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563화 (563/599)

〈 563화 〉 [뜻 밖의 상황]

* * *

[뜻 밖의 상황]

다음 날 아침, 나는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는 아내처럼 서연이 누나를 배웅해주고는 현주가 보낸 마물 사냥꾼 지원자 목록을 살펴봤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많네.’

마물 사냥꾼으로 뽑을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고작 해봐야 3명밖에 안 되는데, 마물 사냥꾼이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의 숫자는 무려 10,000명을 훌쩍 넘었다. 그나마 이 정도도 현주가 추리고 추려낸 숫자였다.

괜히 현주가 한참 뒤에야 서류를 보낸 게 아니었다.

“목숨이 걸린 일인데, 다들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지원자들의 심정이 이해되었다.

‘장애인으로 계속 살 바에는 차라리 마물과 싸우다가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현주한테 따로 언질을 주어서 장애인 위주로 뽑게 했기 때문에 지원자들 모두 신체적인 장애를 앓고 있었다.

맹인부터 시작해서 사지가 온전치 않은 불구자까지. 여기에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안고 태어난 선천적 장애인도 있었지만, 유 지아처럼 사고로 몸을 다쳐서 장애를 겪게 된 후천적 장애인들이 있었다.

“다들 사정은 비슷해 보이는데.”

나는 스마트폰 화면에 표시된 지원자 목록을 쭉 훑으며 계속 살펴봤다.

[이름 : 윤 아름]

[성별 : 여]

[나이 : 18]

[거주지 : 대한민국 인천]

[특이 사항 : 지하 노래방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전신 화상을 입음. 당시에 함께 있던 여동생 및 동급생이 사망함. (관련 기사를 첨부합니다)]

[이름 : 신 미영]

[성별 : 여]

[나이 : 25]

[거주지 : 대한민국 대구]

[특이 사항 : 1급 지체 장애인 (장애인 증명서를 첨부합니다.)]

[이름 : 그레이스 요안나]

[성별 : 여]

[나이 : 21]

[거주지 : 미국 네바다주]

[특이 사항 : 자동차 운전 사고로 인한 하반신 마비 (장애인 증명서를 첨부합니다.)]

‘마음 같아선 다 뽑아주고 싶네.’

아니면 현주한테 따로 시켜서 이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 다음에 이프리의 유물, 지팡이로 치료를 해줄까?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아무리 보안은 철저히 한다고 하더라도 이토록 많은 인원이 갑자기 치료된다면, 분명 이상하게 여길 사람이 나올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한 명씩 따로따로 만나서 치료해줘도 마찬가지겠지.’

그리고 이렇듯 대가 없이 치료를 해줘 버리면, 당장 있는 마물 사냥꾼들이 불만을 터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마물 사냥꾼들 중에 몇 명이 그만두겠다면서 반발할지도 몰랐다. 당장 채원이만 해도 그랬다. 불치병에 걸린 탓에 어쩔 수 없이 마물 사냥꾼이 되었는데, 자기처럼 목숨을 걸고 마물을 사냥하지도 않았는데 장애가 나은 사람들을 보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당장 박탈감부터 느낄 것이다.

‘일단 지금은 새로운 마물 사냥꾼을 뽑는 일에만 집중하자.’

나는 다른 잡생각을 떨쳐내고는 나머지 다른 지원자들을 면밀히 살펴봤다. 그리고 그렇게 만 명이 넘는 지원자들을 살펴보다 보니, 어느샌가 시간이 오후 3시에 가까워졌다. 특이 사항만 읽으면서 빠르게 서류를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이렇게나 많이 잡아먹은 것이었다.

“고르기가 힘드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지금 있는 마물 사냥꾼들을 뽑았던 것처럼 매니저 어플에 맡길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엎어진 일이었다.

‘이제 와서 말을 바꾸기엔 너무 늦었지.’

쓴웃음을 터트린 나는 나머지 지원자들을 살펴보고는 몇 명을 골라서 따로 분류해뒀다.

‘여기에 있는 사람은 나중에 현주를 통해서 직접 불러내서 이야기를 해봐야지.’

이렇듯 만 명이 넘는 지원자들 중에 가장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을 고른 나는 따로 뽑아둔 명단을 현주한테 보냈다. 그러자 1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현주한테서 답장이 날아왔다.

[이 현주 : 면접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면접 방식을 묻는 현주의 질문에 나는 미리 생각해두었던 방법을 알려주었다.

[김 유현 : 면접 보는 장소와 날짜만 알려주세요. 그럼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 현주 : 네! 그럼 언제가 편하세요?]

[김 유현 : 2주 뒤가 좋을 것 같네요.]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보고 싶었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인데다가 당장 내일 멸망한 세계의 탑의 2층이 개방되기 때문에 시간을 내기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다음 주에 약속을 잡기에는 은하네들과 3차 예선을 보기로 했으니, 어쩔 수 없이 2주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답장을 보내자, 얼마 뒤에 현주한테서 ‘네, 그럼 준비해두겠습니다.’라는 공손한 답장이 돌아왔다.

‘좋아, 이걸로 지원자는 얼추 다 뽑았고.’

나머지는 직접 대화를 나눠보면서, 마물 사냥꾼이 되었을 때 어떠한 자세로 임할 건지 물어보기만 하면 됐다.

‘기껏 마물 사냥꾼으로 만들어놨더니,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하면 곤란하니까.’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금 마물 사냥꾼들에게 마물 사냥꾼을 그만두면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면서 거짓말을 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걸 들키지 않으려면, 지원자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절박한지 직접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물론 다들 절박하겠지만.’

나는 그리 생각하며 매니저 어플을 실행했다. 그러자 화면이 전환되면서 매니저 어플의 메인 화면이 나타났다.

물론 당연히 출석 체크 보상도 들어왔다.

[축하합니다!]

[출석 체크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아이템 상자가 주어집니다.]

[랜덤 아이템 상자를 수령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오늘은 뭐가 나오려나.’

나는 서둘러 랜덤 아이템 상자를 수령했다.

[축하합니다!]

[아이템 ‘성전환 알약 (1회)’를 획득하셨습니다!]

[효과 : 대상의 성별을 바꿉니다.]

“…….”

전혀 예상지도 못 한 아이템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성전환 알약이라니!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는 확인을 눌렀다. 그러자 뒤이어서 민서가 오늘도 배구 경기에서 대활약을 했다는 알림 문구가 주르륵 나열되었다.

[도로 공사를 상대로 승리했습니다! 경험치 40을 획득합니다. ]

[경험치를 정산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김 민서는 현재 575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누적 경험치의 양 750)]

‘요새 잘 나가네.’

내가 딱히 신경을 써주지 않고 있음에도 알아서 잘하고 있는 민서를 보고 있자니, 절로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민서가 지금처럼 계속 쭉 잘 되기를 바라며 이번에 얻은 누적 경험치로 그녀의 능력치를 조금 올려줬다.

‘그리고……. 각성석 상점에서 각성석을 사고.’

[오늘의 판매 목록 (다음 갱신까지 17:15:08)]

[운피레아 각성석 조각: 1개 (다음 등급으로 승급시키기 위해선 0/100개의 각성석 조각이 필요합니다.)]

[베아 각성석 조각 : 1개 (다음 등급으로 승급시키기 위해선 0/100개의 각성석 조각이 필요합니다.)]

[엘레노아 각성석 조각 : 1개 (다음 등급으로 승급시키기 위해선 0/100개의 각성석 조각이 필요합니다.)]

‘그나마 값이 싸니까 망정이지.’

만약에 값이 비쌌다면 쳐다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총 30의 정기를 지불해서 세 사람의 각성석을 구매하고는 일간 퀘스트를 확인해봤다.

[일간 퀘스트]

[마물을 사냥할 시간이다. / 현계 퀘스트 1회 완료 (보상 : 랜덤 장비 상자)]

[새로운 여성 찾기 / 신규 여성 조교 1회 완료 (보상 : 랜덤 아이템 상자)]

“현계 퀘스트는 당장 못 하는 거고……. 조교는.”

소파에서 벗어난 나는 창가 쪽으로 다가간 다음에 망자의 눈을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아파트 아래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오후 3시 밖에 되지 않았기에 아파트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은 애완동물을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들이나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뿐이었다.

‘사람한테 들러붙은 귀신은 딱히 안 보이네.’

아무래도 좀 더 사람이 붐비는 장소에 가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잠깐 조교의 방으로 이동한 다음에 운피레아한테 부탁해서 얼굴을 바꾸고는 아파트 밖으로 나갔다.

‘지하철을 타볼까.’

마침 아파트 근처에 지하철 역이 있는데다가 항상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귀신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듯 싶었다. 게다가 조금 멀리까지 나가더라도 공간 이동 반지를 사용하면 간단히 되돌아올 수 있었기에 딱히 문제가 될 것도 없었다.

이렇듯 결정을 내린 나는 지하철 역으로 가서, 지하철에 탄 다음에 망자의 눈으로 지하철 이용객들을 살펴봤다.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네.’

지하철의 칸을 이동하며 귀신을 찾아봤지만, 딱히 보이는 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지막 칸에 도착한 순간, 저 멀리 벽에 기대고 서있는 젊은 여성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어?’

놀랍게도 여성의 옆에는 2미터가 훌쩍 넘는 장신의 여성이 함께 서있었다.

물론 키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크다고 해서 딱히 이상할 건 없었지만.

‘다리가 흐릿하잖아?’

정확히는 발을 가리고 있는 치마 밑단이 흐릿한 신기루처럼 흐물흐물했다. 도저히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장신의 여성을 바라본 순간, 여성 또한 나를 발견한 듯 흥미롭단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옆에 있던 여성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이야기를 한다고?’

여기서 나는 더욱더 혼란에 휩싸였다. 귀신과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라니? 물론 나도 귀신과 대화가 가능하긴 했지만, 막상 나와 같은 사람을 보니 더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등을 기대고 있던 여성이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너 뭐야?”

“네?”

“뭘 발뺌하고 그래? 너 지금 신령님이 보이는 거잖아.”

“…….”

“신내림을 받은 것 같지도 않은데, 대체 어떻게 보는 거야? 악귀가 달라붙은 건가?”

여성은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나는 여성이 말한 신내림이란 단어에 그녀가 무당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는 혹시나 싶은 생각에 물어봤다.

“혹시 무당입니까?”

“그래, 무당이다. 왜 무당 처음 보냐?”

“어……. 무당이 왜 여기 있는 겁니까?”

“무당은 뭐 지하철 타면 안 돼?”

“아뇨, 그게 신기해서…….”

“신기한 것도 참 많다.”

허, 하고 웃음을 터트린 여성은 기고만장하게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하여간 너 조심해! 그렇게 함부로 신령님을 보고 그러면 신령님이 노해서 너한테 벌을 줄지도 모르니까.”

“아니, 그냥 쳐다만 본 건데 고작 그걸로 벌을 주는 겁니까?”

“고작? 하, 겁 없는 놈일세. 네가 그렇게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쳐다보는 게 얼마나 불경한 일인 줄 모르는 거야?”

여성의 말에 뒤에 서있던 장신의 여성, 신령이라 불린 존재가 우후후훗, 하고 요사스럽게 웃으며 나를 내려다봤다.

‘딱히 위험해 보이진 않는데…….’

오히려 꼴린다.

멀리서 봤을 땐 잘 몰랐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신령의 몸매가 보통이 아니다. 물론 터질 것처럼 풍만한 가슴은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장신에서 풍겨오는 압박감은 이제껏 보지 못한 색다른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나는 꿀꺽 군침을 삼키며 신령을 똑바로 바라봤고, 이에 신령이 마치 ‘이 놈 봐라?’라는 듯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시, 신령님? 아이고, 너 이 녀석……. 스스로 화를 불렀구나. 난 이제 모른다.”

이처럼 신령이 나한테 다가오자, 여성이 놀라며 움찔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는 이내 골치 아프다는 듯, 손사래 치며 고개를 홱 하니 돌렸다.

“음흐흐흣.”

여성이 나 몰라라 하며 뒤돌아서자, 신령이 음산하게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긴 검은 머리카락이 쏟아지듯이 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오, 예쁜데?’

고개를 들어 올리자, 신령의 창백한 얼굴이 눈에 확 들어왔다. 더불어 일반인보다 훨씬 큰 입도 보였다. 보통 저렇게까지 입이 크면 미워 보여야 하는 게 정상인데, 워낙에 장신이어서 그런가 딱히 밉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가 돋지.’

나는 손을 뻗어서 신령의 얼굴을 만지려다가 문득 내가 만진 악령이 괴로워하며 소멸했던 일을 떠올리고는 황급히 손을 거뒀다. 하지만 내가 미처 손을 거두기도 전에 신령이 확 손을 뻗어서 내 손목을 붙잡았다.

“으으웅?”

그 순간, 신령이 부르르 떨며 묘한 소리를 내었다. 그리곤 자기가 느낀 게 뭔지, 정체가 궁금하다는 듯이 남은 다른 손도 뻗어서 내 얼굴을 만졌다.

“흐으으!”

그리곤 굉장히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끌어안더니, 뱀처럼 내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꾸욱, 꾸욱 휘감기는 감각이 상당히 기이했다.

“에, 에? 신령님?”

동시에 옆에서 경악 섞인 무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