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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어플-561화 (561/599)

〈 561화 〉 [정기 수급]

* * *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간 차가 도로 위를 달렸다.

나는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주변 풍경을 바라보다가 누나한테 물어봤다.

“근데 애들 태워주기로 한 거예요?”

“응, 좀 멀리 떨어진 곳을 예약했거든.”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로 대답하던 누나가 잠깐 왼손을 들어서 한쪽 귀를 쓸었다. 누나의 귓불에는 못 보던 귀걸이가 걸려있었다. 한눈에 딱 봐도 무척이나 비싸 보이는 귀걸이였다. 물론 값을 떠나서, 누나한테 잘 어울리는 건 두말할 것도 없었다.

퇴근하자마자 옷도 안 갈아입고 바로 출발하기에 딱히 꾸밀 생각이 없는 건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저런 것도 여자들만의 신경전인 걸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 질문을 던졌다.

“비싼데예요?”

“별로 안 비싸. 그러니 가격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먹어.”

“그렇게 말하니까 더 부담스럽네요. 괜히 누나한테 미안하고.”

“미안하다면 이따 밤에……. 내가 말 안 해도 알지?”

누나가 운전대를 톡톡 두드리며 나를 힐끔 쳐다봤다.

“여자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좀 묘하네요.”

“여자라고 해서 성욕이 없는 줄 알아? 아……. 뭐, 사실 나도 너 만나기 전에는 그런 줄 알았지만.”

“저 때문이네요?”

“그래, 너 때문이야. 그러니까 나한테 잘 좀 해.”

누나는 그렇게 말하고 잠깐 차가 정차한 사이에 왼손으로 내 허벅지를 꼬집었다. 그다지 세게 꼬집은 게 아니었기에 아주 살짝 따끔한 정도였다.

나는 살짝 웃고는 누나의 손을 잡아서 사타구니 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누나의 손이 움찔 떨면서도, 마치 기어를 잡듯이 부풀어 오른 사타구니를 움켜쥐었다.

“……뭐야? 너 변태야?”

“지금 이렇게 누나한테 잘 하고 있는 거잖아요. 왜요? 싫어요?”

“짐승 같아…….”

“짐승 같으면 뭐 어때서요?”

“…….”

내가 속삭이자, 누나의 얼굴이 더더욱 붉게 물들었다. 동시에 내가 흥분하고 있는 만큼, 누나도 흥분한 모양인지 가쁘게 숨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신호가 빨간불에서 녹색불로 바뀌자 황급히 손을 떼어내며 차를 출발시켰다.

“……흠흠.”

그리곤 민망하단 듯 헛기침을 하며 운전에 집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웃다가 차가 어느새 대학가에 들어선 걸 창문 너머로 확인했다. 굳이 번잡한 대학가 안쪽으로 들어왔다는 건, 여기서 은하네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어디서 만나기로 했어요?”

“저기 보이네.”

누나가 턱짓으로 정면을 가리키자, 거기엔 정말로 은하와 예은이 그리고 지현이가 나란히 서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살짝 걱정이 밀려왔다. 나는 멀리 보이는 은하를 바라보다가 슬쩍 누나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근데 오늘 그냥 2차 예선 통과한 기념으로 애들한테 밥 사주는 거 맞죠?”

“왜? 내가 애들한테 뭐라고 할까 봐?”

“아뇨, 그런 건 아닌데……. 누나가 못 보던 귀걸이를 끼고 오셨길래요.”

“눈치는 없으면서 이런 거 하나는 참 잘 보네. 그래서 어때?”

“예뻐요. 누나한테 잘 어울리고요.”

내가 진심으로 탄복한 목소리로 칭찬하자, 누나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걸렸다.

“언니가 선물해준 거야. 나한테 잘 어울릴 거라면서……. 그리고 필요할 때, 이거 끼고 기선 제압하라고 하더라.”

“기선 제압이요?”

“어, 내 꺼 지키려면 필요할 거라면서 말이야. 처음엔 그 말 듣고 엄청 웃었는데, 이젠 웃을 수가 없네. 근데 뭐 어쩌겠어.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 연하 남자 친구 지키려면 이런 짓도 해야지.”

“하, 하…….”

“지금 웃음이 나와?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는데?”

누나는 내가 진심으로 얄밉다는 듯이 왼손을 쭉 뻗어, 내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그리곤 운전대를 천천히 돌려서 애들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에 차를 주차시켰다. 은하와 다른 애들은 자기들 앞에 차가 멈추자, 잠깐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윽고 내가 창문을 내려서 얼굴을 보여주자 그제야 활짝 웃으며 뒷문을 열고 하나둘씩 차에 타기 시작했다.

“와! 이거 언니 차예요? 난 언니가 차 태워준다고 하길래 경차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큰 차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가장 먼저 뒷좌석에 탄 지현이가 잔뜩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그리고 뒤이어 예은이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언니. 그리고 오빠도요.”

“어, 그래. 2차 예선 잘 치렀지?”

“네, 팀원을 잘 만나서 생각보다 쉬웠어요. 아, 근데 오빠도 그거 보셨어야 했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던 예은이가 돌연 무언가 떠올린 듯, 말하려고 하자 옆에 먼저 앉아있던 지현이가 예은이의 팔을 붙잡아 잡아당기며 다급히 말했다.

“예은아, 예은아! 그건 이따가 말하기로 했잖아.”

“음, 네.”

지현이의 말에 예은이가 입을 꾹 다물자, 나는 아예 몸을 돌려서 지현이와 예은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뭔데? 뭐길래 그래?”

“있다가 말해줄게요. 들으면 오빠도 엄청 놀랄 걸요?”

킥킥, 웃으며 말한 지현이는 마지막으로 은하가 차에 탈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이처럼 공간이 충분히 만들어지자, 은하가 뒷좌석에 타며 슬쩍 나와 서연이 누나를 쳐다봤다.

“아, 안녕하세요.”

은하가 인사를 건넨 순간, 몇 초간의 긴장감 섞인 침묵이 흘렀다. 지현이와 나는 불안한 눈길로 은하와 서연이 누나를 번갈아 보았고, 예은이는 흥미진진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렇게 짧은 침묵을 깨고서 서연이 누나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그래. 너도 안녕했고?”

“네…….”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마. 편하게 앉아있어.”

서연이 누나가 웃으며 말하자, 은하의 얼굴이 한층 더 딱딱하게 굳었다. 이에 나는 재빨리 손짓하며 지현이한테 눈짓했다.

“그래, 은하야. 얼른 들어와. 밖에 더웠지? 지현이도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 줄래?”

“맞아, 맞아! 어서 앉아. 그리고 문 닫자. 에어컨 틀어져 있는데, 계속 문 열고 있으면 덥잖아.”

이렇듯 나와 지현이가 보채자, 은하도 그제야 긴장을 풀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이처럼 애들을 다 태운 누나는 예약해둔 식당으로 차를 몰았다.

“근데 우리 뭐 먹어요? 식당 이름 가르쳐주시면 안 돼요, 언니? 잠깐 검색해볼게요.”

“미리 알고 먹으면 재미없잖아.”

“에이, 요즘엔 알고 먹는 게 더 맛있어요. 그치, 은하야?”

대학가를 벗어나 큰 도로로 나오자, 지현이가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자 일부러 떠들썩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노력이 빛을 발한 건지, 조금씩 분위기가 풀어지며 다들 이런 저런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응, 그러게. 오빠는 어디 가는지 아세요?”

“아니, 나도 몰라.”

“오빠한테도 비밀로 한 거예요?”

은하가 놀라며 서연이 누나한테 묻자, 누나가 픽 웃으며 대답했다.

“응, 난 이런 거 비밀로 하는 게 좋더라.”

이런 누나의 말에 지현이가 오~, 하고 추임새를 넣으며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수수께끼 같은 거 좋아하시나 봐요?”

“응.”

“그럼 제가 수수께끼 하나 내볼까요?”

“마음대로.”

“에헴, 화장실에 갔다 온 원숭이를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원숭이? 글쎄?”

“일~본 원숭이래요. 깔깔깔!”

“…….”

“뭐야? 왜 다들 안 웃어요? 나만 재밌나? 그럼 이건 어때요? 세상에서 가장 비싼 동물은? 바로 백조래요. 백조! 푸하하!”

지현이가 크게 웃으며 배를 잡자, 옆에 앉아있던 예은이가 창피하다는 듯 그녀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언니, 그건 수수께끼가 아니라 넌세스 퀴즈잖아요.”

“아, 뭐 어때? 재밌으면 됐지. 그쵸, 오빠?”

예은이의 지적에 지현이가 나를 쳐다보며 묻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예전에 라인펠덴 가문의 시녀한테서 들었던 아재 개그를 했다.

“지현아, 깨가 죽으면 뭔지 알아?”

“어? 뭔데요?”

“주근깨.”

“푸하하!”

이게 먹히네.

아예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 지현이를 쳐다보던 나는 문득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나를 한심하단 듯이 쳐다보고 있는 서연이 누나와 은하, 예은이가 보였다.

“…….”

괜히 밀려오는 민망함에 나는 서둘러 자세를 똑바로 했다. 그리고 이처럼 가벼운 농담을 뒤로하고서 어느샌가 차가 도시 외곽에 위치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통나무를 쌓아서 만든 것처럼 보이는 건물이었는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건물 내부는 겉으로 보이는 외관과는 다르게 세련된 서양식 레스토랑이었다.

“오빠, 여기 엄청 비싼데 아니에요?”

차에서 내리자, 지현이가 쪼르르 달려와서 내 옆구리를 툭 쳤다.

“그래 보이네.”

“서연이 언니가 독하게 마음먹은 거 같은데…….”

“괜찮아. 그럴 일 없다고 했으니까.”

“진짜로요?”

“아마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서연이 누나가 이제까지 나한테 거짓말을 한 적은 없었다. 나는 불안한 눈으로 서연이 누나와 은하를 번갈아 보다가 이윽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서연이 누나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자, 깔끔한 정장 차림의 서버가 다가와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를 자리로 안내해줬다.

“오빠, 언니랑 같이 여기 자주 와요? 어떻게 된 게, 예약했냐고 묻지도 않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현이가 기가 질린다는 듯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렸다. 나도 솔직히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처럼 서버의 안내를 받아서 3층에 위치한 방에 들어간 우리는 원형 테이블에 빙 둘러앉았다.

“언니, 무리하는 거 아니죠? 괜히 제가 사달라고 해서…….”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먹어.”

“그래도…….”

“그리고 너희 다 2차 예선 통과했다면서? 고생했을 텐데, 많이들 먹어.”

누나가 말을 끝마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버들이 방 안으로 들어와서 그릇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수프였는데,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군침이 돌 정도였다.

“그럼 감사히 잘 먹을게요, 언니.”

“그래. 너희도 얼른 먹어.”

지현이가 먼저 숟가락을 들며 말하자, 서연이 누나가 부드럽게 웃으며 우리에게도 손짓했다. 이에 나와 은하, 예은이가 숟가락을 들어서 수프를 떠먹기 시작했다. 확실히 코로 맡은 향만큼이나 맛도 좋았다. 게다가 멸망한 세계의 탑 때문인지는 몰라도, 음식의 맛이 평소보다 훨씬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여기가 멸망한 세계 안이었다면 눈앞에 알림창이 떴겠지.’

나는 이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수프를 떠먹다가 문득 예은이가 차에 타면서 했던 이야기가 떠올리며 물어봤다.

“그러고 보니까, 2차 예선장에서 뭔가 일이 있었다고 하지 않았어? 뭐야?”

“아, 그거요? 오빠, 놀라지 말고 들어요. 우리가 스카우트 됐어요!”

“스카우트 됐다고?”

“네, 2차 예선 마지막 날에 특별 손님으로 가희 언니가 왔었는데 우리가 노래하는 걸 듣더니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자기가 책임지고 키워줄 테니까, 한 번 찾아와보라는 거예요. 진짜 대박 아니에요? 아, 명함! 명함도 줬어요.”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한 지현이가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서 내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명함에는 ‘TNN 엔터테이먼트 대표 이사, 가희’라는 이름이 버젓이 박혀있었다. 확실히 TNN 엔터테이먼트라면 기반이 탄탄한 회사였다. 게다가 가희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여가수이기도 했다.

‘카리스마가 대단했지.’

나는 당시에 TV로 나왔던 가희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요즘 아이돌들과는 다르게 강렬한 퍼포먼스와 터질 듯한 가창력으로 단숨에 무대를 장악했었다. 물론 그때, 무리한 탓에 성대 결절이 여러 번 찾아왔고 결국에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었지만…….

‘안타까운 일이지.’

소속사가 조금만 더 배려해줬다면 어땠을까? 최소한 행사를 줄이기라도 했다면 이렇게까지 빨리 은퇴하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리 생각하며 명함을 내려다보다가 지현이한테 돌려줬다.

“그래서 TNN에 들어갈 거야?”

“아뇨, 당장은 안 들어갈 거예요. 아직 2차 예선 중이잖아요.”

“하긴.”

“그래도 가희 언니가 놀러오라고 했으니까, 한 번 가보려고요. 오빠도 같이 가볼래요?”

“나도?”

뜻밖의 제안에 내가 놀란 목소리로 되묻자, 지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오빠도 가희 언니 실물로 보고 싶지 않아요?”

확실히 그건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이틀 후면 멸망한 세계의 탑이 개방되는 데다가 내일은 마물 사냥꾼 지원자들의 서류를 살펴볼 예정이었기에 TNN 엔터테이먼트를 찾아갈 여유가 없었다.

“보고 싶긴 한데, 그것보단 당분간 집에만 있으려고. 너도 알다시피 요새 멸망한 세계의 탑 때문에 분위기가 흉흉하잖아.”

“아, 하긴……. 저도 그거 봤는데 좀 무섭더라고요. 몇 명은 실종됐잖아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 지현이가 명함을 지갑에 넣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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