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577화 (577/599)

〈 577화 〉 [뜻 밖의 상황]

* * *

“레벨 업이요?”

강석이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제법 컸던 탓에 주변에서 쉬고 있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네, 이미 확인도 끝마쳤습니다. 레벨 업으로 받은 보너스 스텟을 힘에 투자하니까, 1 오르더라고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헛바람을 삼켰다.

“허, 참……. 듣고도 믿기지가 않네요. 그거 혹시 우리도 현이 씨처럼 레벨 업 할 순 없는 겁니까?”

“아마 안 될 겁니다. 스킬로 얻은 거거든요.”

“아, 스킬……! 그러고 보니, 1층에서도 스킬을 가진 사람이 있긴 했는데. 아마 현이 씨도 그런 모양이네요.”

강석이 부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뒤이어 진호가 성큼 다가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현이 형, 그게 정말이에요? 레벨 업을 할 수 있다는 거요!”

“어, 응. 그래.”

“와, 진짜 대박이네요! 형만 레벨 업 할 수 있다니……. 그럼 우리가 형한테 경험치를 몰아주면 2층 금방 깨는 거 아니에요?”

“아마도 그렇겠지?”

내가 살짝 긍정하자, 진호의 얼굴에 함박 미소가 걸렸다. 그는 이미 벌써 2층을 탈출한 것처럼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렀고, 덕분에 멀찍이 뒤에서 쉬고 있던 여자들이 웅성거리며 우리 곁으로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예요?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 좋아해요? 뭔지 말 좀 해줘요. 우리도 같이 좋아하게.”

“아, 글쎄. 현이 형이 레벨 업을 할 수 있대요!”

“네? 레벨 업? 그게 뭐예요?”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저 괴물을 사냥하면 사냥할수록 현이 형이 강해진다는 거예요!”

“현이 씨가요?”

진호의 설명에 여자들의 시선이 나한테 쏠렸다. 대부분 레벨 업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눈치였지만, 일단 내가 강해진다니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다른 남자들도 나를 바라보며 안도하고 있었다.

‘다행이네.’

혹시라도 누군가 나를 질투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당장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보니 그런 감정은 별로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고는 강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강석 씨, 그래서 어쩌시겠습니까? 저한테 경험치를 몰아주시겠습니까?”

“아, 네. 당연히 그래야죠. 근데 어떻게 몰아줘야 하는 겁니까? 막타? 아니면 다른 방법이 따로 있는 겁니까?”

“기여도 방식입니다. 제가 괴물을 사냥하는데 얼마나 기여했느냐에 따라서 받는 경험치가 달라집니다.”

“그럼 가장 좋은 건, 현이 씨 혼자서 괴물을 사냥하는 거네요.”

강석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다.

“좀 더 레벨 업을 한다면 모를까, 지금 당장은 힘들 겁니다.”

“하긴 그렇겠죠. 그럼 일단 현이 씨가 괴물을 마무리 짓는 방향으로 해보죠. 기여도 방식이라면 막타도 기여도에 가산되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그럴 겁니다.”

“좋네요. 여러분들도 다 들으셨죠? 당분간 현이 씨가 마무리 짓게 합시다.”

강석이 손뼉을 치며 말하자, 다들 군말 없이 수긍했다. 그리고 이처럼 이야기가 거의 다 마무리되어 가는데, 여자들 무리에 있던 다은이가 갑자기 앞으로 툭 튀어나왔다. 옆에는 그녀를 말려보려는 듯, 팔을 붙잡은 채 질질 끌려 나오고 있는 진하가 있었다.

“저도 같이 싸우게 해주세요.”

“어? 야, 김 다은! 같이 싸우게 해달라니? 너 뭐 잘 못 먹었어?”

다은이의 발언에 진호가 기겁하며 그녀의 앞에 섰다. 하지만 다은이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진호를 옆으로 밀치며 말했다.

“내가 계속 생각해 봤는데, 이대로 계속 보호받기만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물론 무섭긴 하지. 근데 무서운 건, 너도 똑같잖아.”

“응? 으, 뭐……. 그렇긴 하지만, 넌 여자고.”

“이딴 거지 같은 상황에서 남자고 여자고 뭐가 중요해? 사는 게 중요하지. 아무튼 난 결정 내렸어. 나도 같이 싸울 거야.”

단호히 말한 다은이가 강석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저도 봉 하나 주세요.”

“차 시은 씨랑 이야기 해보셨어요?”

“시은 언니도 허락해줬어요.”

강석은 다은이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보기 위해서 차 시은 쪽으로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시은이 정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그걸 본 강석은 복잡한 심경이 담긴 표정으로 다은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나무 봉 하나를 그녀에게 건네줬다.

“너무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마세요. 이건 게임이 아니니까요.”

“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

“그리고 작전은…….”

“현이 오빠한테 막타 몰아주면 되는 거죠?”

다은이가 씩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의욕 넘치는 그녀의 모습이 보기 좋았지만, 내심 한 편으로는 왠지 진호한테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가슴이 살짝 아팠다. 물론 진호는 절대로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면서 극구 부인하긴 했지만, 원래 사람 마음이란 게 갈대 같아서 금방 변하기 마련이었다.

하물며 남녀 사이였다. 절대라는 건 없었다.

“하여간 저 왈가닥.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했네.”

“흥, 신경쓰지 마셔. 내 앞가림은 내가 하니까.”

“그래, 나도 너 신경 안 써. 근데 진하, 너는 어쩔 거야?”

홱, 하고 고개를 돌린 진호가 진하를 쳐다보며 물었다. 진하는 혼자 여자 무리 속에 남아있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망설이고 있었다. 다은이도 그걸 눈치챈 듯, 강석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다치는 사람이 나오면 진하가 챙겨주는 게 어때요?”

“음, 그러죠. 마침 한 명쯤 필요했으니까요. 진하 씨, 괜찮을까요?”

강석이 조심스럽게 묻자, 진하가 얼굴을 밝게 바꾸며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요. 그럴게요.”

이처럼 다시 우리 넷이 뭉치게 되자, 애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물론 진호는 살짝 불만이 있는 것 같았지만, 진하가 혹시 어디 다친 곳 없냐면서 몸을 걱정해주자 언제 인상을 찌푸렸다는 듯 헤헤 웃으며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얼씨구.’

이제 보니, 진하하고 썸을 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세 사람의 관계를 다시 파악했을 때, 강석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상당한 힘이 실려있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희망도 엿보였다.

“자, 다들 출발합시다. 어지간하면 오늘 중에 2층에서 탈출해야죠.”

가볍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말에는 뼈가 실려있었다. 오늘 중에 탈출해야 한다. 그 말은 즉, 여분의 식량이 없는 현재의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 먹을 음식만 없다면 이렇게까지 걱정되진 않았을 것이다.

‘물도 없지.’

사람은 먹지 않아도 일주일 이상 버틸 수 있지만, 물 없이는 3일도 견디지 못한다. 하물며 이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의 기준이었다. 지금처럼 통로를 걷고 고블린을 처치해야 하는 상황에선 이틀을 넘기는 것도 버거울 것이다.

킁킁. 킁킁.

그렇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계산하며 걷고 있는데, 멀리서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앞서 걷고 있던 강석도 그 소리를 들은 듯, 손을 들어 올린 다음에 작은 목소리로 상황을 전파했다.

“괴물이 두 마리입니다. 저랑 현이 씨가 한 마리를 맡고 나머지 한 마리는 다른 사람들이 맡읍시다.”

강석이 날 향해 손짓했다. 자기를 따라오란 뜻이었다. 나는 그와 함께 움직여서 고블린을 상대했다. 이전처럼 발소리를 최대한 죽인 채, 조심스럽게 접근한 게 아니라 대놓고 움직였기에 고블린들이 고개를 빠르게 치켜들며 반응했다.

“케르륵! 케륵!”

“현이 씨, 제가 놈의 관심을 끌고 있을테니까! 흐읍!”

다급히 소리친 강석이 나무 봉을 휘둘러서 고블린의 주의를 끌었다. 확실히 이렇게 하면 내가 고블린을 처치하기가 쉬웠다. 그는 내가 녀석의 숨통을 끊을 수 있도록 최대한 큰 동작으로 녀석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이제야 좀 제대로 싸우는 것 같네.’

나는 강석을 믿고, 고블린에게 접근했다. 그리고는 그가 만들어준 빈틈을 파고들어서 고블린의 옆구리에 나무 봉을 찔러넣었다.

퍽!

“케엑!”

그 순간, 고블린이 땅바닥을 나뒹굴며 쓰러졌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쫓아가 이마를 나무 봉으로 내리찍었다. 그러자 퍽! 소리와 함께 고블린의 코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완전히 숨통이 끊어진 걸 확인한 나는 강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가 식은땀을 흘리며 안도의 숨을 돌리고 있는 게 보였다.

“괜찮습니까?”

“아, 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보다 솜씨가 좋으시네요. 혹시 어디서 검도를 배우신 겁니까?”

“아뇨, 딱히 배운 적은 없습니다. 강석 씨는요? 나무 봉을 잘 휘두르시던데요. 학원 강사가 아니라 어디 사범님인 거 아닙니까?”

“하하, 그건 아니고 1층에서 탈출했을 때 잠깐 하루 동안 반짝 배웠었습니다. 속성으로요.”

후, 하고 숨을 다 돌린 강석이 끙 소리를 내며 남은 한 마리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나저나 빨리 도와줘야겠네요. 얼른 가죠.”

“네.”

나는 강석을 뒤따라가며 그에 대해 생각했다. 스스로 솔선수범하며 위험한 일까지도 도맡아서 하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싸움도 제법 잘했다. 잘만 키운다면 여차할 때, 나를 대신해서 탑을 오르는 자들을 보호해줄 수 있을 듯 싶었다.

‘다만 문제는 어떻게 키워주냐인데.’

하다 못 해 탑을 오르는 자들의 상점이 해금되었다면 상점의 물건을 구입해서 그에게 몰래 건네주기라도 했겠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물 사냥꾼으로 만들 수도 없고.’

마물 사냥꾼의 특성상, 여자만 임명할 수 있으니 남자인 강석은 불가능했다. 물론 내가 가진 아이템 중에 성전환 알약이 있긴 했지만, 강석이 과연 그걸 좋아할지는 의문이었다. 아마도 싫어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가능하면 멸망한 세계를 구원한 다음에 상점을 해금시켜, 물건으로 지원해주는 게 제일 좋을 듯 싶었다.

‘아니, 멸망한 세계를 구원하면 탑이 사라지려나? 흠, 어떻게 되려나.’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진호와 다은이를 비롯한 다른 남자들이 몰아둔 고블린을 아주 손쉽게 처치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