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2화 〉 [정기 수급]
* * *
“아, 맞아. 예선은 2차로 끝인 거야?”
내 질문에 지현이가 고개를 살짝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3차까지 있다고 하던데요?”
“그래? 언제 하는데?”
“일주일 뒤에요. 장소랑 정확한 시간은 전화랑 문자로 알려준대요.”
“흠.”
“그러니까 오빠도 일주일 뒤에 시간 비워둬요. 알았죠?”
“그래, 알았어.”
나는 지현이의 당부에 성실히 대답하면서 마저 수프를 떠먹었다. 그리고 이처럼 수프를 거의 다 먹었을 때쯤, 서버들이 들어와서 빈 그릇을 치우고 다음 요리를 가져왔다. 딱 한입 크기의 조개 완자였다. 이걸 누구 코에 붙이나 싶다가도 완자 위에 올려져 있는 성게 알과 기름에 바짝 튀긴 허브를 보고 있자니 군침이 절로 넘어갔다.
나는 잘 구워져서 노란 빛깔을 띤 조개 완자를 조심스럽게 떠서 입에 넣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입안에 가득 흘러넘쳤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치즈처럼 약간 고소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와, 여기 진짜 맛있네요.”
나처럼 조개 완자를 한 입 먹은 예은이가 작게 감탄성을 내뱉으며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지현이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러게. 이게 조개 완자면, 내가 지금까지 먹은 조개 완자는 대체 뭐였지? 사기라도 당한 건가?”
“언니, 그건 너무 오버예요.”
“오버라니? 난 진심이야.”
지현이가 단호하게 답하며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곤 소스까지 싹싹 긁어먹는 그녀의 모습에 예은이가 창피하단 듯이 얼굴을 붉혔다. 누가 봐도 무척이나 청승맞은 모습이었지만, 얼굴이 예쁘장한 미인이 저렇게 행동하니 마냥 귀엽게만 보였다.
그리고 이처럼 지현이와 예은이가 티격태격하고 있는 사이에 서버들이 들어와서 다음 요리가 담겨져 있는 그릇을 내려놓았다. 이번에 나온 요리는 자박하게 깔린 소스 위에 올려져 있는 생선구이였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장식처럼 바게트 한 조각이 접시의 경사면을 따라 기대어져 있었다.
‘생선구이라.’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생선의 살코기가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후각을 자극했다. 얼핏 보기엔 그냥 잘 구워진 생선구이처럼 보였지만, 막상 한 입 먹어보니 그 생각이 말끔히 사라졌다. 보통 생선구이는 짭조름하기 마련인데, 이건 담백하고 고소했다. 그리고 그 뒤에 느릿하게 말려오는 소스의 달콤함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건 밥보다는 빵이 더 잘 어울리는 맛이었다.
‘아, 이래서 바게트 한 조각이 같이 나온 건가.’
바게트를 들어서 한 입 베어 물자, 버터기름에 튀긴 듯 고소하면서도 느끼한 맛이 혀를 감쌌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빵이긴 했지만, 조금 부족하단 느낌이 들었다. 이에 나는 바게트를 소스에 조금 찍어 먹어봤다. 그러자 달콤함이 느끼함을 확 잡아주며 입맛을 확 돋웠다.
‘예술이네.’
이 소스는 대체 뭘까? 레시피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이럴 때, 시스템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입맛을 다시며 남은 바게트를 소스에 찍어서 먹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살짝 돌아보는데, 연신 감탄하며 요리를 맛보고 있는 지현이와 예은이하고는 다르게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식사를 이어나가고 있는 서연이 누나와 은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음.’
조금 불안해 보이긴 했지만, 묘한 긴장감 때문에 섣불리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이러다가 갑자기 싸우는 건 아니겠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서연이 누나는 정말로 자기가 했던 말을 지키려는 듯 은하한테 딱히 적의를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뭐, 나로선 다행인 일이긴 한데.’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나는 문득 운피레아가 마법을 걸어준 지, 1시간이 다 되어간다는 걸 깨닫고는 스마트폰을 슬쩍 꺼냈다. 그리고는 매니저 어플을 실행해서 잠깐 조교의 방으로 이동했다.
“운피레아 소환.”
운피레아를 불러내자, 방금 전까지 청소를 하고 있었던 듯 손에 걸레를 쥐고 있는 하이 엘프가 나타났다.
“어머, 주인님!”
나를 발견한 운피레아가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이에 나는 그녀를 살짝 끌어안아 주고는 마법을 다시 걸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운피레아가 귀찮아 하는 기색 하나 없이, 세심하게 다시 마법을 걸어줬다.
그 후, 다시 현실로 돌아온 나는 수저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요리가 맛있네요.”
내 말에 서연이 누나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 입맛에 맞다니까 다행이네. 너희는 어때?”
누나의 물음에 바게트까지 깔끔하게 다 먹어치운 지현이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맛있어요, 언니.”
“맞아요. 근데……. 괜찮나요? 여기 너무 비쌀 거 같은데.”
지현이의 말에 예은이가 말을 덧붙이며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그러자 서연이 누나가 그런 건 신경 쓰지 말란 듯 선선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는 괜찮아. 그리고 우리 언니가 아는 사람이 하는 레스토랑이라서 혹시 더 먹고 싶으면 편하게 더 시켜도 돼.”
“네? 그래도 돼요?”
“솔직히 양이 너무 적지 않아?”
예은이가 깜짝 놀라서 묻자, 서연이 누나가 평소하곤 다르게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이런 누나의 행동에 옆에서 지켜보던 지현이가 깔깔대며 말했다.
“맞아요, 솔직히 여기 진짜 맛있는데 양이 너무 적어요.”
“그래도 코스 요리니까, 디저트까지 먹고 나면 꽤 배부를 거야.”
“그래요? 아, 근데 디저트라고 해서 막 이상한 게 나오는 건 아니죠?”
“걱정하지 마. 그런 건 안 나오니까.”
누나가 사근사근 웃으며 대답해주자, 긴장되었던 공기가 순식간에 몽글몽글하게 풀어졌다. 더불어 살짝 굳어있던 은하의 표정도 서서히 풀어졌다. 물론 그 안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의외로 말주변 좋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서연이 누나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군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살짝 웃는데, 방 안으로 서버들이 들어왔다. 서버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빈 그릇을 챙기고, 새로운 요리를 가지고 왔다.
이번 건, 파스타였다. 알맞게 익은 크림 파스타 위에 파슬리가 보기 좋게 뿌려져 있었다. 맛은 가볍게 즐기기에 딱 좋았다. 그리고 이처럼 입이 좀 풀렸을 때, 다음으로 스테이크가 나왔다.
‘코스 요리에서 스테이크가 빠질 순 없지.’
두툼하게 구워진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썰자, 육즙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향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잠깐 향을 즐기다가 입에 넣어서 씹었다. 그러자 흠 잡을 데 하나 없이 완벽한 고기 맛이 느껴졌다. 진짜로 순수하게 고기에만 집중한 맛이었다. 다른 향신료의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맛있었다.
‘신기하네.’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지현이도 몇 번 스테이크를 씹더니, 얼굴에 옅은 행복감을 드러냈다. 물론 그 옆에 앉아있던 예은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우린 스테이크까지 맛본 다음에 뒤이어 나오는 요리들을 차례대로 맛보다가 마지막에 나온 디저트, 케이크로 마무리했다. 너무 달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달지 않아서 깔끔하게 마무리 짓기에 딱 좋았다.
“언니, 고마워요. 덕분에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
그렇게 케이크까지 다 먹고 나자, 지현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맛있게 잘 먹었다니 다행이네. 너희는?”
“네, 저도요.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서연이 누나가 예은이와 은하를 번갈아 보며 묻자, 두 사람이 저마다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다행히도 별다른 문제 없이 저녁 식사가 끝나는 듯 싶었다. 내가 너무 걱정이 앞섰던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지현이가 좀 의외네.’
지현이는 은하 편이 아니었던가? 왜 저렇게 서연이 누나한테 살갑게 구는 거지? 물론 그만큼 누나가 사준 밥이 맛있긴 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지현이는 은하의 친구였다. 설마 누나를 방심시키려고 일부러 친한 척 하는 건가?
하지만 해맑게 웃고 있는 지현이를 보고 있자니, 도저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 먹은 거 같으니까, 이제 그만 일어나자.”
그 때, 누나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에 우리는 누나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에 방을 빠져 나갔다.
그 후, 1층으로 내려가자 우리를 방으로 안내해주었던 직원이 다가와서 계산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이처럼 계산을 끝마친 누나는 여기에 왔을 때처럼 우리를 차에 태워줬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학가에 도착하자, 애들이 차에서 내리며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차에서 내린 은하가 보조석에 앉아있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유현이 오빠는 안 내려요?”
“응? 아, 난…….”
은하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돌려 대답하려고 하자, 운전석에 앉아있던 누나가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유현이는 우리 집에서 자고 갈 거야.”
“네? 언니……. 집에서요?”
“응. 왜?”
“아니, 그게 진짜예요?”
“풉, 그런 걸 왜 물어봐? 우리가 뭐 한 두 살 먹은 어린 애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인데 같이 잘 수도 있지. 안 그래?”
서연이 누나가 내 손목을 붙잡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아무래도 누나는 여기서 확실하게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하고 사귀고 있는 건 자기니까, 너는 빠지라고.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네.’
조금 당혹스럽긴 했지만, 이 기회에 확실히 하는 게 좋을 듯 싶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거 가지고 계속 질질 끌어봐야 서로 좋을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 나는 누나의 뜻에 어울려 주기로 마음 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요새 누나 집에서 지내고 있어.”
“아…….”
순간, 은하의 입술 사이로 짤막한 외마디 탄식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얼굴에 서운해하는 기색이 어렸다. 꽤 상처받은 거로 보이긴 했지만, 이미 내가 서연이 누나와 사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가 딱히 이전처럼 눈물을 보이거나 하진 않았다.
“그럼 2차 예선 통과한 거 축하하고. 조심해서 들어가. 예은아, 미안한데 차 문 좀 닫아줄래?”
“네…….”
서연이 누나의 말에 예은이가 잠깐 눈치 보다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이윽고 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자 누나는 그대로 차를 운전해서 대학가를 벗어났다.
나는 창문 너머로 점점 멀어지는 은하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서연이 누나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남의 애인 좋다고 따라다니는 애는 안 심하고?”
“그건…….”
“유현아, 넌 그냥 나만 봐. 알았지?”
차가 빨간 불에 멈추자, 누나가 손을 뻗어 내 손을 붙잡았다.
“……나만 봐줘.”
불안에 떨 듯이, 바르르 떠는 누나의 손길에 나는 잠시 갈등하다가 이윽고 입을 열어 대답했다.
“네, 그럴게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