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4화 〉 [뜻 밖의 상황]
* * *
“정말 이대로 가도 돼요?”
진하가 걱정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나 역시도 사람들이 걱정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괜히 사람들을 다독인다고 여기서 더 시간을 지체하고 싶진 않았다. 더욱이 아까 전에 눈앞에 뜬 알림창도 마음에 걸렸다.
‘내가 무의식중에 다른 구역에서 사람들이 넘어오지 않을 거라고 단정을 지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정말로 다른 구역에 생존자가 하나도 남지 않은 걸까.’
전자라면 그나마 나았다. 이건 다른 구역의 사람들이 당장 생존하는데만 급급해서 오염된 괴물을 처치할 여력이 없다는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반면에 후자는 문자 그대로 전멸을 의미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다른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유은혜만큼은 쉽게 죽을 여자가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는 생존에 유용한 미니맵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건 내 추측이긴 하지만, 1층을 최초로 클리어한만큼 멸망한 세계의 탑으로부터 무언가 특별한 보상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멸망한 세계의 탑이 이런 건 의외로 잘 챙겨주는 편이니까.’
더욱이 멸망한 세계의 탑은 은근히 사람들에게 호의적이었다. 실제로 1층이 튜토리얼로 구성되어 있지 않았던가? 단순히 사람을 죽일 목적이었다면 굳이 이런 식으로 귀찮게 일을 꾸밀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분명 유은혜에게 뭔가를 줬을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은혜라면 그걸 잘 이용하겠지.’
영리한 여자니까. 이렇듯 생각을 정리한 나는 잠시 다른 구역의 사람들에 대한 걱정을 접어뒀다.
“괜찮을 거야. 실제로 지금까지 강석 씨하고 시은 씨가 사람들을 잘 이끌어 왔잖아.”
“하긴, 그렇겠죠?”
내 말에 진하가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른 애들도 눈에 띄게 표정이 밝아졌다.
나는 애들의 등을 한 번씩 두드려주고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우리가 첫날 마주했던 통로로 되돌아 가봐야 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물론 기껏 겨우 빠져나온 통로로 다시 돌아간다는 이야기에 다은이와 진하가 기겁하긴 했지만, 죽은 언니 오빠의 시신을 수습하고 싶다는 수진이의 간곡한 부탁에 더 이상 반대하진 못 했다.
애초에 계속 반대했다면 둘을 떼어 내놓고 갔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경비 대장한테 허락을 받고 올 테니까.”
경비대 건물 앞에 선 나는 애들을 잠시 밖에 놔둔 뒤에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삐걱대는 경첩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그와 함께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던 여자 경비가 나를 발견하곤 짓궂게 웃었다.
“오, 일찍 왔네?”
여자 경비는 밝은 금발에 햇빛에 잘 그을린 건강한 갈색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흡사 여자 버전의 금태양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속으로 감탄하며 경비대 건물을 찾아온 용무를 밝혔다.
“경비 대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경비 대장님은 안에 계십니까?”
“집무실에서 일을 보고 계실 거야. 그나저나 대장님은 좋겠네.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이른 아침부터 봉사하러 와주니까.”
“부러우면 얼른 진급하시죠.”
“그게 어디 마음처럼 되나? 그나저나 다른 애들은 어디 있어? 오늘은 같이 안 온 거야?”
“다른 사람들은 일이 생겨서 좀 늦을 겁니다.”
일이 생겼다는 말에 여자 병사의 눈살이 조금 구겨졌다.
“일은 무슨. 그냥 늦장 부리는 거겠지. 아니면 비싼 척하거나. 하여간 이래서 조금만 잘 해주면 금방 기어오른다니까.”
“더 할 말이 없으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내가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여자 병사가 불쑥 내 손목을 붙잡으며 앞을 가로막았다.
“아, 잠깐만. 뭐가 그렇게 급해? 그러지 말고 너라도 날 상대해줄래? 값은 톡톡히 치룰테니까. 어때?”
“대장님이 화내지 않으실까요?”
“비밀로 하면 괜찮아. 게다가 이게 더 꼴리고.”
말하는 걸 보아하니, 나하고 한 번 하기 전까지는 보내지 않을 생각인 듯 싶었다. 물론 경비 대장의 이름을 들먹이며 여자 병사의 손을 단호하게 뿌리친다면 더는 날 붙잡지 못하겠지만, 그래선 서로에게 안 좋은 감정만 남을 뿐이었다.
더욱이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되도록 이쪽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었다.
‘내키진 않지만, 잠깐 어울려 줘야겠네.’
다만 오늘 할 일이 많은 만큼, 오래 어울려줄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한두 번 정도 해주면 충분하려나?
“나쁜 부하네요.”
“그래, 상관의 남자를 탐하는 나쁜 년이지. 흐흐.”
여자 병사가 나를 한적하고 구석진 장소로 데려갔다. 그리곤 날 벽 쪽으로 몰아붙인 다음에 바지를 벗겼다. 그러자 잔뜩 발기한 남근이 힘차게 위아래로 껄떡이며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꿀꺽.”
그 모습을 본 여자 병사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침을 삼켰다. 그녀는 직접 보고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이 우뚝 선 남근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뭐, 뭐가 이렇게 커?”
“설마 겁먹은 겁니까?”
“누가 겁먹었다고 그래? 그냥 좀 놀란 것뿐이야.”
발끈한 목소리로 외친 여자 병사가 다급한 손길로 바지를 벗었다. 그러자 벌써부터 흥건하게 젖어있는 음부가 눈에 들어왔다. 애무 없이 바로 넣어도 될 정도였다. 물론 이렇게 흥건하게 젖어있는 상태라도, 평소라면 가볍게 애무를 몇 번 해줬겠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도 시간도 없었다.
“그럼 상관없겠네요.”
나는 여자 병사의 어깨를 두 손으로 꽉 붙잡은 다음에 질척하게 젖어있는 질 구멍 쪽으로 남근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힘을 주어서 단번에 안쪽 깊숙이 밀어 넣자, 비좁은 살덩이가 억지로 벌어지며 음란한 마찰 소리가 울려퍼졌다.
“하으으윽! 가, 갑자기……! 크흐으응!”
“급하니까요.”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나직이 속삭인 나는 허리를 거칠게 흔들어대며 질 내를 남근으로 푹푹 찔러댔다. 그리고 그때마다 여자 병사가 신음 소리를 억누르지 못하고 앙앙 울어댔다. 어찌나 크게 소리를 내던지, 1층 복도가 신음 소리로 가득 찰 정도였다. 이러다가 다른 병사들한테 들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그으윽! 거, 거긴! 오오옥!”
“여기가 좋은 겁니까?”
“조, 좋아아! 아아앙!”
생긴 건 영락없이 테크닉 좋은 NTR충 금태양 여자 버전이면서, 실제로는 별거 없는 허접 보지였다.
실제로 내가 조금 본격적으로 허리를 흔들기가 무섭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나한테 무참히 범해지고 있었다.
“이쪽은요?”
“아읏! 크흑! 안쪽, 너무 깊어엇……!”
“여기까지 닿은 건, 처음이려나? 다른 곳보다 훨씬 더 조이네요.”
“하으윽! 아앙, 닿고 있으니까……! 햐읏! 아앙, 이제! 그만……! 아으으응!”
안쪽 깊숙이 푹푹 찔러댈 때마다 여자 병사의 몸이 부들부들 떨며 경련했다. 아까 전에 봤던 당당한 태도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한 마리의 음란한 암컷일 뿐이었다.
“그만이요? 그럼 그만할까요?”
“아, 안 돼! 싫어! 그만두지 마아아! 오오옥! 간다! 가! 아으으윽!”
여자 병사가 한쪽 다리로 내 허리를 감싸며 외쳤다. 그리고 그 외침과 동시에 질 내가 꽈악하고 남근을 강하게 조였다. 어서 빨리 안에 싸달라면서 강요하고 있었다. 그 압박감에 나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질 내에 무책임하게 사정했다.
“하아아아앙!”
“큭!”
힘차게 뿜어져 나간 정액이 여자 병사의 질 내, 그리고 자궁 안을 가득 채웠다. 양이 제법 많아서 임신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차피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이건 그녀가 원한 일이었던데다가 여기가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인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멸망한 세계의 탑이 써먹기 좋게 만들어낸 허구의 장소겠지.’
물론 단순히 허구의 장소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하지만.
‘이러니까 남자들이 여기에 푹 빠져버린 거겠지.’
나는 내 품에 안겨있는 여자 병사를 억지로 떨어트려 놓은 다음에 땅바닥에 앉혔다. 이미 반쯤 정신을 놓고 있었기에 그녀한테서 벗어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금태양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조금 더 끈덕지게 달라붙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손쉬운 상대였다. 오히려 약간 맥이 빠지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금태양하고 좀 다르네.’
여자 버전이라서 그런 걸까? 혀를 내두른 나는 대충 그녀의 옷을 수건 대용으로 사용해서 몸을 닦은 뒤에 경비 대장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가는 길에 몇몇 여자 병사들이 날 향해 추파를 던지긴 했지만, 아까 본 금태양 여자 병사처럼 내 손목을 붙잡거나 그러진 않았다.
‘뭐, 이게 정상이겠지.’
지금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나는 경비 대장의 애인이나 다름없었다. 자기 상관의 애인에게 손을 델 정도로 정신 나간 부하는 없을 것이다. 그냥 금태양 여자 병사가 생긴대로 주제 넘게 나를 건드렸을 뿐이었다.
똑똑.
여하튼 경비 대장의 집무실에 도착한 나는 손등으로 문을 두드렸다.
“경비 대장님, 현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노크 후에 용무를 밝히자, 잠시 뒤 안쪽에서 ‘음, 들어오도록.’이라는 진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문을 열고 집무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진중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붉게 상기되어 있는 니르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방 안은 야릇한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냄새도…….’
야리꾸리하면서도 수컷을 자극하는 암컷의 발정난 냄새가 풀풀 풍기고 있었다. 자위라도 하고 있었던 건가? 슬쩍 니르케의 표정을 살펴보자, 그녀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날 향해 손짓했다.
“마침 잘 왔군. 딱 좋을 때 왔어.”
드르륵, 소리와 함께 의자가 뒤로 밀려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니르케는 대뜸 바지를 벗고 꾸릿꾸릿한 냄새를 풍기는 음부를 내게 보여줬다. 군데군데 어제 내가 싼 정액 찌꺼기 같은 것도 보였다. 설마, 어제 씻지 않은 건가? 그걸 보니, 살짝 치밀어 올랐던 성욕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이리 와서 빨아봐라. 이빨을 세우진 말고.”
쿤닐링구스. 여성의 성기를 핥는 행위를 강요하는 니르케의 태도에 나는 나도 모르게 질색하고 말았다.
아무리 내가 여성에게 애무를 해주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곤 하지만, 어제 내가 싼 정액이 군데군데 묻어있는 음부를 혀로 핥아줄 수 있을 만큼 비위가 좋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좀 아니지.’
눈살을 찌푸린 나는 지금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니르케 씨,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 지금 이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에 있다고? 헛소리 그만하고 어서 빨기나 해.”
으름장을 놓으며 날 닦달하는 니르케의 태도에 나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오염된 괴물이 도시를 공격하려고 다른 괴물들을 불러모으고 있는데도요? 그것도 제법 큰 규모로요.”
[연기 스킬이 발동됩니다.]
[행운에 따른 보너스 효과가 부여됩니다.]
[행운이 던진 주사위가 바닥에 떨어집니다. 6입니다! 행운이 주사위를 또다시 던집니다. 데구르르! 또 6이 떴습니다! 연속된 행운에 상대방이 당신의 말을 완전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