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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어플-571화 (571/599)

〈 571화 〉 [뜻 밖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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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멸망한 세계의 탑이라고 불린 곳에서 탈출한 후 사람들은 한국 정부의 보호 아래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진을 받게 되었다.

검사 과정에서 크고 작은 소란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무사히 끝났다. 좀비에게 물렸던 사람도 큰 탈 없이 치료를 받게 되었다. 혹시라도 광증을 일으키거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강한 전염성을 띠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혹시나 싶은 사태에 대비해서 따로 격리된 것 같긴 했지만.

아무튼 이처럼 좀비에 물린 사람들만 격리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정밀 검진이 끝났다는 전제 하에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이기는 게 허용되었다.

“왜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건데? 우리가 죄인이야? 범죄자야? 대한민국에서 이래도 되는 거야!”

하지만 병원 밖으로 나가는 건, 허용되지 않았기에 몇몇 사람들이 언성을 높이며 소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때마다 공무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병원으로 찾아와서 허리를 숙이고 사과를 하고 진정시켰다.

또한 더불어 곧 가족들과 면회를 할 수 있을 거란 이야기도 해줬다. 그 덕분인지, 험악했던 분위기도 다소 누그러들었다.

“한 수진 씨, 가족분들이 찾아왔어요.”

“네!”

병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는 가족이 찾아왔다는 말에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공무원으로 보이는 여성의 안내를 받아서 면회실로 향했다.

“수진아!”

면회실에는 엄마와 아빠가 와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울면서 몸을 끌어안았고, 아빠는 고개를 살짝 돌린 채 힘겹게 눈물을 참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난생처음 봤다. 항상 무뚝뚝하기만 했던 아빠가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

“수진아……. 무슨 일 없었지? 다친 곳은 없고?”

반면에 엄마는 평소와 똑같았다.

내가 혹시 어디 다치진 않았는지, 아니면 무슨 일을 당하진 않았는지 걱정을 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한테, 평소처럼 활기차게 웃으며 대답했다.

“응, 다친 데 없어. 이거 봐. 멀쩡하잖아. 그러니까 울지 마, 엄마. 아빠도.”

하지만 이건 거짓말이었다. 말로는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오히려 죽을 것만 같았다.

속이 뒤집혔다. 계속, 계속. 몇 번이고 어제의 일이 떠올라서 괴로웠다.

‘3일 뒤에 또다시 거기로 들어가야 한다니.’

멸망한 세계의 탑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겨우겨우 탈출했는데, 3일 후에 다시 들어가야만 한다.

거부하는 건 불가능했다. 일방적인 통보였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할 겨를조차 없었다. 기뻐하는 건, 사치였다. 남은 건, 3일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유예 시간뿐이었다.

“다행이야. 엄마는 수진이, 네가 죽은 줄만 알고……. 흐윽, 흑.”

엄마가 눈물을 삼키며 나를 더 세게 끌어안았고, 나는 그런 엄마를 끌어안아 주며 다독여주었다. 아빠도 나를 안아주고 싶어하시는 것 같았지만, 끝끝내 손을 뻗지 않으셨다. 이에 나는 용기를 내어서 아빠한테 손을 내밀었다.

“아빠.”

아빠의 팔을 붙잡자, 그제야 아빠도 나를 안아주셨다. 그러자 조금은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게, 비로소 실감되었다. 나는 그렇게 가족들과 재회에서 3시간쯤 면회를 하고는 다시 병실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공무원을 붙잡고 울부짖고 있는 여성도 봤다.

“아니에요, 있을 거예요! 다시 찾아봐 주세요! 현이 오빠가 죽었을 리가 없잖아요!”

“죄송합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성분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실종자 중에서도 현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지금 오빠 가족이 실종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아니, 가족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갑자기 휘말려서……!”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언성이 오고 간 끝에 공무원 여성이 다시 한번 찾아보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자리를 떠났다.

여자는 굉장히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슬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여자가 멸망한 세계의 탑 1층을 클리어하고 우리를 탑 밖으로 탈출시킨 사람, 유 은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러분 모두 아시다시피 48시간 이내로 다시 탑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있습니다.”

공무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멸망한 세계의 탑에서 살아 돌아온 278명을 앞에 두고서 말했다.

다들 반응이 무덤덤했다.

몇몇이 흐느껴 울며 공포에 떨긴 했지만, 대부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기에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에서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궁금해하는 기색이었다. 나도 그중에 하나였다.

‘어쩌면 마물 사냥꾼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탑 안으로 들어갈 줄지도 몰라.’

나는 마물 사냥꾼의 리더, 이 소현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같은 여자인 자기가 봐도 너무나도 멋진 여성이었다. 방패를 치켜들고서 사람들을 지켜주는 모습은 슈퍼 히어로, 그 자체였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모습에 이 소현을 좋아하지 않는 동급생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였다. 물론 소현을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유 지아를 좋아하는 애들도 많았지만.

아마 인기투표를 한다면 서로 비슷하지 않을까?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며 공무원 남성의 말을 계속 경청했다.

“여러분이 탑 안에 갇혀계신 동안 군대를 동원해서 탑 안으로 진입해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습니다. 물론 화기를 동원에서 탑의 일부분을 무너트려 보려고도 했지만, 여기 사진으로 보시다시피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최후의 방법으로 마물 사냥꾼의 협조를 받아서 탑 안에 진입 및 구조 활동을 해보려고 했으나…….”

잠시 말끝을 흐린 남성은 마치 면목 없다는 듯이 힘겹게 말을 뒤이었다.

“……그것 역시도 실패했습니다. 즉, 현재 상황에선 여러분들을 지켜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남성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중년의 남성이 큰 소리로 고함쳤다. 그리고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래서 우릴 버리겠다고?”

“마물 사냥꾼들 불러와! 불러오라고!”

“지금 우리 보고 죽으라고 하는 거랑 뭐가 달라? 내 말 틀려?”

“흐윽, 흑! 엄마……. 아빠…….”

고함과 울음소리로 강당 안이 가득 찼다.

소란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공무원 남성은 어떻게든 사람들을 진정시켜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소란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리고 이윽고 절정에 달했을 때, 익숙한 얼굴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이 소현이다!”

누군가 소리쳤다. 그리고 모두의 입이 다물어졌다.

나도 마물 사냥꾼의 리더, 이 소현을 실물로 본 순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마치 그녀의 등 뒤에서 후광 같은 게, 막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나와 같은 사람이 정말로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예뻤다.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긴 했지만, 현재 정부에서 최선을 다해서 방법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저 또한 여러분들을 포기할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럼 방법이 있는 건가요?”

“일단 어제 하루 동안 이야기를 해본 결과, 여러분들이 최대한 생존할 수 있도록 훈련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자세한 건, 이분에게 마저 들으시면 됩니다.”

이 소현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공무원 남성에게 시선을 보내자, 그가 황송하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그리곤 곧 차분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듣기론 탑 안에 여러분이 쓰실만한 무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기에 최대한 무기를 사용하는데 익숙해지실 수 있도록 도와드릴 생각입니다. 또한, 탑에 입장하는 시간에 맞춰서 개인 화기도 지급해 드릴 생각입니다.”

“오……!”

개인 화기라는 말에 일부 남성들이 감탄성을 터트리며 화색을 띄웠다.

나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다들 좋아하는 걸 보면 좋은 거긴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며 약간의 희망을 품었다.

“다만 여러분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기에 강도 높은 훈련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물론 강제는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필요에 의한 훈련이니, 원치 않으신 분은 따로 가벼운 훈련을 받으시면 됩니다.”

공무원 남성의 말이 끝나자, 여성 한 명이 손을 높이 치켜들며 질문을 던졌다.

“저기 혹시, 소현 씨가 직접 가르쳐주시는 건가요?”

“아, 그건…….”

여성의 질문에 공무원 남성이 곤란하단 표정을 짓자, 소현이 살짝 웃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저한테 배우시는 것보단 전문가분들에게 배우시는 게 더 나을 거예요. 그래도 여기에 계속 머물 거니까, 혹시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물어봐 주세요. 최대한 대답해드릴게요.”

“정말요?”

“네.”

“꺄악!”

소현의 대답에 다들 자지러지게 좋아했다. 다른 남자들도 혹시나 싶은 얼굴로 소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솔직히 말해서 가슴이 설레는 걸 감출 수 없었다. 마물 사냥꾼의 리더와 당분간 같이 지낼 수 있다니!

앞으로 소현 님이라고 불러야 하려나? 언니라고 부르는 건, 너무 예의에 어긋나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소현 님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공무원 남성이 사람들에게 오늘 있을 일정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도록 했다. 대부분 남성들이 강도 높은 훈련에 자원했지만, 그중에는 1층을 클리어한 유 은혜가 포함되어 있었다.

‘나도 한 번 받아볼까?’

유 은혜가 남자들만 참여하리라 생각했던 강도 높은 훈련에 참여하자, 나도 참여해볼까 하는 생각이 슬쩍 들었다. 그리고 이번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인지, 몇몇 여자들이 생각을 바꿔서 강도 높은 훈련에 참여했다.

덕분에 꽤 많은 여자들까지 훈련에 참여하게 되었다. 물론 그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건 생각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우리에게 체력 단련을 시키고, 무술을 가르쳐주는 교관은 남녀 구분 없이 가혹하게 훈련을 시켰고 덕분에 오후 일정에선 대부분의 여자들이 훈련을 포기하고 호신술을 배우러 갔다.

“유격 같은 거 시킬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그냥 조금 빡센 pt아닌가?”

“조금만 더 빡겠다간 토하겠다.”

남자들은 꽤 익숙한 듯, 낄낄거리며 훈련을 받았다. 그게 참 신기했다. 아무튼 나도 다른 여자들과 똑같이 오후 훈련을 포기했다. 도저히 몸이 버티질 못했다. 어찌나 힘든지, 점심엔 밥 한 숟갈도 뜨지 못할 정도였다. 이러다간 오히려 내일이 되기 전에 몸이 망가져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오후에는 호신술을 배우고, 마지막 3일째엔 사람들한테 자유 시간이 배정되었다. 몇몇은 어제처럼 훈련을 했고, 또 몇몇은 먹고 싶은 걸 시켰다. 병원 밖으로 도망치려고 한 사람도 있었지만, 얼마 못 가서 잡혀 왔다.

나는 엄마하고 아빠가 면회를 와서,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오후가 되었을 때, 군인 아저씨들이 우리에게 총을 나눠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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