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545화 (545/599)

〈 545화 〉 [비밀 연구소]

* * *

하르피아는 그동안의 서러움을 토해내듯 한동안 꺽꺽대며 서럽게 울었다. 딱히 연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면 정말로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러면 나와 하르피아의 이해가 서로 일치한다.

나는 목이 터져라 울고 있는 하르피아를 달래주기 위해서 차분하게 말했다.

“정말로 복수를 하고 싶으신 겁니까?”

“흐윽, 흑! 하고 싶어. 하고 싶어! 날 괴롭힌 인간에게 복수하고 싶어!”

“혹시 이 땅의 모든 인간들에게 복수를 하고 싶으신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난 나를 괴롭힌 인간들만 죽일 거야! 복수가 하고 싶은 거라고!”

“하지만 이미 연구소 안의 사람들을 모두 죽이지 않았습니까?”

“아니야! 더 있어! 나쁜 마법사들이 말했어! 사막의 대왕이 시켰다고! 자기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했어!”

사막의 대왕.

드디어 배후가 나왔다. 역시 국가가 주도해서 마정석 파편을 비밀리에 연구하고 있었던 건가?

‘이계 퀘스트에 나온 설명대로인가.’

그렇다는 건, 비밀 연구소에서 마물들을 실험용 생쥐 취급하며 다루었다는 것 역시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마물들이 이토록 화내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르피아에게 다시 제안을 건넸다.

“제가 복수를 도와주겠다고 한다면, 던전의 일원이 되시겠습니까?”

“하르피아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아! 내가 할 수 있어! 나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자유로운 하르피아니까!”

혹시나 해서 던전의 일원을 제안해보았지만, 하르피아는 끝까지 내 제안을 거절했다. 하르피아라는 종족의 특성인 걸까? 아니, 어쩌면 오랫동안 연구소 안에 갇혀 지냈기에 생겨난 자유에 대한 갈망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여기서 억지로 던전의 일원으로 만들어 봤자, 괜한 반발심만 생길 게 뻔했다.

‘구태여 위험요소를 만들 필요는 없지.’

나는 하르피아를 던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걸 빠르게 단념하고는 그녀에게 한 가지 제약 조건을 걸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하르피아 씨를 그냥 놔줄 순 없으니, 한 가지 조건을 걸도록 하겠습니다.”

“조건?”

“하르피아 씨를 괴롭힌 인간들만 죽이기로요. 어떻습니까? 그리 어려운 조건도 아니죠?”

“그것만 지키면 날 놔줄 거야? 정말로?”

“네, 놓아드리겠습니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날 괴롭힌 인간들만 죽일게!”

“좋습니다.”

놔준다는 말에 하르피아가 잔뜩 신이 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보니, 과연 그녀가 내 약속을 잘 지켜줄지 살짝 의문이 들긴 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저 믿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뭔가 제약을 걸만한 수단이 없으니까.’

물론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내가 보유한 장비 중에 노예의 목걸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그걸 사용한다면 간단히 제약을 걸 수 있긴 했다. 하지만 이건 R 등급보다 높은 대상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걸려있었다.

과연, 마정석 파편을 4개씩이나 몸에 박아넣은 하르피아가 희귀 등급일까? 내 생각에는 아니었다. 하물며 하르피아가 순순히 노예의 목걸이를 받아줄 것 같지도 않았다.

‘일단 놓아준 다음에 조금 지켜볼까.’

나는 독수리로 변신한 다음에 하르피아와 함께 비밀 연구소로 돌아갔다. 그러자 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하고 있는 수많은 마물들과 그 가운데에 홀로 고고히 서있는 에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하르피아와 잠깐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모든 마물을 제압한 것이었다.

“도망친 마물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인간으로 돌아온 다음에 에나에게 묻자, 그녀가 왼손에 들려있는 마정석 파편을 내게 내밀며 대답했다.

“전부 다 잡아서 제압했습니다.”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마정석 파편은 무려 서른 개가 넘었다. 더럽게도 많았다. 왕국은 이 많은 마정석 파편으로 대체 뭘 하려고 했던 걸까? 전쟁 병기라도 만들려고 했던 걸까? 확실히 강력하긴 하겠지만, 마정석 파편에 의해서 이성을 잃은 마물이 인간의 뜻대로 순순히 움직여줄지는 의문이었다.

‘아니, 오히려 멸망하겠지.’

실제로 마정석 파편에 의해서 멸망한 세계가 탑이란 형태로 현계에 강림하지 않았던가? 한숨을 푹 내쉰 나는 에나가 건네준 마정석 파편을 회수했다. 그리고는 이프리의 유물, 지팡이를 소환해서 소생의 빛을 사용했다.

“권능, 소생. 소생의 빛.”

날 중심으로 넓게 퍼진 빛의 파동이 바닥에 쓰러져 있던 마물들을 감싸며 상처를 치료해주기 시작했다. 물론 이 안에는 시체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아쉽게도 죽은 사람은 치료할 수 없는 모양인지 찢기고 토막난 신체가 다시 재생되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라도 아직 숨통이 붙어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하르피아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하르피아 씨, 앞으로 어쩌시겠습니까?”

“으, 응? 앞으로?”

“네, 계속 이곳에 머무실 겁니까? 아니면 여길 떠날 겁니까? 개인적으론 여길 떠나시는 걸 추천하고 싶습니다. 여기에 계속 머물렀다간 언젠가 사막 왕국의 병사들이 들이닥칠 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복수는커녕, 개죽음을 당할 확률이 무척이나 높았다. 더욱이 현재 하르피아를 제외한 다른 마물들은 모두 에나에게 마정석 파편을 빼앗기고 평범하게 돌아온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저항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응, 알았어.”

내 뜻을 알아준 건지, 하르피아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를 본 나는 에나를 역소환하고 독수리로 변했다.

혹시 이때, 하르피아가 돌변해서 공격해오진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도 그러진 않았다. 그래도 은혜는 안다는 건가? 나는 힘차게 날갯짓을 해서 비밀 연구소 밖으로 나간 다음에 최대한 멀리서 하르피아를 지켜보았다.

‘독수리의 눈이 좋긴 하네.’

독수리의 시력은 매우 뛰어나서 아주 먼 거리에서도 먹이를 찾아낼 수 있다. 실제로 검독수리는 2km 거리에서 토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좋았다. 덕분에 나는 아주 먼 거리에서도 수월하게 하르피아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혼자 움직이네?’

하늘 높이 날아오른 하르피아는 마치 무언가를 찾듯이, 비밀 연구소 주변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 무언가를 발견한 듯, 그리로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뒤를 조심히 따라가며 그녀가 뭘 발견했는지 확인했다.

‘숲?’

놀랍게도 사막 한가운데에 숲이 있었다. 그것도 꽤 울창한 숲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몸을 숨기고 지낼만했다. 게다가 적지 않은 숫자의 동물들도 보여서, 먹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싶었다.

‘다만 문제는…….’

숲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람들이 사는 걸로 보이는 마을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하르피아가 과연 저 마을을 공격하지 않을까? 나는 부디 그녀가 마을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기를 바라며 계속 지켜봤다.

그리고 이윽고 나처럼 마을을 발견한 하르피아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늘 위를 배회했다. 하지만 딱히 공격할 의사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곳에 자리를 잡아도 될지, 고민하는 것만 같았다.

‘결정한 건가?’

드디어 결정을 내렸는지, 한동안 하늘 위를 배회하던 하르피아가 비밀 연구소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 후, 그녀는 마물들에게 식량으로 쓸 인간 시체를 등에 짊어지게 한 다음에 숲이 있는 쪽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사막을 횡단 중인 상단 무리와 마주칠 뻔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영리하게 사막 언덕에 몸을 숨겨서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약속을 지키는구나.’

하르피아가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마정석 파편을 네 개씩이나 몸에 박은 그녀가 절대로 약할 리가 없었다. 저 정도 규모의 상단쯤은 아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일부러 상단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사막 언덕에 몸을 숨겼다.

나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속으로 흐뭇하게 웃은 나는 계속해서 하르피아와 마물들을 지켜보았다.

“크르르륵.”

“쌔액. 쌕.”

사막에서 벗어나, 마침내 숲에 도착하자 마물들이 저마다 만족감 섞인 울음소리를 내며 기뻐했다. 하르피아도 이곳이 마음에 든 듯, 가장 큰 나무 위에 자리를 잡고는 둥지를 지을 준비를 했다.

‘당분간 놔둬도 되겠네.’

하지만 그 전에 이들이 지나온 길을 정리해줄 필요가 있었다. 물론 며칠만 기다리면 사막의 모래 바람이 마물들의 발자국을 흔적도 없이 지워주겠지만, 그 전에 사막 왕국의 병사들이 추적해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다시 비밀 연구소로 돌아온 다음에 운피레아를 불렀다.

“어머, 주인님?”

소환된 운피레아가 날 발견하더니, 방긋 웃었다. 그녀는 독수리로 변한 내 모습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 모양인지, 손을 뻗어 머리와 턱 밑을 쓰다듬어주었다.

‘음, 기분 좋네.’

손톱으로 살살 긁어주는 게, 어찌나 기분 좋던지 눈이 저절로 잠길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이내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운피레아의 어깨 위에 폴짝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그녀의 고운 피부가 햇볕에 타지 않도록, 한쪽 날개를 펼쳐서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사막의 강렬한 햇빛으로부터 벗어난 운피레아가 내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에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입을 열었다.

“이 정도야 간단하죠. 그나저나 운피레아 씨, 바람 마법을 사용할 줄 아십니까?”

“정령에게 부탁하면 간단하죠.”

“그럼 사막에 찍혀있는 발자국도 모두 지워주실 수 있겠습니까?”

“맡겨주세요.”

내 부탁에 운피레아가 바람을 일으켜서 사막 위에 찍혀있는 마물들의 발자국을 지우기 시작했다. 독수리의 눈으로 지켜보니, 그녀가 일으킨 바람이 저 멀리 숲까지 이어지며 마물들의 발자국을 흔적도 없이 지워주었다.

역시 마법은 편리하다.

나는 기특한 마음에 운피레아의 뺨에 부리를 비벼주었다. 그러자 그녀가 기쁜 듯, 배시시 웃으며 내 부리에 살짝 키스를 해주었다.

“주인님께 도움이 되어서 기뻐요. 혹시 뭐 더 시킬 일은 없으신가요?”

“아뇨, 지금은 없습니다. 대신 다음에 또 부르겠습니다. 그 땐 상을 드리죠.”

“앗……. 네. 기대할게요, 주인님.”

상이란 말에 운피레아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본 나는 그녀를 역소환한 다음에 인간으로 돌아와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곤 이계 퀘스트를 포기하자, 순식간에 주변 사물이 변하며 자취방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으, 온몸이 모래투성이네.”

독수리로 변했던 탓인지, 머리카락 사이에 모래가 잔뜩 박혀있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머리카락뿐만이 아니었다. 옷 속에도 모래가 잔뜩 들어있었다.

나는 잠깐 자취방 밖으로 나가서 간단히 모래를 턴 다음에 화장실에서 몸을 씻고, 가져온 마정석 파편을 책상 위에 올려뒀다.

“그나저나 이걸 어쩐다.”

마정석 파편을 쓸 방법이야 많다. 단순히 매니저 어플에 상납해서 레벨을 올려도 됐고, 아니면 던전 코어의 먹이로 줘서 던전 크기를 키워도 됐다. 아니면 막말로 렉스 같은 수호자들한테 마정석 파편을 줘도 되긴 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매니저 어플을 확인해봤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이미 몇 번 봤던 알림 문구가 화면에 표시되었다.

[현재 사용자는 상납에 필요한 마정석 파편을 모두 모은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상납 기한을 해제합니다.]

[현재 사용자의 레벨은 10입니다.]

[넉 달 뒤에 사용자가 상납하셔야 되는 정기의 양은 2000입니다. (265/2000)]

[넉 달 뒤에 사용자가 상납하셔야 되는 마정석 파편의 수는 10개입니다. (31/10)]

“역시, 레벨을 올리는 게 나으려나.”

앞으로 이틀 뒤에 개방될 멸망한 세계의 탑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조금이라도 레벨을 올려둘 필요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