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0화 〉 [정기 수급]
* * *
“안녕하세요, 이 신혜 씨.”
방 안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건네자, 의자에 구속되어 있던 여성이 움찔 몸을 떨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
동시에, 반가움 섞인 탄성이 흘러나왔다.
표정을 보아하니 나를 본 순간,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바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역시 이런 일을 한 번 겪어서 그런가 이해가 빨랐다.
나는 한 걸음씩, 그녀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아직 다음 달 1일이 되지도 않았는데, 카페에 벌써 글을 올리셨더라고요.”
“네, 네! 제가 올린 게 맞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격렬하게 긍정하는 이신혜의 태도에 나는 살짝 감탄했다. 정말로 본인 의지로 글을 작성했을 줄이야. 그 정도로 고블린이 좋았나? 흠, 하고 침음성을 삼킨 나는 그녀가 혹시라도 다른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글을 작성한 건 아닐까 싶어서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일단 겉보기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는데.’
잔뜩 안달이 난 얼굴이 그야말로 발정난 암컷,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게다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도 복수심이나 증오 같은 게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욕정. 강한 성욕이 느껴졌다.
‘만약에 이게 연기라면……. 인정하고 박수라도 쳐줘야지.’
픽, 웃음을 터트린 나는 이신혜의 앞에 선 다음에 입을 열었다.
“고블린 소환.”
고블린을 소환하자, 방 안이 순식간에 고블린으로 가득 찼다. 어찌나 많던지, 고블린이 방 안을 넘어 밖에까지 가득 채울 정도였다.
확실히 192마리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이에 나는 다섯 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고블린들을 전부 다 방 밖으로 내보냈다.
“고, 고블린……. 흐읏.”
이 과정을 지켜보던 이신혜가 가쁘게 숨을 토해내며 꼴깍, 침을 삼켰다. 동시에 고블린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심상치 않게 변했다.
그 모습이 마치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바라보는 맹수의 눈빛 같았다.
‘이거, 고블린 다섯 마리로는 부족하려나.’
살짝 걱정이 든 나는 추가로 다섯 마리를 더 불러서 총 열 마리를 방 안에 놔뒀다. 그리고 이처럼 고블린 열 마리가 이신혜의 주변에 서자, 그녀가 고블린들을 바라보며 오줌이라도 마려운 듯 다리를 베베 꼬면서 가쁘게 숨을 토해냈다.
‘열 마리면 충분하고도 넘치겠지.’
오히려 너무 많이 남긴 감이 없잖아 있긴 했지만, 본인이 저렇게나 좋아하는데 이제 와서 고블린을 빼기도 뭣했다. 뭐, 어차피 옛말에 다다익선이란 말도 있지 않던가? 뭐든지 일단은 많은 게 좋은 법이었다.
나는 이신혜의 구속을 풀어주고는 입을 열었다.
“이 신혜 씨,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가, 감사합니다!”
구속에서 풀려난 그녀는 내게 예의 바르게 감사 인사를 하고는 고블린 한 마리를 꽈악 끌어안았다. 그리곤 허겁지겁 옷을 벗기더니, 빳빳하게 발기해있는 고블린의 성기를 보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케륵! 케르륵!”
고블린도 흥분한 모양인지, 빳빳하게 발기한 남근을 그녀의 입술 쪽으로 가져다 댔다. 그러자 이신혜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리고는 굵직한 남근을 머금었다. 쭈읍, 쭙! 후륵! 쭈으읍! 음란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머리가 앞뒤로 바쁘게 움직이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고블린들이 그녀에게 다가가 남근을 내밀었다.
찌걱찌걱!
이 신혜는 그게 너무나도 기쁘다는 듯, 손으로 고블린의 남근을 문질러주며 애무했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조용히 방 밖으로 나가주었다.
‘한 명 끝났고, 다음은…….’
1번 방의 문을 닫은 나는 다음으로 2번 방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이 유리 씨.”
“꺄아아아악!”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이 유리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들썩거렸다. 어떻게든 도망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앞서 봤던 이신혜와는 너무나도 다른 반응이었다.
설마, 내가 착각하고 다른 사람을 데려온 걸까? 이런 생각에 나는 일단 그녀를 진정시키고자 차분히 말했다.
“이 유리 씨? 일단 진정하시죠.”
“오, 오지 마! 이 변……. 어? 어? 가면? 아!”
내가 쓰고 있는 가면을 본 이 유리가 흠칫, 몸을 떨며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는 곧 상황을 파악한 듯, 안도의 숨을 내쉬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저기, 혹시 제가 카페에 쓴 글을 보고 불러주신 건가요?”
“네.”
“아……. 그거 사흘 전에 썼던 건데…….”
“음, 그래서 싫으십니까?”
“네? 아, 아뇨! 좋아요. 그냥 좀 놀랐을 뿐이에요!”
이 유리는 내가 늦게라도 자신을 불러준 게 기뻤던 모양인지, 배시시 웃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밖에서 대기 중이던 고블린 열 마리를 방 안으로 불러들였다.
“케르륵! 케륵!”
고블린 열 마리가 방 안으로 들어와서 이 유리 곁으로 모여들자,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군침을 꿀꺽 삼켰다. 이쪽도 연기하는 기색이 딱히 엿보이지 않았다. 이를 확인한 나는 그녀의 구속을 풀어주고는 방 밖으로 나가주었다.
그리고 이처럼 3번 방과 4번 방, 5번 방을 거쳐 마지막 8번 방의 여성한테까지 고블린 열 마리를 내어준 나는 살짝 신기한 기분을 느끼며 방들을 돌아봤다.
‘일부러 구속을 풀어줬는데도, 나한테 복수할 생각을 안 하네. 진짜로 고블린이 보고 싶어서 글을 올렸던 건가?’
인간이 아무리 가능성의 생물이라고는 하지만 설마 이게 정말로 가능할 줄이야.
나는 속으로 감탄하고는 밖에서 대기 중인 남은 고블린들에게 이곳을 감시하란 명령을 내렸다. 혹시라도 내가 없는 사이에 방 안의 여자들이 밖으로 나와서 제멋대로 돌아다니기라도 한다면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고블린들에게 경비를 맡긴 나는 거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아이린과 함께 소파에 앉아있는 운피레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죠?”
내가 사과하며 운피레아와 아이린의 사이에 끼어들자, 운피레아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저희도 방금 막 왔는 걸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찻잔이 두 개 다 비어있었다. 그걸 보아하니, 꽤 오랫동안 여기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내가 비어있는 찻잔을 바라보며 멈칫하자, 운피레아가 내 팔을 조금 세게 잡아당기며 화제를 돌렸다.
“……아참, 그러고 보니 위대한 존재에 대해서 궁금하신 게 있다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혹시 아는 게 있으십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아는 게 별로 없어요. 다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위대한 존재는 어지간한 일로는 대륙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다는 거예요. 하지만 반대로 말해서, 위대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대륙에 위협이 될 정도로 중대한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기도 해요.”
운피레아의 설명을 들은 나는 강한 침음성을 흘렸다.
드래곤이 인간 마법사들을 고용해서 마정석 파편을 연구하고 있을 때부터 심상치 않다고 여기긴 했지만, 그런 뜻이 숨겨져 있었을 줄이야. 역시 드래곤이 보기에도 마정석 파편이 위험해 보인다는 걸까? 하긴, 작은 파편 하나에도 어마어마한 힘이 깃들어 있는데 이걸 드래곤이 가만히 놔두고 볼 리가 없었다.
“그럼 드래곤의 허물에 대해서는요?”
“그건 정말로 들어본 적이 없어요. 위대한 존재의 허물이라니……. 애초에 위대한 존재의 육체는 대부분 마나로 되어 있어서 허물 같은 걸 벗을 필요가 없는걸요. 그건 대체 어디서 들으신 건가요?”
육체가 마나로 되어 있어서 허물을 벗을 필요가 없다고? 그럼 내가 본 건 대체 뭐지?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들은 게 아닙니다. 제가 직접 본 겁니다.”
“주인님이 직접 보셨다고요? 설마, 위대한 존재를 만나신 건가요?”
“네.”
만나기만 했을까? 섹스도 했다. 그야말로 짐승과도 같은 교미였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운피레아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다급히 내 몸을 더듬으며 이곳저곳 살펴보기 시작했다. 혹시 어딘가 다친데는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웃으며 진정시켰다.
“전 괜찮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가 다친 곳 없이, 멀쩡하다는 걸 확인한 운피레아가 그제야 자기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하아, 대체 어쩌다가 위대한 존재를 보게 되신 건가요?”
“음, 그게…….”
나는 운피레아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마정석 파편을 연구하고 있던 마법사들 그리고 폭주한 라미아. 마지막엔 반쯤 무너진 연구소 앞에 나타난 드래곤까지. 그리고 여기서 운피레아와 아이린이 동시에 탄식을 터트리며 내 손을 꽉 붙잡았다.
둘이 모녀라서 그런지, 하는 행동이 비슷하다. 다만, 짓고 있는 표정만큼은 서로 완전히 달랐다.
운피레아는 순수하게 오로지 나만을 걱정하며 올려다보고 있었고, 아이린은 나를 탓하듯이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무사히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태연하게 말한 나는 운피레아와 아이린, 두 엘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둘 다, 금세 얼굴을 풀고서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그러게요. 주인님, 무사하셔서 정말로 다행이에요.”
“그대는 정말이지……. 앞으로 그런 일이 있거든 무조건 도망치거라.”
아이린이 내게 강하게 당부하자, 운피레아가 ‘맞아요.’라며 맞장구를 치며 내 품에 안겨 들어왔다. 이에 나는 한 팔로 운피레아의 몸을 안아주는 동시에 다른 한 팔로는 아이린의 허리를 감싸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근데 아직 중요한 건, 말 안 했는데 더 안 들어도 되는 겁니까?”
“더 중요한 거요?”
“드래곤의 허물이요.”
내가 드래곤의 허물을 언급하자, 운피레아가 앗 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 그러네요. 드래곤의 허물은 어떻게 보신 건가요?”
“드래곤과 섹스……. 아니, 교미했습니다.”
“네?”
“그리고 허물을 먹었습니다.”
“네……?”
이어지는 내 말에 운피레아와 아이린이 똑같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둘 다 내 말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나라도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쉽사리 믿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실인 것을.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마저 이야기를 했다.
“근데 허물을 먹었더니, 얼굴이 변했습니다. 물론 좋은 쪽으로요.”
자신 있게 말한 나는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그러자 운피레아가 어머, 어머 같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세상에! 평소에도 멋지셨지만……. 훨씬 더 늠름해지셨네요. 앗.”
운피레아는 변한 내 얼굴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손끝으로 뺨을 톡톡 건드렸다. 그리고 이처럼 운피레아가 내 외모의 변화에 기뻐하고 있을 때, 아이린이 미안함 섞인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음, 인간의 외모는……. 아직 내겐 어렵구나. 미안. 못 알아채서.”
아니, 이해한다. 엘프가 보기엔 인간의 외모는 거기서 거기일 테니까.
“……아! 그렇다고 해서 그대의 외모가 못생겼다는 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엘프하곤 다르게 듬직하게 생겨서……. 으읏, 갑자기 칭찬하려니까 부끄럽구나.”
아이린은 자기가 말하고도 정말로 부끄러웠던 모양인지, 양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며 어쩔 줄 몰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