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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어플-572화 (572/599)

〈 572화 〉 [뜻 밖의 상황]

* * *

총기를 지급받은 후에는 사격 훈련장에서 사격 연습과 총기 수입 방법 등을 교육받았다. 비록 시간이 촉박하긴 했지만, 한 사람당 한 명의 교관이 붙었기에 총기에 익숙해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이건 자기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다들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도 그랬다.

‘총만 있으면 괜찮을지도 몰라.’

총을 손에 쥐고, 직접 쏴보니 자신감이 부쩍 샘솟았다.

물론 완벽하게 다룰 수 있다고는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게 있다면 최소한 스스로는 보호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오후 내내 총기를 다루는 교육을 받고, 남은 시간 동안에는 정신과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었기에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과 통화 및 면담을 하거나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 저녁을 먹는 걸 선택했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이 자꾸만 날 것 같았지만, 그래도 차마 여기서 더 걱정을 끼칠 순 없기에 억지로 웃으며 저녁을 먹었다.

“엄마, 아빠. 나 너무 걱정하지 마. 이제 정말로 괜찮으니까.”

“아이고, 수진아. 수진아……! 흐윽, 흑! 이 어린 것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흐윽!”

엄마는 끝끝내 눈물을 참지 못하고, 내 몸을 끌어안고서 울음을 터트리고 마셨다.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서 울고 말았다. 그래, 나도 가고 싶지 않았다.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여기서 도망친다고 한들, 정해진 시간이 되면 강제로 탑 안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 테니까.

그렇게 엄마의 품에 안긴 채, 한참 동안 울음을 터트린 끝에야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공무원 언니의 손에 이끌려서 사람들이 있는 장소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방탄복과 보호장비, 탄약 등을 지급 받았다.

“국민 여러분, 모두의 무사 귀환을 빌겠습니다.”

마지막에는 대통령이 직접 찾아와서 한 사람씩 악수하며 일일이 격려를 해줬다.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 속에서나 보던 사람을 실제로 보게 되니, 이게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그래, 이게 꿈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글자들과 마주한 순간, 이게 현실임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멸망한 세계의 탑, 2층이 현 시간부로 개방되었습니다.]

[탑을 오르는 자, 한 수진을 확인합니다.]

[멸망한 세계의 구원 여부를 확인합니다……. 구원하지 못 했습니다.]

[탑을 오르는 자들을 강제로 소환합니다.]

탑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봤던 글자들이 다시금 눈앞에 나타나고,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곧 눈앞의 시야가 암전되고 귀에서 이명이 일어났다. 삐이이­. 심장이 쿵쾅쿵쾅 빠르게 뛰며 호흡이 가빠졌다.

‘이럴 때, 이럴 때 어떻게 하라고 했었지? 이럴 때, 아……. 숫자를. 숫자를 세라고 했어. 1, 2, 3, 4…….’

천천히 숫자를 세며 호흡을 가다듬자, 빠르게 뛰던 심장이 차츰 느려지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암전되었던 시야도 점차 회복되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10까지 센 다음에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곤 눈을 뜨고 정면을 바라보며 이전엔 보지 못했던 글자들이 또 나타난 걸 볼 수 있었다.

[멸망한 세계의 탑에 입장했습니다.]

[허락되지 않는 물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멸망한 세계의 탑이 거부합니다.]

허락되지 않은 물건이란 말에 나는 서둘러 몸을 살펴봤다. 그러자 방탄복을 비롯한 가장 중요한 물건인 총이 없어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아!”

탄식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탄식을 터트리기가 무섭게 또다시 눈앞에 글자가 나타났다.

[탑을 오르는 자, 한 수진의 입장을 확인합니다.]

[현재 배정된 구역은 C 구역입니다.]

[탑 2층의 오염된 괴물을 처치하십시오.]

([조언] 2층은 총 10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각 해당 구역의 오염된 괴물을 처치할 시, 다른 구역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10개의 구역에 존재하는 오염된 괴물을 모두 처치할 시, 2층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눈앞에 나타난 글자를 읽고 난 뒤에야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누, 누구 없어요?”

혼자 남았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왈칵 몰려왔다. 심지어 나한테는 무기가 될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친 나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쭈그려 앉았다.

“으, 아……. 아아.”

또 눈물이 나왔다. 덜덜 떠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보지만, 이전에 들어왔을 때처럼 전화가 먹통이었다. 도움이 될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예전에 들어왔을 땐,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의지라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로 나 혼자 뿐이었다.

‘나, 나 혼자서 해야 하는 거야? 정말로?’

이건 나보고 죽으란 말밖에 되지 않았다.

‘죽고 싶지 않아. 죽기 싫어!’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싼 나는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부정하고, 또 부정해봤다. 이게 꿈이라면 제발 깨길 바라면서.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는 건 없었다.

오히려 지나친 고요함이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킁킁. 케륵. 킁킁.”

그런데 그때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무언가가 코를 벌름대며 다가오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

소름 끼치는 기분에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곤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니, 거기에는 어린아이 정도 되는 작은 체구를 가진 괴물이 몸을 납작 엎드린 채 느릿느릿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흐읍!”

그러다 괴물과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헛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샛노란 눈동자가 너무나도 섬뜩했다. 그건 마치, 나를 먹잇감으로 바라보는 포식자의 눈동자였다.

두려움 탓에 오금이 저려왔다.

나는 덜덜 떠는 다리를 애써 다그치며 재빨리 몸을 일으켜보려고 했다. 하지만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은 탓에 몸을 반쯤 일으키기가 무섭게 도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케르륵! 케르륵!”

괴물은 그런 나를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이 괴상한 울음소리를 냈다.

“저, 저리 가! 저리 가!”

나는 날 향해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괴물을 향해 마구 소리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괴물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올려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머리털이 쭈뼛서는 듯했다. 게다가 가까이에서 본 괴물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혐오스럽게 생겼다.

어두운 녹색 톤의 피부와 짐승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이빨 그리고 인간을 어설프게 닮은 듯한 얼굴은 끝 모를 혐오의 구렁텅이로 나를 밀어 넣고 있었다. 구역질이 치밀어 오를 것만 같았다.

“케르륵! 케륵!”

“시, 싫어!”

어느샌가 내 앞까지 다가온 괴물이 섬뜩한 울음소리를 내며 손을 뻗었다. 이에 내가 양팔을 휘둘러서 손을 쳐내자, 갑자기 괴물의 샛노란 눈동자가 붉게 충혈되었다.

“케륵!”

“꺄악!”

괴물이 손톱을 날카롭게 세워서 할퀸 순간, 팔뚝에서 새빨간 피가 사방에 튀었다. 비명이 절로 터져 나올 만큼 고통스러운 통증에 일순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렸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케르륵! 케르륵!”

“아악! 그, 그만! 잘 못 했어요! 잘못했어요! 아아악!”

울면서 용서를 빌어보지만, 괴물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날카로운 손톱이 옷을 찢고, 피부에 상처를 냈다. 이러다간 정말로 죽을 것 같아서 괴물을 밀쳐내 보려고 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몸집이 고작 어린 아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힘은 나보다 훨씬 더 셌다.

“꺄악!”

입을 쩌억 벌린 괴물이 침을 뚝뚝 흘리며 팔을 깨문 순간, 너무 아파서 몸부림조차 칠 수 없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꺽꺽대며 숨을 힘겹게 들이켜는 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괴물이 내 피를 빨아먹으며 피부에 손톱을 박아넣고 있을 때.

“이 미친 새끼가!”

퍽!

날렵한 체형의 여성이 달아와서 괴물의 배를 걷어찼다.

“켁!”

배를 걷어차인 괴물이 입을 쩌억 벌린 채 땅바닥을 뒹굴자, 그걸 본 여성이 손으로 괴물을 가리키며 재차 소리쳤다.

“죽여! 빨리 죽이라고!”

“알았으니까, 걔부터 상태 봐봐!”

뒤이어 다부진 체격을 다진 남자가 나무 몽둥이를 손에 꽉 쥔 채로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곤 한시도 쉬지 않고 괴물의 몸을 내리쳤고, 퍽퍽! 소리가 몇 차례 울려 퍼진 끝에 겨우 손이 멈췄다.

“하아, 하아.”

“죽였어?”

“어.”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그제야 안심한 여자가 내 몸을 살펴보며 물었다.

“너 괜찮아? 아, 씁……. 팔에서 피가 엄청 많이 나는데……. 붕대 없는데 어쩌지? 옷이라도 찢어서 지혈해야 하나? 야, 너 윗옷 좀 벗어봐.”

“아니, 왜 하필 내 옷이야?”

“그럼 내가 벗을까?”

“아오, 그렇게 말하면 안 벗을 수가 없잖아. 어휴, 내 팔자야.”

여자의 핀잔에 남자가 한숨을 내쉬며 윗옷을 벗었다. 그리곤 여자한테 건네주자, 여자는 옷 끝을 쭈욱 찢고는 그걸로 내 팔에 난 상처를 감싸주었다. 여전히 끔찍할 정도로 아팠지만, 지혈이 된 탓에 조금은 통증이 누그러들었다.

“아파도 조금만 참아. 그리고 옷 잘 썼다. 자, 여기.”

“아주 넝마가 됐네.”

“입지 말던가.”

“누가 안 입는 댔냐.”

남자는 툴툴대면서도 고분이 옷을 입었고, 여자는 혹시라도 더 상처가 없는지 내 몸을 살펴봐 줬다. 그리고 그 사이에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몸을 추스르며 여자와 남자의 얼굴을 살펴봤다. 다행히도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물론 그래봤자, 지나가듯이 본 게 전부였지만.

‘다른 사람이 있었어…….’

나 혼자만 여기에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니, 그제야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눈물이 터져 나왔다.

“흐윽, 흑! 흐아앙!”

“야, 야? 갑자기 왜 울어? 아이고, 그래. 마음대로 해라. 울어라, 울어.”

“흐윽! 윽! 흑!”

내가 울기 시작하자, 여자가 잠깐 곤란하단 표정을 짓다가 이윽고 나를 안아주었다. 그 품이 너무나도 따뜻해서 도저히 벗어나기 싫었다. 나는 그렇게 한동안 이름도 모르는 언니의 품에 안긴 채, 하염없이 울어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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