이끄는 도시 경비대가 오염된 괴물과 전투를 벌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결과만 좋으면 장땡이 아닌가? 내가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이, 경비대의 손을 빌려서 오염된 괴물을 처치할 수 있는 데다가 괴물을 발견해서 신고한 것에 대한 포상까지 받게 되니 말이다.

“꺅!”

그렇게 한참 생각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앞쪽에서 난데없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깜짝 놀란 진호가 고개를 치켜들며 묻자, 앞장서서 걷고 있던 다은이가 자기 이마를 양손으로 부여잡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이게……. 앞이 막혀있는데?”

“뭐?”

다은이의 말에 진호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앞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손을 뻗자, 놀랍게도 그의 손이 마치 투명한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더 이상 나아가질 못했다.

“……진짜네? 왜 투명한 벽이 여기에 있는 거지? 원래는 더 멀리 있어야 하는데…….”

진호가 어리둥절하단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봤다. 이건 다른 애들도 똑같았다. 다은이와 진하도 투명한 벽에 직접 손을 데어보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설마 투명한 벽이 점점 좁아지고 있는 거야?”

“이거 얼른 사람들한테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예요?”

우리가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단순히 가둬두는 용도로만 놔둔 투명한 벽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매일매일 범위가 줄어드는 배틀 로얄 게임의 자기장 시스템인 듯 싶다.

나는 눈앞에 놓인 투명한 벽을 손등으로 한 차례 두드려보고는 슬쩍 고개를 돌려서 수진이의 안색을 살펴봤다.

“아, 안 돼……. 안 돼.”

수진이가 이럴 순 없다며 양 손으로 투명한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얼굴로 목 놓아 소리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안타까운 마음이 일어났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우리가 처음 봤던 통로가 나올 텐데……. 기대가 컸던 만큼, 분명 실망도 크겠지.

어떤 말로 수진이를 위로해줘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형, 이제 어떻게 하죠?”

진호도 나와 같은 마음인지, 안타깝단 표정으로 수진이를 바라봤다.

“일단……. 다른 길이 있나 찾아보자. 혹시라도 우회할 수 있는 길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있을까요?”

“있길 바라야겠지. 안 찾아보고 여기서 손 놓고 있는 것보단 낫잖아.”

내 말에 애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투명한 벽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수진이도 내 말을 듣고 포기하지 않은 듯, 눈가의 눈물을 닦고 다시 걸을 준비를 했다. 아직 몸도 성치 않은데, 앓는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계속 걷는 그녀가 대견하게 보였다. 다만, 너무 무리하면 또 몸 상태가 안 좋아질 수도 있기에 나는 수진이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수진아, 혹시라도 걷다가 힘들면 나한테 바로 말해. 혼자 속으로 끙끙 앓지 말고. 알았지?”

“네……. 고마워요, 오빠.”

수진이가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를 믿고 의지하는 시선이었다. 조금만 더 잘해주면 나한테 몸도 마음도, 전부 다 줄 기세였다. 만약 수진이가 다은이처럼 성인이었다면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었겠지만, 애석하게도 미성년자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다들 조금만 더 힘내자.”

나는 애들을 다독이고는 투명한 벽을 따라 우회할 수 있는 길을 찾아봤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우회할 수 있는 통로를 찾아낼 수 없었다.

‘다시 통로로 되돌아갈 순 없는 건가.’

아무래도 어제 진호가 말했던대로 투명한 벽이 도시를 중심으로 돔 형태로 둘러쳐져 있는 것 같았다.

‘음, 뭔가 방법이 없는 건가.’

돔 형태로 둘러쳐져 있다면 우회할 수 있는 길 따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순순히 단념해야 하는 걸까?

물론 현실에 수긍하고 단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솔직히 나나 다른 애들은 딱히 아쉬울 것도 없었다. 애초에 애들은 다시 통로 안에 들어가는 걸, 껄끄러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온 건, 순전히 수진이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수진이는…….’

수진이는 아직까지도 산길을 걷고 있었다. 어떻게든 우회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 투명한 벽에서 손을 한시도 떼어놓지 않고 있었다. 여기서 그녀를 단념시키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설령 단념시킨다고 하더라도, 수진이는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몰래 도시 밖으로 나가선 지금처럼 우회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끝없이 돌아다닐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차라리 여기서 끝장을 봐야 해.’

방법을 생각해보자. 투명한 벽에 가로막혀 있긴 하지만,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된 건 아닐 것이다.

실제로 투명한 벽은 우리만 통과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었다. 산짐승이나 새 같은 건, 아무런 제약 없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어? 잠깐…….’

우리만 아니면 되는 게 아닌가? 번뜩, 좋은 생각이 떠오른 나는 앞장서서 걷고 있던 수진이를 붙잡아 세웠다.

“수진아,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네?”

“스켈레톤을 만들자.”

우리가 안 된다면, 스켈레톤을 시키면 될 게 아닌가?

물론 정말로 그게 될지는 직접 해봐야 알겠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하염없이 걷기만 하는 것보단 훨씬 더 나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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