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3화 〉 [비밀 연구소]
* * *
“현자님께서 성녀님을 불러오시겠다는 겁니까?”
“아뇨, 제가 치료하겠다는 뜻입니다.”
“……?”
대신관이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다져진 고기처럼 변한 다리를 고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물며 대신관조차도 단장의 상황을 파악하고는 성녀부터 찾았다. 그만큼 힘든 일이란 뜻이었다. 그런데 그걸 내가 하겠다고 하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이프리의 유물, 지팡이 소환.”
그러니 이럴 땐,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가장 빨랐다.
나는 이프리의 유물, 지팡이를 오른손에 쥔 다음에 단장 쪽으로 다가갔다. 단장은 왼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입에 물고 깊게 빨아들였다. 가까이에서 보니 얼굴 이곳저곳에 흉터가 나있었다. 나이는 서른 중후반쯤일까? 눈가에는 나이를 숨길 수 없는 주름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당한 미인이었다.
“음, 자네가 현자인가? 소문으로 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미남이군.”
“단장님도 아름다우십니다.”
“하하, 재밌는 말을 하는군. 하지만 그런 말은 성녀나 저기 있는 대신관에게 해주게.”
내 말을 가벼운 농담 혹은 아부 정도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단장이 웃음을 터트리며 하나 남은 왼손으로 대신관을 가리켰다.
“대신관님의 얼굴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얼굴만 봤겠는가? 함께 목욕도 했었지.”
단장의 자랑에 흥미가 마구 샘솟았지만, 뒤에서 대신관이 무시무시한 시선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기에 이쯤에서 그만두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애써 아쉬움을 떨쳐내고는 이프리의 유물, 지팡이를 사용했다.
“권능, 소생. 소생의 빛.”
소생의 빛을 사용함과 동시에 단장의 팔과 다리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검게 죽은 핏물이 걸레를 짜듯이 주르륵 흘러나오고, 새빨간 살점이 살아있는 것처럼 꾸물대며 서서히 크기를 부풀렸다.
마치 생명의 탄생과정을 빠른 속도로 재생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놀랍군.”
이윽고 잘렸던 팔과 다리가 완전히 재생되자, 단장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오른손을 쥐어보았다. 그리고 비단 놀란 건, 단장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주변에 있던 여신관과 대신관 역시도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똑똑!
“대신관님, 잠깐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때, 문 바깥 쪽에서 대신관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대신관이 문을 열자, 밖에서 어린 여신관들에게 치료를 받고 있었던 환자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10미터 이내의 모든 아군의 상처를 치료해주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기적을 행한 건가?”
“보잘 것 없는 재주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하, 겸손이 지나치군.”
단장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핀잔을 주긴 했지만, 그래도 아주 싫지만은 않은 듯 날 향해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왔다.
“현자님.”
그 때, 다시 방 안으로 돌아온 대신관이 나를 불렀다. 이에 내가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고마움을 전했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걸 어떻게 보답해드려야 할지.”
“보답. 보답이라……. 그럼 대신관님의 성함을 제게 가르쳐주시겠습니까? 이왕이면 단장님도요.”
보답으로 마정석 파편을 달라고 요구할까도 싶었지만, 그래선 왠지 처음부터 그걸 목적으로 치료해준 것처럼 보일까 봐 꺼려졌다. 게다가 모처럼 좋은 인상을 준 참이었다. 그러니 이럴 때, 조금 더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자주 볼 사이니까, 친해져서 나쁠 건 없지.’
하지만 대신관은 이런 내 의도를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인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차갑게 대꾸했다.
“이 일을 성녀님이 아신다면 분명 경을 치실 겁니다.”
내가 자기를 꼬시려고 한다고 오해한 게 분명했다. 실제로도 어느 정도 사실이었기에 완전히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검지로 입을 막는 시늉을 했다.
“성녀님껜 비밀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안 될까요?”
거듭되는 내 부탁에 대신관이 작은 한숨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아린입니다.”
“아린 님.”
“남들이 있을 땐, 함부로 부르지 마십시오. 불경합니다.”
어째 대신관이 성녀보다 더 성녀 같다. 무서울 정도로 엄격하잖아.
나는 속으로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전 김 유현입니다. 유현이라고 편하게 불러주세요.”
“현자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어렵네요.”
공략하기가.
혀를 내두른 나는 단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나와 아린을 번갈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던 단장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로 내 이름이 궁금한 건가?”
“단장님처럼 아름다운 분의 이름을 알아둬서 나쁠 건 하나도 없죠.”
“못 말리겠군. 시온이네.”
“시온 님, 기억해두겠습니다. 시온 님도 부디 저를 유현이라고 편하게 불러주세요.”
“그러도록 하지. 유현 동생.”
이처럼 시온 단장의 이름까지 듣고 나자,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단장의 팔을 치료하고 있던 여신관이 잔뜩 기대에 찬 얼굴을 하고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자기 이름도 물어봐 줬으면 하는 모양이었다. 이토록 애타게 바라봐주고 있는 게, 묻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었다.
“여신관님의 성함도 부디 제게 가르쳐주시겠습니까?”
“에아예요!”
에아란 이름을 가진 여신관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얼굴을 붉히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대신관 아린이 한심하단 듯 또다시 한숨을 푹 내쉬며 엄한 목소리로 질책했다.
“에아, 아직 할 일이 남아있을텐데요? 이제 그만 일어나십시오.”
“아, 네! 네!”
아린의 질책에 에어가 허둥지둥 방을 빼져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시온 단장이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리곤 새로 담배를 꺼내서 피우려고 하자, 아린이 단장의 손등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적당히 피우십시오. 적당히.”
“매번 말하는 거지만, 적당히가 가장 어려운 거라네.”
그리 말하며 단장은 꿋꿋이 담배에 불을 붙여서 피웠다. 담배를 한 모금 쪽 빨고, 아이처럼 맑게 웃는 모습을 보니 차마 불을 끄란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린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건지, 애꿎은 자기 가슴만 한 차례 두드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현자님,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일단 숙소로 모시겠습니다.”
아린의 말대로 해가 벌써 저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하룻밤 묵고 갈 생각이었다면, 성녀의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젓고는 뜻을 밝혔다.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바로 떠날 거니까요.”
“바로 떠나신다고요? 마정석 파편을 회수하지 않으셔도 괜찮은 겁니까?”
“네, 괜찮습니다. 아, 근데 성녀님한테는 죄송하니까 나중에 저 대신에 미안하다고 전해주시겠습니까? 다음에는 좀 더 오래 있겠다고요.”
“그런 말은 본인이 직접 하시는 편이……”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린 님.”
“하아, 알겠습니다. 이번 한 번만입니다.”
간절하게 말한 덕분일까, 아린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허락해줬다. 이를 본 나는 마음의 짐을 살짝 덜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이계 퀘스트 포기를 누르자, 눈앞의 시야가 일그러졌다가 이윽고 자취방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좋아, 이걸로 매혹 마법도 풀렸고.’
다시 비밀 연구소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었다.
정신을 가다듬은 나는 이계 퀘스트, 비밀 연구소를 선택했다.
[이계 퀘스트 [비밀 연구소]를 수행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엄지로 네를 누르자, 순식간에 자취방에서 황량한 사막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나는 주변을 한 차례 돌아보고는 이전처럼 야수화, 독수리를 사용해서 변신한 다음에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응?’
그렇게 연구소 방향으로 한참 동안 날아가는데, 저 멀리 부서진 건물과 마물들에게 뜯어먹히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난장판이네.’
잠깐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 생각하며 연구소 내부를 살펴보자, 후원자들에게 빅아이 오우거와 하르피아를 소개했던 마법사가 하르피아의 발 아래에 깔린 채, 갈기갈기 찢겨있는 게 보였다.
‘결국 통제하지 못한 건가.’
그는 자기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실패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아주 전형적인 플래그였다.
‘쓰러트렸나?’ 혹은 ‘고향으로 돌아가면 그녀에게 고백할 거야.’만큼이나 강력한 플래그. 그런 말을 해버렸으니, 죽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나는 한심하단 듯 마법사를 내려다보다가 근처 지붕 위에 앉았다.
‘그나저나 이걸 어쩐다.’
연구소 내부는 마물들로 가득했다. 심지어 다들 일반적인 마물이 아니었다. 몸에 마정석 파편을 하나씩 박아넣은 듯, 괴이한 형태로 변해있었다. 당장 하르피아만 해도 그랬다. 마정석 파편을 대체 몇 개나 박은 건지, 날개가 비정상적으로 거대했고 발톱은 흑요석처럼 새까맸다.
‘최소 4개.’
양쪽 날개와 두 다리에 마정석 파편이 박혀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고개를 빠르게 돌리며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는 혹시라도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두 마물에게 살해당한 건지, 연구소 안에는 시체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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