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578화 (578/599)

〈 578화 〉 [뜻 밖의 상황]

* * *

“형, 경험치 얼마나 들어왔어요?”

“잠깐만……. 음, 이거.”

진호의 물음에 나는 상태창을 켠 다음에 경험치를 확인하는 척 했다.

“왜요? 설마 안 된 거예요?”

내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잠시 뜸을 들이자, 진호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감탄 섞인 어조로 대답했다.

“아니,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와서……. 이 정도면 앞으로 한두 마리만 더 잡으면 레벨 업 할 수 있겠는데?”

“정말요? 와, 대박이네요. 확실히 경험치 몰아주기가 효과가 있긴 한가 보네요.”

“그러게.”

다행히도 내 연기가 제법 그럴 듯했던 모양인지, 진호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다른 사람들도 내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눈치였다.

“현이 씨가 부럽네요. 저도 레벨 업 스킬 같은 게 있었으면…….”

“나중에 하일 씨도 좋은 스킬을 받을 겁니다.”

“그럴까요?”

“사람이 꼭 죽으란 법만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하하, 그렇긴 하죠.”

내가 위로해주자, 살짝 우울했던 하일의 얼굴이 금방 밝아졌다.

“슬슬 출발하죠.”

그렇게 잡담을 나누며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 우리는 강석의 말에 따라 다시 통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저기 또 괴물이 나타났네요. 방금 전하고 똑같이 갑시다.”

사람들을 선도하던 강석이 손으로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그곳엔 고블린 두 마리가 코를 킁킁대며 주변을 서성대고 있었다. 이를 확인한 나는 강석의 말에 따라 이전과 마찬가지로 고블린을 사냥했다.

“형, 레벨 올랐어요?”

그리고 이처럼 고블린 두 마리를 잡고 나자, 진호가 잔뜩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이에 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덕분에.”

“뭐부터 올리실 거예요? 힘? 반사 신경? 아니면 체력?”

“체력. 뭐든지 체력이 기본이니까.”

“하긴, 남자는 역시 지구력이죠.”

체력이란 말에 진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하지만 모두가 납득한 건 아닌지, 주변에서 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엥? 힘을 올리는 게 좋지 않아요?”

“제가 생각할 땐 반사 신경이 조금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체력이든 뭐든 일단 안 맞는 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치료용품도 없는 상황인데.”

하일은 단순히 힘이 좋다고 주장했고, 강석은 제법 현실적인 제안을 했다. 그리고 뒤이어 평소엔 입을 잘 열지 않는 동은이 자기 생각을 밝혔다.

“혹시 행운 올릴 수 있나요? 행운 올려두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일부러 날 놀리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사람들의 생각이 전부 다 달랐다. 나는 나를 쳐다보고 있는 네 명의 남자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럼 전부 다 골고루 올려두죠.”

“어? 스탯을 얼마나 받을 수 있기에 전부 다 올릴 수 있는 거예요?”

“다섯 개. 하나씩 올리면 딱 맞지.”

“와, 생각보다 많이 주네요. 이대로 계속 레벨 업하다 보면 형 능력치가 전부 다 100 찍는 거 아니에요?”

다섯 개라는 말에 진호가 감탄하며 손가락을 접었다가 폈다를 반복했다.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계산을 해보고 있는 듯 싶었다. 이에 나는 쓴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 지금이야 레벨이 낮으니까 빨리 오르는 거라고 쳐도, 나중에는 힘들 거 같은데.”

“아……. 하긴 보통 그렇긴 하죠. 근데 골고루 찍었다가 형 망캐 되는 거 아니에요?”

“그건 나중에 생각해봐야지.”

어차피 레벨 업 자체가 거짓말인데, 망캐니 뭐니 깊게 생각 필요는 하나도 없었다. 나는 적당히 대답해주고는 일행들과 함께 다시 통로를 걷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여자들이 잘 따라오고 있었다.

물론 몇몇 철없는 여성들이 힘들다며 투정을 부리긴 했지만, 그때마다 차 시은이 나서서 다독이니 금세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처럼 별다른 문제 없이 계속 안쪽으로 들어가며 고블린을 처리하던 나는 적당한 시기에 강석에게 말을 꺼냈다.

“레벨이 어느 정도 오른 거 같은데, 이번에는 저 혼자서 괴물을 잡아보겠습니다.”

“현이 씨, 혼자서요?”

“네, 근데 혹시 제가 질지도 모르니까 강석 씨가 뒤에서 봐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뭘요.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나는 강석에게 뒤를 맡기고는 혼자서 고블린을 상대했다. 솔직히 말하면 별로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막말로 단순히 힘만으로 밀어붙여도 이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너무 압도적으로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면 괜한 의심을 살 수 있었기에 적당히, 그러면서 나 혼자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줬다.

“생각보다 쉽게 잡으시네요?”

“능력치를 다 올렸던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근데 체력은 여전히……. 후우. 한두 마리라면 모를까, 괴물이 여러 마리면 역시 좀 힘들 것 같네요.”

강석의 칭찬에 나는 일부러 힘든 척하며 말했다. 그리고 이런 내 태도에 그가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등을 두드려줬다.

“그럼 다음에 레벨 업을 했을 때 체력을 좀 더 찍으시죠.”

“하하, 그래야겠네요.”

그리고 이처럼 나 혼자서 고블린을 잡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사람들의 얼굴에 하나둘씩 여유가 생겨났다. 특히나 강석의 합류가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나하고만 움직이던 강석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니, 고블린을 잡는 게 한층 더 수월해진 것이었다.

진호도 그걸 크게 체감한 듯, 강석과 나를 번갈아 보며 입을 열었다.

“만약에 강석이 형이랑 현이 형이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뚱맞다면 생뚱맞다 할 수 있는 진호의 말에 다은이가 눈썹을 살짝 치켜들며 되물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야 이렇게 형들이 있어서 편하게 괴물들을 잡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구역 사람들한테는 형이 없잖아.”

“음, 그러게. 오빠, 생각은 어때요?”

진호의 생각이 일리 있다고 생각한 듯, 다은이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나를 바라봤다. 이에 나는 잠깐 다른 구역에 있을 사람들을 떠올려봤다.

‘다른 구역의 사람들이라.’

지금쯤 다들 어떻게 하고 있으려나? 우리처럼 힘을 합쳐서 움직이고 있을까? 아니면 어쩌면 다른 구역의 사람들이 구하러 와줄 때까지 어딘가에 숨어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느 것이든 솔직히 말하자면 그다지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죽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 같은데.’

냉정하게 말하자면 1층 때처럼 고블린을 피해서 도망치고 있을 확률이 무척 높긴 했다. 하지만 굳이 여기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꺼내서 분위기를 침울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했다.

나는 애들의 기운을 돋워주고자 일부러 희망찬 이야기를 꺼냈다.

“글쎄, 다른 구역에도 나 같은 사람이 한두 명쯤 있지 않을까? 특히 은혜 씨.”

“은혜 씨요? 아, 유 은혜 씨요?”

“그래, 은혜 씨라면 분명 지금쯤 나보다 더 강해져 있을 걸?”

“와, 그 정도라고요?”

“1층을 돌파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게 은혜 씨였으니까.”

실제로 은혜의 미니맵 스킬이 아니었다면 1층을 깨는데, 상당히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형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우리가 진짜 같은 1층에 떨어졌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르네요.”

“다르다고?”

“네, 우린 1층에 떨어졌을 때 도망쳐다니기 바빴는데……. 형이랑 유 은혜 씨는 1층을 아예 깨버렸잖아요.”

“정확히는 은혜 씨랑 윤이 씨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예요?”

진호는 여전히 내가 대단하다는 듯이 감탄하며 바라봤다. 그리고 이처럼 우리가 잡담을 나누며 쉬고 있을 때, 근처에서 짝짝 손뼉을 치는 소리와 함께 강석의 말소리가 들렸다.

“이제 그만 출발합시다.”

그의 목소리가 마치 우리를 현실로 잡아끄는 것만 같았다. 애들도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은 모양인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린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손에 잡혀있는 나무 봉의 감촉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굳게 다잡고 있었다.

“얼른 나가고 싶다.”

“그러게.”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은 다시 강석의 선도를 받으며 통로를 걸었다. 저벅. 저벅. 걷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나하고 강석, 시은이 의견을 나눠서 길을 정하고 고블린이 나오면 내가 한 마리를 처리하는 사이에 강석이 사람들을 이끌고 다른 한 마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이게 반복되다 보니, 점점 사람들의 움직임에서 노련함 같은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요령까지 생기니, 처음엔 소극적이기만 했던 움직임이 점점 적극적으로 변했고 나무 봉을 휘두르는 것에도 거침이 없어졌다. 특히나 동은과 진호의 발전이 눈부셨다.

강석이야 처음부터 잘 싸웠고.

아마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른다면, 저들 셋이서 고블린 두 마리 정도는 너끈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생각보다 할 만한 것 같은데.’

어쩌면 다른 구역에서도 조금씩 통로를 개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며 통로를 따라 걷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주변이 확 어두워졌다. 더불어 기분 나쁜 느낌이 엄습해왔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강석도 불길함을 느낀 듯,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걸음을 멈출 순 없는 노릇이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에게 놓인 선택지는 오직 전진뿐이었다.

킁킁. 킁. 킁킁.

그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코를 킁킁대는 고블린의 소리가 들려왔다.

“케륵. 케르르.”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는 고블린의 숫자는 전부 다 해서 세 마리였다. 또다시 숫자가 늘어난 것이었다. 사람들은 긴장했지만, 나와 강석을 믿는 듯 도망치려고는 하지 않았다.

지체없이 나무 봉을 치켜드는 우리를 향해 진하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조심하세요…….”

그녀의 응원에 다들 힘을 얻은 듯, 씩 웃고는 고블린에게 다가갔다. 세 마리 중에 한 마리를 당연히 내 몫이었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고블린을 처리할 요량으로 나무 봉을 세게 휘둘렀다.

파각!

“케륵!”

놀랍게도 고블린이 손에 들고 있던 곤봉으로 막았다. 하지만 힘에서 밀렸던 탓에 저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 여전히 약한 상대이긴 했지만, 내 공격을 막았다는 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결코, 호락호락한 적이 아니었다. 걱정이 된 나는 슬쩍 강석 일행을 바라봤다.

“다들 막아!”

당연히 강석 일행 쪽도 소란스러웠다. 당장 물어뜯을 기세로 달려드는 고블린의 행동에 사람들이 저마다 열심히 몸을 움직여서 피하고 있었다. 대열은 유지되지 못 하고 금방 붕괴되었다. 그나마 강석과 진호, 동은이 열심히 막고 있었던 덕분에 크게 다치는 사람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빨리 처치하자.’

여기서 괜히 질질 시간을 끌어서 다치는 사람이 나오게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려는 고블린에게 다가가서 나무 봉을 찔러넣었다. 이에 녀석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옆으로 피해 보려고 했지만, 아까 맞으면서 나가떨어진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모양인지 다리가 삐걱대고 있었다. 나는 그 틈을 노리고 머리를 찔렀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고블린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쓰러진 녀석이 경련하게 팔다리를 파르르 떨자, 나는 녀석의 숨통을 끊기 위해 나무 봉 끄트머리로 이마를 찍었다. 콰직하고, 피부가 찢어지고 새빨간 피가 튀었다. 그야말로 골로 보내버렸다.

“한 마리 데려가겠습니다.”

“아, 네!”

재빨리 강석 일행에 합류한 나는 그들이 몰아둔 고블린 한 마리를 나무 봉으로 쳐서 최대한 바깥쪽으로 몰았다.

“켁!”

가슴팍을 얻어맞은 고블린이 땅바닥을 구르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한 마리 데려가자, 그제야 사람들의 얼굴에 여유가 생겼다. 강석의 목소리도 원래대로 차분하게 돌아왔다.

“천천히 벽 쪽으로 몰아붙입시다.”

강석의 말에 따라 사람들이 나무 봉으로 고블린을 압박하며 벽 쪽으로 몰아붙였고, 홀로 남은 녀석은 사납게 으르렁대며 한 걸음, 한 걸음 무기력하게 뒤로 밀려났다. 가끔씩 입을 쩍 벌리고서 사람들을 향해 들려 들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강석이 휘두른 나무 봉에 가로막혔다.

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내 앞에 놓인 고블린을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처치하고는 벽에 몰려있는 고블린까지 마저 처리했다.

“이젠 괴물이 세 마리씩 나오네요. 게다가 더 사납고요.”

“그만큼 출구에 가까워진 거라고 생각하죠.”

“출구……. 확실히 현이 씨의 말대로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출구라는 말에 사람들의 얼굴에 희망이란 빛이 떠올랐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