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537화 (537/599)

〈 537화 〉 [비밀 연구소]

* * *

나는 시선을 억지로 떼어낸 뒤 마틸다에게 몇 번 더 키스를 해줬다.

“츄읍. 하아, 좀 더……. 하읍.”

질척하고 농밀한 숨소리가 귀를 울렸다. 마틸다는 자신의 입술에 내 입술이 닿을 때마다 가쁘게 숨을 토해내며 기뻐했다. 멀리서 던전 코어가 부럽다는 얼굴로 빤히 쳐다보고 있긴 했지만, 그런 시선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들지 않았다.

‘왜 자꾸 아라크네한테 눈길이 가는 건지…….’

바스락. 바삭. 소리를 내며 간식을 야금야금 뜯어먹고 있는 아라크네의 귀여운 모습에 자꾸만 가슴이 뛰었다. 뜨거워진 머리가 어서 빨리 그녀를 안으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질투에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며 물을 찾듯이 마틸다의 입술을 탐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극심해질 뿐이었다.

‘안 되겠어.’

결국, 해결책을 찾지 못한 나는 마틸다의 몸을 강하게 꽉 끌어안으며 깊게 키스를 했다. 그러자 마틸다가 내 목을 끌어안으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눈동자는 진작에 한계점을 넘어버린 쾌감에 흐리멍덩하게 변해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입속을 헤엄치는 내 혀를 순순히 받아들이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하아, 하아…….”

그리고 이윽고 입술이 떨어지자, 마틸다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으며 숨을 헐떡였다. 그녀의 얼굴만 봐도 충분히 만족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처럼 모든 던전 수호자들을 만족시켜준 나는 스마트폰을 재빨리 꺼내든 뒤에 입을 열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서둘러 작별 인사를 고한 나는 이계 퀘스트를 포기하고 현실로 돌아갔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위험할 뻔했어.”

안도의 숨을 내쉰 나는 잠시 벽에 등을 기대고서 숨을 돌렸다. 그런 다음 매니저 어플의 이계 퀘스트 항목을 확인해봤다.

[이계 퀘스트]

[비밀 연구소]

마정석 파편이 가진 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합니다. 또한 매우 위험합니다. 그렇기에 아단트 교단이 각 왕국에게 협력을 요청해서 마정석 파편을 모으도록 했지만, 모두가 그 뜻에 따르는 건 아닙니다.

하폰 왕국을 제외한 다른 왕국들은 저마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비밀리에 마정석 파편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구는 매우 순조로우며, 많은 수의 마물들이 마정석 파편에 오염된 채 실험용 생쥐처럼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비밀 연구소를 습격해서 마정석 파편을 손에 넣으세요. (보상 : 랜덤 장비 상자)

[성녀의 사랑]

현자의 부탁으로 마정석 파편을 모은 성녀, 모니카가 사랑하는 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매일 밤, 현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홀로 밤을 지새우는 성녀의 지극정성에 여신 아단트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성녀, 모니카의 노고를 치하해주고 외로움을 달래주십시오. 그러면 많은 양의 마정석 파편을 한 번에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녀로부터 마정석 파편을 받으십시오. (보상 : 랜덤 아이템 상자)

[최면술사]

어느 최면술사가 우연히 마정석 파편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는 3류 최면술사였지만, 마정석 파편을 실에 매달아서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자, 그 힘이 몇 배나 증폭되었습니다.

그는 현재 작은 마을을 실험 무대로 사용하여, 그곳에서 왕처럼 군림하고 있습니다. 순진한 마을 처녀들을 농락하면서.

­최면술사로부터 마정석 파편을 빼앗으십시오. (보상 : 랜덤 아이템 상자)

사태가 많이 진정되었다고 판단을 내린 건지, 이전에 봤던 이계 퀘스트가 항목에 추가되어 있었다.

‘성녀와 최면술사라.’

하는 김에 이것들도 전부 다 해두는 편이 좋겠지?

나는 시간이 가장 적게 걸릴 거라고 생각되는 최면술사부터 선택했다.

[이계 퀘스트 [최면술사]를 수행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화면에 떠오른 알림 문구를 확인한 나는 엄지로 네를 눌렀다. 그러자 잠깐 눈앞의 시야가 일그러졌다가 이윽고 햇살이 부서질 듯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숲속의 풍경이 펼쳐졌다.

“덥네…….”

북부가 아닌 중부나 남부 쪽인 모양인지, 날씨가 무척이나 무더웠다.

나는 껴입고 있던 옷을 벗은 다음에 주변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이 보이질 않았다.

‘이번엔 좀 멀리 떨어져 있는 건가.’

스마트폰을 들어서 미니맵을 확인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목표물의 위치가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를 확인한 나는 칠흑의 지팡이를 소환한 다음에 에나를 불러냈다. 그러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차갑고 딱딱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기사가 눈앞에 나타났다.

“유현 님.”

역시라면 역시일까.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에나는 내 얼굴을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은 놀라지 않을까 싶었는데……. 나는 혹시라도 에나가 내 얼굴을 미처 보지 못한 건 아닐까 싶어서, 고개를 살짝 앞으로 내밀며 입을 열었다.

“에나 씨가 보시기에 제 얼굴이 어떤 것 같습니까?”

“근사합니다.”

내 물음에 에나가 일말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역시 에나가 보기에도 내가 잘 생겨진 걸까? 그리 생각하며 턱을 쓰다듬는데, 에나가 멈추지 않고 계속 말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너무나도 멋지셔서 눈이 부실 지경입니다.”

“음? 예나 지금이나요?”

“네, 유현 님은 항상 멋지셨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바라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에나가 자신의 가슴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심지어 나를 올려다보는 눈동자에는 애정이 잔뜩 깃들어 있었다. 실로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평소라면 대번에 그녀를 끌어안은 다음에 키스를 퍼부었을 것이다. 아니, 키스만 할까? 숲속에서 야외 섹스를 질펀하게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틸다 때처럼 그럴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설마 드래곤의 저주인가? 드래곤과 섹스를 한 대가? 만약에 그게 정말이라면……. 앞으로 사람과 섹스를 하는 게 불가능하단 소리였다.

‘아니, 아직 속단해선 안 돼.’

그저 일시적인 현상일지도 몰랐다.

나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에나 씨, 덥지 않으십니까?”

“아, 그러고 보니…….”

“다시 불러드릴테니, 갈아입고 오세요.”

“알겠습니다.”

에나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나는 그녀를 역소환했다가 1분쯤 뒤에 다시 소환했다. 그러자 두꺼운 겨울옷이 아닌 평소의 갑옷 차림으로 돌아온 에나를 볼 수 있었다. 이에 나는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간 다음에 품에 안아봤다.

“유현 님?”

조금 놀란 모양인지, 에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에 나는 소리 없이 싱긋 웃고는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러자 뜨거운 숨결과 함께 말랑거리는 입술이 느껴졌다.

‘반응이 오는 것 같은데.’

조금 집중하니, 하복부로 피가 쏠리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나는 에나의 입술을 몇 번이고 거듭해서 탐닉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아래로 떨어트렸다.

“흐읏.”

자그마한 신음과 함께 에나의 어깨가 떨렸다. 나는 그녀의 떨림을 즐기며 갑옷의 앞쪽과 뒤쪽을 이어주고 있는 고리를 풀었다. 그리고는 갑옷을 벗기자, 매끄럽게 깎여있는 듯한 절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

그래, 바로 이 느낌이었다.

절벽 앞에 선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자 몸의 열기로 인해서 한껏 데워진 농후한 체향이 맡아졌다. 참을 수 없을 만큼 흥분되었다. 나는 꿀꺽, 군침을 삼키고는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섰다……. 섰어!’

다행히도 최악은 아닌 듯싶었다. 나는 속으로 환호하며 에나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는 빠르게 쿵쿵쿵 뛰는 그녀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나를 바라만 봐도 심장이 뛴다는 건, 결코 거짓말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한동안 에나의 가슴을 만끽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떼어냈다.

‘근데 여전히 섹스하고픈 마음이 안 든단 말이지.’

설마 진짜로 저주 같은 걸 받은 걸까? 나는 골똘히 생각하며 에나한테 갑옷을 다시 입혀주다가 한 가지 번뜩이는 해결책을 떠올렸다.

‘만약에 이게 저주라면……. 모니카가 해결해줄 수 있지 않을까?’

아단트 여신에게 총애를 받고 있는 성녀님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듯싶었다.

이렇듯 생각을 마친 나는 서둘러 에나와 함께 미니맵에 표시되어 있는 목표물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간 걷자, 멀지 않은 곳에서 쩍! 쩌억! 하고 나무를 베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성인 남성 다섯 명이 나무를 베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태가 조금 이상합니다.”

에나가 이맛살을 살짝 찌푸리며 내게 속삭였다.

“이상하다니요?”

“움직임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습니다.”

“좀비라는 겁니까?”

“그것과는 다릅니다.”

좀비냐는 질문에 에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이에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그들을 직접 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탁! 쩍!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다가가 보니, 에나의 말대로 다섯 명의 남성이 도끼로 나무를 베고 있었다. 다만 그들 모두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하나 같이 눈동자에 생기가 없었으며, 몸은 며칠 굶은 사람처럼 비쩍 말라 있었다.

“나무를……. 베어야 해.”

“나무……. 베어서……. 열심히 베어서…….”

“나무……. 흐흐, 나무…….”

심지어 다들 귀신한테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나무를 베어야 한다며 혼잣말을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최면에 걸린 마을 사람들인가.’

딱 보아하니, 최면술사에게 당한 마을 사람인 듯싶었다. 이에 마음 같아선 마을 사람들에게 걸린 최면을 풀어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내가 가진 장비와 아이템으론 이들의 최면을 풀어주는 게 불가능했다.

“유현 님, 어쩌시겠습니까?”

“지금으로선 도울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최면술사만 잡으면 되는 일이니까요.”

에나를 다독여준 나는 서둘러 숲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윽고 숲을 빠져나가자, 저 멀리 작은 마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음.’

마을을 직접 본 나는 살짝 침음성을 흘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여자들이 모두 알몸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몇몇 여자들은 마을 중앙에서 자위를 하고 있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땅바닥에 네 발로 엎드린 여자들이 일렬로 쭉 늘어져서는 한 명의 남성에게 차례대로 박히고 있는 것이었다.

‘……딱 보니, 저놈이 최면술사구나.’

이처럼 내가 최면술사를 발견했을 때, 에나도 발견한 모양인지 대뜸 뛰쳐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위험했기에 나는 재빨리 그녀의 팔을 붙잡아서 말렸다.

“유현 님?”

자기를 왜 말리냐는 듯, 나를 돌아보는 에나의 태도에 나는 단호히 말했다.

“놈은 최면술사입니다. 게다가 보아하니 여자를 엄청나게 밝히는 놈입니다. 그런 놈이니 분명 에나 씨를 보자마자 자기 여자로 만들려고 최면술을 사용하려고 할 게 뻔합니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 자가 최면술을 사용하기도 전에 목을 베어버리면 그만이니까요.”

에나가 서늘하게 식은 눈동자로 최면술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도 혹시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에나 씨가 오죽 예쁩니까?”

“예, 예쁘다니……. 으음, 알겠습니다. 유현 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예쁘다는 말에 에나가 부끄럼을 타며 얌전히 내 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처럼 에나를 진정시킨 나는 유령 기사의 장갑과 중갑을 소환해서 몸에 걸쳤다.

‘이러면 시체 없이도 스켈레톤을 뽑을 수 있지.’

두 번째 세트 옵션 ‘언데드 계열 소환물을 소환하는데, 더 이상 시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를 활성화한 나는 칠흑의 지팡이를 오른손에 쥔 채로 땅을 찍었다.

“스켈레톤 소환.”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땅속에서 96마리나 되는 스켈레톤들이 기어 올라왔다.

‘확실히 숫자가 많으니까 장관이네.’

흐뭇하게 웃은 나는 지상으로 올라온 스켈레톤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마을로 내려가서 남자가 가지고 있는 마정석 파편을 가져오십시오.”

달그락! 달그락!

내 명령에 스켈레톤들이 기쁜 듯, 턱뼈를 쩌억 벌리며 달그락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이 마치 포효를 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처럼 한 차례 포효한 스켈레톤들은 뻥 뚫린 동공에서 음산한 흉광을 번뜩이더니, 빠른 속도로 마을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반면에 최면술사는 지금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한 건지도 모른 채, 마을 광장에서 여자들을 정신없이 탐하고 있었다.

‘끝났네.’

결국, 놈이 스켈레톤의 존재를 알아챈 건 스켈레톤들이 광장 안까지 들이닥치고 난 뒤였다.

스켈레톤들은 내 명령대로 최면술사한테서 마정석 파편을 빼앗으려고 했고, 놈은 마정석 파편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마정석 파편을 높이 치켜들며 최면술을 남발했다. 허나, 이지가 없는 스켈레톤에게 최면술이 통할 리가 만무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최면술사는 스켈레톤을 피해서 마을 밖으로 도망쳐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스켈레톤들이 광장 안을 포위하고 있었기에 놈에게 도망칠 구석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놈도 뒤늦게 그걸 깨달은 모양인지, 돌연 마정석 파편을 입에 넣고 삼켰다.

‘쯧.’

그 모습을 본 나는 혀를 찼다. 놈이 마정석 파편을 삼킨 이상, 더 이상 돌이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억지로 살린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살릴 수 있긴 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도와줄 의리는 없었다. 필요도 없었고.

‘자업자득이지.’

마정석 파편을 삼킨 대가로 최면술사는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고작 파편 1개였다. 그걸로 일백에 달하는 스켈레톤을 쓰러트릴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심지어 내가 소환한 스켈레톤들 모두 1km 이내에 존재했기에 칠흑의 지팡이가 주는 버프 효과도 받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처절한 비명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지고, 스켈레톤들이 놈의 배를 갈라서 기어코 마정석 파편을 끄집어냈다.

이를 확인한 나는 에나와 함께 마을로 내려갔다. 그러자 여전히 최면에 걸린 듯, 멍한 표정으로 마을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알몸의 여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