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8화 〉 [비밀 연구소]
* * *
‘최면이 안 풀릴 줄이야.’
혹시나 싶은 생각에 가까이 다가가서 몸을 툭 건드려보았지만, 마을 여성은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물……. 물을 떠야 해. 물을…….”
심지어 내게 눈길조차도 주지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걸린 최면에만 충실히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실제로 여성은 우물에서 기른 물을 계속 어디론가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다른 마을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축에게 사료를 주고 있는 여성부터 시작해서 마을을 청소하는 여성까지. 다들 최면에 걸린 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노동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외모가 예쁘거나, 나이가 어리다면.
“헤엑, 헥! 왈! 왈!”
“혹시 소변 마렵지 않으신가요? 여기, 제 입에 소변을 놔주세요. 대변도 가능해요!”
다들 어김없이 음란한 최면에 걸려있었다. 지금 내 곁에 다가온 마을 여성들만 해도 그러했다.
한 명은 개처럼 혀를 길게 내민 채 헥헥대고 있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입을 크게 벌린 채 소변을 놔달라며 애원하고 있었다.
‘인식 변경 최면인가.’
재밌는 최면이기도 했고, 이것만큼 꼴리는 것도 또 없긴 했지만……. 눈동자에 생기가 하나도 없다 보니, 꼴리기는커녕 오히려 섬뜩하기만 했다.
물론 개인 취향에 따라선 이런 죽은 눈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런 쪽이 아니었다.
‘죽은 눈은 대체로 얀데레가 하는 거니까.’
나는 몸을 살짝 떨고는 에나와 함께 광장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멀리서 봤던 대로 알몸의 여성들이 단체로 엎드린 채로 엉덩이를 흔들고 있다거나, 서로 마주 앉은 채로 정신없이 자위하고 있는 여성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윽! 아앙, 좋아……! 거기, 흐으으읏!”
“주인님……. 쭈읍. 쭙. 하으, 응!”
심지어 몇몇 여성은 죽은 최면술사의 시체를 입으로 빨면서 애무하고 있기까지 했다. 이에 나는 스켈레톤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여성들을 멀찍이 떨어뜨려 놓은 다음에 회수한 마정석 파편을 가져오게 했다.
딱. 딱.
스켈레톤이 두 손으로 공손히 마정석 파편을 내밀고, 나는 그것을 받아서 확인해봤다.
“여기에 마정석 파편을 박은 건가?”
마정석 파편은 붉은빛을 띤 보석 사이에 박혀있었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서 마정석 파편만 빼내어 보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붉은색 보석이 밝은 빛을 내며 그것을 막았다.
아무래도 평범한 보석은 아닌 듯 싶었다.
‘붉은색 보석에 마정석 파편을 박아서 최면의 힘을 증폭시켰다고 보는 게 맞으려나.’
나는 최면술사의 도구를 만지작거리다가 스켈레톤에게 명령을 내려서 마을 여자 한 명을 데려오게 시켰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몸의 여성이 스켈레톤의 손에 이끌린 채로 내 앞에 섰다.
“하앙, 앙! 주인님……. 흐읏, 흣! 으응!”
내 앞에 선 여성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자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자위를 했던 것인지, 음부는 빨갛게 부어있었고 줄줄 흘러나온 애액은 발목까지 흘러내려선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이쯤 되면 가엾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어떻게 해야지 최면을 풀 수 있으려나?’
나는 최면술사가 스켈레톤에게 했던 행동을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스켈레톤들에게 이걸 보여주면서 뭐라고 소리쳤었지.’
단순히 보여주는 것만으로 최면에 걸 수 있다는 걸까? 만약에 그게 정말이라면 실로 편리한 최면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당장에 시험해보기 위해서 마을 여성에게 붉은색 돌을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 걸린 최면이 무엇입니까?”
내가 질문을 던지자, 순간 붉은색 돌에서 옅은 빛이 피어올랐다.
“자위하는 일입니다.”
동시에 여성이 자위를 멈추고 내 질문에 대답을 했다.
‘이게 정말로 되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간단한 최면술에 감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어쩌면 이게 최면 아이템보다도 좋을지도 몰랐다. 그리 생각하며 붉은색 보석을 바라보던 나는 문득 눈앞의 여성이 더 이상 자위를 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왜 자위를 안 하지?’
설마, 두 가지 이상의 최면을 동시에 걸 수 없는 걸까?
나는 조금 더 실험을 해보고자, 눈앞의 여성에게 최면을 더 걸어봤다.
“지금부터 제가 그만이라고 말할 때까지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십시오.”
“네.”
내 말에 따라 여성이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확인한 나는 다시 또 다른 최면을 걸었다.
“제자리 뛰기를 해보세요.”
“네.”
이어진 최면에 여성이 앞선 최면을 무시하고, 제자리 뛰기를 하기 시작했다. 깡충깡충, 뛸 때마다 음모에 매달린 애액이 사방에 튀었다.
‘최면이 덮어씌워 지는 건가? 아니면 동시에 수행하는 게 불가능한 최면이어서 그런 걸까?’
결과를 확인한 나는 눈앞의 여성에게 다시 새로운 최면을 걸었다.
“이제부터 당신은 공중변기입니다. 그리고 앞으론 마을의 우물에서 물을 떠서 이곳에 두어야 합니다.”
“…….”
덜덜덜!
두 가지의 명령을 동시에 내리자, 갑자기 여성이 몸을 덜덜 떨면서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이에 화들짝 놀란 재빨리 최면을 수정했다.
“최면을 취소하겠습니다! 전부 다 잊으십시오!”
“아?”
최면을 취소함과 동시에 여성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왔다.
마을 여성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윽고 무언가 떠올린 듯, 허리를 꺾고서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우에에에엑!”
투두두둑!
토사물과 함께 여성이 흘린 눈물이 바닥에 후두둑 쏟아졌다.
그녀는 너무나도 끔찍하단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의 몸을 마구 긁어댔다. 마치 더러운 것을 지우려는 것처럼.
‘기억을 떠올린 건가.’
나는 마을 여성이 더 이상 자기 자신을 학대하지 못하도록, 몸을 붙잡은 뒤에 최면을 걸었다.
“제가 깨울 때까지 주무십시오.”
“아…….”
내가 최면을 걸자, 여성의 몸이 순식간에 힘을 잃고 허물어졌다. 이에 나는 그녀의 몸에 토사물이 묻지 않도록 안아준 뒤에 비교적 깨끗한 장소에 눕혀놨다.
‘이러면 최면으로 사람들의 기억을 지워줘야 하나?’
하지만 이건 이것 나름대로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사람들의 눈동자가 생기를 잃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기억이 지워졌다는 최면에 걸린 채로 마을 사람들이 이전처럼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결국 이건 스스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는 건가.’
혀를 내두른 나는 스켈레톤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마을 안팎에 있는 마을 사람들을 광장으로 모아오게 시켰다. 그러자 에나가 마을 밖으로 빠져나가는 스켈레톤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유현 님, 저도 마을 사람들을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강한 의욕을 내비치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서 허락했다. 그러자 에나가 스켈레톤들을 도와서 마을 사람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처럼 마을 사람들이 광장에 모일 때마다 나는 붉은색 돌을 사용해서 최면을 걸었다.
“몸을 깨끗이 씻고 오세요.”
“네.”
최면에 걸린 마을 여성들은 몸을 씻기 위해서 우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몇 여성들은 냇가로 가서 몸을 씻고 오기도 했다.
나는 몸을 씻고 온 여성에게 옷을 입고 오도록 재차 최면을 건 다음에 광장에서 기다리게 했다.
“유현 님, 전부 다 데려왔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을 여성들에 비해서 남성은 비교적 상태가 멀쩡했다. 하지만 이건 정말로 어디까지나 비교적 멀쩡하단 소리였다.
다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질 못한 듯 비쩍 마를 대로 마른 상태였고, 심지어 몇몇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이에 나는 급한 대로 밥을 먹인 다음에 이프리의 유물, 지팡이라도 몸을 치료해주었다.
‘이걸로 준비는 다 끝난 것 같은데.’
이제 남은 건, 마을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극복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에게 걸린 최면을 전부 다 지우겠습니다.”
붉은색 돌을 높이 치켜들고서 최면을 해제하자, 마을 사람들의 눈동자에 차츰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
“이게, 무슨……. 으아?”
“우웁! 우에에엑!”
“시, 싫어! 싫어어어엇!”
예상했던대로 마을 사람들 모두 공황 상태에 빠졌다. 이에 나는 빛과 어둠의 망토를 소환해서 몸에 걸친 뒤에 용기의 오로라를 활성화했다. 그러자 화악! 하고 밝은 빛이 사방에 퍼져나가며 마을 사람들을 포근히 감쌌다.
“아아……!”
능력치 상승 버프에는 정신력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몇몇 마을 사람들이 과거의 괴로운 기억을 이겨내고 정신을 차렸다.
물론 여전히 대다수의 마을 사람들이 흐느껴 울거나 토악질을 해대고 있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진정되어 가고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겠지.’
나는 칠흑의 지팡이를 높이 치켜든 다음에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을 괴롭혔던 최면술사는 제가 처치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으셔도 됩니다.”
크게 소리쳐 말한 나는 어둠의 화살로 최면술사의 시체를 불태웠다.
콰앙!
폭발음과 함께 최면술사의 시체가 불타오르자, 사람들의 얼굴에 비로소 안도감이 서렸다.
‘그래도 몇 명은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하지만 여기선 더 이상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왼손에 잡혀있는 붉은색 돌을 내려다보았다.
‘이건 어떻게 할까?’
이대로 이계 퀘스트를 완료해서 마정석 파편을 매니저 어플에 상납한다면, 붉은색 보석은 더 이상 지금처럼 강력한 최면의 힘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쉬웠다.
‘……상납하는 것보단 내가 직접 쓰자.’
이렇듯 결정을 내린 나는 에나를 불러서 입을 열었다.
“에나 씨, 이걸 따로 보관해주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내가 붉은색 돌을 건네주자, 에나가 그걸 조심스럽게 받아들어선 품에 잘 갈무리했다.
‘이러면 매니저 어플한테 붉은색 돌을 빼앗기지 않겠지.’
이렇듯 붉은색 보석의 보관을 에나에게 맡긴 나는 이계 퀘스트를 끝마치기 위해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이계 퀘스트를 포기하려고 하는데, 일찍이 먼저 최면을 풀어주었었던 여성이 내 곁으로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저기……. 감사합니다.”
마을 여성이 내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일찍 구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또……. 음, 최면의 실험 대상으로 사용해서 죄송합니다.”
“아, 그건……. 괜찮아요. 그 정도는 뭐……. 네. 음, 괜찮아요.”
여성은 내게 괜찮다는 말을 구태여 두 번씩이나 하며 얼굴을 붉혔다. 아무래도 공중변기가 되라고 했었던 일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미안함을 담아서 여성의 손을 잡아주었다.
“진심으로 공중변기가 되라고 말했던 건 아닙니다. 그냥 막 떠오른 걸 말하다 보니…….”
“아, 아뇨! 전 정말로 괜찮아요. 물론……. 공중변기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으음, 괜찮았을 지도요…….”
여성이 내 얼굴을 힐끔 쳐다보며 전혀 예상지도 못 한 말을 중얼거렸다.
“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말로요! 아무튼……. 정말로,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따로 드릴 건 없지만 보답으로 하룻밤 저희 집에서 머물다가……. 마침 해도 저물었고…….”
여성의 말에 고개를 들어보니, 확실히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고 갈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아직 할 일이 두 개나 더 남아있었다.
나는 갈 길을 서두르기 위해서 여성의 제안을 거절하며 입을 열었다.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아…….”
“그럼 저는 이만.”
여성의 손을 놓아준 나는 엄지로 이계 퀘스트 포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곧 눈앞의 시야가 일그러지며, 무척이나 아쉬워하는 여성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이미 퀘스트를 포기했고,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었다.
‘언젠가 인연이 닿는다면 또 만나겠지.’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비밀 연구소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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