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9화 〉 [뜻 밖의 상황]
* * *
[축하합니다!]
[장비 ‘쾌속의 레이피어(R)’를 획득하셨습니다!]
[효과 1 : 심장 찌르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10분마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효과 2 : 반경 1미터 이내에 존재하는 단일 혹은 다수의 적에게 총 3회의 찌르기 공격을 사용합니다. (10분마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축하합니다!]
[아이템 ‘호감도 상승 알약(1회)’을 획득하셨습니다!]
[효과 : 대상의 호감도를 한 단계 상승시킵니다.]
‘무난하게 좋네.’
보상을 확인한 나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시선을 거둔 다음에 혜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 년 동안 같이 지내야 한다는 게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신령님의 말씀을 들어서 나쁠 건 하나도 없으니까……. 애초에 이건 네가 겁도 없이 담장 너머로 집 안을 훔쳐본 탓에 이렇게 된 거니까! 싫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거 알지? 난 정말로, 순수하게 네가 걱정되어서 이러는 거라고. 절대로 다른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이러는 게 아니니까……. 크흠, 정말이야.”
그녀는 여전히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심지어 들리는 목소리에는 은근한 기대감이 묻어 있기까지 했다.
“박 혜수 무당님.”
“솔직히 말해서 이건 내 입장에서도 엄청난 손해……. 응? 어? 어? 지금 나 불렀어? 왜? 설마 싫다는 건 아니지?”
그렇게 열심히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던 혜수를 부르자,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쳐다봤다. 이에 나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으응? 괜찮다고? 뭐가?”
“귀신 문제를 해결했다고요. 좋게 해결했으니까, 혹시 궁금하면서 벨을 눌러보세요. 아마 대답해줄 겁니다.”
“뭐?”
내가 상황을 설명해주자, 혜수가 어처구니없단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가 확신에 가득찬 목소리로 말하자, 그녀는 반신반의하면서 현관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검지로 조심스럽게 벨을 누르자, 딩동. 하고 초인종 소리가 울려퍼졌다.
“흐윽! 박 혜수 무당님? 무당님이신가요? 하읏, 아아……. 얼른 들어와주세요! 얼른!”
그 순간, 인터폰 너머로 반가움과 당혹감, 그리고 야릇함이 뒤섞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이 상황에 혜수가 또다시 놀라며 나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 사이에 덜컥, 소리와 함께 굳게 잠겨있던 현관문이 열렸다. 이에 나는 혜수를 지나쳐,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며 입을 열었다.
“어서 들어가보죠.”
“어, 응……. 그래.”
혜수는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모양인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나를 뒤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앞마당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가자, 인터폰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쥔 채로 가쁘게 숨을 내쉬고 있는 40대 중년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하아, 하아……. 박 혜수 무당님……. 이신가요?”
“네, 제가 박 혜수 무당입니다. 그런데 이건 도대체…….”
“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갑자기 정신이 들었는데, 몸이……. 읏, 일단 제 딸부터 봐주세요. 저는 괜찮으니까요.”
전신을 뒤덮는 쾌감 탓에 정신이 없을 텐데도, 그녀는 자신의 안위보다는 딸부터 챙겼다. 이게 바로 모성애인가? 살짝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역시 어머니는 위대하다.
나는 속으로 감탄하며 하 서혜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런 내 시선에 그녀가 움찔 몸을 떨며 다리를 오므렸다.
“으읏.”
동시에 꽉 다물어진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녀는 부끄러움에 입술을 질끈 깨물어 보지만, 달아오른 몸뚱어리가 좀처럼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그 증거로 하 서혜의 허벅지 사이로 맑고 투명한 애액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버티기 힘들테지.’
마음 같아선 육체적으로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위험 요소가 너무나도 많았다. 특히나 얼굴을 보인 채, 관계를 가진다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하물며 상대가 유부녀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애써 하 서혜한테서 시선을 거둔 다음에 혜수와 함께 이 집의 딸이 있는 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상해.”
그렇게 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침대 위에 누워있는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보였다.
다행히도 주변엔 지박령이 보이지 않았다. 무사히 조교의 방에 자리를 잡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안도하고 있을 때, 혜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대체 어디로 간 거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에 혜수가 답답하단 듯이 중얼거렸다.
“없으니까 좋은 게 아닐까요?”
“아니, 없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라……. 아, 그러고 보니 네가 말했었잖아! 이제 괜찮다고! 네가 한 거지? 대체 어떻게……? 무슨 수를 쓴 거야?”
“일단 비밀이라고 말해둘게요.”
내 팔을 붙잡으며 연달아 질문을 던지는 혜수의 태도에 나는 살짝 웃으며 부드럽게 거절했다.
“진짜 이러기야?”
“이게 제 밑천이거든요.”
“끄응.”
밑천이란 말에 혜수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리고 이처럼 간단히 이야기를 끝마친 우린 침대 위에 누워서 자고 있는 여자 아이의 몸상태를 살펴봤다.
“어때요?”
“그냥 몸이 좀 약해졌을 뿐이야. 당분간 밥 잘 먹고, 잠만 잘 자면 금방 건강해질 거야.”
“부적은 필요없어요?”
“이 정도에 부적까진 필요도 없어. 오히려 부적이 아깝지.”
딱 잘라서 말한 혜수는 방 밖으로 나간 다음에 여자 아이의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그럼 이제 괜찮은 건가요?”
“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무당님!
“아뇨, 저는…….”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하 서혜의 태도에 혜수가 난감하단 표정을 지으며 나를 힐끔 쳐다봤다. 이에 나는 괜찮다는 뜻에서 가볍게 손짓하고는 그녀가 계속 감사 인사를 받게 했다. 그리고 이처럼 감사 인사가 끝난 뒤에 아이의 어머니가 흰 봉투를 가져와서 공손히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음, 잘 받겠습니다. 그리고 제 연락처는 아직 가지고 계시죠? 혹시 제가 가고 난 뒤에 또다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면 바로 연락해주세요. 아시겠죠? 절대로 늦으시면 안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당부를 마친 혜수는 나를 데리고 집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혜수가 봉투 안에서 5만원 짜리 지폐를 모두 꺼내더니, 정확히 1장만 챙기고 나머진 전부 다 나한테 주며 말했다.
“네가 한 거니까, 네가 받는 게 맞겠지. 5만원은 교통비라고 생각하고 내가 가져갈게.”
그녀가 내민 돈은 한눈에 대충 봐도 50은 가뿐히 넘어 보였다. 어쩌면 백만 원에 가까운 액수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딱히 받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물론 매니저 어플을 얻기 전이었다면 이게 웬 떡이냐면서 넙쭉 받았겠지만, 지금의 나한테는 딱히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돈이 정말로 필요하면 현주한테서 받아 쓰면 되니까.’
아니면 막말로 매니저 어플의 힘을 사용해서 돈을 벌어도 됐다. 그렇기에 나는 혜수가 그랬던 것처럼 5만원짜리 지폐 1장만 챙기고 나머진 거절했다.
“박 혜수 무당님이 가지세요. 원래는 무당님이 하시려던 일이었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네가…….”
“받기 싫으시면 무당님이 가지고 계시다가 나중에 좋은 일에 써주세요.”
“…….”
혜수는 돈을 마다하는 내가 이상한 모양인지, 오묘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에 나는 어깨를 한 차례 으쓱이고는 화제를 다른 거로 돌렸다.
“아, 그리고 전화번호 가르쳐주실래요? 나중에 또 기회가 생기면 지금처럼 같이 일해보죠.”
“하아, 알았어. 네 마음대로 해.”
허락이 떨어지자, 나는 혜수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줘서 전화번호를 찍게 했다. 그리고 이처럼 전화번호가 찍히자, 나는 연락처에 박 혜수 무당님이라고 이름을 저장해두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다음에 또 뵙죠.”
“뭐? 벌써 가려고?”
“시간이 늦었잖아요.”
“아니, 저녁이라도 같이 먹고 가지…….”
혜수가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꼬리를 흐렸다.
그 모습을 보니, 살짝 마음이 약해지긴 했지만 저녁은 이미 서연이 누나와 함께 먹기로 선약이 잡혀있는 상태였다. 그랬기에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는 딱 잘라서 말했다.
“다음에요. 다음에 먹죠.”
“다음에 언제?”
“음, 다다음주쯤에 시간이 될 것 같네요.”
“뭐?”
“그럼 이만. 공간 이동.”
다다음주쯤에야 시간이 될 것 같다는 말에 혜수가 벙찐 표정을 짓자, 나는 아차 싶은 마음에 서둘러 작별 인사를 건네고는 공간 이동 반지를 사용해서 서연이 누나의 집으로 이동했다.
“후, 일단 좀 씻을까.”
이렇듯 서연이 누나의 집으로 돌아온 나는 신발을 벗고, 망자의 눈을 해제한 뒤에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옷을 벗자, 몸 이곳저곳에 나있는 선명한 손톱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모텔에서 혜수와 섹스를 했을 때, 그녀가 남긴 흔적인 듯 싶었다. 만약에 이걸 서연이 누나가 봤다면 뭐라고 하려나? 그걸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살짝 오한이 들었다.
으스스, 몸을 떤 나는 이프리의 유물, 지팡이를 소환해서 몸을 치료한 다음에 깨끗이 몸을 씻었다.
“아직 누나가 올 때까지 시간이 남아있으니까…….”
몸을 씻고 거실로 나와서 시간을 살펴보니, 아직 5시 30분이었다. 누나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려면 넉넉히 잡아서 1시간 정도 남았다고 생각하면 되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비디오 플랫폼에 들어가서 격투기 영상들을 살펴봤다. 내일 멸망한 세계의 탑에 들어갔을 때, 쓸만한 기술을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몸치인 모양인지, 아무리 봐도 좀처럼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어렵네……. 차라리 조교의 방으로 가서 에나한테 배워볼까.”
문득 에나한테 맨손 격투나 검술을 배워보는 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에나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선생님으로서는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저번에 마물 사냥꾼들을 가르칠 때의 에나를 생각해본다면……. 솔직히 말해서 내 몸이 그녀의 훈련을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니, 그 전에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나는 마물 사냥꾼이 아니니까.’
실제로 지금의 나는 일반인보다 몸이 조금 더 튼튼한 정도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처럼 태연할 수 있는 이유는, 그동안 매니저 어플의 레벨을 올려놨기 때문이었다.
‘레벨을 올려놨으니까, 내일 멸망한 세계의 탑에 들어갔을 때 능력치 보정을 받겠지. 과연 얼마나 오를까?’
분명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에 힘이 67이었고, 반사 신경이 71, 체력 92, 마나 친화력 88 마지막으로 행운이 97이었을 것이다.
‘체력하고 마나 친화력, 행운은 충분히 높으니까 더 이상 오를 필요가 없고.’
가능하다면 힘과 반사 신경이 올라줬으면 좋겠지만, 과연 그게 뜻대로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설령 힘과 반사 신경이 오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체력과 마나 친화력이 여기서 더 오른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좋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행운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이전에 멸망한 세계의 탑에 들어갔을 때, 높은 행운 수치 때문에 겪었던 황당한 일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