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590화 (590/599)

〈 590화 〉 [뜻 밖의 상황]

* * *

“…….”

밥을 먹는 내내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원인은 다은이와 진하였다.

둘 다 차마 고개를 들 면목이 서질 않는다는 듯, 돌덩이를 씹어 삼키는 표정으로 밥을 먹고 있었고 한수진은 그런 둘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밥을 먹질 못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다은이와 진하를 떼어놓고 올 걸 그랬나? 뒤늦은 후회가 몰려오긴 했지만 이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에 내가 거기서 둘을 떼어놓고 왔다면, 어떤 식으로는 사이가 어색해졌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정황상 다은이와 진하가 잘못한 건 딱히 없어 보였다. 아니, 애초에 여자들의 심정도 이해가 되었다.

‘설마하니 이 정도로 악취가 심해졌을 줄이야.’

남자인 나도 참기가 힘들 정도인데, 여자들은 오죽할까?

나는 코를 찌르는 악취를 맡으며 한수진을 바라봤다.

‘대체 어떤 적성을 부여받았기에 이런 악취가 나는 거지?’

통로 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악취가 나기 시작했으니, 그녀가 받은 적성과 관련되어 있는 게 분명했다. 다만 문제는 어떤 적성을 부여받았기에 이런 악취가 나느냐는 것이었다.

혹시 스컹크처럼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악취를 뿜어대고 있는 걸까? 죽을 뻔한 일을 겪었던 만큼, 이런 쪽의 적성을 부여받는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적성은 자기가 한 일, 혹은 경험한 걸 토대로 부여해주는 것 같았으니까.’

그리 생각하며 그릇을 비운 나는 다른 사람들도 음식을 다 먹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간 기다리자, 한수진이 긴장된 표정으로 그릇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자, 잘 먹었습니다.”

“더 먹을래?”

“네? 아, 아뇨! 괜찮아요. 충분히 배불러요.”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까지 흔드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살짝 웃고는 다은이와 진하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 둘도 식사를 끝마친 듯, 빈 그릇을 옆으로 치우며 나를 바라봤다. 어째선지 결연한 각오가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설마 나한테 혼날 거라고 생각한 걸까? 하지만 나는 딱히 둘을 혼낼 생각이 없었다.

픽, 웃은 나는 두 손을 쭉 뻗어 다은이와 진하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며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

“앗, 읏……. 오빠…….”

“표정 풀어. 나 화 안 났으니까.”

“정말로요?”

“그래, 그보다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내가 아까 밖에서 하일이하고 석현 씨를 잠깐 봤거든? 그런데 그 둘이 여자들이 시킨 일을 하고 있더라고.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여자들이 억지로 시킨 건 아니지?”

민감한 이야기인 만큼,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그리고 이런 내 질문에 다은이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그건 아니에요. 오히려 자기가 하겠다고 서로 말다툼까지 하던걸요.”

“…….”

말다툼까지 했을 줄이야. 역시 두 사람을 경비대 건물로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남녀 역전 세계관이어서 남녀 치정극은 보이지 않아도 되겠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번에는 한수진을 바라봤다.

“음, 수진이라고 편하게 불러도 되지?”

“네, 편할 대로 불러주세요.”

“그래, 수진아. 너 지금 네 몸에서 냄새나는 건 알고 있지?”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말에 수진이가 움찔 몸을 떨며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그리고는 거의 기어들어 가다시피 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알고 있어요.”

“왜 그런 건지 물어봐도 될까?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아뇨, 그 정도로 숨길 일도 아니고……. 이게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눈을 뜨니까 적성 어쩌고 하면서 글자가 막 눈앞에 나타났어요.”

역시나 내 예상대로 적성과 관련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무슨 적성을 받았는지 알려줄래?”

“네크로멘서요…….”

“네크로멘서라고?”

네크로멘서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깜짝 놀라며 되묻자, 수진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고, 되살리고 싶어 한다면서 이런 적성을 줬대요. 혹시 이상한 건 아니죠?”

“아니, 이상한 건 아니야. 오히려 좋지.”

“좋은 건가요?”

“그래.”

나는 당장이라도 수진이를 와락 끌어안고 싶은 충동을 애써 가라앉히며 대답했다. 설마하니 이런 곳에서 대박이 터질 줄이야!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인원이 제대로 된 적성을 받지 못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네크로멘서라는 적성이 나온 이상 오염된 괴물을 쓰러트리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인 듯싶었다.

‘네크로멘서가 괜히 1인 군단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니까.’

물론 죽은 이의 시체를 써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건 나중에 차차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여차하면 인간이 아니라 마물의 시체를 이용하면 되니까.’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수진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한수진은 내 말에 살짝 희망을 얻은 듯, 기대감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만약에 제가 시체 되살리기라는 스킬을 사용하면……. 미희 언니랑 성호 오빠를 다시 살려낼 수 있는 건가요?”

너무나도 잔혹한 질문이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윽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며 대답했다.

“음, 그건……. 조금 힘들 거야.”

“왜요? 뭔가 다른 건가요?”

“1층에서 봤던 좀비 기억하지?”

“네, 기억해요. 아, 설마…….”

“그래, 아마도 좀비 같은 상태로 되살아날 거야.”

“…….”

내 대답에 수진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이니까……. 어쩌면 정말로 살려낼 수 있을지도 몰라.”

“저기 그러면…….”

“응?”

“염치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다시 거기로 돌아가서……. 언니하고 오빠의 시신만이라도 다시…….”

“그래, 알았어. 내일 같이 한 번 가보자.”

절박한 목소리로 내게 호소하는 수진이의 태도에 나는 기꺼이 답해주었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대답을 하자, 수진이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반면에 옆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은이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내 팔을 덥썩 붙잡았다.

“오빠, 진심이에요?”

“시신만 회수하면 되니까, 딱히 위험한 일은 없을 거야. 게다가 오염된 괴물을 찾아내려면 한 번쯤 다시 거기로 가볼 필요도 있고.”

“하지만…….”

“걱정되는 건 알지만, 너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어차피 거기 안에 있는 괴물은 거의 다 처리했잖아. 그리고 나도 아무런 대책 없이 무작정 가려는 건 아니야.”

“그럼요?”

“일단 장비부터 맞춰야겠지. 그리고 수진이한테 쓸 약도 좀 구하고.”

“돈은요?”

“경비 대장한테 받은 돈이 아직 좀 남아있어.”

나는 경비 대장한테서 받았던 돈주머니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식재료를 사면서 좀 쓰긴 했지만, 여전히 주머니 안에는 꽤 많은 양의 돈이 남아있었다.

“그걸로 충분할까요?”

“충분하길 바래야겠지.”

이리 말하며 몸을 일으키자, 다은이가 나를 따라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저도 따라가도 돼요?”

“마음대로.”

혼자서 돌아다니는 게 마음 편하긴 했지만, 간절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다은이를 보고 있자니 차마 안 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오전 내내 건물 안에서만 지내느라 답답했을 테니, 이렇게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기분 전환시켜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나는 이왕에 이렇게 된 거, 진하와 수진이도 데리고 나갈까 싶어서 그녀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너희도 따라올래?”

내 물음에 진하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전 여기서 기다릴게요. 다은이랑 다녀오세요.”

“저도 아직 걷는 건 좀…….”

뒤이어 수진이도 난색을 보이며 대답했다. 오늘 막 깨어난 만큼 여전히 몸이 아픈 모양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이고는 수진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계속 여기서 지내게 할 순 없으니까, 일단 3층에 있는 내 방에서 쉬고 있어.”

“하, 하지만 저 냄새 때문에…….”

“그래서 여기서 지내려고? 내가 보기엔 별로 안 좋은 생각 같은데? 그리고 아무리 악취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다친 사람을 창고에 놔두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안 들어? 게다가 여기에 계속 있다간 없던 병도 생길 것 같고.”

“…….”

“혹시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전부 다 내가 한 거라고 말해. 알았지?”

이리 말하며 공주님 안기로 수진이를 들어 올리자, 그녀가 눈에 띄게 당황해하며 몸을 잔뜩 움츠렸다.

아무래도 자세가 자세이다 보니 부끄러워진 모양이었다. 나는 수진이가 내 몸에 보다 편하게 기댈 수 있도록 바짝 끌어 안아준 뒤에 다은이와 진하에게 뒷정리를 부탁하고는 창고를 빠져나갔다. 그리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1층에 모여있던 여자들이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차시은도 멀리서 나를 지켜만 볼 뿐,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진 않았다.

‘이거 당분간 따로 살 집을 구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속으로 혀를 차고는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곤 방문을 열어서 한수진을 침대 위에 눕히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여기서 쉬고 있어. 필요한 거 있으면 진하한테 부탁하고. 내가 진하한테 따로 말해둘게.”

“가, 감사합니다.”

“고맙긴 뭘.”

살짝 웃으며 대답한 나는 한수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곤 곧장 방 밖으로 나간 나는 아직 창고를 정리하고 있는 다은이와 진하를 도와준 뒤에 진하에게 수진이를 부탁했다.

그 후, 앞서 이야기했던대로 다은이와 함께 장비를 맞추기 위해서 대장간을 찾아갔다.

“여긴 대장장이도 여자네요.”

시끄러운 망치질 소리를 뚫고, 다은이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리고 그 말대로 대장간에 있는 대장장이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역시 남녀 역전 세계관답다고 할까. 나는 속으로 납득하며 대장장이들을 살펴봤다. 혹시나 드워프가 있진 않을까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전부 다 인간 여성뿐이었다.

‘한 번쯤 드워프를 직접 보고 싶었는데.’

서큐버스부터 엘프, 심지어 드래곤까지도 만나봤는데 정작 드워프하고만은 인연이 없었다.

이처럼 속으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을 때, 대장간 입구에 서있는 우리를 발견한 대장장이 여성이 이마에 흐른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허리를 폈다.

“뭐 찾으시는 게 있습니까?”

“제가 쓸만한 창을 찾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검과 방패를 쓸까 싶었지만, 아무래도 손에 가장 익은 무기를 쓰는 게 제일 나을 듯싶었다. 게다가 긴 리치를 이용해서 멀리서 상대를 견제할 수 있는 창이 가져다주는 안정감은 여타 무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물론 지금 내 능력치면 뭘 쓰던 상관없긴 하겠지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어디까지나 목숨은 하나뿐이었으니까.

나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고는 대장장이가 가져다준 창들을 살펴봤다. 다행히도 다들 하나 같이 가볍게 튼튼했다. 그리고 값도 생각보다 저렴했다. 나는 적당한 가격의 창을 고른 다음에 상처를 치료할 때 쓸 약을 찾기 위해 광장을 돌아다녔다.

“오빠, 저기라면 있지 않을까요?”

문득 다은이가 약방처럼 보이는 가게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확실히 그 말대로 가게 안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고약한 약초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물론 그래봤자, 수진이가 풍기는 악취에 비할 바는 아니었기에 우리 둘 다 끄떡도 없었다.

“여기가 맞는 것 같네.”

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작은 종을 흔들어서 가게 주인을 불렀다. 그러자 곧 얼마 되지 않아서 깔끔한 옷차림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물린 상처에 쓸 약을 구하고 있습니다. 혹시 있습니까?”

“그럼요. 잠시만요.”

가게 주인은 금세 우리가 찾는 약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약의 사용법을 간단히 배운 뒤에 값을 지불하고 빠져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어느새 해가 저물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해서 다은이와 함께 건물로 되돌아간 다음에 진하한테 약을 건네줬다.

아무래도 수진이가 여자다 보니, 남자인 내가 상처 부위에 약을 발라주기보다는 같은 여자인 진하가 해주는 게 나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진하한테 수진이를 맡긴 뒤에 방 밖으로 나오는데, 아래층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아래로 내려가 보니, 강석을 비롯한 다른 남자들이 잔뜩 신이난 얼굴로 떠들며 건물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현이 씨!”

내가 1층으로 내려가자, 가장 먼저 하일이 나를 반기며 뛰듯이 다가왔다. 옆에는 석현도 서있었다.

그 둘은 나를 바라보며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짓다가 이윽고 넙죽 내 손을 붙잡으며 거의 동시에 소리치듯이 말했다.

“앞으로 형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형님으로 모실게요!”

경비대 건물에서 어지간히도 호강했는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비단 하일과 석현뿐만이 아니었다. 강석과 동은도 오늘 하루가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던 모양인지, 아까부터 계속 웃고 있었다.

심지어 두 사람의 손에는 묵직한 돈주머니가 들려있기까지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