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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어플-576화 (576/599)

〈 576화 〉 [뜻 밖의 상황]

* * *

“자기소개도 다 끝났는데, 다들 이리로 와서 나무 봉 하나씩 받아가세요.”

진호와 하일이 악수를 나누고 있는 사이, 강석이 손뼉을 치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곧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그가 나무로 만든 봉을 우리들에게 나눠줬다. 지난 1층에서 봤던 나무 봉이었다.

익숙한 그립감에 살짝 반가운 마음마저도 들었다.

진호도 나무 봉을 손에 쥐니, 없던 자신감이 부쩍 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허공에 나무 봉을 몇 차례 휘둘러 보고는 강석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이거 어디서 구하셨어요?”

“괴물들한테서 얻은 겁니다. 아주 가끔씩 나무 봉을 들고 다니는 녀석들이 있더라고요.”

“와, 잡기 힘들었겠네요.”

진호가 살짝 감탄하며 강석을 바라보자, 그가 쓴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처음엔 좀 고생했죠. 근데 뭐, 솔직히 말해서 좀비에 비하면 이 녀석들은 그냥 양반 아닙니까? 한 마리씩만 오는 데다가 몸집도 작으니까요. 게다가 무엇보다도 물렸을 때의 걱정이 없어서 참 편했습니다.”

“아, 맞아요. 진짜 1층 때는 좀비한테 물릴까 봐 다들 정신없이 도망치기 바빴는데.”

당시의 일을 떠올린 진호가 으스스 몸을 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사람들도 질색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히나 그중에서도 박 석현의 안색이 유독 좋지 않았는데, 그걸 본 하일이 걱정 섞인 표정을 지으며 그의 어깨를 건드렸다.

“괜찮아요?”

“아, 아. 네. 괜찮아요. 그냥, 그때의 일이……. 떠올라서요.”

“혹시 힘들면 말하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최대한 도와드릴게요.”

“아뇨, 다들 힘들 텐데 제가 어떻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로 돕고 살아야죠.”

하일이 웃으며 말하자, 그제야 석현의 안색도 풀어졌다. 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다행히도 다들 좋은 사람 같았다. 물론 아직 이 동은이란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하진 못 했지만, 적어도 일부러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같진 않아 보였다.

이렇듯 내가 사람들을 파악하고 있을 때, 강석이 재차 손뼉을 치며 시선을 모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슬슬 출발하려고 하는데 혹시 몸이 불편한 사람 있습니까?”

강석의 물음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걸 본 그가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출발하죠. 통로가 충분히 넓으니까, 다 같이 앞장서서 걸으면 될 겁니다.”

“가장 뒤쪽은 아무도 안 지키는 겁니까? 혹시 뒤에서 괴물이 나타날지도 모르잖아요.”

동은이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질문을 던졌다.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강석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인지,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대답했다.

“그럼 나이가 제일 어린 사람을 뒤로 보내는 게 어떨까요? 여기서 나이가 제일 어린 사람이 석현 씨랑 진호 씨였던가요?”

“석현 씨를 보내죠. 안 그래도 방금 전에 안색이 별로 안 좋았는데.”

강석의 말에 하일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 아니. 하일 씨, 전…….”

석현이 당황한 듯 하일을 다급히 말렸지만, 그가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진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좋네요, 그러죠. 저도 그게 좋아 보여요.”

“아니, 다들…….”

“정 마음에 걸리면 나중에 다른 사람이랑 교대하는 건 어때요?”

자꾸만 거절하려는 석현의 태도에 진호가 한 마디 더 덧붙여주자, 그제야 그의 얼굴에 납득한 표정이 떠올렸다.

“네, 그렇게 하죠. 그리고 다들 감사합니다.”

석현은 우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덕분에 분위기가 한층 더 훈훈해지고 좋아졌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안 그래도 숫자가 적은데, 여기서 한 명이 더 빠진 것이었다. 강석도 이 점이 걱정되는 모양인지,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출발하죠.”

강석이 신호를 보내자, 나를 포함한 남자 다섯 명이 앞장서고 그 뒤를 여자들이 따랐다. 저벅, 저벅, 저벅. 통로 안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로 가득 찼고, 긴장감이 팽배하게 감돌았다.

킁킁. 케르륵.

그 순간, 통로 안쪽에서 재직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발자국 소리 때문에 듣지 못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모두가 들은 모양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에 불안감이 떠오르고, 나무 봉을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처리합시다.”

가장 먼저 나선 건, 강석이었다. 그가 나무 봉을 들고서 앞으로 나가자, 그 뒤를 하일이 뒤따랐다. 진호는 슬쩍 내 눈치를 봤고, 동은은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강석의 등을 바라보다가 진호에게 턱짓하고는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킁킁! 케륵. 케르륵! 킁킁!”

발소리를 최대한 죽인 채,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자 곧 우리들 눈에 고블린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한 마리였고, 무얼 그리 냄새 맡고 있는지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로 코를 연신 벌름 버리고 있었다.

“저랑 하일 씨가 처리할 테니까, 두 분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주세요.”

“네.”

강석은 하일과 둘이서 고블린을 처리할 생각인 모양인지, 녀석의 눈을 피해서 살금살금 접근했다. 다행히도 고블린은 코가 땅에 닳을 만큼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강석과 하일의 접근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

두 사람은 말없이 시선을 주고받더니, 거의 동시에 고블린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타악!

“케엑!”

뒤통수를 강타당한 고블린이 고통을 호소하며 땅바닥을 굴렀다. 강석과 하일은 녀석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틈을 이용해서, 재빨리 나무 봉을 높이 들어 올린 다음에 다시 고블린의 몸을 내리쳤다.

퍼억! 탁! 퍽!

“……켁!”

그렇게 한참 동안 얻어맞던 고블린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축 늘어졌다. 땅바닥은 고블린이 흘린 피와 샛노란 소변으로 흥건했다. 고약한 악취에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질 법도 하건만, 강석과 하일은 그런 거 신경 쓸 겨를도 없다는 듯 힘겹게 숨을 들이켜고 내쉬고 있었다.

“괜찮아요?”

“하아, 하아……. 아,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진호가 다가가서 걱정스럽게 묻자, 강석이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다음 건, 저랑 현이 형이 처리할게요.”

“하아,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석은 사양하지 않고 우리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이처럼 결정을 내린 뒤, 진호가 뒤늦게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며 나한테 다가왔다.

“형한테 묻지도 않고 결정해서 죄송해요.”

“아니, 괜찮아. 어차피 그러려고 했는 걸.”

무척이나 미안해하는 진호를 달래준 나는 그와 함께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걷는 동안 사람들의 시선이 유독 강렬하게 느껴졌다. 우리의 실력을 확인해보고자 함일까? 그런 생각에서 고개를 뒤로 돌리자, 여자들이 꺅꺅 소리를 내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모습을 본 진호가 쓴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형, 인기가 너무 좋네요.”

“…….”

이런 상황에 익숙지 않은 나는 그저 침묵했다. 여하튼 여자들의 관심을 받으며 한참을 걸어가자, 곧 킁킁 소리를 내며 열심히 냄새를 맡고 있는 고블린 한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걸 본 진호가 마침 잘됐다는 듯, 어깨를 풀며 말했다.

“우리도 몰래 다가갈까요?”

“그러자.”

진호의 의견이 동의한 나는 최대한 발소리를 죽인 채 다가갔다. 그리고 곧 나무 봉이 닿을 만큼 가까이 접근한 우리는 말 없이 눈짓을 주고받고는 나무 봉을 휘둘렀다. 이 때, 나는 일부러 힘을 풀었다.

‘한방에 해치워버리면 이상하게 볼 테니까, 자연스럽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고자, 봉 끝으로 고블린의 등을 꾸욱 누르듯이 내려치자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비명과 함께 땅바닥을 굴렀다.

타악!

“케엑!”

“형, 조심해요!”

고블린이 내가 있는 쪽으로 굴러오자, 진호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이에 나는 침착하게 발로 고블린의 배를 걷어차고는 봉으로 놈의 몸을 강하게 짓눌렀다.

“진호야, 머리를 쳐.”

“아, 네!”

퍽!

내 말에 따라 진호가 재차 나무 봉을 휘둘러서 고블린의 머리를 가격했다. 그러자 부들부들 떨며 게거품을 물던 고블린이 이윽고 힘없이 축 늘어졌다. 꽤 깔끔한 마무리였다. 하지만 진호는 아직 불안한 모양인지, 몇 번 더 고블린의 머리를 후려치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아, 하아. 진짜 식겁했네요.”

“그래도 잘했어.”

“형이 다 한 거죠.”

진호가 헤헤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이는 사이에 강석과 다른 남자들이 다가왔다.

“잘 싸우시네요.”

“운이 좋았던 거죠. 게다가 강석 씨가 먼저 시범을 보여주셨잖아요.”

“그걸 감안해도 충분히 잘 싸우신 거죠. 괜히 유 은혜 씨가 현이 씨를 찾았던 게 아니네요.”

강석이 은혜의 이름을 꺼내자, 옆에서 듣고 있던 하일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어? 유 은혜 씨면 1층을 깬 사람 아니에요? 현이 씨가 유 은혜 씨랑 아는 사이였어요?”

“아, 하일 씨는 모르겠네요. 그거 있지 않습니까? 유 은혜 씨가 탑에서 나오자마자 찾았던 남자. 그 사람이 바로 현이 씨입니다.”

“와, 세상에……. 아니, 근데 그러면 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예요? 우리랑 같이 탑에서 나온 거 아니었어요?”

하일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자, 나는 짧게나마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기억나는 거라곤 은혜랑 윤이를 구하려고 모래 늪에 빠졌다가 정신을 차려보니까 여기였다는 것밖에 없습니다.”

“현이 씨도 참 고생하셨네요.”

“하하, 그러게요.”

어색하게 웃은 나는 다시 사람들과 함께 통로를 걷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발걸음 소리에서 이전과 같은 초조함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긴장감도 많이 누그러들었다. 게다가 우리를 바라보는 여자들의 시선에서 신뢰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방금 전, 진호와 내가 실력을 보여줬던 게 유효했던 모양이었다.

진호도 그걸 느낀 건지,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이거 잘하면 여자 한 명 꼬실 수 있겠는데요?”

“다은이랑 사귀는 거 아니었어?”

흑심을 드러내는 진호의 태도에 내가 살짝 놀라며 묻자, 도리어 진호가 더 놀라며 격렬하게 반응했다.

“네? 제가 미쳤다고 걔랑 왜 사귀어요?”

“그래? 둘이 사이가 좋기에 사귀는 줄 알았지.”

“어후, 형. 끔찍한 소리하지 마세요.”

단호할 정도로 딱 잘라서 부정하는 진호의 태도에 어깨를 한 차례 으쓱인 나는 다시 통로를 걷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처럼 통로를 걷는 동안 우리는 네 차례 더 고블린과 마주쳤다. 다행히도 네 번 모두 별다른 문제 없이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섯 번째 마주쳤을 때, 우린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와 마주쳐야 했다.

“두 마리라고 해서 쫄 거 없습니다.”

강석은 이전처럼 몰래 접근해서 고블린들을 처리하려고 했다. 그렇게 우리 다섯 명은 최대한 발자국 소리를 죽인 채, 고블린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움직인 탓인지, 아니면 고블린의 숫자가 늘어난 만큼 강해진 것인지 녀석들은 금세 우리를 눈치채고 적대감을 드러냈다.

“케르르륵! 케륵!”

“히익!”

입을 쩌억 벌리고서 위협적으로 달려드는 고블린의 행동에 하일이 기겁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나무봉을 집어던졌다.

퍽!

곧이어 내 손을 벗어난 나무 봉이 고블린의 머리를 강하게 후려쳤다. 급하게 던진 탓에 제대로 힘이 실려있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하일을 구할 수 있었다. 그는 헉, 하고 숨을 크게 들이켜며 나를 쳐다봤고 나는 손으로 쓰러진 고블린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하일 씨!”

“아!”

이름을 불러준 것만으로도 내 뜻을 알아챈 모양인지, 그가 뒤늦게 아차 싶은 표정을 짓더니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자신에게 달려들었던 고블린을 향해 나무 봉을 휘둘러서 숨통을 끊었다.

“현이 형, 나이스!”

진호가 나이스를 외치며 강석, 동은과 함께 남은 고블린을 처리했다. 용케 어찌어찌 잘 처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위태롭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현이 씨, 정말로 감사합니다.”

“고맙긴요. 다치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나는 하일을 위로해주고는 주변을 잠시 살펴봤다. 통로는 처음에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어두워져 있었다.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기에 미처 눈치채지 못 했었는데, 지금 이렇게 비교해보니 차이가 너무나도 컸다.

‘게다가 고블린의 덩치도 훨씬 더 커졌어.’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고블린은 강해지고 있는데, 강석을 비롯한 다른 남자들은 그다지 강해지지 않았다. 그저 단순히 싸움에 익숙해졌을 뿐이었다. 이래서야 언젠가 한계에 부딪혀 전멸당할 뿐이었다.

강석도 그 사실을 깨달은 듯, 죽은 고블린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잠깐 고민하던 나는 이윽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김 강석 씨, 잠깐 제안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제안이요?”

“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은 채로 말했다.

“……저한테 경험치를 몰아주시겠습니까?”

“네? 경험치요? 그게 무슨.”

“전 레벨 업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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