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539화 (539/599)

〈 539화 〉 [비밀 연구소]

* * *

‘이번에는 사막인가.’

이번에 도착한 곳은 황폐한 사막이었다.

사막은 마치 대장간의 화덕처럼 뜨거웠으며,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은 숨을 막히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지옥 같은 건 아니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 황금색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북부의 설원도 멋진 풍경이었었지만, 사막 역시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렇게 더워서야…….’

벌써부터 온몸이 땀으로 축축 젖기 시작했다. 결국, 버티다 못한 나는 이계 퀘스트를 포기하고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땀으로 흠뻑 젖은 겨울옷을 벗고 여름옷으로 갈아입었다.

“에나 소환. 에나 씨도 이 옷으로 갈아입으세요. 이번에 갈 곳은 사막입니다.”

“알겠습니다.”

그 후, 에나를 불러내서 그녀에게 여분의 여름옷을 건네서 입힌 뒤에 재차 이계 퀘스트에 진입했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물론 여전히 찌는 듯한 더위가 느껴지긴 했지만, 반팔과 반바지를 입은 덕분에 이전보단 훨씬 더 쾌적했다. 게다가 몸 위에 걸치고 있는 로브도 은근히 햇빛을 막아주어서 나름 시원했다.

‘마정석 파편의 위치는…….’

더위를 해결한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마정석 파편의 위치를 확인해봤다. 그러자 상당히 멀리 떨어진 위치에 표시되어 있는 게 보였다. 이래서야 한참을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땐, 역시 변신이 최고지. 야수화, 독수리.”

나는 내가 보유한 스킬 중에 하나인 야수화를 사용해서 독수리로 변했다. 그리고는 날개를 힘차게 퍼덕여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미 몇 번 해본 적 있었기에 수월하게 날아오를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최대한 높이 날아오른 나는 독수리의 눈으로 비밀 연구소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잿빛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구나.’

건물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입구와 주요 통로가 전부 다 병사들에 의해서 엄격하게 통제를 받고 있었다. 게다가 탁 트인 공원 같은 곳에서 마물들이 실험 같은 걸 받고 있었다.

나는 조금 더 상황을 살펴보고자, 건물 옥상에 내려앉은 뒤에 내부를 관찰했다.

“친애하는 후원자 여러분! 이번에 제가 여러분에게 선보일 실험체는 빅아이 오우거입니다. 원래는 평범한 오우거였지만, 양쪽 눈동자에 각각 마정석 파편을 박아 넣음으로써 비약적으로 시력이 상향된 개체입니다. 자, 보십시오! 저의 걸작품을!”

마법사가 두 손을 쫙 펼치며 소리치자, 괴이할 정도로 커다란 눈을 가진 오우거가 온몸이 구속된 채로 병사들의 손에 의해서 끌려 나왔다.

“크워어어어어!!”

놈은 어떻게든 구속을 풀기 위해서 끊임없이 발악하며 포효하고 있었지만, 구속이 상당히 강력한지 조금도 꿈쩍하지 않았다.

건물 안에서 빅아이 오우거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잠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이윽고 마법사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보기에는 단순히 시력만 강화된 개체 같은데, 혹시 다른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나? 지성이 올랐다거나, 눈으로 세뇌 마법을 사용한다던가. 아니면 오우거답지 않게 인간에게 잘 복종한다던가, 뭐 그런 건 없나?”

“으음, 지금 당장으로선 없습니다.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제게 조금만 더 시간과 예산을 주신다면…….”

“그놈의 시간과 예산! 또 그 소리인가? 저번에도 하지 않았나? 대체 언제쯤 제대로 된 성과물을 낼 것인가? 다른 연구소에선 벌써 실험 개체 넘버 99. 미래 마왕을 선보였다네!”

“미, 미래 마왕이라니! 설마 진짜로 마왕을 만든 건…….”

“그만큼 강력하단 뜻이지. 뭘 그렇게 진지하게 듣나?”

“죄, 죄송합니다.”

“아무튼 경각심 좀 가지게. 자네가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린 이 연구소를 폐쇄하는 수밖에 없어!”

후원자의 꾸짖음에 마법사는 잔뜩 주눅이 든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언가 결심을 한 듯이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아직 발표하기엔 이르지만……. 지금 이 자리를 빌어서 후원자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겠습니다.”

“음? 뭔가 더 있나?”

“그렇습니다. 이봐, 막스! 병사들과 함께 가서 하르피아를 데려와라.”

마법사의 외침에 막스라고 불린 사내가 화들짝 놀라며 반문했다.

“지, 진심이십니까? 하르피아는 아직 불완전해서…….”

“괜찮아. 내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으니까.”

마법사가 자신 있게 대답하자, 막스도 결심을 굳힌 듯 병사들과 함께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거대한 철창 우리에 갇혀있는 하르피아가 병사들의 손에 의해서 옮겨지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 아름답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르피아. 별칭 하피라고 불리는 개체는 통상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과 몸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팔이 날개로 되어 있었으며, 다리는 새처럼 얇고 가늘어서 인간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심지어 발끝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있어서 마치 먹잇감을 낚아채기에 좋아 보였다.

‘……못 참겠어. 아니, 못 참겠다고? 내가 왜 흥분하는 거지? 아니……. 흥분하는 게 당연한가. 저렇게나 아름다운 여성이……. 아니, 아니지. 저건 인간이 아니잖아! 역시 이상해.’

이전에 아라크네를 봤을 때처럼 흥분해버리는 나 자신에 이상함을 느낀 나는 서둘러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는 굳게 마음을 먹어보지만, 철창에 갇혀있는 하피를 본 순간 또다시 심장이 방정맞게 뛰었다.

‘으윽, 안 되겠어.’

이렇게 있다간 나도 모르게 하피를 구해서 에르밀 때처럼 섹스를 해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자꾸만 치밀어 오르는 욕정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다음에 스마트폰을 들어서 이계 퀘스트를 포기했다.

“우선 모니카부터 만나자.”

저주부터 풀지 않으면 나 자신을 도저히 통제하지 못할 것 같았다.

차분히 숨을 들이켠 나는 서랍 속에서 이전에 성녀, 모니카가 주었던 명패를 챙겨든 뒤에 이계 퀘스트를 선택했다.

[이계 퀘스트 [성녀의 사랑]을 수행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이어진 물음에 나는 곧바로 네를 눌러서 이계로 이동했다. 그러자 일순 눈앞이 일그러졌다가 이윽고 환하게 밝아지며 새하얀 대리석으로 된 건물 내부의 모습으로 변했다.

“누, 누구시죠?”

그 때, 뒤에서 경계심이 잔뜩 어린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고개를 돌려보니, 하얀 베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여신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 크기를 보아하니, 모니카는 아닌 듯 싶었다.

“저는…….”

“움직이지 마세요. 안 그러면 경비병을 부르겠어요.”

나를 경계하며 두 손을 꽉 쥐는 여신관의 태도에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해도 끼칠 생각이 없다는 듯한 제스쳐를 보여주기 위해서 두 손을 어깨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저는 김 유현이라고 합니다. 부끄럽지만 현자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혀, 현자님이시라고요? 하지만……. 그 분은 평범한 외모라고 들었는데……. 게다가 현자님의 곁에는 항상 은발의 여기사분이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거듭해서 이어지는 질문에 나는 차분히 대답했다.

“제 외모는 잠시 사정이 생겨서 변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에나는 잠깐 다른 곳에 가있습니다.”

“변명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데요.”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나는 왼손에 쥐고 있던 성녀의 명패를 여신관에게 던졌다.

“가, 갑자기 뭘 던지는 건가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명패가 여신관의 발치에 떨어지자, 여신관이 화들짝 놀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자신의 발아래에 떨어져 있는 명패를 확인하고는 기겁했다.

“……이, 이건 성녀님의……! 아니, 이걸 대체 어디서……! 아니, 그보다 이 귀한 걸 막 던지시면 어떻게 하나요!”

다급히 명패를 주워든 여신관은 나를 연거푸 질책하며 명패를 깨끗이 닦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걸로는 도저히 성에 차질 않는 모양인지, 혹시 어딘가 깨지거나 부서지진 않았을지 노심초사해하며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휴…….”

그리고 이윽고 명패에 상처가 하나도 없다는 걸 확인한 듯, 자기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확인은 다 끝나셨습니까?”

“네, 끝났어요. 그런데 정말로 현자님이 맞으신가요?”

“성녀님을 여기로 불러주신다면 바로 확인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으음……. 알겠어요. 그럼 잠깐만 이곳에서 기다려주세요.”

여신관은 여전히 미심쩍단 표정을 지으면서도 성녀, 모니카에게 이번 일을 보고하기 위해서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의심을 거둔 건 아닌 모양인지, 밖에 있는 다른 어린 여신관들을 불러서 나를 감시하도록 했다.

“정말로 현자님이신가요?”

“다른 대륙에서 넘어오셨다고 들었는데, 그게 정말인가요? 다른 대륙의 남성들도 모두 현자님처럼 잘 생겼나요?”

세 명의 어린 여신관이 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며 얼굴을 붉혔다. 심지어 한 명은 손가락으로 내 몸을 콕 찔러보더니, 꺄악! 하고 자지러지는 탄성을 내뱉으며 좋아했다.

“현자님이시라고 들었는데, 몸이 마치 성기사님 같아요!”

“어머, 정말이네요. 어쩜 이다지도 훌륭한 몸인지…….”

“나도. 나도.”

여신관들은 내 외모와 몸에 홀딱 빠져버린 듯, 감시는 완전히 뒷전으로 미뤄두고 말았다.

‘귀엽네.’

병아리들처럼 쫑알쫑알 떠들어대며 내 곁에 모여든 여신관들이 참 귀여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성욕이 조금도 일어나진 않았다. 평소라면 불끈했을 텐데 말이다.

설마 이곳이 신전 안이라서? 아니면 상대가 여신관들이라서? 단언하던데 그런 이유는 절대로 아닐 것이다.

‘저주가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해.’

어서 빨리 모니카한테 부탁해서 저주를 풀 필요가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 기다리자, 하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여신관이 모니카를 데리고 돌아왔다.

“지, 지금 뭐 하고 있는 겁니까! 제가 위험하니까 함부로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내 곁에 모여있는 세 명의 어린 여신관들을 발견한 여신관이 화들짝 놀라며 기겁했다. 반면에 모니카는 한 눈에 나를 알아본 듯, 눈물을 글썽거리며 두 손을 가슴 위에 모았다.

“현자님…….”

그와 동시에 그녀의 크고 풍만한 가슴이 위아래로 거세게 출렁거렸다.

‘저걸 두고서 찌머크라고 하는 거겠지.’

찌머크.

찌찌가 머리보다 크다.

나는 속으로 감탄하며 성녀, 모니카를 향해 살짝 웃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성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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