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5화 〉 [비밀 연구소]
* * *
드래곤으로 변해서 그런가, 온몸의 근육이 필요 이상으로 부풀어 올랐다. 꾸득, 꾸득.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피부가 마른 고목처럼 갈라지고 그 사이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그러면서 온몸에 힘이 충만해지는 게 느껴졌다.
“크워어어어!”
짐승 같은 포효가 또다시 터져 나왔다. 인간으로서의 이성보단 짐승의 본능이 나를 잠식했다.
참을 수 없는 흥분감을 느낀 나는 거칠기 짝이 없는 움직임으로 허리를 흔들며 에르밀의 몸을 탐했다.
[아흐흣! 아앙……. 좋아, 크흣! 으응!]
에르밀도 좀 더 깊은 환희를 느끼고 싶다는 듯이 스스로 허리를 흔들며 나를 부추겼다. 동시에 그녀의 몸도 나와 마찬가지로 조금씩 갈라지고 있는 게 보였다. 쩌적, 쩍. 찢어지는 피부 사이로 서릿바람과도 같은 수증기가 치밀어 오르고, 백설과도 같은 뽀얀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떨어져 나간 피부는 허물처럼 하얗게 밀려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본 순간, 참을 수 없는 식욕이 느껴졌다.
덥썩!
나는 참지 않고 그녀의 허물을 입으로 물었다. 그리고는 게걸스럽게 뜯어먹기 시작했다.
뚜둑, 뚝! 허물을 뜯어 먹을 때마다 에르밀이 농밀한 신음을 토해내며 날개를 펄럭였다. 포식자에게 물어뜯기는 가엾은 생물처럼 신음하면서도, 자신의 안을 가득 채우는 이물감에 숨을 헐떡이며 기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도 결국엔 포식자였다. 모든 생물의 정점. 드래곤. 내가 그녀의 허물을 거의 다 뜯어먹었을 때쯤, 에르밀이 사슴의 목처럼 기다랗고 고아한 목을 돌리더니 이번에는 자기가 내 몸의 허물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좋아! 좋아, 더……! 더!]
자신의 질 내를 관통하는 절정감을 느끼며 허물을 뜯어먹던 에르밀이 돌연 내 목을 콰악 깨물었다. 그와 동시에 몸이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들썩거렸다.
에르밀은 마치 이런 내 반응이 재밌다는 듯, 하얀 이를 날카롭게 세워서 다시 물었다.
“크르릉!”
목구멍을 타고서 억눌린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파르르 몸을 떨며 에르밀의 몸을 짓눌렀다. 그리곤 본능이 이끄는 대로 질 내 깊숙이 남근을 찔러넣고서 사정을 했다. 부르르릇! 힘차게 뿜어져 나간 정액이 순식간에 그녀의 질 내를 가득 채웠다.
[흐으으응! 아아……!]
그제야 에르밀이 내 목을 놓아주며 교성을 내질렀다.
부들부들, 꼬리를 떨며 날개를 쉴 새 없이 펄럭이고 있는 걸 보아하니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절정을 느낀 모양이었다.
에르밀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그르릉 소리를 내며 눈을 한 차례 깜빡이더니, 혀를 길게 내밀어서 내 목을 핥아주었다.
[기쁘구나. 이렇게나 늠름하고 멋진 반려를 찾은 게, 너무나도…….]
마침내 자신의 짝을 찾아낸 드래곤이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내 목에 오래도록 입을 맞췄다. 이에 나는 에르밀의 몸에 아직 붙어있는 허물을 뜯어먹으며 고민에 빠졌다.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내 정체를 사실대로 밝힐까?’
하지만 과연 에르밀이 이해해줄까? 물론 이대로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이계 퀘스트를 포기하고 현실로 도망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에르밀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근사한 여자였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참을 수 없는 소유욕이 나를 강하게 부추겼다.
‘어쩌면 드래곤으로 변신한 영향일지도.’
휴, 하고 한숨을 내쉰 나는 허물을 말끔히 다 벗은 에르밀의 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은색의 갈기 같은 게 나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한순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의 몸에서는 마치 금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은은하게 빛이 흘러나오고 있기까지 했다.
‘……이러면 더 포기 못 하지.’
결국, 차근차근 설명하기로 마음을 먹은 나는 일단 꽃미남 스티커부터 떼어냈다.
‘갑자기 못 생겨졌다면서 화를 내려나? 아니면 충격을 받으려나?’
나는 바짝 긴장한 채로 에르밀을 불렀다.
“저기, 에르밀 씨.”
[에르밀이라고 편하게 불러다오.]
“음, 에르밀……. 지금도 제가 마음에 듭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묻자, 에르밀이 여전히 꿀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너무 마음에 드는구나.]
“……?”
[그나저나 내 반려가 너무 멋져서 곤란하구나. 볼 때마다 가슴이 이다지도 방정맞게 떨리니…….]
꽃미남 스티커가 아직 붙어있나? 혹시나 싶은 생각에 꽃미남 스티커를 역소환해봤지만, 그럼에도 에르밀의 반응은 똑같았다.
여전히 내 곁에 찰싹 붙은 채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자꾸만 달아오른다는 듯,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나를 유혹하고 있기까지 했다.
‘아, 설마 나도 허물을 벗으면서 에르밀처럼 외형이 변한 건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에르밀의 반응이 이해되었다.
나는 속으로 납득하며,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여전히 내게 반한 상태라면, 내 정체를 밝혔을 때 어쩌면 이해해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에르밀, 사실 제가 당신에게 거짓말을 한 게 있습니다.”
[거짓말?]
“네, 지금 와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는 드래곤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
인간이란 말에 고개를 살짝 기울인 에르밀은 이내 자그맣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참, 재밌는 농담이구나.]
“농담이 아닙니다. 종족 변환, 해제.”
단호하게 대답한 나는 종족 변환을 해제해서 인간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순식간에 크기가 줄어들더니, 원래 체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런 내 모습을 본 에르밀이 노란색 눈동자를 게슴츠레 뜨더니, 자기도 인간 모습으로 변했다.
“인간으로 변했다고 해서 드래곤이 아니라고 할 셈이냐? 그렇다면 나도 드래곤이 아니란 것이냐?”
조금 토라진 듯, 팔짱을 낀 에르밀이 사납게 나를 노려다 보며 쏘아붙였다. 그리고 그 모습이, 역시나 내 예상대로 아름다웠다.
눈처럼 새하얀 은발에 약간 황금빛이 감도는 노란색 눈동자. 그리고 늘씬한 키에 차갑고 도도한 인상을 주는 서구적인 외모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당기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에르밀, 저는…….”
“갑자기 왜 그러는 것이냐? 혹시 내가 반려로 마음에 안 들어서……. 날 떠나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냐?”
“아니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에르밀, 당신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사실대로 밝힌 겁니다.”
“…….”
내 목소리에서 진심이라는 걸 알아차렸는지, 에르밀이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르밀.”
“자, 잠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다오. 지금의 나로선……. 이해가 안 돼. 인간이 어떻게 드래곤으로 변할 수 있었던 거지? 게다가 우린 서로 허물을 벗기까지 했잖아? 진짜 드래곤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데……. 드디어 찾은 반려라고 생각했는데!”
에르밀이 떨리는 손으로 자기 머리를 움켜쥐고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에 나는 그녀를 달래주고자,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몸을 끌어안았다.
“속여서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사실은 거짓말이었다고 말한다면 용서해주겠다.”
다행히도 에르밀은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붙잡으며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순 없었다. 여기선 진실을 관철시킬 필요가 있었다.
“제가 인간이면 안 되는 겁니까? 정말로요?”
“모, 모르겠구나……. 모르겠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 에르밀은 힘껏 나를 밀어냈다. 이에 내가 뒤로 밀려나자, 그녀가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말을 이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 무엇 하나도.”
“에르밀.”
“그만.”
“…….”
“생각이 정리되거든, 내가 다시 널 찾아가겠다.”
이 말을 끝으로 에르밀이 나를 자신의 레아에서 추방시켰다. 그러자 일순 눈앞의 시야가 일그러졌다가 이윽고 황량하게 펼쳐져 있는 눈밭으로 바뀌었다.
“으음.”
결국, 내가 너무 서둘렀던 모양이었다. 작게 신음을 흘린 나는 잠깐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저 멀리 마을 하나가 보였다.
마을 근처로 보내준 건, 그녀 나름의 배려인 걸까? 이걸 보면, 내가 아주 밉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나마 희망이 있는 건가.’
안도의 숨을 내쉰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던전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밝은 빛을 내는 던전 코어가 나를 반겨주었다.
[던전 마스터를 뵙……. 아?]
“……?”
[부, 분명 마스터가 맞는데…….]
날 맞이해주던 던전 코어가 갑자기 몸을 베베 꼬며 얼굴을 붉혔다. 유기체도 아닌 무기체가 왜 부끄럼을 타는 건지.
어이가 없어진 내가 던전 코어를 빤히 쳐다보자, 던전 코어가 양손으로 자기 얼굴을 감싸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게 빤히 쳐다보시면 부끄럽습니다!]
평소에도 이상했지만, 오늘따라 더 이상하게 행동하는 던전 코어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낀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카메라를 켰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비추자, 놀랍게도 거기엔 조작 미남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남자가 서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카메라에 비친 얼굴은 분명히 내 얼굴이었지만, 너무나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평범함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얼굴이었다.
나는 카메라를 향해 살짝 웃어 보였다. 그러자 여성이라면 누구나 반할 법한 그런 멋진 미소가 지어졌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서연이 누나나 다른 애들한테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나는 골머리를 앓으며 카메라를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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